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99
사사사삭-!
한순간 싸움이 멈췄다.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던 혈천의 인물들이 하나둘 몸을 뒤로 빼며 다섯 사내 사이로 몰려들었다.
마치 그들을 지키는 것처럼 사방으로 칼을 겨눈 채 날카로운 살기를 뿜었다.
그와 동시에 남겨진 자들도 있었다.
혈천에 무릎을 꿇고 그들에게 고개를 숙인 자들. 대부분 중소 문파 혹은 낭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그들은, 느닷없이 혈천 무리들이 일제히 빠져나가니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처럼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그것을 정사 연합이 놓칠 리가 없다.
“몰아쳐라!”
누군가 내뱉는 외침에 일제히 달려들었다.
조금 전까지 밀리고 있었던 이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한 기세를 내뿜으며 몰아쳤다. 마치 폭풍을 머금은 것 같은 그 위압감은, 상대의 사기를 끊어 내며 자신의 것으로 가져왔다.
카카카캉-!
격렬한 전장터의 울림이 까랑까랑 울려 퍼졌다.
그와는 반대로 남궁천을 비롯하여 호남단가의 인물들은 혈천 무리들과 대치를 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칼을 뽑고 기세를 뿜는 마장강과 권무진.
장삼태는 불안한 표정이 역력하였지만, 절대 이 자리에서 도망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네 사람.
사도학을 비롯하여 남궁천과 적무성, 그리고 무천풍이 있었다.
당당하게 서 있는 그들 또한 눈앞에 있는 다섯 사내의 기세를 읽은 것인지 눈빛에는 비장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호남단가라? 이런 곳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군.”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가장 뒤편에 서 있는 자.
마치 핏빛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자다. 치렁치렁 늘어진 그것을 가볍게 쓸어 넘기자, 홍염을 머금은 시뻘건 눈동자가 살벌하게 빛을 냈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네 사람은 깨달았다.
‘저자로군.’
이 다섯 중 가장 강한 자.
바라보는 순간 느껴지는 감각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울리는 경종은 저자와 손을 섞지 말라, 혹은 이 자리에서 도망쳐라, 그런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은 사도학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사내를 도발했다.
“이름이 뭐냐, 너?”
“염.”
그것이 이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럼에도 염이라 내뱉은 것은 당당하게 다른 이에게 가르쳐 줄 이름이 없다는 말이다. 저들은 저들끼리 부르는, 혹은 그들의 본래 주군이었던 혈마가 불렀던 호칭이 자신들의 이름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재미있는 이름이로군…… 허허.”
남궁천이 웃음을 지으며 검에 힘을 주었다.
잡담을 하며 시간을 끌 생각 따위는 없다. 죽고 죽여야 하는 적이 눈앞에 있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는 조금 전 남궁용을 죽이려 했던 사내를 바라보며 검을 겨누었다.
“자네는 나와 이야기 좀 하세.”
그 한마디에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남궁천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아니면 그의 오만함이 거슬린 것인가?
사내는 다소 화가 난 시선으로 염을 바라봤다.
“풍, 놀아 주거라.”
풍이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가 검을 끄집어내는 순간.
콰콰쾅-!
격렬한 바람이 몰아치며 남은 네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호남단가 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엄청난 속도,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들의 움직임조차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남궁천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또한 다른 세 사람 역시 가볍게 뻗어진 한 수를 피하며, 쫓아 들어오는 다른 이들을 향해 한 수를 내질렀다.
콰쾅-!
격렬한 공방이 순식간에 오갔다.
네 사람이 펼치는 그 힘과 파괴력은 모든 이들의 상상을 능가했다.
사람임이 분명한데도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 않아 마치 귀신과도 같았으며, 그들이 뻗어 내는 칼날은 스산한 한기를 감싸 안은 채 모든 이들에게 오한을 안겨 주었다.
“저…… 저게 무슨…….”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당사휘는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자신은 손조차 제대로 대지 못했던 존재. 무슨 수를 쓴다 하여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으며, 결코 닿을 수 없는 하늘과도 같았던 이들.
그런 이들을 상대로 어찌 싸울 수 있는가?
저들은 결코 용기만으로 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 사람은 간격을 벌리고 간격을 좁히고, 또한 빈틈을 노리고 빈틈을 보이고, 공방을 주고받는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힘이 온 주위를 휘감았다.
상반되는 힘이 교차하며 퍼져 나가니, 그야말로 주변은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쾅쾅쾅!
“말도 안 돼…….”
당사휘는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이들.
같은 공간 안에서 싸워 본들 좋을 것이 없다 판단을 하였는지, 이들은 저마다 상대를 이끌고 거리를 벌려 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네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당사휘는 그것을 바라보며 주르륵 식은땀을 흘렸다.
남궁세가보다 월등하다 믿었던 사천당가.
현 시점에서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테지만, 어느새 그의 눈앞에는 호남단가라는 거대한 산이 또다시 등장하여 앞을 틀어막았다.
당사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으윽…… 정신 차려요! 옵니다!”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울렸다.
익숙한 목소리.
틀림없이 남궁소혜다.
그녀가 정면을 바라보며 검을 쥐었다.
홀로 우두커니 남아 있던 사내가 주변을 훑어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잔학하게 느껴졌다.
“죽여라.”
