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RAW novel - Chapter (481)
Chapter 481 – 썩어버린 것.
천존(天尊)에겐 자식이 넷이 있었다.
본처에게 셋, 첩에게 한 명을 얻어 넷이었는데.
그중에서 천존 이후 가주에 임명된 것은 첩의 자식. 그것도 막내 격인 인물이었다.
이름으로는 남궁저휘.
재능으로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을지언정, 정치적인 능력이나 사람 다루는 입김이 월등해, 끝내 가주쟁탈에서 승리한 사내였다.
다른 사대세가가 다 그랬을 터이나.
특히 남궁가는 가주 쟁탈전이 잔혹한 것으로 유명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궁저휘가 승리해 가주로 올랐을 무렵.
패배한 다른 형제들은 모두 죽게 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천존의 본처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지만.
천존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승자가 곧 법도이며. 제 자식이 가주로 올랐음에 흡족해할 뿐이다.
천존은 그런 인물이었다.
그게 본처의 자식이든 서자든, 가치가 있다면 존중한다. 천존의 뜻이 그러했다.
그렇게 남궁저휘는 가주에 오르고.
이후 본처를 통해 둘을, 첩을 통해 한 명의 자식을 낳게 된다.
이 중 본처에게서 얻은 둘째 되는 이가 바로 지금의 검왕이라 불리는 남궁진이다.
남궁저휘 다음으로 남궁진이 가주에 오를 무렵.
이에 대해 반대를 논하는 이는 없었다.
남궁저휘가 벌이던 가주쟁탈전과 달리, 남궁진이 가주에 오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첫째는 몸이 병약한 나머지 어린 시절 죽음에 이르렀고.
셋째는 망나니 취급을 받으며 남궁가에서 내놓은 자식에 심지어 서자였기 때문이다.
하니, 천재 소리를 듣던 남궁진이 다음 가주가 되는 건 당연한 순서였으니.
천존을 비롯한 장로진이 이에 불만을 표하지 않는 것 또한 문제없는 일이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사건은 바로.
뇌아가 남궁진이 아닌 다른 핏줄을 선택한 것이 문제였다.
남궁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선조의 뜻이 있다.
귀물 뇌아가 선택한 자가 남궁가의 주인이 된다.
뇌천일검 남궁명이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이자.
남궁가의 뜻이 되길 바라여 남긴 말이었으나.
천존의 바로 윗세대부터는 이미 허물어진 뜻과 같았다.
그들은 뇌아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가주가 되었고.
천존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애당초 뇌아가 선택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를 시절이 찾아왔다.
천존도 구태여 깊게 생각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주는 될 수 있었고, 남궁가는 더욱 찬란해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서서히 시간이 흘러서.
끝내 사건은 터져 버린다.
[씨… 팔….]피로 얼룩진 창고 안.
한 청년은 피떡이 된 소가주 남궁진의 멱살을 잡고 천존을 노려본다.
[그래, 좆같아서 안 한다. 이 씨발 새끼들아.]원망 어린 눈동자와 거칠게 말아쥔 검.
기운에 물든 머리칼과 진동을 터트리는 뇌기의 검날.
천존은 그걸 보며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저것이 뇌아가 가진 힘이며.
뇌아의 선택이란 저런 것임을 말이다.
하나.
[내가 나간다. 이 개 같은 집구석. 다신 돌아오나 봐라.]정작 뇌아가 선택한 주인은 남궁가를 떠나 도문으로 향하게 된다.
이날은 천존의 몇 없는 후회다.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음이 첫 번째 후회였으며.
떠나는 아이를 잡지 못했음이 두 번째 후회였고.
가문이 뒤틀리기 시작했음을 늦게 알았음이 세 번째 후회가 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하여, 나보고 어쩌란 게요?”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가 움직인다.
천존의 시선이 닿은 곳엔 웬 거지 하나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있었다.
“왜 자꾸 나를 쫓아와서 못살게 구는 거냔 말이오.”
“쫓아오다니, 말이 이상하구나.”
천존이 웃으며 말하자 사내가 짧게 혀를 찬다.
“이상하기는 개뿔이. 보기 싫어 도망치는데 질리도록 따라오는 게 쫓아오는 게 아니면 대체 뭐요?”
“형아.”
천존이 남궁형을 부르자 그가 질색하듯 얼굴을 찌푸린다.
“거, 이름 그렇게 부르지 마시오. 듣기 거북하고 짜증 나니까.”
“이제는 네가 있어야 할 곳에 돌아와야 하지 않겠느냐.”
돌아갈 곳.
그 비릿한 말에 목이 마른지 남궁형이 남은 물을 한꺼번에 삼켰다.
“그 못난 미련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셨소?”
“너는 남궁가의 사람이다. 하니 때가 되면 돌아와야 하거늘.”
