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96
사도학에게 재교육을 받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장삼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공손하게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꽤 기가 죽어 보였다.
그 모습에 마장강이 한숨을 쉬었다.
포달랍궁의 승려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고작해야 한 달하고 보름 정도.
대수인을 제외하면 상승 무공이라 할 수 없는 기예들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스승이 없었던 장삼태에겐 꿈과도 같은 일이었을 터.
심지어 사도학의 회천공 덕에 자신감이 가득했고, 덕분에 그의 사고방식이 약간 다른 쪽으로 새어 나간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뭐라 할 만한 이라 해 봐야 마장강 혼자였으며, 그 또한 한숨만을 쉴 뿐 직접적으로 핀잔을 주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세가로 돌아온 순간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무시무시한 것들이 너무 많거든 여기…….’
마장강이 고개를 숙이며 힐끗 주변을 살폈다. 사도학이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그 옆의 남궁천이 한숨을 쉬며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단우현은 시큰둥해 보이긴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무서운 일이었다.
“요놈아, 아주 몇 달 마음대로 돌아다녔다고 세상이 다 네놈 것 같더냐?”
남궁천이 웃으며 말했다.
엄하긴 해도 그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근래 장삼태를 보지 못해 허전했던 기분이 가신 덕분이었다.
역시 호남단가는 이래야 했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장삼태가 옹알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차마 사도학이나 남궁천의 얼굴을 보고 말하지는 못했다.
특히나 부리부리하게 노려보고 있는 사도학의 눈빛을 말이다.
“되었다. 제 재주에 자신감을 갖는 건 좋을 일이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구나.”
퉁퉁 부어 있는 장삼태가 얼굴을 휙 하고 들어 올리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끄으으윽, 자…… 장주님-!”
장삼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개월 동안 천산으로 향하는 여정, 다시 그곳에서부터 되돌아오며 겪은 고난, 그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북받쳐 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얼마나 힘들고 고됐던가? 넉넉하게 받은 돈은 어느새 개털이 되어 주머니 속은 먼지만 날렸고, 덕분에 산적들을 붙잡아 돈을 만들어야 했다.
때론 쫓기고 죽을 뻔하며 수없이 생사를 오갔으며, 나중에 가서는 포달랍궁 승려들에게 고된 가르침을 받고 억지로 머리까지 밀어야 했다.
무공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머리를 밀 생각까진 없었건만.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장삼태는 울컥했다. 얻어맞고 입싸움을 하고 장난을 치지만 평소나 다름없는 이들의 행동과 분위기가 자신이 정말 안락한 보금자리로 돌아왔음을 새삼 깨닫게 했다.
찌릿찌릿 곤두서 있던 긴장감이 그제야 풀렸다.
“엉엉-!”
다 큰 어른의 울음은 참으로 못나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단우현은 아무런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다독여 주지는 않으나 펑펑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장삼태를 그저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고생 많았다.”
곧 들려오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단우현의 표정이 제법 부드럽게 변했다. 무표정했던 본래의 얼굴이 한껏 풀어지니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만큼 눈을 현혹시키는 마력을 지닌 웃음이다.
“엄청 고생했습니다요!”
“그래그래.”
훌쩍훌쩍 하며 눈물을 닦아내던 장삼태가 곧 팽! 하며 단우현의 옷깃에 코를 풀었다.
순간
“꾸웩!”
퍽!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장삼태의 머리가 바닥에 틀어박혔다. 어찌나 강하게 때렸는지 그대로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다.
“아이고야-!”
머리를 붙잡고 소리를 치며 땅을 뒹굴었다. 뒤통수를 가볍게 한 대 친 것에 지나지 않지만, 단우현의 손길인 만큼 망치로 두들긴 것처럼 고통이 엄습했다.
단우현이 코 묻은 옷깃을 닦으며 인상을 썼다.
이윽고 손을 뻗어 뒹굴고 있는 장삼태의 옷에 닦아 냈다.
“너는 참 변하지 않는구나.”
“끄으으으…… 사, 사람이 변하면 곧 죽는다 하지 않습니까?”
“중 흉내를 낸 놈이 할 소리더냐?”
그간 여정을 통해 조금은 성장을 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변한 게 하나 없었다.
“그래서 놓친 이유는?”
단우현의 시선이 매섭게 돌아갔다. 한번 일을 벌리면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뿌리까지 뽑아 버려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추문원을 놓쳤다.
뼈아픈 실책이었다.
장삼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쪼, 쫓는 건 가능했습니다만…….”
“만?”
“그놈이 도망가는 모습을 보니 무서워서…….”
당시를 생각하며 장삼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아픈 내색 하나 보이지 않고 살기를 풍기는 추문원을 말이다.
도망가는 뒷모습이었음에도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하여 오싹했다. 또한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발이 느리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장삼태의 실력이 늘었다 하여도 추문원과 제대로 붙어 몇 초를 버틸 수 있겠는가? 최고의 절기인 회천공을 얻어맞고도 멀쩡하게 일어서서 침을 뱉었던 놈이다.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장삼태의 모습에 여기저기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특히 단우현의 시선이 날카로워지자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나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삼태를 발로 슬쩍 밀어내며 단우현의 시선이 마장강을 향했다. 들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마장강이 그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입을 떼려는 순간.