사내의 한마디를 거스르려 하는 이들은 없었다. 네 사람이 사라졌음에도 꿈쩍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혈천의 무리들이, 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매섭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염은 그것을 바라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괴성이 무척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사람의 죽음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는가? 그는 이 싸움의 승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살육을 즐길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후량을 따르는 의미가 있다.
그때, 염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해 돌아갔다.
미약하게 부는 바람, 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묘한 기세.
마치 그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처럼, 혹은 속삭이며 유혹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흘러 들어와 염의 가슴을 자극했다.
그가 피식 웃었다.
“결국 오는가?”
무엇이 그리 재미있을까?
무엇이 그리 신이 난 것일까?
염은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곧 다가올 사신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 * *
“이것 참…….”
남궁천은 호흡을 골랐다.
상대의 강함을 어느 정도 예측하기는 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강한 느낌이다. 벌써 일각여를 부딪치며 공방이 오갔으나, 서로 깊은 상처를 내지 못한 채 간격만을 벌리고 있었다.
“천하의 검황이 이 정도이더냐? 재미없구나.”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라네. 나름 기대를 하였는데 말이야…….”
남궁천의 여유 섞인 말에 사내가 조소를 내걸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남궁천은 여유가 없어 보였다. 비록 비등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하지만, 체력적으로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니, 승기는 사내 쪽에 있었다.
남궁천이 그것을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닐진대 무엇인가, 저 여유는?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는 것인가?
그때, 남궁천이 다시 한번 검을 굳게 쥐며 기세를 풀었다.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한 상황임에도 그가 내뿜는 힘은 가히 풍이라 불린 사내와 비등하거나 혹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풍은 더 이상 저 여유를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움직이는 순간 거리를 좁히더니, 동시에 내뻗은 검이 매섭게 폭풍을 휘감았다.
온 주변을 휘감고 밀어 버리는 것 같은 격렬한 기세.
검에 맺혀 있는 힘은 남궁천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궁천의 제왕검결 또한 못지않은 강함이다.
캉-!
부딪친다.
격한 울림이 두 사람이 귀를 자극했다. 손끝에서 몰아치는 묵직한 느낌과, 그 안에 섞여 들어간 서로의 공력이 뒤엉켜 파장을 만들어 냈다.
쾅!
어마어마한 울림.
어느 누가 이 상황을 본다 한들 결코 평범한 무인들의 싸움이 아니다.
한 칼 한 칼이 부딪칠 때마다 모이고 퍼지는 힘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여 이 싸움이 천외천의 싸움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할 정도였다.
촤악-!
그때, 풍의 칼날이 남궁천의 허리를 베었다.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 팽팽했던 싸움이 단박에 기울어지는 한 수다.
남궁천이 이를 악물며 입을 닫았다.
몰아쳐 오는 고통조차 씹어 삼키며 눈을 부라렸다.
승기를 잡았다 생각을 하며 연이어 검을 내뻗는 풍을 바라봤다. 그의 칼날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며 다시금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서걱-!
촤아악!
남궁천의 허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옅은 상처가 아니라 깊게 들어간 일검이다. 완벽하게 상대를 잡아 낸 한 수였으며, 그 한 수로 인하여 이 싸움의 승패는 완벽하게 풍을 향해 기울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의 표정이 더욱 풀어졌다.
승기를 잡은 상황이라면 결코 검을 거둬서는 안 된다.
더욱 거세게 몰아친다.
촤촤촤악!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칼날은 휘둘러졌다. 가까스로 그것을 피하고 있는 남궁천의 몸에서 여기저기 피가 솟구쳤다.
막아 내고 피한다 하여도, 이미 깊은 상처를 입은 몸이니만큼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탓이다.
비등한 고수와의 싸움에서 이러한 차이점은 굉장히 큰 것이다.
“하하하-! 천하의 검황도 별것 아니로구나!”
풍은 웃었다.
그는 본디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을 즐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기에 두려움에 떠는 약자들이 짓밟혀 꿈틀거리는 그 모습이 실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피가 튈 때마다 움찔거리는 남궁천의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던 것인가?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다 죽이는 것처럼, 풍의 검은 확실한 빈틈이 있음에도 깊게 들어가지 않은 채 상대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오싹-!
웃고 있던 풍은 남궁천과 시선을 마주쳤다.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그 압도적인 눈빛에 위축당했다.
“재미는 다 보았는가?”
다소 지친 목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다시 한번 긴장 어린 시선으로 남궁천을 바라보며 방심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려는 그 순간.
푸욱!
가볍게 내지른 남궁천의 칼날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촤악!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치 이러한 것으로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심장이 꿰뚫리는 순간 움찔하는 풍을 보며 횡으로 크게 칼을 휘둘렀다.
심장과 근육, 팔을 잘라 내며 빠져나오는 칼날이 풍의 피를 사방으로 뿌렸다.
“커어억……!”
“방심하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네. 자네나 나나 비슷한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하지만 다소 성급했다네.”
남궁천은 피가 묻은 칼날을 털어 내며 중얼거렸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으며 비틀거리는 풍을 바라봤다. 한 차례 크게 휘청이던 풍이 경악성을 터트리며 손에 쥔 검에 힘을 주었다.
심장을 꿰뚫리고 팔이 잘린 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정신력이다.
하지만.
서걱-!
이윽고 그 머리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어떤가? 검황의 칼맛이……?”
남궁천이 바닥을 나뒹구는 머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듣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짧은 찰나의 순간 바닥을 나뒹굴던 머리의 눈동자가 남궁천을 향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