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04
“그래 갔던 일은 잘되셨소?”
들려오는 질문에 황보원은 움찔 몸을 떨었다.
황보원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질문을 던진 당중악이 보였다.
황보세가의 정예를 이끌고 호남단가로 쳐들어간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
그럼에도 어떠한 소식조차 들리지 않고, 멀쩡하게 돌아왔으니 의문이 들었다.
“남의 세가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구려, 당 가주.”
“하하, 남이라니? 어디 우리가 남이오?”
당중악이 자연스러운 태도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황보원 또한 당중악과 마찬가지로 한 세가의 가주.
같은 천도회의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가지고 있는 파벌이 달랐다.
서로 견제를 해야만 이 살아남는 특성상 모든 것을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야기로 잘 풀었소이다. 크게 신경 쓸 것은 없소.”
“흐음…… 그렇구만.”
당중악이 눈을 반짝이며 황보원을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함부로 건들지 않는다. 지금 당장 묻고 파헤치지 않아도 언젠가는 그것을 드러낼 테니까.
씩 웃음을 지은 당중악이 고개를 숙이며 등을 돌렸다.
지금은 굳이 파헤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당 가주는 무언가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잘 들어라, 권아야. 팔대세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사천당가다.”
사천당가는 다른 세가들과는 다르다.
어딘지 모르게 교묘함과 음습함을 숨기고 있는 집단이다. 그만큼 힘도 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남궁세가와 모용세가가 언제나 수위를 다투던 것은 당가가 그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지.’
황보원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기실 드러내지 않지만 사천당가의 전대 가주의 실력이 어쩌면 오황에 필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런 의심을 가졌지만 직접 묻지도 파헤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당가를 헤집어 봐야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시렵니까?”
“일단 남궁세가에 전서를 띄워라. 가주에게 내가 만나고자 한다고 전하거라.”
남궁천이 살아 있다는 것을 남궁세가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번 악양행 또한 알게 모르게 남궁천을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다시금 남궁세가와 손을 잡는다.
이렇다 할 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황보세가로서는 조금 더 강한 쪽에 붙어 있는 편이 좋은 일이다.
“최대한 당가의 힘을 억누르는 편이 좋을 테지.”
현 천도회에서 당가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비록 다른 세가의 인물이 회주를 맡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당가의 힘은 막강했다.
그런 것을 뒤집을 수 있는 존재.
바로 남궁세가였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뜻대로 될 리가 없다.
“크…… 큰일났습니다, 가주님!”
헐레벌떡 뛰어오는 누군가가 황보원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 * *
“…….”
그 자리는 오로지 침묵만이 감돌았다.
구파일방, 그곳에서도 나름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한데 모여 인상을 찌푸린 채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선진은 질끈 눈을 감았으며, 그를 호위하듯 곁에 붙어 있는 방노백의 입에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온다 이거지?”
이윽고 그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방노백이다.
좌중을 훑어보며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어떤 이라 하여도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보통 이들이 아닙니다. 반 시진도 안 되어 지부 하나를 전멸시키다니…….”
들려오는 말에 방노백이 신음을 삼켰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능히 칠성에 가까운 이들일 터. 그런 자들이 한 사람도 아닌 다섯 사람이나 있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았다.
방노백이 긴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목적지는 알겠는가?”
그때, 지금까지 눈을 감고 있었던 선진이 조용히 눈을 떴다. 말투에 진중함이 깃들었기에 모든 이들이 그를 바라보며 집중했다.
“무림맹…… 혹은…….”
“소림인가……?”
아미타불 하며 불호를 외우며 선진은 또다시 눈을 감았다. 불제자로서 피를 보고 싶은 마음 따윈 추호도 없으나, 먼저 칼을 뽑았으니 무림맹 또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좌중을 바라보는 눈빛에 힘이 실렸다.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아직 무림맹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 주게나.”
그 한 마디에 모두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천도회의 힘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무림맹 역시 무언가를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무림맹보다 천도회를 믿고 따르는 만큼, 다시 그 마음을 돌리겠다는 뜻이다.
하나같이 주먹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혹 죽는다 한들 곱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 * *
“아…… 지랄 맞게 아프네…….”
달걀 하나를 손에 쥐고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 장삼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난히도 어두운 밤하늘이 오늘따라 왜 이리 씁쓸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봉이야?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괜스레 화가 나 이를 갈며 소리를 쳤다.
만약 세가 안이었다면 누구든 듣고 난리가 났을 테지만, 다행히 먼 곳에 홀로 나와 있는 탓에 어느 누구도 장삼태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내가 뭔 짓을 했다고…….”
그냥 술을 담그려 했다.
근처에 좋은 뱀들이 많이 보인 탓에 그것을 잡아 단우현의 몸보신이나 시켜 줄 셈이었다.
