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8)
“맞다. 좀 더 큰 놈을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십대고수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허공섭물이라는 건 막대한 내공을 통해 외부 물체에 힘을 가하는 기술이다.
내공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내공을 운용하는 능력도 굉장히 중요했다.
천추신의는 새삼 질린 눈으로 벽태산의 전각 쪽을 바라봤다.
“그럼 대체 우리 공자님은 뭐요?”
“그러니까 허공섭물이 아니라는 거지.”
천추신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니다. 허공섭물이었다면, 그래서 고작 내공을 통한 물리력이 작용한 거라면 자신이 그렇게 힘없이 밀려났을 리가 없으니까.
“그럼 대체 뭐요?”
일침괴는 또 한 번 침음을 흘렸다.
“끄응.”
“왜 또 똥 싸는 소리를 내고 그러쇼? 더럽게.”
“또 시작해보자는 거냐? 진짜 내 매운 주먹 맛 좀 보고 싶어?”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왜 또 폭력을 쓰려고 그러시오. 자자, 얼른 말이나 해보쇼, 왜 똥 싸는 소리를 냈는지.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뇨?”
“아오, 하여간 내 이 새끼를 그냥!”
일침괴는 천추신의를 노려보며 주먹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말도 안 되는 생각? 뭔데 그러쇼?”
일침괴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내 말 듣고 안 웃고, 안 놀리겠다고 약속해라.”
천추신의의 입가가 길게 찢어지듯 올라갔다.
“어이구, 뭘 그런 걸 염려하고 그러쇼? 절대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고 얼른 얘기해 보쇼.”
“네놈 표정을 보고 있으니 신뢰가 안 가서 말을 못하겠다, 이 새끼야.”
천추신의가 눈을 말똥말똥 뜨며 말했다.
“내 표정이 어디가 어때서? 이렇게 진실되고 참된 마음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람이 또 있는 줄 아쇼? 아무튼 절대 안 웃을 테니 얼른 말해보쇼. 이러다 나 현기증 나겠소.”
“크흠.”
일침괴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검이 떠올랐다.”
천추신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검?”
일침괴는 천추신의의 반응이 생각했던 것과 좀 달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겠지? 아무렴. 심검이 어떤 경지인데. 하늘이 내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검에 미쳐서 평생을 갈구하고도 간신히 닿을까 말까한 경지 아니더냐.”
“그, 그야 그렇소만······.”
“내 듣기로 심검의 경지에 발끝이라도 스친 사람은 검왕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조차 나이가 백을 넘은 지 좀 됐지 않느냐.”
“그것도 그렇고.”
“그런데 왜 그런 얼빠진 표정이냐? 왜, 내가 뭐 못할 말이라도 했어? 공자님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기는 거냐? 뭐, 하긴 내가 좀 앞서 나가긴 했지. 그래도 그거 말고는 안 떠오르는데 어쩌란 말이냐.”
천추신의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난 그래서 이러는 거 아니오.”
“뭐?”
“왠지······ 왠지 형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거요. 어우씨, 소름.”
천추신의는 팔뚝에 오돌오돌 돋아난 소름을 손바닥으로 싹싹 쓸었다.
일침괴는 어느새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그쪽에 심검의 경지에 든 사람이 있었느냐?”
“듣기로 검마 어르신이 거기에 발을 들였다고 했소.”
“그래? 어느 정도라더냐? 우리 공자님처럼 손을 휘저어서 사람 밀어내고 그럴 정도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심검지경에 이르렀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람이 그리 흔하겠소? 검마 어르신도 미리 집중하지 않으면 싸움에 써먹기 힘들다고 들었소. 아마 검왕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보오.”
“뭐······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왜 이러느냐 하면······ 그런 분을 딱 한 분 알고 있어서 그렇소.”
“응?”
“그릇 백 개에 두툼한 고기를 담아두고, 그걸 동시에 싹둑싹둑 잘라낼 수 있겠소?”
“그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냐? 그릇 백 개에 있는 고기를 어떻게 동시에 잘라?”
“그걸 하신 분이 계시오.”
“설마······.”
“우리 신교에 호천대라고 있소.”
“호천대?”
“그분을 지척에서 모시는 자들이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르고 또 올라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조직이오.”
“대단하겠구나.”
“말해 뭐 하겠소. 그분 외에 그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분의 명이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자들이고.”
“그래서, 호천대가 왜?”
