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5
“뭔가 엄청 시끄러운뎁쇼?”
청해성도 서녕에 도착한 일행들은 여기저기에서 소곤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객잔을 잡았다. 기이할 정도로 사람들의 안색에 불안감이 보였다.
마치 어떠한 일이라도 터진 것처럼 불안해 했고 또한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기도 했다.
장삼태는 지난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끼며 인상을 썼다.
서녕에 온 것은 이것으로 세 번째.
한 번은 천산으로 들어갔을 무렵, 또 한 번은 천산을 빠져나와 중원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고작해야 두 차례이긴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그때에 비해 많은 너무나도 달라진 분위기에 다소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눈을 크게 뜨고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빠져 있는 단소미와는 다르게, 일행들 대부분 이상함을 눈치채고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사단이 벌어지기는 했나 보구나.”
남궁천이 사람들의 눈빛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많은 탓에, 중요한 정보가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는 사이.
가만히 앉아 있던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곤륜이 멸문했다는군.”
“……!?”
“헉……!”
“뭐야!”
단우현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에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특히 남궁천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곤륜이 어디던가?
과거만큼 그 세가 흥성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이 청해의 수호자로서 군림해 온 문파였다.
그런 곳이 멸문했다는 것은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 사실인가?”
“그런 것 같다. 자세한 것은 나도 알지 못한다.”
남궁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곤륜파가 있는 곤륜산까지 거리는 이곳에서부터 열흘거리다. 말을 타고 냅다 달린다 해도 사나흘은 걸리므로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어찌 그런 일이……?”
남궁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른 곳도 아닌 곤륜이다.
한때 구파 중 가장 강대했고 적수를 찾을 수 없었던 곳.
지금은 아니지만 백여 년 전만 해도 당시 천산마교의 주인이었던 자조차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던가?
어찌 그런 곤륜이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머릿속이 어지럽게 헝클어졌다.
콰직-!
그때, 사도학이 쥐고 있던 젓가락을 부러트리며 흉흉하게 눈을 빛냈다.
이런 짓을 할 녀석은 다른 누구도 아닌 흑풍신마라는 자밖에 없었다.
“신경 쓰지 마라. 무림이라는 게 본디 이런 곳이니.”
“알지만!”
사도학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 한 마디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찻잔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던 단소미마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아무것도 아니다.”
단우현의 말이 맞다.
무림이라는 곳이 본디 이런 곳이다. 배신은 언제 어디서나 있는 법이고, 오늘 친구였던 이가 등을 돌리면 칼을 휘두르는 곳.
잠을 자면서도 늘 내일을 걱정해야 하며, 자신보다 뛰어난 자를 없애고 살아야 하는 곳이 바로 무림이다.
흑풍신마라는 놈 또한 그렇다.
그놈이 하고 있는 짓은 그동안 많은 이들이 해 왔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허허…….”
남궁천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또한 사도학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곤륜의 멸문은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착잡한 심경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점소이가 다가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남궁천이 품에서 은자를 꺼내 점소이에게 건넸다.
“혹시 곤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게.”
* * *
“네놈이 이런 곳에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하, 그렇습니까?”
악양 어귀, 뱃놀이를 하기 위해 지어진 곳인 듯,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 그곳에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제법 풍모가 고급스러웠다.
고관대작들이나 입을 법한 궁장을 입고, 머리마저 깔끔하게 틀어 올린 채 기름칠까지 한 것 같았다.
어딜 어떻게 보나 제법 배운 학사 티가 나는 그는 바로 제갈운이었다.
그의 앞에는 참으로 이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허름한 옷, 잡아당기면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낡아빠진 거적이었다.
곁에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꾀죄죄한 냄새가 풍겨 올 정도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복식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곳 전체를 빌린 탓에 지적할 손님이 없었지만, 설령 손님이 있다 하여도 그의 허리에 있는 매듭을 보면 쥐죽은 듯 입을 다문 채 뒷걸음질을 쳤을 것이다.
걸황 방노백.
그는 이 중원의 가장 고지에 오른 다섯 중 한 명이었으므로.
“네놈, 무림맹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나 보구나?”
“그렇습니다. 더 이상 무림맹이라는 곳에 가치가 없어 보이기에…….”
제갈운의 냉정한 한마디에 걸황이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둘로 쪼개진 이상 반드시 피가 흐를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이든 천도회이든 간에 어느 한쪽을 통합하지 않는다면, 중원에는 칼부림이 만연할 것이다.
“그럼 나를 부른 이유는?”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곤륜의 일 말인가?”
제갈운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걸황의 입에서도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개방에서 급하게 날아온 전서구에 상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곤륜파의 도사 총 삼백 명 중 살아남은 이는 사십이 채 되지 않네. 사실상 멸문한 것이지.”
“알고 있습니다.”
응? 하며 걸황이 묘한 시선을 보냈다.