“헛소리. 내가 왜 남궁가의 사람이오.”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남궁형이 제 귀를 손으로 열심히 파내린다.
“그런 건 이미 한참 전에는 버리고 나왔고. 지금의 나는 무당의 사람이오.”
남궁형은 천존을 징글징글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가에서 뛰쳐나가던 날.
그때 자신의 성씨는 물론이고 모든 걸 버리고 나왔다.
입고 있던 옷, 거기서 받은 성씨.
애당초 대우라곤 제대로 못 받고 살았으니 두고 온다 한들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남궁형이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한 가지가 틀렸기 때문이다.
전부 버리지는 못했지, 그것 하나 때문에 저 노인네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이고.
남궁형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천존에게 던졌다.
툭.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끝에 보석 하나가 박혀 있는 막대기.
보기에는 볼품없는 잡동사이 같았지만.
이건 절대 그저그런 골동품이 아니다.
뇌아(雷牙).
남궁가의 귀물이자 남궁형에겐 저주와 같은 물건이었다.
“어차피 조부께선 이걸 위해 왔을 것이 뻔하니. 얼른 가지고 꺼져주시오.”
“…”
천존은 남궁형의 말에 별다른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숙여 뇌아를 향해 손을 뻗을 뿐이었다.
그러자.
파지지지직-!
뇌아에서 엄청난 뇌기가 터져 나오며 번쩍 빛을 뿜어낸다.
그 즉시 천존이 손을 회수하며 몸을 일으켰다.
“…”
열기가 남은 손을 살핀다.
천존의 호신강기가 순간 흔들릴 만큼의 압력이었다.
“아쉽게도. 여전히 뇌아의 뜻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구나.”
천존이 웃음을 지으며 뱉으니.
휘이익-!
바닥에 떨어져 있던 뇌아가 대뜸 허공에 스멀스멀 떠오르더니 남궁형에게 날아간다.
남궁형이 기운을 써서 들어올린 건 아니었다.
이는 오로지 뇌아의 뜻이다.
탁-!
날아온 뇌아를 가볍게 쥔 남궁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질리네, 이쯤 되면 좀 꺼져주면 안 되는 건가.”
“뇌아께선 여전히 네가 좋은 모양이로구나.”
좋아한다라. 천존의 말에 남궁형은 가득 비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이다.
‘이 물건의 성깔을 알면 저리 말하지 않을 터인데.’
아무도 모르는.
오로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뇌아의 성질머리.
천존이 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이에 대해 모르고 있기에.
“그만 돌아오거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다.”
저리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
벌써 몇 번째일까.
뇌아를 들고 뛰쳐나와선 홀로 살아가고 있거늘, 천존은 이따금씩 자신을 찾아와 이리 괴롭히고는 했다.
아주 징그럽게 말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왜 조부가 정하시오. 다시 말하지만 난 무당의 사람이오.”
“인물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해주지도 않고. 이리 밖으로 내던져둔 무당이 그리고 좋더냐.”
“… 하.”
참지 못한 한숨이 목 밖으로 새어나간다.
“그쪽은 뭘 얼마나 챙겨줬다고 이리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소만.”
“…”
이 부분은 천존도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남궁형은 어린 시절 남궁가에서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았으니까.
“차라리 뇌아를 돌려달라며 죽이기라도 하시지 그러시오.”
“허어, 어찌 할애비가 되어 손자에게 몹쓸 짓을 하겠느냐.”
“시팔, 손주 취급해본 적도 없는 양반이 자꾸 입으로 헛소리를 하시네. 노망이 많이 나셨나 보오.”
낄낄.
선을 넘는 남궁형의 말에 천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질려 하지만, 그는 참아냈다.
“내가 지금 가문으로 돌아가면, 검왕이 어찌 나올 줄 알고 이러시는 거요. 그 인간도 조부가 이러는 걸 알고 있소?”
“진이라면 신경 쓰지 말거라. 중요한 건 형이 너니까 말이다.”
“신경 쓰지 말기는 개뿔이. 사람 목숨이 달렸구만.”
만에 하나 남궁형이 다시 남궁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남궁진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까?
안 그래도 남궁형 때문에 입지가 바로 잡히지 않은 인간인데.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하물며 남궁형이 기억하는 남궁진이라면 더욱이.
이에 대한 말에 천존은.
“너만 뜻을 바로 한다면.”
남궁형을 보며 이리 말했다.
“나는 진이가 아닌 너를 가주로 세울 생각도 있다.”
“…”
다소 충격적인 발언에 남궁형의 눈이 잠시 커진다.
돌아오기만 하면 남궁가의 가주 자리도 줄 수 있다는 말.
이 말인즉슨, 아직도 남궁가의 영향력은 검왕보다 천존에게 많다는 뜻이었고.
그가 바란다면 가주를 손쉽게 바꿀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하.”
말을 들은 남궁형은 웃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참, 감사하게도 여전하시오. 조부께선.”
