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793
외전 143화. 일어나는 불씨 (1)
“후우.”
나직이 한숨을 쉰 유이상이 상체를 세웠다.
몸 이곳저곳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실제로는 베인 상처가 많았는데, 이상하게 타박상을 입은 것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지랄 맞네.’
유이상은 그 천재성만큼이나 뛰어난 신체를 타고났다.
상처를 입어도 두 배는 더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무공을 익히기 전에도 그랬다. 타고나기를 강골인 사람들이 있는데, 유이상은 그중에서도 단연 발군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날 정도이니, 얼마나 심하게 망가졌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긴, 처음이지.’
이천상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서로가 택한 전장이 달랐다.
이천상은 일대일 싸움으로 적장을 무너트렸고 유이상은 암살로 적의 부하들을 정리한 후 남은 이들과 정면 대결을 펼쳤다.
승부의 무게감으로 친다면야 수장끼리 격돌한 이천상에게 더 실리겠지만, 난해함으로 치자면 유이상이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그는 암살 전문 훈련을 받았지, 그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 싸워 본 적이 없었다. 그걸 감안하면 가히 놀라운 분투였다.
창밖을 보다가 다시 침상에 앉은 유이상은 그날의 전투를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유이상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내가 원래 미친놈이긴 하지만…….’
사실, 원수의 조직에 몸을 담은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짓이었다.
물론 유이상은 알고 있었다. 천마신교가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조직이라는 걸.
직접 체험한 게 아니라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알았다. 위험한 조직이긴 하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귀의 집단은 아니라고. 정말 피에 굶주린 악마들의 집단이라면 애초에 유지조차 될 수 없었다고.
그것은 동생이 참변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분노했지만, 세평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투명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그것이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올바른 정파 무문과도 상황에 따라 철천지원수가 될 수 있다. 유이상은 다소 과격한 면모를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천마신교의 모든 마인이 동생을 죽인 그 마인 같지는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화가 났고 천마신교를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하제일인이 나서도, 아니 고금제일인이라도 홀로 천마신교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애초에 천년에 가까운 역사를 등에 업을 동안 수많은 전쟁 속에서도 적을 본단까지 받아 본 적 없는 불패의 철옹성이 천마신교였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정파로의 투신이 아닌, 신교로의 투신이었다.
이미 복수는 했지만, 또다시 자신과 같은 사람이 나지 않도록 천마신교라는 조직 자체를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또한 평범한 사람이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방법이었다. 철천지원수가 소속된 조직이라면 누구라도 치를 떨며 증오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유이상은 그처럼 대다수 사람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내린 기인이었다.
‘그때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어.’
자신의 재능이 특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능이 특별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그때 그 전투는 진정 위험했다. 재능으로 버티기 힘든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이겼다.
운도 좋았다. 중요한 건 이겼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사와 승패를 따지지 않고 그냥 미친 듯이 싸웠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유가 뭐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의 자신을 떠올려 보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흐릿하니 막막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즐거웠다.’
유이상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제정신이 아니군. 그런 걸 즐거워하다니.’
생과 사가 한 치의 빈틈으로 결정되는 치열한 격전.
그 싸움에서 유이상은, 놀랍게도 비할 데 없는 흥분과 즐거움을 맛보았다.
어쩌면 그 당시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 것 자체가 몰입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사람을 베어 죽여서, 때려죽여서 흥분한 게 아니다.
그 상황 자체가, 하나뿐인 목숨을 도박판 위에 올려놓고 누가 먼저 죽을 것인지 겨루는 생사결 자체가 그를 전율하게 한 것이다.
‘대주님 말씀이 옳은 건가.’
소공은 말했다. 자신은 흑마대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재능 때문인 줄 알았다. 나아가 그 정도로 강경하게 말해 줘야 흑마대에서 내보낼 수 있기에 그와 같은 발언을 했구나 싶었다
아니었다.
‘대주님은 정말로 나를 그렇게 생각하셨던 거다.’
사적인 친분을 떠나, 대주님은 자신을 암살자에 어울리지 않는 무사로 보았다.
그게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유이상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빌어먹을.”
문득 유이상은 스스로에 대한 강한 혐오를 느꼈다.
목숨이 오가는 순간에 비할 데 없는 쾌락을 느끼다니?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인간인가?
모든 생물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는 법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본능이라 하였다
생물이라면 누구나 타고나는 본능이 이상한 형태로 변질된 마귀가 자신이라는 사실에, 유이상은 끔찍한 자기혐오에 휩싸였다.
‘마공을 익혔기 때문일까?’
본디 그의 가문은 의가였다.
하지만 그는 의술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한량에 가까웠다. 가문의 업을 잇는다는 책임감 따위, 애초에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도 들은풍월이 있는지라, 마공이 정공보다 심신에 강한 영향을 주는 공부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당장 혈도, 기경팔맥, 단전, 진기의 개념만 제대로 알아도 마공의 폐해를 알 수 있다.
‘……아니야.’
