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02)
하지만 그 누구도 승도흥의 집중을 깨지 못했다.
한데 이번에는 너무 어이없이 집중이 깨진 것이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어이도 없었지만, 벽태산을 보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수긍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공자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벽태산은 말없이 들고 있던 책 일곱 권을 휙 던졌다.
투두둑.
승도흥의 서탁에 일곱 권의 책이 차곡차곡 쌓였다.
“이게 뭡니까?”
벽태산은 대답도 하지 않고 휙 나가 버렸다.
승도흥은 벽태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책을 한 권 집었다.
“진법서인가?”
책장을 넘기고 그것을 대충 훑어보려던 승도흥은 그대로 내용에 빠져 단숨에 한 권을 독파했다.
승도흥은 흥분한 표정으로 다음 책을 집었다.
그렇게 일곱 권의 책을 모두 읽을 때까지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안 그래도 최근 집중력이 높아졌는데, 이 책들을 읽는 동안에는 그 집중력이 최고조로 발휘되었다.
승도흥은 일곱 권의 책을 자신의 방에 있는 철궤 안에 넣었다. 그리고 궤짝을 굳게 잠갔다.
이 책은 결코 잃어버려선 안 된다. 이건 진법가들의 보물이다. 특히 자신처럼 영력을 깨운 진법가에게는 보물이라는 말만으로는 한참 모자랄 정도로 중요한 책이었다.
승도흥은 당장 밖으로 나가 벽태산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벽태산의 집무실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네가 올 줄 알고 있다는 듯이.
승도흥은 집무실 안으로 뛰쳐들어가다시피 했다.
“공자님, 그 책, 대체 뭡니까? 누가 쓴 겁니까?”
벽태산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서늘한 시선으로 승도흥을 쳐다봤다.
“책은 다 봤느냐?”
“예. 다 봤습니다. 하지만 몇 번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익혀라. 그 다음에 할 일이 있으니까.”
“예? 할 일이요? 진법을 설치하는 일입니까?”
“해체하는 일이다.”
“대체 어떤 진법이기에 그 책을 확실히 익혀야 한다는 겁니까?”
지금 수준이라도 웬만한 진법은 해체할 수 있었다.
제갈세가 쯤 되는 곳에서 몇 대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진법이라 해도 시간만 들이면 충분히 해체할 자신이 있었다.
벽태산은 자신만만한 승도흥을 보며 말했다.
“현천진.”
그 말을 들은 승도흥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끝
“에헴, 에헴. 다들 어디 있느냐! 우리가 왔다! 여기 십대고수 어르신이 오셨다, 이 말이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성큼 정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천추신의의 모습에 일침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 마땅히 대접을 받아야지. 십대고수가 결코 쉬운 이름은 아니지. 암.”
일침괴 역시 천추신의와 마찬가지로 턱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켜 올린 채였다.
십대고수를 이겼다고 해서 바로 십대고수가 되는 건 아니지만, 두 사람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요란스럽게 현천장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 안쪽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다. 현천장은 굉장히 넓기에 정문 근처에는 사람이 많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다들 안쪽 어딘가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사람이 몇 없는 걸 확인하고는 입맛을 다셨다.
“반겨주는 사람이 뭐 이리 없어?”
“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제법 큰일을 하고 왔는데 말이야. 안 그러냐?”
“아우, 안 그럴 리가 있겠소? 형님 말이 다 맞소. 우리가 천독검을 박살 낸 덕분에 안강현에 그럴듯한 기루를 세울 수 있게 되지 않았소. 그런 위업, 아무나 못 세우지. 암.”
하지만 정문 근처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두 의원에게 반응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나름대로 각자 할 일이 바빴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한 것이다.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이러는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말이다.
두 의원은 머쓱한 표정으로 얼른 걸음을 옮겼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벽태산부터 만나야 했다. 보고를 빙자한 자랑질의 시간이었다.
두 의원은 거의 뛰다시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벽태산의 집무실이 있는 전각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두 의원은 걸음을 더욱 빨리하며, 내공까지 살짝 담아 외쳤다.
“공자니임! 저희가 왔습니다! 십대고수를 박살 내고 이렇게 돌아왔습니다아! 으하하하!”