과거의 자신이 했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계속 확신시켜 주는데, 어찌 고맙지 않을까.
“여전히 사람답지 못하시오.”
남궁형은 웃음을 간신히 거두고선 천존에게 중지를 내밀며 말했다.
“좆까십쇼.”
“…”
“내 팔다리가 잘려 죽는 한이 있어도. 그 집에는 안 돌아갑니다.”
뜨득.
남궁형의 언변에 끝내 한계에 닿은 걸까.
천존의 몸에서 불편한 소리가 들려온다.
검을 뽑아 들 생각인가.
그래도 나쁘지 않다. 바란다면 얼마든 싸워주리라.
뇌아가 이를 바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남궁형 이 먼저 기세를 끌어올리려던 순간.
휙.
천존은 남궁형에게서 등을 돌렸다.
“… 오늘은 이만 가겠다.”
아무렇지 않게 뱉는 말에 남궁형이 바닥에 침을 찍 뱉는다.
“다음에도 오지 마시오. 난 또 숨을 테니까.”
“또다시 우리가 보게 될 때는 부디, 네가 다른 대답을 해주었으면 하는구나.”
파직.
말이 정말 끝이었는지.
천존은 남궁형 앞에서 뇌기를 터트리며 사라지고.
간신히 되찾은 침묵 속에서, 남궁형은 아무렇지 않게 남은 밥을 입속에 욱여넣었다.
“제자 놈을 볼 때는, 다른 곳에서 봐야겠군.”
앞으로 찾아올 거라 언질을 넣었던 자신의 제자.
놈을 만날 땐 여기보단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남궁형은 그렇게 다짐한다.
이곳에서 제자를 만나기에는, 몹쓸 기억이 하나 더 추가되어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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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변역술(基體變易術).
인간의 육체는 물론, 더 나아가 성별까지 뒤바꿀 수 있는 무공.
당제문에게 선물이라고 받은 구절을 통해 몸에 체득한 힘이다.
이건 지금의 나에겐 상당히 도움이 되는 힘이었다.
타계로 가서 체형은 물론이고 외형에도 변화가 생겨버렸고.
와서 보니 원래 세상에서의 시간은 크게 지나지 않은 것 같았기에, 달라진 모습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덕분에 숨길 수가 있게 됐다.
‘거리낌이 좀 있긴 한데. 나쁘지 않아.’
직접 사용해본 바로 바꾼 육체를 유지하는 데 기운을 많이 먹고 힘이 좀 들어간다는 걸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신기한 힘이네.’
물론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크다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성별은 안 바뀔 것 같은데.’
당제문이 했던 것처럼 성별을 바꾸는 건 무리였다.
아직 거기까지 사용법을 모르는 탓인지, 당제문이 넘겨줄 때 주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건 별 상관없어.’
사실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문제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 또한 기연이었으니까.
‘이건 아쉽게도 그대로지만 말이야.’
이는 손을 보며 한 말이다.
육체가 변화하며 생긴 가장 큰 이변.
어깨부터 손끝까지 청색 비늘로 뒤덮인 왼팔은, 아쉽게도 기체변역술을 쓴들 바뀌지 않았다.
크기는 작아지는 거 같은데.
비늘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고 할까.
‘쯧.’
팔에 묶인 청색으로 변한 붕대가 이를 가리고 있기는 했지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거기에 상당히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었는데.
샤아아악-!
품속에서 작게 울음소리를 내는 놈을 보며 끄덕인다.
‘이게 제일 다행인 부분이지.’
기체변역술이 나 말고 적수사에게도 적용된다는 부분이었다.
종족이 바뀌며 몸집이 너무 커져 숨길 수 없어진 탓에, 적수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기체변역술로 이놈도 작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큰 이점이었다.
이렇게 품속에 다시 숨겨놓고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나중에 파악해보고….’
이것 말고도 시험 해봐야 할 것들이 워낙 많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 정리하고 끝내고자 했다.
이걸 지금 상황에서 파악하기엔 문제가 많았으니까.
“… 구 공자. 지금 뭐라고 하였소?”
잘못 들었다는 듯이 물어오는 말소리. 얼마나 당황했는지 조금 떨리기까지 하는 음색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웃어버렸다.
“다시 말해보시오. 지금 뭐라고 했냔 말이오.”
“… 아니, 뭐.”
내 반응에 화가 났는지 사내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진다.
사내는 당문의 주인인 독왕이었다.
나는 가주실에서 독왕과 대면하고 있었다.
호수의 일도 그렇고 나눠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그가 뭐라고 했더라?
다시 말해보라고 했던가.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제가 당문의 장로들을 죽여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내가 내뱉기로서니 상당히 이상한 말이었다는 것뿐.
아니나 다를까.
말을 들은 독왕의 표정이 험악해지며 방안에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