“가끔 그분이 호천대 전원과 식사를 하실 때가 있소. 한데 그때마다 그분이 직접 그들에게 고기를 잘라주신다는 얘기가 돌았소.”
“응? 그분이 직접? 그거 굉장한 거 아니야?”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오. 한데 믿을 수 없는 건, 백 명이나 되는 호천대의 그릇에 담긴 고기를 그분이 동시에 썰었다는 거요. 그것도 손도 대지 않고서. 게다가 먹기 좋게 조각조각 냈다고 하니······.”
“심검이구나.”
“다들 그렇게 믿고 있소.”
일침괴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확실히 그 정도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심검을 써서 날 밀어냈을 수도 있겠구나.”
고기를 써는 것과 사람을 밀어내는 건 전혀 다른 얘기지만,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천추신의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지 않소. 그분이 그랬다는 거지, 그걸 공자님이랑 연결하면 안 되지. 일단 나이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서······.”
일침괴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솔직히 이제 뭐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하오? 우리 공자님이 심검까지 쓸 수 있으면 더 좋은 거지. 어차피······ 조용히 살긴 틀린 것 같은데, 든든한 주군을 둬서 나쁠 거 없잖소?”
“하긴.”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계속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야.”
“왜 그러쇼?”
“네놈이 가서 한 번 물어봐라.”
천추신의가 기겁한 눈으로 일침괴를 쳐다봤다.
“미쳤소?”
“뭐? 미쳐? 지금 나한테 한 말이냐? 너 한 번 진짜 죽어볼래?”
“한 번 죽어보다니, 그 무슨 무책임하면서도 멍청한 소리요? 그럼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소? 죽어보다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쇼. 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지 다른 사람이 들으면 속으로 욕하오.”
“차라리 속으로 욕을 해라, 이 새끼야. 대놓고 그따위 말을 하고 무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
일침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추신의가 부리나케 달아났다.
“너, 거기 안 서!”
“형님 같으면 서겠소?”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하는 천추신의의 경공 실력에 일침괴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그를 쫓아갔다.
한동안 벽태산의 전각 근처가 소란스러웠다.
* * *
백화루주가 돌아간 뒤, 벽태산은 화옥을 불렀다.
화옥이 공손한 자세로 벽태산 앞에 마주 앉았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화옥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백화루주는 능력과 야망이 둘 다 큰 사람입니다.”
그러니 잘 해낼 거라는 뜻이다.
“아까 백화루주에게 받은 정보를 확인해 봤느냐?”
“예. 곧 무한이 혼란스러워질 것으로 사료됩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한데 뭔가 묘하게 껄끄럽단 말이지.”
화옥은 차분히 말했다.
“제가 무한지부에 있지 않았기에 기존 정보를 차근차근 확인해 봤습니다. 한데 아직 천금련의 뒤에 있던 세력에 대해서 알아낸 사실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하, 그것 때문에 껄끄러웠구나.”
벽태산이 옳다는 듯 손으로 무릎을 탁 지자, 화옥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이래저래 바쁘다보니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의창에 있던 그놈들, 천금련 뒤에 있는 놈들이랑 같은 놈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저도 좀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흑월검의 존재가 그러했다.
흑월검은 분명히 죽은 자다. 한데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화옥은 이미 이와 비슷한 것을 본 경험이 있었다.
광동사괴가 그랬고, 광혈삼마가 그랬다.
“이놈들 뒤를 캐보면 작은 세력은 아니겠지?”
“굉장히 거대하리라 예상됩니다. 반강시만 해도 금세 준비해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그 모든 걸 준비하고 세력을 쌓을 수 있었다는 건 그들의 능력과 세력,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겠지.”
벽태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화옥을 보며 물었다.
“잡스럽긴 하지만 조직 몇 개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하는 게 낫겠느냐?”
화옥은 한편으로는 긴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감격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까지 벽태산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 처음이 자신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화옥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냉정을 되찾고 생각에 잠겼다.
“휘하 세력이란 확실히 통제할 수 있다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한데 공자님께서 그렇게 물으시는 건,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까?”
“나중에 뒤탈이 날 가능성이 약간 있거든.”
“뒤탈이라 하심은······.”
“귀찮아진다.”
“예?”
화옥이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귀찮아진다니. 저 말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화옥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 귀찮은 일을 대신 해결해줄 사람을 염두에 두시면 괜찮을 듯합니다.”
“대신 귀찮아질 사람이라······.”
