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7
검을 쥔 제갈운이 물었다.
“누구신가?”
복면조차 쓰지 않은 사내들.
하나, 기도만 보아도 보통이라 볼 수 없는 자들이었다.
수는 고작해야 여섯뿐이었고, 제갈운의 실력이라면 어찌어찌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제갈연을 지키면서 그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갈운은 대답 없는 그들을 경계하며 사내들의 면면을 살폈다.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다는 자신감이라면, 필시 정체를 숨기려 하지도 않았을 터.
가만히 살펴보니 가장 앞선 사내의 얼굴이 낯익다.
“자네는 우곡진이로군.”
“내 얼굴을 알아봐 주다니 고맙군.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알 테지?”
제갈운이 신음을 삼켰다.
우곡진은 낭인 중에서도 제법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자였다.
무림맹에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명성을 날렸으며, 실력 또한 다른 이들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대로 무난하게 컸다면 낭왕 마장강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을지도 몰랐다.
하나, 우곡진의 성정이 문제였다.
겉으로는 공명정대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뒤에서는 악랄하기 짝이 없는 짓들을 저질렀던 것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기본이며, 독수(毒手)를 사용해 자신의 출세에 방해되는 이를 암살하기까지 했다.
또한 마음에 드는 여인이 넘어오지 않자, 도적과 손을 잡고 그 여인이 살던 마을을 궤멸시켰으며, 그 여인이 울부짖는 앞에서 가족들의 목숨을 끊어 놓는 잔혹한 모습까지 보였다.
당시, 무림맹에서 이 일을 조사하던 와중에 도적 하나를 붙잡았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진실은 무림맹을 침묵케 하기 충분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우곡진은 곧바로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었다.
비록 빠르게 눈치채고 도망친 탓에 잡지는 못하였지만, 그가 이 중원 땅에 제대로 발을 붙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한데 그런 놈이 어찌 이곳에 왔는지 의문이었다.
“실로 우연이었다. 거지꼴이기는 하지만 먼 곳에서 네놈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지. 하늘이 내게 네놈을 죽이라는 뜻 아니겠나?”
“하하, 그랬나…….”
제갈운은 순전히 운이 없었음을 깨닫고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거리를 재는 것처럼 힐끗거린 뒤, 재빠르게 발검하며 검을 날렸다.
검에 맺힌 소용돌이가 맹렬한 힘을 머금고 앞으로 쏟아져 나갔다.
“피해!”
제갈운의 기습에 우곡진이 급하게 소리쳤다.
그는 뻗어 나온 검풍의 힘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콰쾅-!
검기가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휩쓸었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우곡진이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수하 중 한 명이 미처 검풍을 피하지 못한 채 나자빠져 죽은 것이 보였다.
다시 제갈운이 있던 곳을 바라보니, 놈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 보이지 않았다.
“쫓아!”
급한 우곡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촤촤촤악-!
남궁소혜가 검을 휘둘렀다.
빠르고 경쾌하고 가볍지만 확실하게 힘이 실려 있어, 웬만한 고수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가 평소 사용하던 연무장이 아닌, 단가에서 조금 떨어진 커다란 공터에서 펼치는 그 검술은, 동정호의 풍경과 맞물리며 그야말로 천상선녀(天上仙女)의 검무(劍舞)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는 남궁천과 권무진이 감탄했다.
이 중원에서 저 나이에 이 정도 수준의 검무를 출 수 있는 이는, 남궁소혜밖에 없지 않을까 했다.
하나, 찬물을 뿌리는 이가 있었다.
“느리다. 그리고 흐름이 약해.”
남궁소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그녀가 연무장이 아닌 공터에 나와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 때문이었다.
그가 지도해 준다 하였고, 남궁천이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하였기에 벌어진 일.
남궁소혜는 자존심이 몹시 상하였지만 남궁천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단우현 앞에만 있으면 남궁천은 자신이 검황이라는 사실을 완벽히 잊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남궁세가가 숙이고 들어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단우현이 알려 주고 있는 이 검술은 남궁세가의 고유 절기라 할 수 있는 창천무애검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달랐고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녀의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여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창천무애검은 유(流)를 바탕으로 한 검술이다. 사실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잘 맞는 것이지.”
“네……? 그런 말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데요.”
“나도 그러네만?”
남궁천이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오랜 정통을 지닌 남궁세가의 검술에 얼토당토않은 평가를 내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다소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게 보이는 건가? 그의 눈에는?’
