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54
단우현의 앞에서 사라진 흉면귀는 어딘지 모를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지친 듯 인상을 쓰면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손아귀가 파르르 떨렸다.
‘그게 무신이란 말이지?’
입맛을 다시며 다시금 단우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어찌할 새도 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자다.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패했는가?”
“예, 실패했습니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닙니다. 역용도 완벽했고, 근접하기 전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만…….”
“그렇군…….”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며 흉면귀는 어깨를 으쓱했다.
완벽한 기습으로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한 방법은 오래전부터 흉면귀가 써 왔던 것이기에 자신 또한 있었다.
심지어 홍원창을 붙잡아 그 기억을 읽어 내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위장을 하였다 생각했기에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되었다.”
“으음…….”
흉면귀는 들려오는 소리에 머리를 긁적였다.
이윽고 슬쩍 뒤를 돌아보며 어둠 속에 갇힌 인물을 바라봤다.
시선조차 보이지 않고 기척조차 없다.
만약 칼질을 한다면 속수무책일 터.
그런데도 흉면귀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을 지었다.
“형님과 함께였다면 죽일 수 있었습니다만……?”
“…….”
“형님은 어디에 가신 겁니까?”
“알 것 없다.”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하의 무신을 상대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흉면쌍살 두 명이 전부 나서지 않았다. 이례적이라 한다면 그런 상황이었고 또한 한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려 주지도 않는다.
흉면귀는 그것이 궁금하였지만 입을 다물었다.
어떤 식으로 묻는다 한들 답이 들려오지 않을 것 같았다.
“돌아와라.”
“알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명령은 명령이다.
되살아난 이상 그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고까운 표정과 불만이 가득하였지만 흉면귀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인간은 언제 봐도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작은 미풍과 함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흉면귀는 그자가 있던 곳을 지그시 지켜봤다.
“류태서 님만 아니었다면 콱!”
류태서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사지를 갈가리 찢어발겼을 것이다.
운이 좋아 자신보다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실력은 비등하거나 혹은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 분한 마음을 가슴에 품으며 한숨을 쉬었다.
실패한 것은 실패한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 하여 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만큼,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현실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형님은 정말 어디를 가신 거지?’
흉면귀는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으니만큼, 홀로 움직이는 것 자체에 크나큰 불안과 공포를 품게 된 것이다.
이윽고 쯧 하며 혀를 차곤 그 역시 등을 돌렸다.
* * *
“홍원창이 이곳으로 들어온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만…….”
“종적을 찾을 수 없다?”
“예…….”
장삼태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남을 떠나 북경으로 올라가던 도중인 것은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와 바꿔치기가 되었는지, 또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 종적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하오문의 정보력을 총동원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다 할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오문 측에서는 역귀라는 자의 용모파기를 건네주었다고까지 했으니, 그자를 잡으러 간 것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단우현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흉면귀의 성정을 생각해 본다면 홍원창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어딘가에 가둬 뒀을 것 같기도 하였지만, 그렇다면 굳이 죽는다는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을 거다.
갇혀 있다면 스스로 능력만 되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을 것이고, 굳이 죽은 이를 입에 담으며 그리 웃음을 터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잡혀 있다…… 정도인가?’
단우현이 하늘을 바라보며 짧은 신음을 삼켰다.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역귀를 잡으러 갔다……?”
“소문만 무성한 녀석이지 실존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요. 하오문 쪽도 사실 용모파기를 건네주기는 했지만 확신하지는 못한다 했답니다.”
“그렇군…….”
단우현은 처음 역귀라는 자가 흉면쌍살의 형 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귀신보다 더 은밀한 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하오문 따위에게 얼굴을 드러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렇다면 단순히 살아 있는 사람, 즉 무인이라는 말이다.
그런 이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도중에, 흉면귀의 표적이 되었고 결국 역귀에게 붙들리는 신세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역귀의 일이라 한다면…… 오히려 당문혜에게 묻는 것이 빠르지 않겠습니까요? 하오문 쪽보다 더 오랫동안 그놈을 추적한 것이 바로 무림맹입니다만…….”