벽태산의 집무실이 벌컥 열렸다.
두 의원은 당연히 자신들을 환대하기 위함이라고 여겨 환하게 웃으며 벽태산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어라? 혼자가 아니셨네?”
벽태산의 집무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사람은 화옥이었다.
그리고 화옥 옆으로 철란과 연하린이 보였다. 심지어 천경완과 유서연까지 있었다.
“뭐 하느라 이리 늦게 왔느냐.”
화옥이 옆에서 즉시 보고했다.
“안강현에 기루를 세우는 걸 확인하느라 약간 늦어졌습니다.”
“기루?”
벽태산이 두 의원을 가만히 쳐다봤다.
두 의원은 안절부절못하며 투덜거렸다.
“아니, 다들 대체 뭐 이리 빨리 온 거지? 진짜 다들 이기고 온 거 맞아?”
화옥이 또 나서서 대답했다.
“확실히 승리했습니다. 상대한 십대고수 중 번천혈응만 죽었습니다. 나머지 중 두 명은 불구가 되었습니다.”
“불구?”
“죽어?”
두 의원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자신들도 천독검을 개 패듯 패고 오긴 했지만,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지는 않았다.
한데 그런 일이 생겼다면 현천장과 십대고수를 보유하고 있던 문파 사이에 갈등이 생길 소지가 있었다.
게다가 번천혈응은 흑련 소속 아닌가.
“불구가 된 자는 우리가 나서면 웬만해서는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요 없다.”
벽태산이 단숨에 말을 잘라 버렸다.
“예? 하지만······.”
화옥이 가볍게 부연설명을 했다.
“저열한 말과 행동으로 희롱하다가 남자 구실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화옥이 두 의원을 서늘한 시선으로 보며 물었다.
“두 분이라면 그런 불구조차 고쳐주실 수 있으시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셔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자신도 모르게 동시에 사타구니를 가리고 몸을 움츠렸다.
“어우, 우린 몰랐지. 그런 놈들에게 베풀 의술 따위는 없지, 암.”
일침괴는 얼른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아직 두 명이 안 왔네.”
십대고수를 상대하러 떠났던 사람 중에서 장각우와 육태구가 없었다.
“그 두 분은 보고만 마치고 가셨습니다. 처리할 일이 있으시다더군요.”
결국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가장 늦게 온 셈이었다.
그것도 기루를 세우는 일을 지켜보며 확인하다가 말이다.
정말 억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루가 완성되지 않았기에 거기서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했다.
“아니, 뭐······ 오늘 다 모인 걸 보니 차이가 길어야 한두 시진 정도인 것 같은데······.”
천추신의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인 사람들의 눈치를 슬그머니 살폈다.
화옥이 이번에도 설명해 주었다.
“두 분께서 오늘 도착하신다고 해서 지금 모였습니다. 다른 분들은 며칠 전에 도착했습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민망해지니 결국 천추신의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조용해지자, 벽태산이 좌중을 슥 둘러봤다.
“대충 자격이 되는 것 같군.”
벽태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탁 위에 있던 책자들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각각 한 권씩 휙 날아갔다.
다들 눈을 반짝이며 책자를 받았다.
벽태산이 주는 것은 대부분 무인 입장에서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게 뭡니까?”
천추신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익혀라. 너희라면 할 수 있을 테니.”
다들 기대감 어린 눈으로 책자를 펼쳤다. 일단 읽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이건 보통 무공서가 아니었다.
다들 끝까지 읽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한 차례 읽은 뒤에는 다시 읽고 싶어졌지만, 다들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해 참아냈다.
벽태산은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자,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뭣들 하느냐. 가서 더 읽고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사람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자신의 숙소를 향해 경공을 펼쳐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홀로 남은 벽태산은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저들은 이제 더 강해지리라. 그리고 저들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차츰차츰 강해져 저들의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벽태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수련하러 갈 시간이다.
* * *
혁련가주는 초조한 표정으로 방안을 서성였다.
혼천마를 보낸 지 제법 오래 된 듯한데,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이 없으니 참으로 답답했다.
