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7
단우현은 곤륜산에 마차를 멈춰 세우고 산을 올랐다.
영산이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닌 듯 곤륜의 산길은 평범한 이라면 쉽게 오를 수 없을 만큼 험준했다.
때문에 단소미를 떼어놓고 와야 했으며, 남궁천과 사도학, 그리고 단우현 세 사람만 산길을 올라 곤륜파를 향해 움직였다.
두리번거리며 혹시나 있을지 모를 흉수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남궁천은 큰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이윽고 곤륜파에 도착한 순간, 남궁천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정말 무엇 하나 남은 것이 없구나.”
이야기로 들은 것과 실제 그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남궁천은 잿더미가 되어 버린 곤륜파를 걸어 다니며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
구파일방의 곤륜.
이름만으로도 정도무림에 큰 힘이 되어 준 곳이었는데, 그곳이 잿더미로 변하여 사라졌다는 걸 눈으로 보고도 실감할 수가 없었다.
꿈이라면 당장 깨고 싶었으나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이 현실임을 일깨워 줬다.
“이것도 그놈 짓인가?”
사도학이 곤륜의 광경을 둘러보며 인상을 썼다.
마교와 적대적인 곳이기는 하였지만, 사도학도 곤륜의 기상을 결코 얕보지 않았다.
십만마도라 불리는 마교보다 그 숫자가 적음에도, 오랫동안 청해 땅을 지켜왔다는 것은 그만한 힘과 기개가 있다는 뜻이므로.
하여 사도학 또한 곤륜을 무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어떤 의미에선 존경하기까지 했다.
비록 오황의 자리에 오른 이를 배출하지 못하기는 하였지만, 내심 무당이나 소림 같은 곳보다 더욱 높게 쳐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타 버린 곤륜의 광경을 주시하듯 살폈다.
조금이나마 흉수에 대한 것을 찾으려는 듯, 아니면 어떤 흔적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았다.
“…….”
그러나 반대로 단우현은 무심한 시선을 보냈다.
잿더미가 되어 버린 전각과 곳곳에 보이는 혈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피폐해져 버린 광경조차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저 바라만 보다 입을 열었다.
“대단한 공력이로군. 단숨에 기둥을 잘라 냈다.”
단우현의 말에 사도학과 남궁천이 서둘러 다가왔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곤륜파의 전각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 중 하나였는데, 잘려 나간 단면이 무척이나 매끄러웠다.
평범한 수준으로는 불가능했다.
최소한 검강을 펼쳤음을 알 수 있었다.
슥 하며 단우현이 그 단면을 매만져 보았다.
“칼이 지나간 흔적이다. 공력만으로 본다면 남궁천 너와 비슷할 테지.”
“그 정도인가?”
“혹은 그보다 더 우위에 있을지도.”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칼을 휘둘러 이런 식으로 깔끔한 단면을 만들려면 공력은 물론이고, 검공에 상당한 조예까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곤륜파라는 곳을 습격한 이는 결코 평범한 자가 아니다.
“중원에는 모래알같이 많은 기인이사가 있다고 하지. 그런 놈들 중 하나인가?”
사도학이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이러니까 싸움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무인은 응당 자신과 비슷하거나 강한 자를 찾아, 자신의 발판으로 만들 생각만 하는 족속들인 만큼, 사도학 또한 저도 모르게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치솟았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그때, 단우현이 주위에 보이는 검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둥 주위로 시체들이 있었던 흔적이 보였다. 또한 그 근처에는 여기저기 검흔이 남아 있었는데, 척 보아도 익숙한 흔적이었다.
그러나 다소 괴이하게 변형한 탓에 설령 이것을 아는 이들이라고 해도 파악하기란 꽤 어렵지 않을까 했다.
그만큼 괴공이 되어 버렸다.
“무언가 감을 잡았는가?”
남궁천이 가늘게 눈을 뜨며 물었다.
단우현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감을 잡은 듯했다. 하나,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고, 그 탓에 남궁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알려 주게나!”
“글쎄…….”
“정말로 그 흑풍신마라는 자가 한 일인가?”
흑풍신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사도학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눈앞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찢어발겨 버릴 것 같은 매서운 기세였다.
“흑풍신마의 검술은 이렇지 않다. 조금 더 난잡하고 어지러운 느낌이지. 이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 말은 결국 누군가 하나 더 있다는 거로군. 우리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한 강자가 말이지?”
“그럴지도.”
사도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흑풍신마라는 이에게 뒤통수를 당한 그였다.
앞서 말했듯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강자들이 존재한다고 하였으니, 곤륜을 멸문시킬 만큼 그들에게 강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점점 더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함부로 놈의 뒤를 쫓자고 말하지 않는 것은, 지금 그의 최우선 목표가 다름 아닌 흑풍신마라 불리는 그자인 탓이었다.
놈이 얼마나 강한지, 혹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지만, 동방구를 죽인 것에 대한 복수는 반드시 해내고 말 것이란 굳은 결의를 표했다.
“허허…… 좋지 않아…… 정말 좋지 않네그려.”
