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6
“윽!?”
라마승은 어느새 목에 닿아 있는 검집을 바라보며 신음을 삼켰다. 자연스럽게 공력을 회수하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이 감각은 마치 칼날로 베인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포달랍궁의 이대 법왕 중 한 명인 금천수왕(金天獸王).
그는 거대한 포달랍궁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존재였으며, 대법왕을 제외하면 두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을 지녔다.
그런 이가 단우현의 검이 뻗어진 사실조차 뒤늦게 인지했다.
주륵 식은땀을 흘리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무뚝뚝한 그의 시선이 보였다.
또한 놀란 것은 남궁소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우현의 검은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것을 붙잡고 단숨에 목에 겨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그 모든 동작을 보지도 못했다.
사람의 속도가 아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사형?”
“그래…….”
사제인 을묵중이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 또한 설마하니 이런 일이 벌어 질 것이라 생각을 하지 못한 듯 놀란 표정이 가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사형은 대법왕의 오른팔인 금천수왕이었으니까.
“실수했소이다. 대협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소이까?”
금천수왕은 조심스레 단우현을 바라봤다.
중원에는 오황이라 불리는 고수들이 있다고 하던데, 그들 중 한 명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우현이다.”
“…….”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중원의 소식을 아무리 모른다 하여도 오황 정도 되는 이들의 이름은 알았다.
그러나 단우현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중원에는 기인이 많다 하더니…….’
힐끗 다른 이들도 바라봤다.
다른 자들의 기세는 별반 대단한 것이 없다.
하나, 지금에서야 눈에 띄는 두 존재가 있었는데, 가늘게 눈을 좁힌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가면을 쓴 자들이었다.
그들의 기세가 매섭게 꽂혔다.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소이다.”
금천수왕은 이대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 판단했다. 단우현 한 사람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가면을 쓴 두 사람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자칫 장삼태를 교육하기는커녕 반대로 당할 가능성이 높다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객잔을 빠져나갔다.
“하…… 하아…….”
그것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것은 다름 아닌 장삼태다. 그러곤 반짝 눈을 빛내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처음 저 인간들을 만나 온갖 고생을 하면서 생각하긴 했었다.
단우현이 있었다면 과연 저놈들이 이리도 자신을 괴롭힐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보니 그것이 정답이다.
“크으으으으-! 역시 우리 장주님! 우리 장주님밖에 없다니까! 푸하하! 꽁무니 빼는 것 좀 봐.”
장삼태가 박장대소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간 당했던 서러움이 단숨에 날아가는 통쾌한 기분이었다. 이처럼 기분이 좋은 것은 근래 들어 없었던 것 같았다.
답답했던 감정이 뻥 뚫렸다.
마장강 또한 마찬가지인 듯 웃음을 지었다.
장삼태처럼 대놓고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또한 기뻤다.
포달랍궁의 금천수왕이라 한다면 새외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고수.
마장강조차 일초지적이 되지 않는 자인데, 그를 고작해야 한 수에 제압하여 물러서게 만들었다.
포달랍궁이 있는 서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모든 이들이 기겁했으리라.
그만큼 라마승들은 금천수왕의 실력을 잘 알았다.
“최고다, 최고! 흐흐흐, 우리 장주님이 최고라니까.”
“호들갑 떨지 말거라.”
“아니, 그러지 않습니까! 저 인간 다름 아닌 금천수왕이라니까요! 금천수왕!”
금천수왕이라는 별호에 단우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그것이 무엇인지 관심도 흥미도 없었던 탓이다.
다만 사도학과 남궁천, 권무진과 남궁소혜는 제법 놀란 듯 시선을 치켜떴다.
“저놈이 금천수왕이란 말이냐?”
“그렇다니까요!”
“오호…….”
사도학이 눈을 반짝 빛냈다.
포달랍궁 금천수왕의 위명은 그 역시 들은 적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동방구가 어쩌면 새외에서 오황에 가장 근접한 자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대단한가?”
“새외에선 우리와 비슷한 위치라고 하더군.”
사도학의 말에 단우현이 피식 하며 웃음을 지었다.
저들이 느끼고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본 금천수왕은 사도학의 수준에 한참이나 못 미쳤다.
사도학이 마음먹고 힘을 쓴다면, 채 삼십 초도 겨루지 못하고 그 목이 달아날 것이다.
“그럼 삼태 아저씨는 머리 안 깎아도 되는 거예요?”
그때, 상황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것인지 찻잔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던 단소미가 물었다.
그러자 장삼태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이지, 소미야! 이 아저씨는 더 이상 머리 안 깍아도 된다! 하하하! 역시 우리 장주님이 최고라니까!”
“와- 잘됐네요! 더 이상 그걸 안 봐도 되는군요! 헤헤.”
