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7)
솔직히 그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저, 절 죽이실 겁니까?”
“에이, 나, 사람 막 죽이고 그런 놈 아니오. 그냥 가볍게 대화나 나눠볼까 해서 왔소. 거부할 수 없는 제안도 좀 할 겸.”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것이 왠지 거부하면 죽이겠다고 말하는 듯해서 더 무서웠다.
“무, 무슨 제안입니까?”
서도군이 마치 길 가다 돌멩이라도 줍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차피 천금련은 망했잖아?”
“예?”
“금벽상단한테 밀려서 쫄딱 망했잖아. 회생 가능성이 있긴 해?”
천금련주의 표정이 확 굳었다. 하지만 그는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맞습니다. 망해서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습니다.”
서도군이 그제야 빙긋 웃었다.
“이제 말이 좀 통하는군. 아무튼 망했다고 해서 다 같이 죽을 필요는 없지 않겠소?”
서도군은 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천금련주를 흔들었다.
천금련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무리 망해도 천금련은 천금련이다. 여기서 욕심 부리지 않고 손절하면 그래도 다시 시작할 기반은 마련할 수 있다.
‘한데 저놈은 나보고 나가 죽으라고 하는구나.’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싫었다면 애초에 저놈의 손을 잡지 말았어야 한다.
“제가 어쩌면 되겠습니까?”
“별 거 아니오. 천금련을 잘 포장해서 무림맹과 흑련에 접촉해 보시오.”
“무, 무림맹 말입니까? 거기에 흑련까지 같이?”
천금련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저, 절 죽이시지 않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왜 죽을 일이오? 그리고 내 얘기는 아직 안 끝났소. 남궁세가와 제갈세가에도 선을 대 보시오.”
점입가경이었다. 지금 저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얘기를 한단 말인가.
서도군은 천금련주의 태도를 보고는 입가에 비웃음을 걸었다.
“이거······ 다 망해간다더니 눈도 멀고 귀도 막혔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금 내가 말한 곳들이 무한 진출을 노리고 있소.”
“그거야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한에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 같소?”
“그야······ 명분을 세우겠지요. 호무련이 한 것처럼.”
“바로 그거요. 내가 원하는 건 천금련이 그들의 명분이 되어 주라는 거요.”
천금련주가 서도군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서도군이 씨익 웃었다.
“나야 모르오. 그건 천금련주인 당신이 고민해야 할 일 아니겠소? 뭐······ 무림맹이나 흑련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아 날 칠 수도 있을 테고.”
천금련주는 오싹 소름이 돋아 맹렬히 손사래를 쳤다.
“절대! 절대 그런 허튼 마음은 먹지 않습니다! 전 분수를 아주 잘 아는 놈입니다!”
서도군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소.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니까.”
“예?”
“무림맹과 흑련을 잘 끌어들여서 우리 존재를 밝혀내시오. 단, 우리는 금벽상단과 손잡고 있는 거요. 증거는 내가 적당히 여기저기 뿌려둘 테니까.”
천금련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그게 과연 통하겠습니까?”
무림맹이나 흑련도 바보가 아닌 이상, 어설프게 시도했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다.
서도군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통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오? 어차피 난장판이 될 텐데. 천금련은 그 와중에 이득만 잘 취하면 되지 않겠소? 왜, 자신 없소?”
천금련주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건 해볼 만한 싸움이다. 서도군이 제대로 역할만 해준다면 말이다.
그리고 미리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신이 가장 유리하다.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뽑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
“해보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서도군이 환하게 웃었다.
“잘 생각하셨소.”
* * *
벽태산이 조태주의 혼백을 뽑아 태운 지 이틀이 지났다.
조태주는 다시 하오문으로 돌아갔고, 백화루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백화루주가 무한에 도착했다.
그녀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백화루가 아닌 금벽장으로 달려왔다.
금벽장에 오자마자 벽태산이 머무는 전각의 접객실로 안내 되었고, 잠시 후 벽태산을 만났다.
벽태산은 앞에 다소곳이 앉은 백화루주를 가만히 쳐다봤다.
백화루주는 한껏 긴장한 상태였다.
그녀는 조태주와는 달랐다.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그동안 무한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파악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대비를 했어야 하는데.”
“됐다. 대비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뭐, 앞으로는 그놈이 껄떡댈 일 없을 거다.”
백화루주는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벽태산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최근 무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무한으로 오면서 각 하오문 지부에 요청해서 받은 정보를 정리했습니다.”
백화루주는 공손히 서류 몇 장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벽태산이 그걸 집어 슥 훑었다. 그러더니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이것들 봐라?”
무림맹과 흑련, 남궁세가와 제갈세가에서 무한에 진출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정보였다.
또한 그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누가 그 일을 맡았는지도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걸 모두 확인한 벽태산이 백화루주를 쳐다봤다.
백화루주는 긴장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채,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벽태산이었다.
“너, 하오문주가 될 생각이 있느냐?”
백화루주가 넙죽 엎드렸다.
“공자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벽태산이 눈을 빛내며 백화루주를 내려다봤다.
도와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허락만 구했다. 그 얘기는 하오문을 차지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는 뜻이다.
솔직히 좀 의외였다.
“그냥 하오문주가 되기만 하는 건 필요 없다.”
하오문주가 되기 위해 싸우다가 하오문의 전력이 깎이면 곤란하다.
백화루주를 하오문주로 만들려는 이유는 하오문을 써먹기 위해서인데 권력다툼 때문에 정보력이 떨어지면 하오문을 장악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공자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으로 맞추려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제대로 힘을 쓸 사람이 필요합니다.”
