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3
“말도 안 돼!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이야!”
막충헌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방 안의 집기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구석에 웅크린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가중평을 향해 달려가 또다시 발길질을 시작했다.
퍽퍽퍽-!
“이! 쓸모없는 새끼! 개새끼! 버러지만도 못한 놈!”
“컥!”
가중평의 얼굴은 이미 엉망진창이었으며 온몸에 피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다.
벌써 수 시진째 얻어터지고 있었으니, 죽지 않은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하아, 하아……!”
막충헌은 발길질을 멈추고 쓰러진 가중평을 노려봤다.
모든 것을 빼앗겼다.
창고에 놓았던 물건들은 물론이고 전표와 금자, 심지어 은자까지 탈탈 털렸다. 먼지 한 톨 남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털리니 허탈함이 물밀듯 쏟아졌다.
“내 저 새끼를 괜히 믿어서…… 하아…….”
막충헌은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하고 있는 가중평을 노려보며 욕을 뱉었다. 그간 믿을 수 있는 놈이라 하며 떠받들어 주었던 게 실수였다.
모든 걸 저놈에게 맡겨 두고 뒤로 물러서 있던 자신 또한 바보였다.
까드득-!
이가 갈렸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까지 당했는데…….”
범인이 누군지는 불 보듯 뻔했다.
똑같은 수법으로 당했으니 떠오르는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물길을 통해 장물을 옮겼던 것을 따라 할 것이라 생각하고, 당장 동정호 인근에 사람을 보내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놈들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퍽!
“커억!”
막중헌이 거칠게 발을 뻗어 가중평의 목을 짓밟았다.
우득!
뼈가 부러지며 괴로워하는 신음이 들려왔다.
온몸을 비비 꼬며 바닥을 뒹굴던 가중평은, 시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막충헌을 쳐다보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지금까지 호남상단을 이끌었던 총관이자, 꿈과 야심을 키우던 자의 말로였다.
벌컥-!
막충헌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늦은 시각이라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짙은 안개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끼어 있었다. 아마도 이 안개 때문에 도둑질하는 것이 더욱 수월했으리라.
“다 모였느냐?”
“예!”
마당에는 고취산을 필두로 사방에 도열해 있는 상단의 정예들이 보였다.
그 수가 백여 명이 넘었으며, 하나같이 일류를 넘나드는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짙은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고 있었다.
상단을 위해 일평생 몸 바쳐 일해 왔던 자들이다. 이곳을 망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반드시 지킨다.
빼앗겼으면 힘으로라도 되찾아온다.
그런 각오가 그들의 눈빛에 맺혀 있었다.
막충헌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최근 너무 얌전히 있었던 게야. 그래서 이 막충헌이를 만만하게 본 것이고.’
막충헌은 숨을 골랐다.
몇 년 정도 향락에 빠져 일을 뒷전으로 미뤄 두었다. 그렇기에 호남 땅에 살면서도 감히 날뛴 것일 터.
자신이 누구인가?
호남상단의 단주 막충헌이다!
비록 추문세가 덕에 얻은 영광이기는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존재였다.
그것이 모든 호남 상인들이 막충헌을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풀뿌리 하나 남기지 말고 짓밟고 유린해라.”
“그거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고취산 또한 씩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마음이 맞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기분이 더욱 고조되었다.
막충헌은 고취산을 바라보며 사납게 웃더니 검을 뽑았다. 그 또한 함께 갈 요량인지 공력을 끌어올리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가자!”
“예!”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리가 상단 전체에 퍼졌다.
이윽고 막충헌을 필두로 모든 이들이 우르르 상단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 탓에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은 말을 타고 복면을 쓴 채 빠르게 악양을 향해 달려갔다.
막충헌이 악양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 뒤인 인시(寅時) 초(初)였다.
* * *
“제길…… 이 빌어먹을 안개는 끝까지 안 걷히는군.”
악양으로 들어선 막충헌이 인상을 썼다. 시간이 흘렀으니 안개가 조금이라도 걷히는 게 당연한데도, 좀처럼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실력이 상당한 수준인 고취산조차 앞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새벽녘이다 보니 날마저 어두워 앞뒤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오감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이쪽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악양에 머무르면서 은밀히 호남단가와 금환상단을 감시하던 이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든 이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움직였다.
“이 길이 맞느냐?”
“걱정하지 마십시오. 악양의 지리는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습니다.”
막충헌과 고취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랫동안 악양에서 활동해 왔으니, 이런 짙은 안개 속에서도 길을 찾는 것은 수월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더욱 거침없이 전진을 시작하였다.
이윽고 사내가 어느 곳에서 멈춰 서더니 뒤돌아 막충헌을 바라보며 끄덕였다.
이곳이라는 말이었다.
안개 탓에 현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담벼락이 크고 높은 점과 안에서 많은 이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면 금환상단이 틀림없었다.
막충헌이 시선을 돌려 고취산을 바라봤다.
“정말로 다 죽여도 되는 거지?”
“물론이네. 모두 죽이고 그 시체마저 가져가 돼지 먹이로 쓸 참이네.”