“응?”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단소미의 말에 장삼태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함께 기뻐하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말투에 뼈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장삼태가 묘한 표정으로 단소미를 바라봤다.
“이 아저씨의 머리가 이상했냐?”
“으음, 머리를 빡빡 미니까요…….”
“미니까?”
“엄청 기분 나빴어요!”
단소미가 웃음을 지었다.
해맑은 웃음과 천진한 말투는 송곳이 되어 장삼태의 심장을 쑤셨다. 그가 털썩 주저앉아 한동안 말없이 바닥을 쳐다봤다.
“그랬구나. 다음에 또 머리를 밀면 쫓아내도록 하지.”
“에에? 안 돼요! 기분 나빠도 삼태 아저씨인걸요. 머리 기를 때까지 안 보면 돼요. 헤헤.”
“……그, 그렇구나.”
이번에는 단우현마저 당황했다.
단소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듣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의 순진무구함이지만, 정작 당사자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주저앉아 있던 장삼태가 엎어졌다.
표정은 이미 죽어 있었다.
단우현이 애써 그것을 무시하며 손을 들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점소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 * *
“대단한 젊은이구나.”
금천수왕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걸었다.
아직도 목에는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자가 마음만 먹었다면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피식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중원은 넓다더니 그 말이 딱이구나.”
포달랍궁에선 손에 꼽는 강자였기에 대단한 권력을 손에 쥐었고, 두려울 것도 없었다.
장삼태와 마장강을 괴롭힌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장삼태가 마음에 들어서 제자로 들이려 했던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반쯤 장난 삼아 했던 짓이기도 했다.
“혹 저자가 곤륜을……?”
“아니, 아닐 거다. 그러기엔 살기가 없더구나.”
금천수왕은 처음부터 단우현을 주시했다. 장삼태와 마장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 단우현이라는 자가 이상하게 끌렸기에 다가갔던 것이다.
시비를 걸었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그 단우현이라는 자의 내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니다.
틀림없이 강하기는 하나 그에겐 살심이 없었다.
또한 어린아이를 곁에 두고 그런 악랄한 짓을 저지를 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러했다면 자신에게도 위협이 아니라,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금천수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만 돌아가자꾸나.”
“엣? 흉수를 찾지 않으십니까?”
“흔적도 없는 이를 찾기에는 너무 길이 늦었구나. 또한 무림에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으니 우리 역시 대비를 해야 함이 맞지 않겠느냐?”
“그…… 그렇긴 합니다만…….”
사제의 표정에 금천수왕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흉수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포달랍궁이 곤륜처럼 되지 않기 위해 방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저 단우현이라는 자의 대해 대법왕께 알려야 한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고수.
포달랍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단우현이라는 존재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했다.
‘바람이 짙구나.’
금천수왕은 포달랍궁이 있는 북쪽을 바라봤다.
불어오는 바람이 유난히도 거세게 느껴졌다.
* * *
그날 밤, 단우현은 창가에 홀로 앉아 술을 마셨다.
밖에는 시원하게 바람이 불고 있었다.
너른 초원을 눈에 담으며 한 잔.
달빛을 바라보며 한 잔.
단우현을 부드럽게 감싸는 바람을 안주 삼아, 홀로 즐기는 술에 빠져 있었다.
“좋구나.”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단우현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천 성도에서 주지약이 가지고 있었던 그 기이한 지도였다.
상단에는 귀신이 아수라를 집어삼키는 형상이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어딘지 모를 곳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혈마…….”
단우현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 귀신은 혈마를 상징하는 형상.
그가 활동했을 당시 혈마신교의 표식이기도 했기에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단우현이 창가에 걸터앉아 조심스레 지도를 들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그것이 만월의 달빛을 받았다.
이윽고 시뻘겋게 물들어 어딘지 모를 곳을 가리키고 있었던 그 지도에, 만월의 빛이 어우러지며 가느다란 선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단우현의 시선이 그 선에 꽂혀 있었다.
천천히 주변으로 번지기 시작한 선은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것은 중원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 중심에는 푸른빛이 크게 일렁였다.
“…….”
가만히 지도를 살피고 있었던 단우현이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가 한 모금 넘기는 순간,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지도가 산산조각 나며 흩뿌려졌다.
하나, 단우현의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으며, 조금의 변화조차 없이 다시금 술잔을 기울였다.
이윽고 그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술잔마저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거기 있었느냐?”
만월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대답을 하는 이는 없었으나 확신에 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숨바꼭질은 끝났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단우현은 그저 하늘만을 올려다보고 있다.
하나, 형형하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는 마치 과거의 귀기(鬼氣)를 되찾은 듯 홍염(紅焰)을 머금은 채 활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