지금 이 정보는 개방에서조차 함구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것을 어찌 이렇게 동떨어져 있는 제갈운이 알고 있단 말인가?
‘썩어도 준치라는 것인가?’
제갈운의 무서움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사실 단우현을 모시고 있는 하오문 문주의 연락이 없었더라면, 그 또한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아는가?”
걸황이 묘한 시선으로 제갈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흉수는…….”
* * *
“그렇구먼…… 고맙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정보는 없었다. 점소이도 소문을 들은 것이 전부였으니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취합했을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곤륜파의 도사들 전부가 죽진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살아남은 이들이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파를 재건할 정도의 인력은 될 것이다. 비록 그 세월이 한없이 오래 걸릴 테지만.
후우 하며 남궁천이 한숨을 내쉬는 사이.
끼익 하며 객잔의 문이 열렸다.
“아미타불-.”
불호를 외우며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고작해야 두 사람이나 그 존재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한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쏟아지며 침묵했다.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이크!”
그들을 보며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장삼태와 마장강이었다.
둘은 느닷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단우현의 뒤로 돌아가 몸을 숨겼다.
“…….”
단우현이 뭐하는 거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두 사람은 붕붕 고개를 내저은 채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는 시늉을 했다.
두 라마승들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다 빈자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문득 단우현과 가면을 쓴 두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갑자기 가던 길을 멈췄다.
“아미타불-.”
“뭐냐?”
사도학이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척 보아도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포달랍궁에서도 상당한 고수이리라.
그런 이들이 느닷없이 다가와 염불을 외우니 짜증이 치솟았다.
“실례합니다, 시주. 낯익은 얼굴이 있어 찾아온 것이니 불편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라마승 한 명이 단우현 뒤에 몰래 숨어 있는 장삼태를 쏘아봤다.
사도학과 남궁천, 그리고 다른 일행들의 눈이 저절로 장삼태를 향해 돌아갔다.
“아…… 안녕하신지요. 스…… 스승님.”
“푸하하하!”
장삼태가 조심스레 일어나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그의 입에서 스승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사도학이 박장대소했다.
라마승이 힐끗 사도학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표정을 무너트리지 않고 합장을 하며 물었다.
“머리가 다시 자랐구나.”
“예, 시간이 지나니 다시 자라는 것이지요.”
“크큭……!”
평소와는 전혀 다른 그의 점잖은 모습에 곳곳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장삼태를 오래 알고 있던 자들이고 또한 평소 그의 모습을 보아 왔기에 다소 적응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장삼태가 주륵 식은땀을 흘렸다.
힐끗 단우현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았지만 그 또한 재미있다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라마승이 품에서 자그마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본디 승려란 할애출가(割愛出家)하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애욕을 버리고 육친을 떠나서 수도에 전념한다.
그것이 승려들이 머리를 미는 이유였다.
머리가 자랐으면 애욕이 생겼다는 뜻이므로, 새로이 밀어 애욕을 떨쳐 내는 것 또한 의무였다.
그러나 장삼태와는 상관없는 일.
장삼태가 슬쩍 라마승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전…… 승려가 아닌뎁쇼?”
“푸하하하!”
“크흐흐…….”
결국 웃음이 터져 버렸다.
남궁천과 사도학의 입에서 터진 그 웃음에 장삼태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점잖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소혜마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일 정도였으니 얼마나 창피한가.
라마승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것이다.
“이놈! 궁의 은혜를 입은 녀석이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냐? 파계라도 할 참이더냐?”
“파, 파계고 자시고 애초에 승려가 될 생각도 없었습니다만?”
“그럼 어찌하여 궁의 무공을 익혔느냐?”
객잔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장삼태를 향해 쏟아졌다.
상대는 다른 곳도 아닌 포달랍궁.
규유이 엄격하기로 그 어느 곳보다 유명한 만큼, 그곳에서 내민 것은 함부로 받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장삼태는 무공을 배웠고 머리까지 깎았다. 그것은 곧 포달랍궁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였는데, 이제 갑자기 자신은 승려가 아니라 하니 화를 내는 라마승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장삼태가 객잔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러곤 작은 한숨을 내쉬며 볼을 긁적였다.
“가르쳐 준다니까 익혔지…… 머리 깎을 줄 알았으면 익혔겠습니까요? 당연히 안 했지…….”
“크하하하! 이 미친놈!”
사도학이 또다시 박장대소 하며 웃었다.
가르쳐 준다고 덥썩 받는 놈은 저놈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앞에 있는데 저렇게 대놓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장삼태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놈-!”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라마승이 호통을 쳤다.
불꽃이 일어나듯 눈빛이 활활 타올랐고, 장삼태를 쏘아보는 시선에는 살기가 깃들었다.
그의 오른손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대수인.
포달랍궁의 절기.
그것을 내뻗으려는 순간, 검집이 목에 닿았다.
“어린아이 앞이다. 함부로 무공을 쓰지 마라.”
단우현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