“하하하! 자네는 정말 재미있어. 이러니 내 자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거지.”
고취산의 말에 막충헌이 씩 웃었다.
이윽고 수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사사사삭-!
백여 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순식간에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 고취산과 막충헌까지 담장을 넘었다.
저 커다란 몸으로 어찌 저런 날렵한 몸놀림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다 죽여라!”
담장을 넘는 것과 동시에 막충헌이 소리쳤다.
수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검을 뻗었다.
서걱-!
피를 뿜었다.
상대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며 도륙을 시작했다. 막충헌과 고취산 또한 망설이지 않았다.
모두 죽인다.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깡그리 죽여 버릴 테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그 눈빛과 살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퍽퍽-!
손을 내지르고 검을 뻗을 때마다 피륙을 가르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작해야 이런 놈들이었나?
이런 놈들에게 당했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화가 나고 울분이 치솟았다.
막충헌의 검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마당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전부 베어 버린 것과 동시에 그는 당당하게 걸어 본채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몇 개의 창날이 날아들었지만, 이미 그 기척을 읽은 막충헌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거걱-!
창날이 꺾였고 그것을 휘두른 이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비대한 몸이라 하여 절대 얕보아서는 안 됐다.
막충헌은 절정을 이룬 고수.
고작해야 낭인 출신일 호위들이 어찌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서걱-!
“금은학! 네 이놈, 어디에 있느냐!”
쩌렁쩌렁-!
막충헌이 크게 소리를 치며 더욱 깊숙하게 들어갔다. 거칠게 방문을 열자 몇 명의 여인들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뒤에서 장력이 쏟아졌다.
펑펑-!
“아아악!”
고취산이 내뿜은 장력에 여인들이 허망하게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막충헌은 시큰둥한 눈으로 쓰러진 여인들을 바라보며 다음 방문을 열었다.
누군가를 지키는 호위들이 보였다.
그때, 시야가 한순간 흐릿해지더니 다시금 초점을 되찾았다.
호위들이 막충헌과 고취산을 향해 덤벼들었다.
서거걱-!
“끄아악!”
“커억!”
물론, 이번에도 반항조차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무리 낭인이라 해도 실력 있는 이들은 있을 텐데, 이들은 제대로 된 검술조차 보여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학살에 고취산은 무척 즐거운 듯했다.
터벅터벅-
“으으…… 사, 살려 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에는 두 명의 호위가 더 있었지만, 그들은 앞으로 나설 용기 없는 것인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막충헌은 망설이지 않았다.
‘고작해야 이런 놈 때문에! 이딴 놈에게!’
서걱-!
사내의 목이 날아오르고, 동시에 다른 이의 가슴을 갈랐다. 뻗어진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웅크리고 있는 금은학의 심장을 찔렀다.
푹-!
“커어억!”
소리가 들렸다.
하나, 막충헌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촤촤촤촤촤악-!
수십 번의 칼질로 인해 이미 목숨이 끊어졌음에도 그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시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휘두르던 막충헌은, 그제야 지친 듯 숨을 헐떡이며 멈추었다.
“하하하! 이래서는 알아보지도 못할 것 같군.”
고취산이 크게 웃음을 지으며 시체를 뒤집었다.
역시, 사람이라는 형태만 남아 있고 그 몰골은 누구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야지.”
“아직 할 일이 남았군. 다음은 호남단가인가?”
“그래.”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잃은 물건을 찾아야 한다. 이곳에 숨겨 놓을 리 없으니, 아마 호남단가에 있을 것이다.
어차피 놈들도 죽일 생각이었으니 시작한 김에 끝을 볼 작정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밖으로 나가는 순간.
“뭐……?”
“이건…….”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굳었다.
한 사내가 서 있다.
조금 전 자신들을 안내해 준 자가 분명했다. 한데 그는 양손에 쌍도를 쥐고 수하들을 무차별하게 도륙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벌써 수십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이냐니? 뻔하지 않나?”
사내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고취산이 달려들려는 순간, 지금까지 걷히지 않았던 안개가 씻은 듯 사라졌다.
“하하하, 수고하셨소.”
이윽고 또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바라보니, 한 무리가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저자는……?’
과거 우연히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무림맹의 총사 제갈운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가면을 쓴 두 사람이 서 있었으며, 중심에는 단우현이 있었다.
막충헌이 씩 웃었다.
“이제 네놈들에게 가려고 했는데, 제 발로 찾아왔구나.”
“하하, 여기서 호남단가까지 갈 생각이었소? 상당히 먼 길일 텐데 지치지도 않나 보구려.”
제갈운의 말에 막충헌이 코웃음을 쳤다.
악양의 금환상단에서 호남단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말을 타고 움직이면 금방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며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돌아갔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이 풍경…… 어디선가 많이 보았는데?’
막충헌과 고취산이 주위를 둘러봤다.
땅에 쓰러진 이들이 낭인이라 볼 수 없는 복장을 입고 있었다.
포졸.
쓰러진 이들은 포졸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곳은 장사의 관아였다.
막충헌과 고취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