무한 쪽은 하오문이 워낙 철저하게 정보를 틀어막고 있어서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저 가끔 사람을 보내 대충 훑어보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번에 혼천마를 담당하는 자들은 각별히 신경을 써서 골랐다.
혼천마를 무사히 현천장으로 안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이 끝났을 때, 그를 확실하게 데리고 나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칫 혼천마를 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금제를 확실히 걸었기에 결국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관리를 잘 해두면 두고두고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그렇게 신경을 써서 보냈는데, 소식이 너무 늦어져서 다른 자들을 추가로 더 보냈다. 조심스럽게 상황을 파악해 보라고 말이다.
한데 그자들조차 감감무소식이었다.
“무한으로만 보내면 일이 계속 틀어지는 것 같구나.”
그리고 일이 틀어지는 이유는 바로 현천장일 것이다.
만일 혼천마로도 결과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적어도 무림맹이나 흑련과 동급이야.’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렇게 혁련가주가 오만 생각을 다 하며 방안을 서성이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가주님, 저 총관입니다.”
“어서 들어오게. 소식이 온 모양이군?”
“예. 소식이 왔습니다.”
총관은 방으로 들어오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어떻게 됐나?”
혁련가주는 초조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급히 물었다.
“실패했습니다.”
“실패? 혼천마가 갔는데도 실패했다고? 같이 간 애들은?”
“전부 잡혔습니다.”
혁련가주의 눈이 커다래졌다.
“상황을 보아하니 무한에 들어선 순간부터 감시를 당한 모양입니다. 혼천마가 현천장에 들어가자마자 잡혔다고 합니다.”
“허어. 어이가 없군.”
고르고 골라서 보낸 녀석들이 힘도 못 쓰고 당했다.
“하오문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럴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하오문이 이렇게 대단한 문파가 되었단 말인가.
정보수집, 감시, 추적, 암살까지 뭐 하나 모자란 것이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할까요?”
“나중에 보낸 녀석들은 어찌 되었나? 다들 돌아왔나?”
총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연락을 보낸 것도 기적적인 상황입니다.”
혁련가주는 단호히 말했다.
“당분간 무한에서 손을 떼야겠군.”
“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혁련가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 무한에서 손을 뗀다면 이제는 천무련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천무련에는 의선이 있다.
혁련가주는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무한도 안 되고 천무련도 안 된다면, 계획을 좀 틀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무림맹이나 흑련을 공략한다거나.
처음 천무련을 만들도록 유도하고 그들과 싸움을 이어가려고 했던 것은 시선을 천무련에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그 역할을 다른 세력에 맡겨도 되지 않겠는가.
물론 계획 변경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주변 봉우리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총관, 어르신들은 어떻게 되었나? 연락을 넣어봤나?”
“예. 절반은 연락을 넣었고, 나머지 절반은 연락할 사람을 물색하고 있습니다.”
“연락이 닿은 어르신들 반응은 어떤가?”
“의외로 긍정적이신 분들이 많습니다.”
혁련가주가 코웃음을 쳤다.
“답답하신 모양이군.”
“적게는 오 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을 봉우리에서만 지내신 분들 아닙니까. 답답하신 것이 당연합니다.”
“아무튼 분위기가 좋다니 다행이야. 최대한 일을 빨리 진행해 보게. 어르신들이 나서주신다면 무한을 한 번 휘저어놓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나?”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면 그쪽으로 유도해 보겠습니다.”
혁련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련 쪽에는 따로 생각해둔 것이 있으니 그리 하게.”
혁련가주는 방금 막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참, 내가 전에 구해보라던 시체는 어찌 되었나?”
“조건에 맞는 시체를 구하기가 어려워 조사를 확대하는 중입니다. 조만간 좋은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혁련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군. 내 총관만 믿겠네.”
총관은 믿어 달라는 듯 깊이 고개를 숙였다.
혁련가주는 총관이 나가자,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던 호리병을 꺼냈다.
그는 부드럽게 호리병을 쓰다듬었다.
“더 이상 금제를 추가할 수가 없으니 이쯤에서 손을 떼는 것이 좋겠지. 과연 금제가 얼마나 먹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