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sen by the Hero King, the Second Life of the Illegitimate Child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삼류의 방식
실비아는 망연자실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충격 때문에 부어오른 붉은 손은 더 이상 검을 쥘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 충격 때문에 자잘하게 떨리는 오른손에는 더 이상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찢겨진 실비아의 자존심을 보는 것처럼 애절했다.
한참 동안 흙바닥으로 이루어져 있는 연무장에 앉아 멍하니 오른손만을 바라보는 실비아의 귓가로 로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류.”
그 말에 실비아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도 될 말이 있고 안 될 말이 있어요!”
로크는 무심한 눈으로 실비아의 부어오른 오른손을 힐끗 바라본 뒤 말했다.
“삼류도 삼류답게 살아남는 방법이 있는데, 너는 그런 것도 없으니까 삼류라는 말도 오히려 칭찬이겠네.”
흠칫!
실비아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로크한테서 잔잔히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난 것이다.
***
용병들은 흔히 등급이라는 게 존재한다.
동, 은, 금같이 광물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여기서 삼류에 해당되는 등급은 동과 은 등급이었다.
마나만 사용할 줄 알아도 은 등급을 주기에, 마나를 익히지 못하는 인간은 동에 머물러야 한다.
동 등급에서 5년 이상 살아남으면 은 등급으로 올려주기는 하는데, 그래 봤자 동 등급일 때와 별반 다른 게 없었다.
등급에 따라 할 수 있는 의뢰가 나뉘지만, 애초에 5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건 스스로의 목숨이 귀한 줄 알고 있다는 의미기도 한데 굳이 위험한 의뢰를 하겠는가.
‘소모품이지.’
어차피 삼류 용병한테 기대하는 건 전투가 아닌,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잔혹한 이야기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고, 지금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삼류한테도 삼류만의 방법이 있었다.
“어느 전쟁이든 삼류 용병을 가장 선봉에 세우지. 이유가 뭔지 아냐?”
지금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지만, 몇백 년 전만 해도 크나큰 전쟁이 발발했고 지금도 곳곳은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전쟁에서 영주 혹은 왕들은 가장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전력이 많은 삼류 용병을 선봉에 세운다.
“단순한 소모품이어서?”
세계의 운명을 건 전쟁이 발발하고 삼류 용벙들은 아탈리네의 주도하에 전부 징집되어 가장 선두에 서서 싸웠다.
눈썰미와 생존본능이 좋은 은등급 삼류 용벙들은 그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고, 실제로 살아남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들의 약점을 연구하고, 어떻게 죽은 척을 해야 효과적인지 생각하며 소모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기사들의 길을 열어주었다.
비록 우리가 받는 취급은 가축 이하였지만, 우리는 돈값은 하였다.
“삼류는 하다못해 처절하게 싸우며 생존본능이라도 익혀, 하지만 너는 뭔데? 배운 대로 움직이고, 배운 대로 행동하고, 배운 대로 포기하고….. 삼류보다 못한 병신이지.”
기사들보다 못하다. 하지만 과연 삼류 용병은 오러를 사용하는 상대를 이기지 못할까?
그것도 아니었다.
전에 상대했던 루나를 죽이기 위해서 5명의 삼류 용병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듯이, 개개인의 능력은 부족해도 뭉치면 어떻게든 죽일 수 있었다.
“오른손이 안 되면 왼손으로 하고, 왼손도 망가지면 검을 입으로 물어서라도 싸워.”
개같이 처맞고,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받더라도 우리는 싸웠다.
“검 들어.”
실비아는 덜덜 떠는 오른손을 바라봤다.
다쳤기 때문에 들지 못한다는 말은 로크한테 변명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가르쳐 줄게. 삼류의 싸움을.”
***
로크의 검술 뼈대는 결국 라잔 검법이다.
기사들이 사용하는 화려한 기술명과는 달리, 돼지 멱따기, 마구 휘두르기, 물어뜯기 같이 천박한 말들뿐이었다.
-휘익!
상념 사이로 실비아의 검이 찢어 들어오며 내 목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백골이를 들지 않은 상태로 손을 들어 검을 잡았다.
-꽈악!
잡힌 검이 움직여지지 않자, 나는 검에 힘을 주어 그대로 위로 던졌다.
-툭!
연무장 한켠에 꽂힌 검은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다시.”
라잔 검법은 다른 검법들과 다르게 천박한 용병들이나 익히는 무술이지만, 다른 무술들과 다르게 익히면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근성이었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한다.
한 명이 희생하여 적한테 상처 입히면, 다른 사람들이 각개로 적을 죽이는 그런 무술이었기에 삼류 용벙들은 위기의 순간에 때로 뭉친다.
왕국이나 영주들이 본격적으로 훈련 시켜 집단으로 움직이는 군대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때로 뭉치면 상당히 무서웠다.
“다시.”
실비아의 검은 계속해서 튕겨 나갔다.
마법검이라는 위상은 잃은 지 오래였다. 실비아의 손은 충격으로 인해 덜덜 떨리며 몸에 체력조차 들어가 있지 않은 듯했다.
‘푹 주무세요.’
영웅왕님은 피곤하다며 들어가셨다.
[나도 그만 자고 싶다.]‘근처에서 자.’
[……]백골이도 졸린지 근처에 있는 평평한 바위를 찾아 올라가 꼬리를 말았다.