남궁천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정파가 반으로 나뉜 것도 모자라 곤륜이 멸문했다. 이것은 결코 웃으며 내뱉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지라 더욱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러다 정말로 정도무림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포달랍궁의 무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만…….”
사도학이 슥슥 다른 흔적들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가장 의심이 되는 것은 서장의 패자(?者) 포달랍궁이었다.
그놈들이 이곳까지 와 있는 것이 의심스러웠으니까.
하나, 그들의 무공이 쓰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소림과 마찬가지로 곤과 권각을 주로 썼는데, 이곳에 남은 흔적은 틀림없이 검에 의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남궁천 또한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검흔이었다.
“혹시 정파 새끼들 아냐?”
“그럴 리가 없네!”
“왜 소리를 질러?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
남궁천은 굳게 입을 닫았다.
소리를 치며 반박하기는 했으나, 어쩌면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믿었던 친우에게 당했던 상처가 아직까지 낫지 않은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내 말실수를 했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폭넓게 생각을 해야 놓치지 않는 법이거늘…….”
“쯧…….”
씁쓸한 표정을 짓는 남궁천을 보며 사도학이 혀를 찼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더욱 짜증이 났다.
“그만 가세나. 더 있어 봐야 소용없는 것 같으니.”
남궁천의 말에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이미 무림맹이 들어와 조사를 끝마친 상태였을 거다.
무언가 중요한 게 남아 있다면 그들이 전부 가지고 갔을 것이니, 남아 있어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터.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이 여정을 끝내고 돌아가, 머리를 식히는 편이 남궁천의 입장에선 좋았다.
“…….”
앞서나가고 있던 남궁천이 힐끗 벽에 새겨져 있는 검흔들을 바라봤다. 가늘게 눈을 좁힌 그가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다 이내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막연하게 드는 생각을 부정했다.
뒤에서 사도학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
“천산이라면 이미 가고 있다만……?”
“아니, 거기가 아니야. 동방구의 본가다.”
“동방구라면 자네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그자 말인가?”
사도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든 싫든 간에 가 보기는 해야 한다. 동방구를 죽인 것은 사도학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사도학이다.
하다못해 그 가족들의 얼굴은 봐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천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으니 딱히 상관없잖아?”
“그렇군.”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도학이 한숨을 쉬었다.
천산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의 입에서 흐르는 한숨의 무게가 더욱더 커졌다. 기세는 날카롭게 갈아 놓은 것처럼 시퍼렇게 날이 섰다.
* * *
“상황을 종합해 보았을 때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내 보기에도 그렇다. 해서, 네가…….”
걸황의 말에 제갈운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무림은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모용혁문이 곤륜을 멸문시키고 사라진 시점에서, 구파나 또 다른 정파의 세력이 다시금 공격을 받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니까.
심지어 모용세가를 내버리다시피 한 천도회 또한 못지않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만큼 걸황의 입장에선 제갈운이 무림맹으로 돌아와 이 모든 일을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만약 그것이 성공한다면 다시금 하나의 무림맹, 혹은 하나의 정파를 만들 만한 가능성이 생겨날 테니 말이다.
하나, 제갈운은 고개를 저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네놈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야? 이 단가에 꿀이라도 발라 놓았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신경 쓰이는 것도 좀 있고, 이곳이 제가 있을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걸황 방노백이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 이상 어떠한 말을 한다 해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결연한 표정을 보고, 결국 두 손을 든 방노백이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요. 그 정도라면 이 제갈운의 지혜를 언제든지 빌려 드리겠습니다.”
방노백이 반색하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운은 천도회가 아닌 무림맹에게 지혜를 빌려준다는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로운 성과를 낸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제갈운 또한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듣기론 모용혁문의 단전을 파하고, 팔을 잘랐다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독에 당한 것도 아니고 단전을 부쉈다면 무인으로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한데, 모용혁문은 다시금 일어나 곤륜을 멸문시켰다.
그것도 일 년조차 안 되는 사이에.
제갈운은 도무지 그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있다. 폐한 단전을 되돌릴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능력자가…… 어쩌면 만후량이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전을 되살리고 단시간에 모용혁문이 힘을 되찾게 도왔다면, 그것은 실로 위협적인 인물이란 판단이 섰다.
또한 무림맹에서 사달이 벌어졌던 그날을 기점으로 사라진 만후량의 종적을 생각해 본다면, 누군가 뒤에 있는 것은 거의 확실했다.
‘만약 그들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면, 단 가주가 나를 두고 간 이유 또한 설명되는데…….’
이곳에는 무수히 많은 고수가 머물렀으므로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에 몇 사람이 있는지, 혹은 누가 있는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파악을 할 수가 없으니, 정확한 정보 수집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벌써 두세 달 동안 안팎으로 오가는 사람이 없고, 시끄러웠던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하니 어쩌면 슬슬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제갈운인 큼! 하며 헛기침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걸황은 그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각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제갈운이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한 벌의 옷과 가면이 들려 있었다.
“이건 또 무엇이냐?”
“잠시……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으응?”
걸황 방노백이 눈앞에 놓인 물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