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0
그날 저녁.
처음으로 학당에 다녀온 화소미는 제법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루 종일 싱글벙글, 얼굴 가득한 그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단우현이 그것을 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좋았나 보구나.”
“네! 천자문이라는 걸 배웠어요. 아직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단우현이 호응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또한 학당에서 서예를 배웠다느니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재잘거렸다.
단우현은 귀찮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끝까지 들어 주었다.
그러다 어느새 품에서 잠이 든 화소미를 보며 볼을 꼬집었다.
처음 가 본 학당이 정말 재미있었던 듯했다.
“좋았나 보네요.”
목소리가 들렸다.
단우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뒤를 향해 돌아갔다. 그곳에는 오랜만에 경장을 몸에 걸치고, 한 손에는 검을 쥔 남궁소혜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푸른 달빛이 내리쬐는 그녀는 마치 강림한 선녀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주위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은, 마치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단우현이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호박에 줄을 그었군.”
“줄 그은 호박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볼래요?”
남궁소혜가 입술을 씰룩이며 팔을 걷어 붙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한 대 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알아요?”
“뭐가 말인가?”
“저 아이, 뭘 배웠다 뭘 했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친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했어요.”
“…….”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남궁소혜의 말처럼 처음부터 화소미가 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아도, 누구를 사귀었다거나 혹은 누구와 친해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혼자 놀았다는 말이었다.
단우현이 가만히 자고 있는 화소미를 내려다봤다. 그러곤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마라. 첫날이니 그런 것일 테지.”
“흐음…… 그럴까요? 어쨌든 전 지금부터 나갈 건데 같이 가는 건가요?”
“그래, 호남오검이라 했던가?”
“예, 흑도회를 궤멸시킨 장본인들이죠.”
황실의 사람이 아닌 무림인이 해결한 사건이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어깨를 당당하게 펴며 입을 열었다.
단우현이 피식 웃으며 장삼태를 찾았다.
일단, 자고 있는 화소미를 안으로 옮겨야 한다.
* * *
호남오검.
그 이름을 쓰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흑도회가 궤멸되고, 현령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느닷없이 호남오검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현재 그 호남오검이 있는 곳은 산속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오두막이었다.
사방이 나무와 바위들로 가득하였으며, 날마저 어두운 탓에 눈이 밝은이가 아니면 한 치 앞도 구분이 되지 않은 곳이다.
“저…… 정말로 괜찮을까? 상대는 무림맹인데…….”
“걱정하지 말라고, 이 자식들아. 무림맹에서 흑도회 회주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으니 우린 그것만 받고 서역으로 도망치면 되는 거야.”
“자, 잡히지 않을까 걱정인데…….”
“이 형님이 누구냐! 마일웅이다. 네 이름은 뭐냐.”
“마, 마이웅…….”
“그래, 삼웅과 사웅, 오웅까지. 우린 다 피를 나눈 형제다! 지금까지 우리끼리 일을 벌여서 실패한 일이 있었어?”
가만히 생각했던 네 명의 인물들이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사기를 쳐도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이류 수준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데다, 사기꾼 기질이 워낙 뛰어난 탓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마일웅은 동생들을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상대는 남궁세가의…….”
“흥, 그깟 남궁세가! 머리만 잘 쓰면 팔대세가조차 속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지.”
마일웅은 정말 자신이 있었다.
남궁소혜를 발견한 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흑도회가 소탕된 탓에 한참 악양이 떠들썩했던 무렵, 남궁소혜가 저잣거리를 배회하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그 연유도 금방 알 수 있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일웅은 어린 시절부터 담이 뛰어났고 사람을 속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지금 이 장소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일만 성사시키면 그들의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현상금을 손에 넣고, 새외로 도망을 간다면 설령 무림맹이라 한들 잡을 수 있겠는가?
마일웅은 피식 웃었다.
“혀…… 형님, 옵니다.”
그때, 다가오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힐끗 시선을 돌리자 자신들의 집으로 두 명의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명?’
분명 남궁소혜 한 명일 텐데 갑자기 나타난 저 사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마일웅은 의아한 시선으로 남궁소혜의 뒤를 따르는 사내를 바라봤다.
“당신들이…… 흑도회를 토벌한 호남오검이라는 자들이 맞나요?”
가느다란 미성에 마일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둡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황홀경에 빠져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집중해야 한다.
무엇 하나라도 삐끗하는 순간 그대로 망하는 것이다.
마일웅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소.”
먼저 철저히 모른 척해야 한다. 현령을 앞세워 모든 공을 그에게 돌렸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피식-
그 순간, 신경에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힐끗거리는 눈으로 들려온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니 그 사내였다.
그때, 마일웅의 정신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다 알아보고 왔어요. 당신들이 현령의 뒤를 봐주고, 흑도회를 토벌했다지요?”
“누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무림맹 봉황단 단주 남궁소혜라 해요. 대협들이 의협심이 높고 세상에 나서기를 꺼리신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거짓말을 하지 말고 제대로 답해 주시기 바라요.”
남궁소혜는 천천히 저들의 행색을 살폈다.
허름한 무복을 입고 허리에는 저마다 각양각색의 검을 차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정말로 이들이 했다고?’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미약하다. 일류는커녕 이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느낌이 드는 이자들이 흑도회는커녕 파락호나 잡았을까 싶었다.
