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RAW novel - Chapter (348)
천마(天魔).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온 마귀이자.
중원 전체를 잡아먹고 핏빛으로 물들려고 했던 마교의 주인.
인간을 초월했다는 삼존(三尊)을 모두 단신으로 죽인 괴물.
결국, 신검 위설아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교의 주인이며 악인이라 하여도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던 존재였다.
그럴 수밖에.
천마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디딘 땅이 썩어갔으며.
숨을 쉬는 것만으로 주변을 짓누르는 존재감을 보였으니.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의 벽의 차이가 느껴지거늘.
천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순적이게도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고는 했다.
마주하는 것뿐인데, 절로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은, 제왕(帝王)에게서 느껴질 법한 품격.
천마는 존재 자체가 그랬다.
만마(萬魔)의 주인.
하늘 아래 펼쳐진 무수한 마인의 주인이자 근본이 되는 인물.
마교가 순식간에 중원을 침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떠올리자면.
이는 결국 마인이 사용하는 마기가 원인이다.
마기(魔氣)란 무인에게 치명적인 기운이다.
무인의 육체에 스며드는 순간 단전에 뿌리를 내리며.
그 뿌리는 크기를 키워 순식간에 내기가 흐르는 통로를 막기 시작한다.
원활하게 흐르지 않기 시작한 내기란 무공을 사용하는 데 커다란 문제가 된다.
하물며, 내기를 막는 거로 모자라 내기가 스민 육신을 점차 썩어들어가게 만들기까지 하니.
무인에게 마기란 극독과 같다는 말이었다.
천마는 그런 마인이 사용하는 마기의 원천이며.
그중 몇몇이 사용하는 권능을 내린 신과 같은 존재가 바로 천마다.
무림맹의 하늘 위로 차원을 찢고 나타나선.
지금부터 혈겁을 일으킬 것이라며.
어디 한 번 막아보라는 듯 미소를 띠던 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있었다.
긴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허공에 기운을 두르고 떠올라 만중을 내려다보던 눈빛은.
해가 떠 있는 대낮을 순식간에 밤으로 바꿀 것 같은 서늘함이 묻어있었다.
그때의 눈과.
지금 내가 마주한 눈빛은 다르지가 않다.
“어째서…….”
앞으로 몇 년 뒤에나 나타날 천마가 지금 내 앞에 있었다.
그때보다 어려 보이고 표정도 고혹적이며 자신감에 차 있던 그때와는 다르지만.
저 존재는 분명 천마였다.
드드드득….
몸속에 있는 소량의 마기가 들끓고 있다.
마치 공명하듯이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눈앞에 있는 존재가 천마라는 걸 인식할 수 있었으나.
그보다 더 확신하게 만드는 건 눈동자였다.
어깨까지 간신히 닿는 검은 머리칼과.
새하얗게 질린 것 같은 피부.
한참이나 마른 몸은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나는 앞선 이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내 품 안에 안겨있는 위설아와 똑같이 생긴 얼굴과 더불어.
그 안에 들어있는 자색빛 눈동자.
흑야궁주가 가진 눈동자도 자색 빛이었지만.
천마가 가진 것과는 달랐다.
자색 눈동자는 더 확연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알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하다.
보기에 마치 보석과 같았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의미다.
하나,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까지 아름다운 건 아니었다.
‘천마.’
앞선 존재가 내가 그토록 조심하고 두려워하던 훗날의 재앙임을 알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두렵기만 하다.
‘어째서.’
꽉.
위설아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고. 조금 더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걸 보던 천마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위설아를 바라보고 있다.
눈코입이 똑같이 생겼다.
천마가 비정상적으로 말랐고 머리칼과 눈동자의 색이 다를 뿐이지.
그 외적인 부분은 모두 같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리고.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뒤편에 피떡이 되어 주저앉은 인물 또한, 위설아를 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하늘이…. 둘?”
누구인가 싶어 살피니, 놀랍게도 흑야궁주였다.
왜 저렇게 온몸이 다져진 상태로 앉아 있는지 모를 일이나.
느껴지는 기운은 보니 분명 그때 만난 흑야궁주가 맞았다.
‘그렇게 찾을 때는 안 보이더니….’
이번 생에 천마를 처음 본 것은 흑야궁에서였다.
흑야궁주가 당시 천마를 안고 있었고, 뒤편에서 열린 마경문으로 사라진 것을 마지막으로 보질 못했다.
그 뒤로 정보를 풀어 얼마나 천마와 궁주를 찾으려 했던가.
대체 어디에 그리도 잘 숨었는지 조금도 알아내질 못했거늘 대뜸 여기서 만나게 된다고?
“어떻게…. 저건.”
궁주는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내 품에 안긴 위설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겠지.
그토록 닮았는데 안 신기할 수가 있을까.
천마 또한 위설아가 신기한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내가 위설아를 조금 더 품으로 끌어안는다.
감추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때.