도중에 한 마리가 도망칠 줄은 또 누가 알았겠으며, 그놈이 묘한 표정으로 세가를 바라보고 이상한 기운을 풍기는지 어찌 알겠는가?
알고보면 장삼태 딴에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인간이 없기에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곁을 지키고 있던 매향도 질린 표정을 지었으니까.
그깟 뱀이 뭐라고.
“이 사람들은 내가 소중함을 몰라.”
이 장삼태가 없다면 세가가 돌아가기나 할까?
청소부터 시작하여 식사까지.
심지어 잔심부름마저 한다.
전반적인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장삼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었다.
심지어 소미를 돌보고 있는 건 누구인가?
요즘에는 남궁소혜와 자주 붙어 다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단소미는 장삼태를 찾아다니며 함께했다.
그런데 취급은 동네 개만도 못하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단우현은 그렇게 일을 부려 먹으면서 봉급조차 제대로 안 주지 않는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장삼태가 시뻘겋게 얼굴을 붉혔다.
“이런 씨부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한 번쯤은 삼태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이 결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했다.
적무성이 고생을 하기는 할 테지만 뭐 어떤가?
장삼태가 파업(罷業)을 선언하는 날이었다.
* * *
“……뭐냐, 이건?”
“밥이죠.”
이른 아침.
식당에 모여 있는 이들이 얼빠진 표정으로 밥상을 바라봤다. 온갖 나물들만 있었고 고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밥조차 급하게 한 티가 날 정도로 설익어 있었다.
그나마 단소미가 먹는 밥은 다 익었지만,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 것들은 생쌀이 그냥 씹힐 정도였다.
찬으로 올라온 것들 하나하나 급조한 느낌이 강했다.
단우현이 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함께 있어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네가 했느냐?”
“네, 급하게 하느라 어쩔 수 없었어요.”
남궁소혜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이른 아침 연무를 끝마친 이후였다.
아침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왔는데, 차려진 음식이 하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요리를 했다.
“삼태 녀석은?”
사도학이 젓가락질을 해도 집어지지 않는 쌀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놈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이지 않았을 거다.
“글쎄요. 안 보이던데요?”
“안 보인다고?”
“허허, 이놈이 게을러터졌구나!”
사도학과 남궁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늙은 몸이다.
그렇기에 하루를 시작하는 데 아침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것을 제대로 차려 놓지 않은 장삼태를 혼쭐낼 생각이었다.
또다시 아침부터 폭풍이 일겠구나 싶어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내심 한숨을 쉬었다.
심지어 권무진과 마장강은 알게 모르게 장삼태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한데, 조금 이따 돌아온 두 노인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없는데?”
“없다네.”
“없다고?”
장삼태가 없다는 말에 단우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 나가는 소리를 듣기는 하였지만, 설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사도학이 한껏 인상을 썼다.
“이놈 또 홍등가 가서 뻗은 거 아니야?”
“아니에요!”
매향이 바로 반박하며 소리를 쳤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며 단호하게 외쳤다.
장삼태의 수중에 있던 은자 몇 푼마저 이제 매향 손에 있었고, 거의 용돈 타는 수준으로 생활비를 받아 쓰는 입장에서 그런 곳에 갈 수는 없었다.
“곧 돌아올 테지.”
“갈 곳도 없는 놈인데 뭐…….”
그러나 곧 들려오는 단우현의 말에 사도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착석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밥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했다.
어차피 갈 곳도 없는 놈이니, 내버려 두면 알아서 기어들어 올 것이다.
“저기…… 다들 삼태 아저씨한테 너무한 거 아닌가요? 조금 걱정이라도 하는 게……?”
남궁소혜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밤새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걱정을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 세가에 있는 어느 누구도 장삼태를 걱정하는 이가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장삼태와 제일 친하다 할 수 있는 단소미조차, 밥을 먹기만 할 뿐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도대체 장삼태, 그 존재가치는 뭘까…….’
남궁소혜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장삼태에게 동정했다.
“걱정하지 마라. 곧 돌아올 테니.”
툭 하고 들려오는 단우현의 말에 남궁소혜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면 차마 뒷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때, 목소리를 높이는 매향이었다.
“아니,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잖아요!”
그녀는 정말로 걱정이 되는지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놈 발이 빨라서 괜찮아. 중원에서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정도일걸?”
짧은 탄성이 들렸다.
제갈연이 두 노인이 그 정도까지 장삼태를 높게 보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엔 누구 하나 삼태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제갈연이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이 싫어서 도망간 건지도 모르죠.”
“…….”
“솔직히 질릴 만하죠? 매일 그렇게 두들겨 맞는데. 저 같아도 싫겠네요.”
모든 이들이 정곡을 찔렸다는 듯 식사를 멈췄다는 사실조차 제갈연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오늘 청소랑 빨래는 누가 할 건데요?”
이어지는 말에 모두가 시선을 내리깔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