그녀가 가늘게 눈을 뜨며 마일웅을 바라보는 그 순간.
“장씨로군. 그가 우리의 이야기를 했소이까? 하아, 세상 참 믿을 사람이 없구려…….”
“그럼 정말로 당신들이 흑도회를 토벌했다는 건가요?”
“이렇게 되었으니 모두 말씀드리리다. 그래, 우리가 흑도회를 토벌했소.”
남궁소혜는 아미를 들썩였다.
당당한 시선, 흔들리지 않은 눈동자, 한순간이긴 하지만 몸을 움찔할 만큼 기백이 느껴졌다.
하지만…….
‘기세가…… 너무 약한데?’
무인은 무인을 알아보는 법이다.
일류에서도 나름 이름을 떨치고 있는 남궁소혜가 느끼기에 눈앞의 이들은 그저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 우리를 의심하는 것이오?”
“흑도회 회주는 절정에 오른 고수. 그 수하들은 대부분 일류에 오른 이들이죠. 하지만 당신들은 아무리 봐도…….”
그때다.
마일웅이 힐끗 막내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것은 굉장히 짧은 순간이었고, 남궁소혜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내 마일웅이 천천히 손을 움직이자.
퍼걱-!
쩌저적-!
느닷없이 남궁소혜 근처에 있던 나무 하나에서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날리는 것은커녕,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탓에 남궁소혜가 당황한 시선을 보냈다.
쿵-!
이내 커다란 나무가 밑동이 부러져 완전히 넘어갔다.
“이래도 우리를 의심하시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기인들이 있소. 우리의 스승님 또한 그런 분이셨고, 우리도 마찬가지라오.”
“대…… 대단해.”
남궁소혜는 마른침을 삼켰다.
바람 소리조차 내지 않고 나무를 부러뜨리다니.
이 정도 수준에 오른 이라면, 정말 흑도회 회주를 제압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흑도회가 오랜 시간 암약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점 조직으로 운영되었고, 간혹 간부를 붙잡아도 자결을 하거나 암살당한 탓이었다.
또한 일류에 오른 실력을 지닌 수하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무림맹의 무사들보다는 못했고, 흑도회 회주 또한 절정에 이른 고수라 하나 구파일방의 장로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 실력이었다.
“우리를 의심할 것이면 이만 돌아가시오.”
“아,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혹시나 싶어서.”
남궁소혜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치자, 마일웅이 힐끗 셋째에게 눈빛을 보내더니 쿵! 하며 발을 굴렀다.
동시에.
펑-!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던 커다란 바위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그것은 결코 내공이 약한 이가 보일 수 있는 무위가 아니었다.
“돌아가시오!”
“아, 아니! 잠시 만요, 잠시 만요!”
슥 하며 등을 돌리는 다섯 명을 바라보며 남궁소혜가 다급하게 뒤를 쫓았다. 절대로 저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태도가 다소 불손했음을 인정하였는지 연신 사과의 말을 건넸다.
“…….”
그렇게 이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있는 사이, 단우현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떨어진 파편들과 쓰러진 나무를 살폈다.
“나무는 미리 베어 놓고 기관을 설치했군. 제법인데?”
하하 하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속이려면 완벽해야 하는 법이다. 자그마한 허점이라도 있으면 눈치 빠른 이들은 결코 넘어오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들의 선택은 참 좋았다.
어두운 밤, 그것도 달빛조차 제대로 스며들지 않는 장소를 골라 기관을 설치했다. 아마도 어떠한 신호를 주면 그것을 작동시켰을 터.
이렇게 철저히 준비했으니, 아무리 뛰어난 남궁소혜라 할지라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나 또한 넘어갔을지도 모르겠군. 하하하.”
단우현은 몹시 재미있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놀랐다. 이런 식으로도 사람을 속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들었다.
게다가 이 사기꾼들은 참으로 담도 큰 듯했다. 나름 유명하다는 세가의 여식을 속이다니.
그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상당한 재미였다.
단우현은 천천히 걸어 남궁소혜의 뒤를 따랐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무림맹에선 대협들을 꼭 초청하고 싶습니다. 그 때문에 맹주님께서 직접…….”
“무림맹주가 직접 말이오?”
“그래요! 제가 실례를 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맹주님의 초대만큼은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마일웅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이제 거의 다 넘어왔다. 지금부터는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밖에 없을 거다.
“도대체 우리가 무림맹에 가서 무엇을 한단 말이오? 이야기나 듣고 차나 한 잔 하러 가는 것이라면 사양하겠소.”
“그……! 흐…… 흑도회에는 무림맹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데 그것도 받으시고 또 맹주님과 이야기를 하시다보면 좋은 인연이 될지도…….”
현상금이라는 말에 단우현이 눈을 번뜩였다. 흑도회에 현상금을 걸어 놓은 것은 황실만이 아니었단 말인가?
“흥, 고작 현상금 따위로…….”
“금 이백 냥…….”
“으음?”
남궁소혜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란 것은 호남오검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얼마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지 알 고 있었으니까.
“이백?”
놀라며 되물은 것은 단우현이었다.
그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빤히 남궁소혜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