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197
단소미가 그것을 발견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던 소미는, 어느 한 곳에서 멈춘 채 뚫어지게 앞을 바라봤다.
그곳엔 한 사람이 있었다.
수풀을 이용해 입구를 가리고, 자그마한 굴 같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호흡조차 거칠었다. 여기저기 찢기고 베인 상처가 보였다.
시퍼렇게 질린 단소미가 슬쩍 그곳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크윽……!”
기척을 느꼈는지 그 사람이 눈을 떴다.
한순간 사나운 안광이 번뜩였고, 깜짝 놀란 단소미가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백묘마저 놀라 단소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괘…… 괜찮으세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린아이라면 누구라도 도망가야 할 상황이 분명한데, 덜덜 떨면서도 뚫어지게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그런 단소미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꺼져라.”
날카로운 한마디가 귀에 박혔다. 살기 가득한 그 목소리가 전신에 소름이 돋게 했다.
새하얗게 질려 버린 단소미가 꿀꺽 침을 삼키며 등을 돌려 달아났다.
“하아…… 제길…….”
사내, 아니 추문원은 사라진 아이를 바라보곤 인상을 썼다.
심력이 심하게 고갈되었다. 내공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몸을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놈들…….”
추문원이 빠득 이를 갈았다.
이빨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만큼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찢기고 베인 곳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다.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피가 이렇게까지 흘렀다는 것조차 몰랐을 테니.
추문원은 옷을 찢어 지혈을 하고 숨을 헐떡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한시라도 빨리 수분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 쉽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움직여야 된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몸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닌 듯 말을 듣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들……! 반드시 죽여 주마!”
처음에만 해도 상대를 충분히 압도했다. 그대로 밀어붙였으면 이길 수 있었을 거다.
하나, 느닷없이 두 사람이 더 나타났고 그중에 마장강이 끼어 있었던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놈은 듣던 것보다 더욱 강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를 몰아붙이려 하면 여기저기에서 끼어들어 칼을 휘둘렀다.
특히 남궁소혜의 검술은 날카롭고 빨랐으며, 지금까지 세간에 알려진 남궁세가의 절기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검로를 예측하고 피하면 그것을 조롱하듯 칼날이 따라왔다.
마장강도 무서웠지만 가장 그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남궁소혜의 알 수 없는 검법이었다.
온몸에 난 상처 대부분이 그녀가 만들었다는 것만 보아도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움직여야 한다.’
추문원은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아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털썩!
말을 듣지 않는 몸 상태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몇 번이고 다시금 일어서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약 반각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이제야 조금 제 의지로 설 수 있게 된 추문원이 천천히 걸어 물을 찾으려 했다.
하나, 소리에 집중을 해도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꽤 멀리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극심한 내공 소모로 기감이 약해진 탓인지도 모른다.
길게 숨을 몰아쉬며 날카롭게 기감을 끌어올렸다.
그때.
부스럭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추문원의 고개가 돌아갔다. 한 손에 내공을 모아 당장 휘두르려 손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눈앞에 나타난 것이 그가 생각했던 적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추문원은 놀라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너…… 도망간 게 아니었나?”
“물 가지러 갔다 왔어요. 여기요, 물!”
단소미가 손을 내밀며 쥐고 있던 것을 건네주었다. 근처에 있는 나무를 엮어다 조잡하게 만든 그릇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은 틀림없이 물이었다.
추문원이 묘한 표정으로 단소미를 바라봤다. 그러나 물의 유혹을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인지 손을 뻗어 받아 들었다.
독이나 함정에 대한 의심은 머릿속에 담지 않았다. 지금은 당장 이 텁텁함을 없앨 수 있는 물이 필요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메마르다 못해 비틀어져 있는 목구멍에 시원스럽게 물이 넘어갔다.
마시는 순간, 몸에 어느 정도 생기가 돌았다.
“푸하…… 괜찮구나. 어디서 떠 왔지?”
“저기요.”
단소미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아이의 어휘력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모양이다.
추문원이 피식 하며 웃어 버렸다.
“자요!”
“이건 또 뭐냐?”
“가는 길에 주워 왔어요. 헤헤.”
단소미가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을 가만 보며 추문원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틀림없이 버섯과 산딸기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물을 떠 오면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까지 주워 왔다고 하니, 살짝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살기 위해서는 뭐든 배를 채워야 하는 법이다.
“이리 다오.”
“고.맙.습.니.다! 라고 해야죠.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다른 사람이 무언가 베풀어 주면 고맙다고 해야 된대요.”
뿔이 난 단소미가 내민 것들을 뒤로 물리며 볼을 가득 부풀렸다.