[꼬리의 용도가 참 좋군. 공격도 되고 침대도 되고, 멸종하기 전에 하프노스트도 이렇게 살았나 보군.]라며 말려져 있는 꼬리 위로 올라가 서서히 잠에 들었다.
‘벌써 해가 떠오르네…..’
나만 잠을 못 자네.
물론 어제 딱히 힘들었던 건 없었다 보니 피곤하지도 않았고, 고기를 먹어 충분한 영양을 보충한 상태였기에 잠을 자지 않아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아니었다.
며칠 전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정신은 조금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잠을 많이 설친 상태였다.
체력이 계속해서 소모되고, 몸에 늘어나는 상처는 점점 실비아의 정신을 쇠락시켰다.
“으으…..으….”
-털썩.
결국 실비아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래도 상당히 오래 버텼네.”
내 예상보다 훨씬 오래 버텼다.
“슬슬 나도 자러 가야 하니까 얼른 데려가.”
그러자 집 한쪽에서 빼꼼 고양이 귀가 튀어나왔다.
“헤헤….. 드, 들켰네요?”
“얼른 데려가서 치료해. 내가 엠마한테 말해놓을 테니까 너도 얼른 들어가서 자고.”
“아. 그건 괜찮아요. 왠지 모르겠지만 이 몸이 되고 나서 잠이 엄청 오더라고요. 지금은 몇 시간 정도 움직여도 끄떡없어요.”
‘고양이는 야행성이라고 하던데 그 성질이 루나한테도 간 건가?’
물론 정도가 그렇게까지 심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웅냥.”
루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실비아를 들어 올렸다.
“데려다주고 올게요.”
“그냥 여기서 재워.”
“예, 예? 그럼 일이 복잡해질 텐데…..요?”
“상관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예에.”
루나는 그럼 자신의 침대에서 일단 재우겠다고 말하며 실비아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연무장에 서 있는 상태로 자연 속에 은닉해 있는 또 다른 자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 나오시죠?”
그러자 공간이 일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아이젠이 나타났다.
아이젠 공작의 오른손에는 허름한 헝겊에 둘러싸여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모르셔도 됩니다.”
다른 이들한테 보이는 몸에 깃들어 있는 자연의 마나는 오직 아이젠 공작한테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만난 마스터 급 강자인 프란체코 또한 몸에 마나가 보였는데, 아이젠 공작의 몸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자연의 기운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나로선, 아이젠 공작이 은닉해 있는 자연의 일그러짐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흐음…..”
아이젠은 궁금한 듯 바라보았지만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들고 있던 것을 나한테 던졌다.
‘가볍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든 헝겊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조직에서 요청한 검이다.”
“…..늦게 걸린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요.”
아이젠 공작 눈앞에서 나는 헝겊을 치웠다.
“…..검집은요?”
싸늘한 윤기가 흐르는 검에 눈을 매료하였지만 검집이 없었다.
“없다.”
“……그럼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닙니까?”
일단 계속 나는 마저 헝겊을 치우고 검 손잡이를 잡았다.
[이 발동됩니다.]‘……!’
「생활의 지식」이 발동되었지만 검에 대한 정보는 뜨지 않았다.
즉, 이 검은 우리 행성에서 만들어진 것도, 할리덴슨의 지식 정보 안에 있는 현재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고대 검이나 다른 행성에서 만들어진 검이다.’
검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검에 날이 없습니까?”
“필요한가?”
“그럼 이게 몽둥이지 뭡니까?”
날카로운 싸늘한 예기를 띠고 있는 것과 다르게 검에는 날이 없었다.
오히려 멋있는 장식품들 때문에 그냥 장식용 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야 모르지. 아탈리네 황녀님이 너하고 가장 어울릴 것 같다고 한 검이니.”
“흠….. 일단 가지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으니 뭐.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아이젠 공작은 상당히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다.
이 검 하나를 주기 위해서 말이다.
“꺼져라.”
“어차피 줄 차도 없었습니다. 그럼 잘 가시죠. 마중은 안 나갑니다.”
“쯧.”
아이젠 공작은 혀를 차며 실비아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실비아는 스스로의 길을 관찰하려는 건가.”
“뭐. 근성이 부족해 보여서 조금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왜요? 안 됩니까?”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마 네 뜻대로 하긴 힘들 거다.”
“방해하실 겁니까?”
“아니.”
아이젠 공작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내가 방해할 의무는 없지. 실비아 또한 내 아이기 이전에 공작가의 혈통이니. 다만…..”
이곳을 떠나가던 아이젠 공작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거대한 그늘 안에 갇혀 있던 아이가 벗어나기 위해선, 그 그늘 먼저 넘어야겠지.”
***
로크는 위디아 공작가의 생태를 잘 모른다.
그저 기초적인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 위디아 공작가에 대한 정계의 정치질에 대해선 잘 모른다.
애초에 현시점에도 그리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공작가에 대한 후계자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공작가에 대한 후계자 자리보다 그저 조직의 일원으로서 재능 있는 자나 찾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실비아를 이곳에 하룻밤 재운 것이다.
다만, 로크는 이곳이 버림받은 자들만이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었다.
공작가의 혈통이 이곳에 들어가서 하룻밤 동안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를 로크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실비아의 현재 위치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실비아가….. 침실에 없다고?”
실비아와 마찬가지로 은색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여성은 메이드들이 가져다주는 찻잔을 받아들며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