“공자님….”
위설아의 손끝이 내 손을 감싸 쥔다. 그 손길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고개를 내려 위설아를 바라본다.
위설아의 금안 또한 날 향해 있었다.
“괜찮아요.”
“…뭐?”
대뜸 내게 괜찮다고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묻게 된다.
뭐가 괜찮다는 거지?
“저는 괜찮아요. 놔주세요.”
“…!”
굳은 몸으로 꽉 안고 있던 게 문제일까. 위설아의 말에 힘을 조금 풀지만.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그걸 느낀 위설아가 조금 힘을 줘서 내게 벗어나려 한다.
마음 같아선 위설아를 계속 끌어안고 싶었으나, 직전에 봤던 위설아의 눈이 신경 쓰여 그러질 못했다.
내게서 벗어난 위설아가 점차 몸을 일으키고서.
천마를 마주한다.
스릉.
들고 있던 검 끝을 겨눈다. 똑같이 생긴 얼굴이 같은 공간에 마주보고 서 있는 모습은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마주한 위설아가 천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얼굴을 보면서도 당황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이는 천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박.
위설아의 말을 들은 천마가 한걸음 움직인다.
작은 행동에도 내 신경은 곤두서있다.
기감을 가득히 펼쳐놓고서 오로지 천마에게만 보내 놓았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물론, 대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위설아 또한 그 행동을 보며 기운을 일으킨다.
선명한 금빛이다.
얼마나 선명한 빛인지 마치 천마와 대조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기운을 마주하면서도 천마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하다.
정확히는 위설아의 기운 따윈 관심도 없다고 해야 할까. 천마의 걸음은 위설아를 향한게 아니었다.
내 쪽으로.
천마가 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위설아가 눈을 번뜩이며 검을 휘두른다. 마치 접근을 허용치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쉬익-!
허공을 가르는 검은 빨랐다.
정순한 기운이 담긴 검로에 금빛 흔적이 남는다.
망설임 따윈 없는 일정한 검로.
하지만.
스으으으-!
천마의 발끝에서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튀어나와 검을 팅겨낸다.
팅-!
철이 퉁겨지는 청아한 소리가 퍼진다. 와중에 천마는 시선을 위설아에게 조금도 보내지 않고 있었다.
보자마자 확신했다.
마기(魔氣)다.
방금 천마가 뿜어낸 기운은 그 무엇보다 정순한 마기였다.
마기에 순간 휩쓸린 위설아가 몸을 틀며 기운을 회피한다.
기운은 흑야궁주가 사용하던 무공처럼 가시의 형태로 뿜어져 나와 위설아를 공격하지만.
위설아의 유연한 몸놀림은 이를 쉽게 피해낸다.
그리고.
‘…움직여.’
그걸 바라보며 내 몸은 어째서인지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꾸우우욱.
“…끅….”
기운을 일으키려고 하니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정확히는 단전 한구석에 박아놓은 마기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 게 이유였다.
아까 흑룡검의 변질을 보며 내기가 굳던 것과는 다르다.
이번엔 마기가 방해하고 있었다.
제 주인을 마주한 게 기쁘기라도 한 것인지 몸 안에서 힘차게 날뛰고 있다.
저번과 같다.
흑야궁에서 천마를 마주했던 날.
천마의 손짓에 내 몸에 있는 마기가 비명을 내지르듯 움직이던 때와 느낌이 같았다.
진짜 주인이 나타났으니.
내 말은 따르지 않기라도 하겠다는 걸까.
‘이럴 때는 왜 또 안 도와주는 건데.’
당시엔 짐승 놈이 울부짖으며 천마를 견제한 덕일까.
마기가 금방 잠잠해졌었지만.
그 빌어먹을 짐승 새끼는.
아까는 으르렁거리며 잘만 날 방해하더니.
지금은 또 울부짖지 않고 있었다.
‘진짜 방해하는 건가?’
겉으로 터지려는 비명을 꾹 눌러 참고서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이럴 때 멈출 수는 없다.
당장 눈앞에 있지 않은가.
훗날 세상을 혈겁으로 끌고 갈 존재가, 날 마인으로 만들고 앞으로의 삶을 망쳐놓을 장본인이.
저 괴물을 막기 위해 그토록 굴러다닌 것이다.
마경에 처박혀 화경에 이를 열쇠를 찾아 현계로 넘어와 경지를 높인 것도.
지금까지 기연을 찾아다니며 악착같이 굴러다닌 것도.
모두 천마를 막아내기 위함이거늘.
‘시발.’
화경에 간신히 닿았음에도 천마를 마주한 것만으로 무릎을 꿇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럴 수 없었다.
하물며.
위설아가 눈앞에서 천마와 만났다.
내가 이번 생에 들어 죽을 만큼 원치 않던 상황이 저것이다.
그그극-!
섬광이 사방에 이른다.
금빛으로 둘린 검 끝이 빠르게 휘둘린다.