확실히 그러면 되긴 한다. 한데 그런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일단 천추신의는 안 되고······.’
지위도 낮을뿐더러 소속도 비천단, 거기에 의원이다. 그렇다고 동호표국주에게 그걸 맡길 수도 없다. 천추신의나 동호표국주나 그게 그거니까.
“미래의 귀찮음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의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니, 역설적이로구나.”
벽태산의 머릿속에 적당한 사람이 한 명 떠오르긴 했다. 한데 굳이 그자를 끌어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리자, 화옥이 보고를 이어갔다.
“일단 천금련의 뒤를 계속 캐긴 했는데, 그때 이후로 마치 인연을 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접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놈들도 천금련이 망할 지경이 되니 손절을 한 거로군.”
“예. 하지만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찾지 않을까요?”
벽태산은 그 말에 눈을 빛내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지. 나중에 필요하면 분명히 다시 찾겠지. 어차피 그물에 낚인 고기니까.”
그렇다면 언제 다시 필요해질까?
“그놈들 말이야.”
“예. 말씀하십시오.”
“대체 천금련으로 뭘 하려고 했던 걸까? 거기에 종리세가까지 엮여 있었지?”
“예. 맞습니다. 종리세가뿐 아니라 하오문도 일부가 얽혀 있었고,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고작 금벽상단 하나 먹으려고 그렇게 복잡하게 설계할 필요는 없잖아.”
“제 생각에는······ 아마 무한을 암중지배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암중지배?”
“겉으로는 이렇다 할 세력이 무한을 장악하지 못하고 적당히 갈라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 모두를 한 사람이 통제하는 것이지요.”
“그렇군.”
제일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긴 하다.
결과적으로 벽태산 때문에 실패했지만.
“천금련의 감시를 좀 더 강화하겠습니다. 세작도 좀 더 넣어두겠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왠지 분명히 천금련을 시작으로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반강시나 잔뜩 데려왔으면 좋겠구나.’
벽태산이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짝 입맛을 다셨다.
끝
벽태산은 한동안 조용한 생활이 이어질 거라 예상했다.
지금으로서는 하오문의 권력교체에 잡음이 생겨서 백화루주가 도움을 요청하러 오는 일 외에는 시끄러워질 만한 일이 없었다.
천금련의 뒤에 있다는 흉수도 당장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뭔가를 하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물론 진짜 그들이 무한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약간의 가능성이 있는 건 천약방인데, 그쪽 의원들도 지금은 천추신단을 만들기 위해 개처럼 부려지고 있으니 당분간 조용할 것이다.
한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손님이 들이닥쳤다.
아니, 손님이라기보다는 군식구에 더 가까웠다.
“이제부터 저도 여기서 살기로 했어요.”
저따위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사람이 그렇게 가볍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면 안 되는 법이다.”
“가볍게 결정한 거 아니거든요? 고민도 많이 하고 상의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리며 당당하게 자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눈을 마주쳐 오는 연하린을 쳐다봤다.
연하린이 환하게 웃었다.
“역시 파혼을 거절하고 끝까지 버티길 잘한 거 같아요. 만일 아버지 말에 넘어갔으면 지금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을까요?”
벽태산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연하린이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까지 불끈 쥐고 말했다.
“공자님한테 얹혀서 그냥 놀고먹을 생각은 없어요. 저도 일을 할 거랍니다.”
“그래? 무슨 일을 할 생각이냐?”
연하린이 배시시 눈웃음을 쳤다.
“그야 공자님이 알려주셔야지요. 시키시는 일은 뭐든 할 수 있답니다.”
그녀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요염함을 담아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그동안 열심히 연구했던 대로 살짝 몸을 비틀어 되도록 요염한 모습을 표현했다.
그걸 본 벽태산이 말했다.
“자세가 비틀렸구나. 올바른 자세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무공 수련에 방해가 된다.”
“그건 저도 알거든요?”
연하린은 자세를 똑바로 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벽태산은 그걸 보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튼 알았다. 단영이나 소소를 찾아서 말하면 적당한 방을 내줄 것이다.”
벽태산의 허락이 떨어지자, 연하린이 환하게 웃었다.
“앞으로 정말 잘 할게요.”
“뭘 잘 하겠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알아서 해라. 그저 날 귀찮게 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저, 그런데······.”
연하린이 나가지 않고 말을 끌자, 벽태산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왜 그러느냐?”
연하린은 한동안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눈을 빛내며 벽태산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