혹시 무신의 기연을 얻으며 남궁세가에 대한 무언가를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어쩌면 그런 쪽이 아닌가 하며 남궁천은 조심스럽게 고민해 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단우현의 말을 조금 더 깊게 들어 볼 필요가 있었다.
단우현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쾌 속에 환(幻)이 있다. 환 속에 유(流)가 있다. 그게 바로 창천환조검(蒼天幻鳥劍)…… 삼천의 일인 남주련의 진신절기다.”
한순간,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입을 닫았다.
검무를 추고 있던 남궁소혜 또한 마찬가지로 행동을 멈추었다.
지금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귀를 파는 이도 있었다. 특히 남궁천의 놀라움은 더 컸다. 바로 옆에 있었기에 그의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똑똑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응? 뭐라고 했나.”
“아직도 이해를 못했나? 창천환조검이라 했다.”
“아니…… 그 후에.”
“남주련.”
“…….”
“……?”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말에 세 사람이 볼도 꼬집어 보고 뺨을 때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지금 들은 단어가 진짜였음을 직시하는 순간.
그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뭐시라!”
“뭐라고요?!”
“주…… 주군, 지금 그 말씀은…….”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놀라는지 알 수 없어 남궁천을 바라봤다.
“그것도 몰랐나?”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남궁천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분명 남궁세가를 처음 세운 사람은 여인이라 들었다. 굉장히 오래된 일이고, 그에 관한 정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사람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갔다.
한데, 그 여인이 사실 남주련이었다고?
남주련이 누구인가.
천 년 전, 무신이 활동할 당시 그 험한 무림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였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유랑하다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그런 이가 남궁세가를 세운 시조라니, 남궁천이 파르르 입꼬리를 떨며 단우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게 정녕 사실인가?”
“내가 알고 있는 창천환조검이 창천무애검의 바탕이니 틀림없다.”
애초에 남궁이라는 성을 준 것도 단우현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세 사람은 놀라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허, 그…… 그런 분이 우리 조상이었다니…….”
“거짓말이죠? 그렇죠? 단 공자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순순히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천과는 다르게 남궁소혜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다그쳤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천 년 전의 인물이다.
세가 내에도 그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데, 어찌 그런 비사를 단우현이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때,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으면 그만이다.”
“…….”
남궁소혜는 꾹 하며 입을 닫았다.
저 말투, 저 표정, 저 웃음.
오랜 시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남궁소혜는 알았다. 결코 거짓말을 하는 표정과 말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녀가 품에 넣어 둔 무언가를 붙잡았다.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지난번, 삼천의 유해가 있던 곳에서 찾아낸 것.
‘단우현…….’
설마 정말로 무신 본인인 것인가.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남궁소혜가 파르르 입꼬리를 떨었다.
그것을 묻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도와주세요!”
누군가 크게 소리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네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뛰어오는 허름한 옷차림의 여인을 바라보며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떡진 머리,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옷,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는 몸.
개방의 거지들조차 저 정도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그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여…… 연아?!”
제일 먼저 알아본 남궁소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비록 남루한 차림이긴 하지만 제갈연이 분명했다.
“소혜? 여긴 어떻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도와주세요, 제발!”
긴장이 풀린 제갈연이 눈물을 흘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이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아버지가…… 아버지가…….”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며 제갈연은 말을 더듬었다. 횡설수설하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죽을지도 몰라요…… 흐흑, 도와주세요!”
“똑바로 운이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라!”
남궁천이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쳤다.
그 일갈에 울고 있던 제갈연이 눈물을 뚝 그쳤다.
제갈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남쪽을 가리켰다.
다른 누구보다 빠르게 남궁천이 몸을 날렸다.
그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엿보였다.
어느 놈인지 모르겠지만 제갈운을 건드리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멀어지는 남궁천을 바라보며 남궁소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검황이 달려갔으니, 제갈운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 제갈연이 더 걱정이었다.
충격을 받은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친우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조심스레 끌어안아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할아버지가 가셨으니 무사하실 거야.”
달래는 그 목소리에 제갈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남아 있는 눈물을 훔치며 살포시 웃었던 그녀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소혜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제갈연은 분명 단우현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왜 남궁소혜가 있는 것일까?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는데.
“응? 할아버지?”
그러고 보니 방금 사라진 사람은 검황이었다.
죽은 검황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는 것이다.
“응? 응?”
제갈연이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