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8
“……이게 대체?”
방노백은 당황했다.
그는 지금 깔끔한 백의 장삼을 입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입는 비단옷이 살결에 닿는 감각이 적응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더 요상한 것이 있었다.
바로 가면이었다.
새하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수염은 그렇다 치더라도 답답하여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군자검이 아닌가!
누군가 따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설마 이 호남단가에서 나왔을 줄이야.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하하, 멋집니다!”
제갈운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증흑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라 사실 안 어울리지 않을까 심히 걱정하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방노백의 모습이 제법 멋들어졌다.
물론 남궁천만큼은 아니었지만 근엄한 군자검의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갈운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자, 가십시오!”
“엉?”
뜬금없는 말에 방노백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가라니? 어디를?’
느닷없이 사람의 옷을 갈아입혀 놓고, 생전 써 보지도 않은 가면까지 뒤집어씌운 상태로 쫓아내겠다는 말인가?
방노백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려는 순간.
“정의를 구현하러 가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냐?”
알 수 없는 말에 방노백은 당황했다.
정의를 구현하러 가라니?
뜬구름 잡는 소리였지만 제갈운은 설명을 해 주지 않고 눈을 빛냈다.
“정의를 구현하는 겁니다! 군자검이니까!”
“허어?”
방노백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제갈운에 의해 내쫓기듯 등을 떠밀렸다.
그 장면을 먼 곳에서 제갈연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우리 아빠도 물들어 가는 건가?’
이 세가가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모여드는 사람들이 전부 이상한 것인지.
하나같이 머릿속에 무언가가 빠져 버린 것 같다.
제갈연은 절대 저러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두 손을 꼭 쥐었다.
* * *
호남에 있는 살각 지부에서 돈이 올라오지 않은 지 한참이 지났다.
연락해 보아도 닿지 않았으며, 어떠한 답신조차 오지 않으니 살황 비천웅의 입장에선 놈들이 배신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수하들을 보내지 않고 직접 그 호남 땅을 찾은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때마침 호남 인근에 있었던 탓에 직접 그 눈으로 문제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착한 지부에는 오래된 피 냄새만이 감돌았고, 사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으로 누군가 살각을 습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놈인가?
아무리 무림 정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놈들이라 하여도,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살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살수들의 왕.
살황 비천웅의 비호를 받는 곳이니까.
사태를 인지한 비천웅은 재빠르게 정보를 수집했다. 직접 두 발로 뛰어 호남에서 벌어진 일들을 상세하게 수집하였고, 결국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호남단가.
느닷없이 나타난 이 호남단가야말로 모든 사건의 중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 더 그곳을 파 보고자 주변을 맴돌고 있을 때.
호남단가를 감시하고 있었던 또 다른 이들과 조우하고 말았다.
“…….”
비천웅은 사방에 널려 있는 시체와 핏자국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
한 놈만 잡아 두고 입을 열게 하려고 했는데,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자 죽을 각오로 달려들어 비천웅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널려 있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모아 되도록 먼 숲에 가져다 버렸다.
이 근처에는 야생동물이 많았으니 시체는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원치 않게 도움을 주어 버렸군.’
비천웅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자신의 일이나 의뢰가 아니라면 결코 손을 쓰지 않았기에, 몹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천천히 움직이며 살황 비천웅은 생각했다.
도대체 저 호남단가라는 곳은 무엇인가? 생각보다 규모가 큰 것도 큰 것이지만, 그 크기에 반해 사람이 얼마 없는 것 같았다.
틀림없이 강한 자들이 있다 하였는데 어째 그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호남단가를 향해 움직였다. 훌쩍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지만, 누구 하나 어떤 기색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담장을 넘어온 불청객의 기세를 느낀 이들이 당장 달려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데, 이곳은 그저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작은 신음을 삼키며 더욱 안으로 파고들었다.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비천웅이 단검을 손에 쥐고 기척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커다란 마당을 지나 별채로 보이는 곳 뒤편으로 다가가자, 무수히 많은 단지들이 보였다.
그곳에 한 여인이 앉아 꿀꺽꿀꺽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는데, 상당히 맛이 좋은지 연거푸 입속으로 퍼부었다.
‘이상한 계집이로군.’
혹, 무공을 숨길 정도로 고강한 여인이 아닐지 고민해 보았지만, 살황의 기척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 묵묵히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묘한 표정으로 그것을 한동안 지켜봤다.
이윽고 여인이 자리에서 휘청이며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
함정인가?
신중함을 기하며 잠시 그곳에 머무른 사이, 발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다가왔다.
살황이 다시금 긴장하며 단검을 뽑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얼굴의 여인이 나타났다.
두리번, 두리번.