그런데도 유이상은 마공 때문에 자신이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오래전, 과거에 쏟아지던 마공들은 하나같이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괴물의 학문이라 했다. 괜히 마귀의 공부(魔功)라 불린 게 아니다.
천마신교는 그와 같은 정신 나간 마도학 체계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안정적인 기반을 쌓은 최초의 마도 집단이었다.
마공 자체가 중단전, 즉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공능이 있어 본래 자신보다 더 흥분케 하거나 더 우울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타고난 성품을 뿌리부터 바꾸지는 않는다. 천마신교의 마공을 정통 마공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물며 유이상이 익힌 흑영마공은 암살에 특화된 마공으로, 절대적인 은신 능력을 추구한다.
대저 은신이란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무성(無聲)은 기본에, 진기로 인간 본연의 생기(生氣)마저 지워 내야 한다. 은신의 달인들은 지극히 예민한 야생 동물의 감각조차 속일 수 있을 만큼 인기척을 조절하는 데 능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궁극을 이루면 신체를 움직여도 대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꿈의 경지다. 후무(後無)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른 암살자는 전무(前無)했다.
‘모르지. 지금 어딘가, 극한의 살수공을 연마한 살수지왕(殺手之王)이 어둠을 활보하고 있을 수도.’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진기, 생기를 조절하여 인기척을 줄이는 데에는 부동심이 필수다. 감정적으로 동요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고로, 흑영마공은 정파무림의 정공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을 만큼 감정을 다스리는 데에 특화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유이상이 눈을 감았다.
그 무엇도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나는 그런 놈이었나.’
평범한 사람이 목숨을 건 싸움에서 쾌락을 느꼈다면 꽤 문제가 된다며 입을 모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림인으로서, 마인으로서 그런 성정을 지녔다는 것은 문제도 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필요한 요소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유이상은 급진적으로 발전한 무공과 달리 아직 정신이 무림인처럼, 마인처럼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었다.
“젠장할.”
유이상이 욕설을 뱉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무슨 살인마냐? 맨날 그렇게 생사결만 벌이고 돌아다니진 않잖아? 그냥 처음으로 당당하게 싸워 이겼으니까, 그게 즐거웠을 뿐이야.”
생각해 보니, 사람 죽이는 업을 지닌 이상 살인마라는 악명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았다.
유이상이 쓴웃음을 지었다.
“여유로워졌어, 자괴감에 빠질 시간도 있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신의 못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고민하면서까지 괴로워할 상황이 아니었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진짜.’
잊자. 잊고 조금 더 쉬자.
그런 생각을 하는데도 자기혐오와 당시에 느낀 쾌락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정말 미친 건가.”
그때였다.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긴 하지.”
훅.
유이상의 반응은 빨랐다.
순식간에 침상 옆으로 몸을 돌려 피격 면적을 줄이고 목소리가 난 곳을 노려보며 일권(一拳)을 내칠 준비를 끝냈다.
“오호라? 대단한 반응이로고. 그때 봤을 때는 다 죽어 가는 병아리 정도로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송곳니를 감추고 있는 늑대였구만.”
유이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구석 너머, 그림자가 짙게 깔린 곳에서 뒷짐을 진 채 걸어오는 한 명의 노인이 있었다.
해사한 웃음, 깔끔한 복식에 허허로운 기도가 실로 인상적이었다.
유이상은 저도 모르게 일어나 올바로 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그라도 곧장 예를 표하지 않기에는 상대의 신분이 지나치게 높았다.
“흑마대 삼 조장 유이상이 자소대마 어르신을 뵙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예를 다한다.
자소대마 연등. 당대 십대마왕 중 하나이자 사람을 때려죽일 때도 미소를 거두지 않는다는 악마였다.
유이상의 이마에 식은땀이 일었다. 긴장을 숨길 수가 없었다.
연등이 입을 열었다.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거야 기특한 일인데……. 쾌락을 느꼈다고 번민하다니, 자네도 아직 멀었구먼.”
유이상의 얼굴이 굳어졌다.
연등의 미소가 짙어졌다.
“몸은 움직일 만한가?”
“……그렇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유이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왜지? 왜 저 사람이 이곳에 온 거지?
연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기야, 내기(內氣)가 허하고 외상도 다 낫지 않은 와중에 그토록 민활한 몸놀림을 구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재능을 떠난 문제야. 그야말로 타고난 강골이로고.”
“…….”
“왜 탐을 내고 있는지, 이제야 알겠구먼.”
탐을 내? 누가?
스르륵.
시커먼 상의와 장포가 제멋대로 허공을 날더니 유이상의 앞에 떨어졌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허공섭물의 기예였다. 지금의 유이상으로서는 목표는커녕 꿈조차 되기 힘든 초상승의 무공이었다.
“입거라.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다.”
“예?”
유이상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어디를……?”
연등의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너무나도 환해 도리어 괴이쩍은 미소였다.
“왜? 어딘지 알면 뭐가 달라져서?”
“……?”
“자네에게 가고 안 가고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연등이 몸을 돌렸다.
“흔치 않은 기회이니 속히 옷을 입고 나오게.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