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28
“결국 호남으로 모이는 수순인가?”
천무광은 먼 거리에서 보이는 악양을 눈에 담았다.
혈천의 악양 공격은 천무광 역시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기실 만후량의 행동은 다소 의외라 느껴졌다. 도망을 쳐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는데, 만금상단의 모든 자금력과 혈천의 모든 이들을 끌어모아 악양을 치다니?
만후량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마치 다른 누군가가 의도한 상황 같았다.
이 일로 인하여 호남단가는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든 간에 많은 이들이 주시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수많은 이들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마치…… 이런 걸 노리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인가?’
천무광은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무제가 뒤에서 조종을 한 일이다. 그것을 모를 만큼 멍청하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이 모든 상황 하나하나가 천무제의 손아귀에 놀아났다는 것과 같았다.
내심 혀를 차며 등을 돌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디로 갔을까?’
천무제의 종적이 사라졌다.
원체 그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모습을 감추는 자이기는 하지만, 이번만큼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천무광이 알기론 처음이다.
하여 괜한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착-!
그때, 뒤에서 묘한 소리가 들렸다.
한 줄기 식은땀이 천무광의 이마에 맺혀 흘렀다.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
또한, 만년한설을 머금은 것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할 일이 그렇게 없냐?”
“……당신.”
힐끗 시선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차가운 표정의 남주련이 검을 뽑고 서 있었다. 천무광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은 더없이 냉담하였으며, 칼끝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한 한 치의 떨림조차 없었다.
“이런 곳에서 해 보려고? 저쪽에 있는 분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
“죽여 버리겠어!”
남주련의 분노와 흥분은 누가 말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태공진을 죽이고 그 얼굴로 남주련을 속이고 팔선의 일인을 죽였다.
휘둘러지는 칼날에 천무광이 물러섰다.
날카롭다.
태공진과는 명백하게 다른 검.
천무광이나 태공진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부터 무신을 따라다니며 그 검을 보고 배웠던 여인이었기에, 기실 가장 무섭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여인이다.
촤락!
옷자락이 베여 나가는 것을 느끼며 천무광은 신음을 삼켰다.
‘이리되었으면 어쩔 수 없나?’
남주련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령 함께 죽는다 하여도 반드시 베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심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천무광은 마기를 끌어올렸다.
‘죽일까?’
오싹-!
그때였다.
어디선가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강맹한 기운이 두 사람을 압박했다. 검을 휘두르고 있던 남주련은 물론이고, 결심을 내비치며 끝을 보려 했던 천무광마저 온몸이 굳었다.
“이건……!”
천무광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
반드시 죽는다.
생명의 경종이 격렬하게 그의 머릿속을 후려치며 흔들어 대는 순간, 천무광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중에 보자고.”
“어딜!”
촤락!
칼날이 스쳤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맞지 않았다. 반격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천무광은 더 손을 쓰지 않고 물러서며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윽……!”
그 자리에 홀로 남은 남주련이 주저앉았다.
눈앞에서 또 한 번 놓치고 말았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를 죽이겠다 결심을 하였지만, 그 결실을 이루지 못한 채 눈앞에서 놓쳐 버리니 저도 모르게 손아귀가 떨려 왔다.
남주련은 숨을 고르며 시선을 돌렸다.
“우습죠?”
* * *
“괜찮아?”
“아…… 네, 괘…… 괜찮아요, 아가씨.”
여은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장원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한때나마 이 아이의 집도 못지않게 잘 살기는 하였지만, 장원이 이렇게까지 넓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서 정말 살 수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기에, 표정에는 불안감마저 드러났다.
그것을 읽은 것인지 단소미가 방긋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단. 소. 미. 아가씨가 아니야.”
“하…… 하지만 저는 아가씨를 모시는 시녀…….”
“으음…….”
단소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지그시 여은월의 얼굴을 바라보자, 은월은 그 시선 때문인지 황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가렸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거다.
“보…… 보지 말아 주세요.”
“왜, 내 눈에는 예쁜데…….”
“……흉측하지 않으세요?”
“전혀?”