이리저리 누군가를 확인하듯 주변을 살피고 있던 그 여인은, 품에서 손바닥만 한 술병 하나를 꺼내더니 단지의 봉인을 풀고 담아 갔다.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인지 꼼꼼하게 다시 봉인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나 사라졌다.
‘도대체 저것이 무엇이기에?’
비천웅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조금 전 보았던 두 여인의 행동으로 보아 먹을 것임이 틀림없다.
한데, 하나같이 표정이 천상의 진미를 맛보는 것 같았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비천웅이 조심스레 움직여 다가갔다.
이윽고 조금 전 여인이 봉인지를 뜯었던 그 단지 앞에 섰다. 봉인지에는 소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아닌가 싶었다.
조심스레 뜯어내고 안을 살폈다.
‘술?’
뜯는 순간 달콤한 냄새가 그 코를 자극했다.
고작 냄새를 맡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단숨에 비천웅의 식욕을 자극할 정도였다.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며 손가락으로 술을 찍어 혀에 가져다 댔다.
‘이…… 이건…….’
순간, 그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항상 냉철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비천웅이었지만, 이것은 술이라기보단 사람의 식욕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또 다른 무언가였다.
저도 모르게 얼굴을 그 단지에 처박았다.
꿀꺽, 꿀꺽-!
단소미가 만든 술이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 * *
“…….”
“…….”
“큼…….”
“끄응…….”
네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연지와 단소미가 만들어 놓은 술 단지들이 있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이들은, 마치 무언가 보면 안 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묘한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했다.
한 중년인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백의 장삼을 걸치고 있는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술 단지들이 비어 있었고, 그것을 호연지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쳐다봤다.
술 단지 사이에 대자로 누워 배를 드러내고 코를 골고 있는 자.
여인들은 그 얼굴을 봐도 정작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제갈운과 그의 손에 이끌려 하룻밤 신세를 진 방노백은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살황 비천웅.
오황이라 불리는 자이며 그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젊었다. 그런 자가 어찌하여 이런 곳에 처박혀 잠을 자고 있단 말인가?
“내…… 내 술이…….”
호연지가 시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주저앉아 눈물을 글썽였다.
저것을 만들기 위해 며칠 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한다면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심지어 곧 금환상단에 보내야 할 물량들 아니었던가.
“소…… 소미의 술이…….”
반대로 전혀 다른 의미로 안색이 죽은 것은 제갈연이다. 하루에 한 번, 소미의 술을 마시는 것이 이곳에 머무는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것이 통째로 비어 버렸다.
“이…… 이 사람이!”
참다못한 호연지가 씩씩거리며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걸황 방노백이 호연지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끌었다.
“가까이 가지 마라. 술에 취했어도 저놈은 고수다. 섣부르게 다가갔다가 목이 잘릴걸?”
“엑?”
방노백의 말에 호연지가 식겁하며 물러났다.
단순한 도둑이 아니었단 말인가? 어째서 이 호남단가는 도둑조차 평범하지 못하단 말인가.
“누구죠?”
제갈연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묻는 순간, 가장 연장자이자 살황과 같은 오황인 걸황 방노백이 천천히 비천웅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지금까지 곯아떨어져 있던 그가 돌연 눈을 뜨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순간 튀어 오른 그의 몸이 날렵하게 허공을 돌더니 그대로 착지.
콰다당-!
“아이쿠…….”
“놀고 있네. 진짜…….”
널브러져 있던 술 단지를 밟고 넘어지며 그 속에 파묻혔다.
“끅…….”
“술이 덜 깼냐?”
방노백이 파르르 입꼬리를 떨며 물었다. 저 꼴을 보아하니 공력을 풀고 술을 마신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스럽게 돌고 도는 공력 탓에 결코 취할 리가 없다.
“땅시…… 은?”
아직 술이 깨지 않았는지 혀까지 꼬였다. 방노백이 창피함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것이 같은 오황이라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것을 깨달은 것인지 비천웅이 공력을 일으키며 취기를 날렸다. 그의 머리 위로 새하얀 김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뻘겋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술 단지 사이에 파묻혀 있던 비천웅이 표정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옷을 털었다.
이윽고 방노백을 바라보며 단검을 손에 쥐었다.
그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쪽팔리냐?”
“…….”
“에라이, 이놈아! 천하의 살황이라는 놈이 술을 도둑질해 먹어?”
그 한마디에 아무런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제갈운은 가만히 상황을 파악했다. 이윽고 씩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비천웅을 향해 다가갔다.
방노백이 곁에 있다는 것 때문인지 걸음에 망설임이 없다.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간 제갈운이 손바닥을 비볐다.
“저 어쨌거나…….”
“…….”
“값은 치르셔야지요? 하하.”
그 계산적인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비천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