“정확히 말해라.”
백화루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반드시 싸워야만 하는 상대가 얼마나 있는지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하오문도들의 무공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 하오문주의 호위무사 세 명, 그리고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장로들을 지키는 무사들의 수준이 제법 높습니다.”
그들은 엄밀히 따지면 하오문이라 할 수 없었다. 하오문주와 장로들이 고용한 자들이었으니까.
백화루주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오문주를 지키는 무사의 수준은 예전 호무련 후기지수들을 습격했던 수적의 우두머리 정도입니다.”
벽태산의 눈이 번득였다.
“생각보다 약하지 않네?”
당시 수적들을 이끌던 놈은 연하린과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냉정하게 비교하면 그가 연하린보다 두어 수는 위에 있었다.
“한 명이 그 정도이고, 나머지는 몇 수 떨어집니다. 그리고 장로들을 지키는 무사들은 그보다 좀 더 떨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딱 써먹기 좋은 놈들이 있지 않은가.
지은 죄도 탕감해줄 겸 여기에 써먹으면 될 듯했다.
“이걸 가지고 동호표국에 찾아가라.”
벽태산이 서찰 하나를 일필휘지로 써내리더니, 그걸 백화루주에게 넘겼다.
백화루주는 공손히 그걸 받아 품에 넣었다.
서찰에 뭐라고 썼는지, 또 동호표국과 벽태산의 관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동호표국이 과연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벽태산이 그러라고 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게 대충 대화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공자님. 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천추신의의 목소리였다. 보아하니 일침괴도 함께인 모양이었다.
“들어와.”
벽태산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궤짝 일곱 개가 보였다.
천추신의가 씨익 웃으며 벽태산에게 말했다.
“공자님, 말씀하신 천추신단 각각 백 개, 완성했습니다.”
“그래?”
벽태산이 눈을 빛내며 차곡차곡 쌓인 궤짝을 쳐다봤다.
궤짝에 흐르는 기운이 자신의 품에 있는 천추신단과 비슷했다.
“잘 만든 모양이군.”
“어이구, 이를 말씀입니까. 제가 누굽니까. 아주 완벽합니다. 그동안 만들었던 것 중에서 최고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일침괴의 도움이 있었고, 천약방의 두 의원이 잠과 노력을 갈아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일침괴가 인상을 팍 썼다.
“왜 네놈이 혼자 생색을 내?”
“내가 언제 그랬소? 그냥 완벽하게 잘 만들었다고 했지.”
벽태산은 둘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말을 막았다.
“잘했다. 일단 내방에 갖다 놔라.”
천추신의가 알았다고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천추신단이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백화루주였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천추신의와 궤짝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천추신의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벽태산이 천추신의를 보며 말했다.
“이번 일을 잘 처리하면 하오문에 이걸 상으로 좀 내리면 되겠군. 각각 서른 개씩만 더 만들어라.”
“예에?”
천추신의는 날벼락이라도 맞은 표정으로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백화루주를 보고는 눈을 부라렸다. 얼른 사양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백화루주는 벽태산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공자님의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확실한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벽태산이 손을 휘휘 젓자, 백화루주가 얼른 물러갔다.
천추신의는 끝까지 백화루주를 노려봤지만, 그녀는 결코 천추신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오, 저걸 확 그냥.”
그런 천추신의의 귀에 벽태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구나.”
천추신의는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고, 공자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전 우리 형님이랑은 다릅니다.”
“야! 왜 또 날 끌어들여!”
둘이 또 시작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벽태산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뒤로 주춤주춤 밀려났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밖에 서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밖까지 밀려난 것이다.
두 사람이 경악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무심히 두 사람을 쳐다봤다.
“문 닫고 가라.”
두 사람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끝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궤짝을 나눠들고 벽태산의 방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침묵은 벽태산의 방에 일곱 개의 궤짝을 옮겨 놓은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말없이 걸었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일침괴였다.
“야, 아까 그거 대체 뭐냐?”
“그걸 내가 알겠소? 무공이 더 고강한 형님이 알겠지. 나야말로 좀 물읍시다. 대체 그거 뭐요?”
“끄응.”
일침괴는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허공섭물을 응용한 거 아니오?”
일침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천추신의가 바라보자, 일침괴가 설명을 이어갔다.
“고작 허공섭물에 내가 밀려났을 리가 없지. 너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내공이 엄청나면······.”
천추신의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허공섭물로 사람을 밀어내려면 얼마나 내공이 많아야 되는데.”
“그냥 내공이 많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일침괴의 말에 천추신의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형님은 어떻소?”
“뭐가 말이냐.”
“허공섭물 말이오. 할 수 있소?”
“할 수 있지. 보여주랴?”
일침괴는 그렇게 말하고 근처에 있는 나무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뭇잎 하나를 따더니 손바닥 위에 놓았다.
잠시 집중하자 나뭇잎이 둥실 떠오르더니 앞으로 미끄러지듯 슥 나아갔다.
그리고 나무 근처에 가더니 힘을 잃고 나풀나풀 떨어졌다.
“봤냐?”
의기양양한 목소리에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그게 대체 뭐요? 고작 나뭇잎 하나 날리는 데 뭐 그리 어려워? 그래서 제대로 써먹을 수나 있겠소?”
일침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도 못하는 놈이!”
천추신의는 정색하고 말을 돌렸다.
“아무튼 형님 정도 되는 사람도 허공섭물은 그 정도가 한계라는 거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