순간, 추문원의 얼굴이 뒤틀어졌으나 차마 손찌검을 할 수는 없었는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고, 고맙다.”
“헤헤, 자요!”
추문원은 단소미가 내민 것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마셔 몸을 회복시켜야 했다.
한동안 미친 듯이 입에 넣은 것들을 씹어 대던 추문원이 두둑하게 채운 배를 두드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직까지 피가 조금씩 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 생기가 있다면 문제는 없었다.
‘다 죽인다.’
추문원이 머릿속에 떠오른 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살기를 뿌렸다.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여 놈들을 짓밟아 버릴 테다.
자신이 당한 것에 백배 천배 되돌려 줄 참이었다.
“아저씨, 눈이 이상해요!”
“흥, 원래 그런 거다.”
추문원이 콧방귀를 뀌며 옆을 돌아봤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수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놓아 버렸다.
“여기 약초도 있어요.”
싱긋 웃음을 지은 소미가 주섬주섬 품에서 약초들을 꺼냈다. 저 작은 몸에 뭘 그렇게 숨겨 놓았는지 계속해서 무언가가 나왔다.
추문원이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잘도 약초만 가져왔구나. 먹을 것도 그렇지만 너 같은 아이들에겐 힘든 일이었을 텐데……?”
“헤헤, 특기거든요. 아빠랑 자주 나가서 이렇게 먹었어요.”
추문원이 미간을 좁혔다.
돈이 없어 허덕이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산을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살아가려면 뭐든 해야 되는 게 세상의 이치지.’
쯧 하며 혀를 찼다.
“몇 살이냐?”
“으음, 일곱…… 아니, 올해로 여덟 살이에요!”
“그 키, 그 몸에 말이냐?”
추문원이 가만 단소미를 바라봤다.
어떻게 봐도 대여섯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산에서 나물을 캐고 다녀서 마른 체형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윽……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지약이랑 진랑이는 저보다 훨씬 크거든요? 그런데 소미만 작아요. 그래도 할아버지나 아빠는 소미가 더 예쁘대요. 헤헤.”
제대로 먹지 못하니 성장이 더딘 게 분명했다. 추문원은 이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덕지덕지 소미가 가지고 온 약초로 몸을 치료하면서 생각했다.
고작해야 먹을 것과 물, 그리고 약초였지만, 무언가를 받았으면 돌려줘야 하는 법이다.
“나와 함께 갈 테냐?”
“네?”
뜬금없는 말에 단소미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두 눈을 끔뻑이며 한동안 추문원을 바라봤다.
“모든 가져다주마. 맛있는 음식, 좋은 옷, 네가 원하는 건 모두.”
“헤헤헤.”
단소미가 볼을 긁적였다.
표정에 다소 어색함이 묻어났다.
그것을 바라보며 추문원이 웃었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을 하면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마련이었다.
“같이 갈 테냐?”
“싫어요.”
“응?”
“싫어요. 소미는 지금이 좋아요. 아빠가 있고 할아버지들이 있고, 언니들이 있고. 아! 권 아저씨도 있고요.”
생각을 하고 있던 단소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를 잊은 것 같은데 착각이려나?
“좋은 옷이랑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지금 가족이 더 좋고, 사랑해요. 그래서 소미는 다른 곳에 가지 않아요. 그리고 소미가 가면…… 아빠가 슬퍼할 거예요.”
“그렇…… 구나.”
단소미의 진심이 엿보이는 한 마디다. 듣는 순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결코 거짓으로 내뱉는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추문원이 혀를 찼다.
꼬맹이가 생애 한 번 있을지도 모르는 천운을 걷어찼으니 어찌 웃기지 않겠는가.
그때.
“소미야-! 소미야-!”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에 단소미가 번뜩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소미, 여기에 있어요!”
크게 손을 흔들며 한 곳을 바라봤다.
동시에 자연스레 추문원의 시선도 돌아갔다.
‘이 아이의 엄마라도 온 것인가?’
살짝 먼 거리이긴 하지만 꽤 젊은 여인이었다.
순간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던 추문원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황급히 다가오던 호연지 또한 멈춰 섰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봤다. 호연지는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고, 추문원은 기억을 뒤지다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 번이나 표정을 바꾸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웃음을 짓다 인상을 찌푸리고 하늘을 바라보다 실소를 흘린 끝에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이내 우득우득 몸을 풀었다.
그 이상한 모습에 단소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야, 혹 네 집이 호남단가더냐?”
“와-! 어떻게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큼지막하게 현판을 써서 그런가?”
단소미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호연지의 간절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도망가, 소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