단소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흉측하다는 것은 이러한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멀쩡하게 생긴 이들이 더한 짓을 일삼고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오히려 그런 이들이야말로 진정 흉측하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치료를 계속하고 있으니 점점 괜찮아지고 있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여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탕약을 마시고 약을 발랐다. 전부 단우현이라는 분의 은덕이었고, 덕분에 처음보다는 확실하게 그 모습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몇 달만 더 치료를 받는다면, 피부병이 사라지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가,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응…… 그런 말 들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저…… 저 아가씨…… 이제 수련을 해야 할 시간인지라…….”
“아, 응, 알겠어.”
단소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은월은 이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하루에 두 시진씩, 단우현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왜 그러한 것을 배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을 차마 방해할 수 없었다.
“무공이라는 게 재미있나 봐…….”
혼자 남은 단소미가 중얼거렸다.
한때, 이곳으로 오는 도중 수련을 받는 여은월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넘어지고 피가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빛이 날카롭고 매서워 차마 그만두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그마한 저 아이는 일어섰다.
어른들의 살벌한 목검을 맞고 신음을 삼키고 소리를 내질러도, 반드시 강해지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깃든 눈빛을 빛냈다.
단소미의 입장에선 다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냐?”
“어머, 깜짝이야-!”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던 단소미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단우현이 우두커니 선 채 웃음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단소미가 뾰족한 시선을 보냈다.
“기척 좀 내고 다니세요…….”
“하하, 소혜 같은 말을 하는구나.”
“헤헤헤.”
방긋 웃음을 지은 단소미가 단우현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비의 냄새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마치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단우현에게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향과 따스함이 단소미에게 큰 안도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왜 은월이는 무공을 익히려 할까요?”
“강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
강해진다는 말에 단소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단소미 역시 가끔 단우현에게 무공을 배우고는 있지만, 그럴 때마다 힘들어 투정을 부리고는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강해지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번 다시 잃거나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지.”
“잃고 싶은 않은 것…….”
단소미가 지그시 단우현을 바라봤다.
이 자그마한 아이에게 있어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이다. 만약 과거와도 같은 일이 또 한 번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결코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은월 또한 마찬가지인가?
단소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저도…… 강해질래요!”
“하하! 갑자기 말이냐?”
“아빠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질게요!”
단소미는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자신이 강해져서 단우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야말로 과거의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기도 하였으며, 또한 언제나 단소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단우현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 눈빛을 바라보며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내 모든 것을 너에게 주마.”
“네! 힘낼게요!”
단소미는 어리기 때문에 모른다.
단우현의 한마디가 얼마만큼 대단한 것인지.
천하에 다시없을 고절한 자.
천하제일, 고금제일이라는 말이 따라다니는 자.
그러한 이가 내주는 모든 것이라 한다면, 단소미야말로 무신의 진전을 잇는다는 뜻이다.
만약 천 년 전, 무신을 알고 있는 이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넋을 잃을 만큼 놀라워했을 것이다.
그때, 단우현의 주위로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그것은 마치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 기세가 바람이 되어 휘날리는 것 같았다.
단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어느 곳을 지그시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 분명한데도 점차 게슴츠레 눈을 떴다.
이윽고 그의 기세가 터졌다.
단소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였으나, 장원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기겁할 정도로 강대한 기세가 퍼져 나갔다.
무천풍과 술을 마시고 있던 사도학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고, 무천풍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일어서지 못했다.
장삼태는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뜨렸고 매향은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응? 아빠?”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단소미가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손에 쥐고 있던 단우현의 옷깃이 사라진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 허전함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지만, 단우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하늘로 솟구친 듯 땅으로 꺼진 듯.
단소미가 휘둥그레 눈을 떴다.
눈앞에 있던 단우현이 갑작스레 사라졌으니 응당 놀랄 법도 했다.
“정말이지…….”
그러나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마치 이러한 것을 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또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마음을 편히 먹은 단소미가 작은 한숨을 쉬며 걸음을 돌렸다.
단우현이 사라졌으니 사도학에게 놀아 달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삼태에게 악양에 데려다 달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단소미의 시선 끝에,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백호의 모습이 보였다.
단소미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백호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장난기 가득한 단소미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다닥 도망을 치려는 그 찰나!
어느새 다가온 단소미가 달려들어 그 품에 안겼다.
“어딜 가려고? 헤헤헤!”
마음 편히 자고 싶었던 백호가 고양이와도 같은 소리를 내며 울상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