그에 따라 허공에 수많은 선이 생기고 지워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위설아가 지금까지 무슨 노력을 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단호하고 정결한 검로다.
몇 년 전에는 무공의 무자도 모르던 소녀라고 하면 누구도 믿지 못할 빛나는 성장이 느껴졌다.
팍-!
지면을 짓밟는 보법이 강렬하다.
쿵!
뻗어 나오는 가시를 피하곤 검을 휘두른다.
완벽한 대처다.
하나.
그그극!
“…!”
천마의 기운에는 여전히 흠집 하나 주질 못한다.
마기는 강철과 같이 단단했다.
심지어 천마는 위설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는 건 여전했으니.
까득.
위설아 쪽에서 이를 까득깨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계속 검을 휘두를 생각인 모양인데.
순간, 천마가 고개를 돌려 위설아를 바라본다.
동시에 한 번의 손짓. 부드럽게 허공을 가로 지은 손끝에.
파아아아아-!
“끅!”
천마에게서 뻗어 나온 기운에 위설아가 휩쓸려 날아간다.
그걸 보자마자 내가 몸을 일으켰다.
“위설아!”
일어나면서 몸이 찢어지는 고통이 스친다.
마기의 제약을 강제로 풀며 몸을 일으켰기 때문일까.
신경 쓰지 않았다. 재빨리 날아가는 위설아를 받아 안아야 했으니까.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콱-!
천마의 가냘픈 손짓이 날 잡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움직이려는 내 팔이 천마에게 잡히니.
그대로 몸의 힘이 빠진다.
쿵.
무릎이 꿇렸다. 어떻게든 움직이려 하는 몸과.
그럼에도 힘이 쭉 빠지려고 하는 것이 충돌하니 겨우 무릎을 꿇는 것이 한계였다.
그리된 순간 허탈함이 몸을 감싸 안는다.
질린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거늘. 무력하기 그지없다.
몸에 마기가 담겨서일까?
아니면 근본적인 공포심인가.
무엇이 되었든 화경에 이른 몸뚱이가 한없이 무력해진 것은 분명했다.
어떻게든 손을 뿌리쳐보려 하지만.
천마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강하게 잡고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잡고있는 시늉만 하고 있을 터인데.
이상하게 천마에게 반항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많은 내기를 쓰고, 전투로 조금 지쳤다고는 하나 이럴 수준은 아니다.
‘…짖어, 제발 좀 짖어봐.’
속으로 한탄했다.
아까는 잘만 짖던 짐승 놈에게, 이번에도 힘을 좀 써보라 외쳐보지만.
어째서인지 반응이 없다.
하필이면 이때 말이다.
“…뭐지.”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위설아와 닮은 듯 낮은 목소리.
천마의 목소리였다.
눈을 돌려 천마의 자색빛 눈동자를 마주한다.
영롱한 빛깔이다.
너무나 아름다워 시선을 잠깐 뺏기지만, 목 끝까지 차오르는 감정은 그런 예쁘장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
쿵-!
이에 대답하듯 몸에 있는 마기가 더 강하게 날뛰기 시작한다.
“커헉.”
“넌 뭐야?”
뛰쳐나가기라도 하고 싶은 걸까.
마기의 반동이 너무 강하다.
지금까지 말만 잘 들어놓고. 이제와서 내 등을 치겠다고? 지랄하지 마.
“넌 뭐지?”
천마는 내 반응에도 여전히 의문이 담긴 말만 언급한다.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몸이 터질 것 같았다.
“천마…. 그건 무슨 뜻?”
내가 아까 뱉은 말을 되뇌는 걸까.
천마는 흥미롭다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어온다.
나는 당장 목을 뚫고 튀어 나가려고 하는 마기를 잠재우랴 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무위도 아닌 존재에 짓눌린 무력감은 상당하다.
그토록 굴러다니던 게 무색하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쉬이익-! 콰드드득-!
일순 강대한 기운이 천마에 날아들었다.
기운은 주변을 휩쓸며 사방을 터트린다.
이에 전혀 타격이 없어 보이던 천마 또한 날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널찍하고 강한 기운이었거늘.
가까이 있던 내게는 전혀 피해가 없었다.
“허억…. 헉.”
압박감에서 해방되며 뭉쳤던 숨을 터트린다.
그러면서 한껏 충혈된 눈으로 기운이 날아든 방향을 살폈다.
거기엔.
위설아가 다소 망가진 옷을 털어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화가 난 듯 표정을 잔뜩 구긴 얼굴과 더불어.
금빛 기운에 이변이 생겨있었다.
“손 떼.”
위설아 특유의 금빛 기운엔 얼핏 백색의 기운이 뒤섞여있다.
‘저건.’
본 적 있는 기운이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저건 전생에 위설아가 보여주던 기운이었다.
“감히, 그 더러운 손으로 그를 만지지 마.”
위설아에게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날 선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