“미리 말하지만 짧고 간결하게 요점만 말해라.”
“…….”
순간 마장강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짧고 간결하게 요약해서 요점만 정리한단 말인가? 하루 이틀 시간을 준다 해도 힘들 것 같은데, 느닷없는 상황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며 앞을 바라봤다.
세 사람의 시선이 매섭게 꽂혔다.
주륵 식은땀이 흐르며 입안이 메말라 왔다.
차라리 생사를 건 싸움을 하는 것이 조금 더 마음 편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 그게 있잖습니까?”
그때, 장삼태가 아픈 머리를 매만지며 운을 뗐다.
마장강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최근 단소미는 제법 먼 곳까지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곁에 든든한 사람들이 있는 데다 장원 주변도 익숙해져 길을 잃을 염려도 없으니 단우현의 입장에서는 한시름 놓은 것이다.
또한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른들끼리 따로 모여 있었다. 때문에 더 멀리 나가더라도 그녀를 뜯어 말릴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또한.
“꺄아아악!”
백호의 등 위에서 악을 쓰며 털을 꼭 붙잡고 있는 호연지가 있었다.
동정호의 물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커다란 백호 등 위에 올라 타 있으니 걷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단소미의 품속에는 자그마한 삭월묘 백묘가 고개만 쏙 내민 채로 밖을 보고 있었는데.
백호의 속도가 너무나도 빠른 탓에 그 털이 크게 휘날렸다.
“대,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니?”
벌써 반 시진은 달린 것 같았다. 백호가 작정하고 달린 것이니 세가에서 한참 떨어졌을 것이다.
거리와 지리를 파악해 보았을 때, 어쩌면 동정호 물길을 따라 호북 인근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이 근처면 좋지 않을까요?”
단소미가 주위를 둘러보다 툭툭 백호의 등을 두들겼다. 한참을 달리던 백호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이윽고 외진 숲에 멈춰 섰다.
호연지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약초가 많은 곳에 가자고 한 건 나지만…… 여긴 너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죠?”
“태연하게 말하지 마…….”
방긋 웃음을 짓는 단소미의 모습에 호연지는 식은땀을 흘렸다.
악의 없는 아이라는 것은 알지만, 때론 정말로 악의가 없는 건가? 싶을 정도로 짖궂을 때가 있었다.
호연지가 옷을 털어 내고는 바구니를 들었다.
먼 곳까지 오기는 했지만 이런 곳이라면 그녀가 원하는 약초들을 충분히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이 근처에서 놀고 있을래? 아니면 나를 따라갈래?”
“소미는 여기에 있을게요. 절대 멀리 안 갈 거예요.”
“흐음? 정말?”
“정말이에요! 소미는 말 잘 들어요. 헤헤.”
호연지가 고민하듯 신음을 흘렸다. 어린아이를 혼자 두기엔 너무 외진 장소였다. 만에 하나 위험한 산짐승이라도 나타난다면…….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호연지가 끙 하며 단소미를 돌아봤다.
한 마리의 백묘.
작기는 하지만 절정 고수는 정도는 능히 상대할 거라는 남궁천과 사도학의 확언이 있었다. 그게 어느 수준을 이야기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맹수도 결코 건들지 못한다는 뜻이리라.
더군다나.
크르릉-
커다란 백호 한 마리가 단소미의 주변을 배회했다. 그 덩치만 해도 성인 남자 셋을 뛰어넘을 것 같은 데다, 저 두툼한 발바닥은 바위조차 깨부술 것 같았다.
황금빛 눈동자가 호연지를 바라보다 입맛을 다셨다.
오싹-!
호연지는 소름 돋는 것을 느꼈다.
‘자, 잡아먹히지는 않겠지……?’
그럴 생각이었다면 진즉 일을 벌였을 거다. 저 호랑이가 세가로 들어온 지 상당한 시일이 지났음에도 사고 한번 치지 않고 잘 지내고 있었다.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은 소미가 저 백호, 백묘와 자주 놀러 다녔음에도 단 한 번도 상처를 입은 적이 없었다는 것 정도일까?
“정말로 괜찮지?”
“네네! 소미는 얌전히 있을게요. 얌전히 놀 거예요!”
배시시 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것을 보며 호연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국 그녀 또한 수긍했다.
“알았어. 하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큰 소리를 쳐야 해.”
“네!”
단소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호연지는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소미가 그 뒷모습을 가만 바라봤다.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던 호연지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결국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것을 확인한 후에.
“놀까?”
등을 돌리며 방긋 웃었다.
백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백묘가 품에서 튀어나와 산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나무를 타거나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며, 때론 맛있어 보이는 산딸기를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단소미가 그 뒤를 따랐다.
백묘와 함께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백호는 가만히 그 자리에 엎드렸다.
시선은 단소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조금 전 호연지를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백호의 시선은 무척 부드러웠다.
이윽고 입을 쩍 벌리며 크게 하품을 했다.
어느새 봄이 부쩍 다가왔다.
날도 따뜻하니 졸음이 쏟아졌다.
쿨쿨-
백호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