“무림맹이?”
“예, 역귀가 사실상 무인이다 보니 무림맹에서 많은 일들을 조사해 온 것으로 압니다요.”
그 당시 장삼태는 무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당장 먹고사는 것 자체가 힘이 든 상황인데, 무림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몇몇 이야기들은 귀에 담고 살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역귀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림맹에서 무수히 많은 인원을 쏟아부어 그를 붙잡으려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고 결국 그는 귀신처럼 사라져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귀신같지 않은가?
“무림맹은 쫓는 놈들을 매번 놓치는군.”
“……뭐 그만큼 무능력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장삼태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남궁천에게 미안한 말이기는 하지만 단우현의 생각에 동의하는 장삼태다.
애초에 무림맹이 무능하지 않았더라면 역귀는 물론이고 단우현이 붙잡았던 놈들 대부분을 그들이 잡아냈을 거다.
그리되었다면 이와 같은 역귀 사태가 벌어질 리가 없으니만큼, 무림맹이 무능했다는 말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요?”
“당문혜를 불러와라.”
장삼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나오기는 했지만, 그의 다리라면 얼마 걸리지 않아 당문혜를 끌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홀로 남은 단우현은 근처에 있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흉면쌍살.
청염제의 수하들이 직접적으로 단우현을 노렸다.
홍원창으로 위장하여 접근하고 다가온 것은, 실질적으로 단우현에 대한 선전 포고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끝까지 가 보자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단우현을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애초에 천무제와는 처음부터 같은 하늘에 살 수 없었던 존재였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 혈마와 같은 급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무제는 혈마와는 다르게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또한 강하다.
수많은 무림인을 상대해 왔지만 천무제만큼 어려운 이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그만큼 위험한 인물은 없었으며, 만약 단우현을 죽일 수 있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밖에 없을 것이다.
“무사해야 할 텐데…….”
단우현은 지그시 눈을 감고 한 아이를 생각했다.
험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먼저 움직인 것이기는 하지만, 천무제의 속을 알 수 없는 단우현의 입장에선, 자신의 안위보다 단소미의 안위가 더욱 걱정되었다.
천무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단우현만 보며 덤벼드는 혈마와는 다르니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천천히 눈을 뜬 단우현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봤다.
한 사람의 얼굴이 아른아른 스쳐 지나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자, 장주님! 데려왔습니다요!”
“꺄아악! 내려 줘요! 뭐 하는 짓이에요?!”
갑작스레 소란이 들렸다.
상념에 젖어 있었던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윽고 눈에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당문혜가 있다.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촉촉하게 젖은 새하얀 옷이 반쯤 젖어 있었으며, 머리마저 축축하여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틀림없이 목욕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여인이 장삼태의 어깨에 둘러메진 채로 끌려오고 있었다.
끌려 왔다기보다는 납치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상황이다.
단우현이 지끈거리는 미간을 부여잡았다.
“데려왔습니다요!”
“꺄악!”
장삼태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당문혜를 내려놓았다.
땅에 떨어지며 그대로 엉덩이를 바닥에 찧으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성격만 빼면 아름다운 여인이거늘, 촉촉하게 젖은 모습은 어느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당문혜는 수치스러운 모양인지,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장삼태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아니, 장주님이 부르는데 후딱후딱 안 나오니 그렇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당문혜는 눈물을 글썽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수치를 받아 봤다.
‘곧 나간다. 기다려라.’라고 말을 했는데도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사람을 납치해 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당장 죽여 버릴 것 같은 살기가 눈빛에 머물렀다.
그때.
단우현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당문혜를 향해 던졌다.
“일단 입어라. 보기 민망하니…….”
“…….”
당문혜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단우현의 겉옷을 입었다. 옷이 상당히 큰 덕에 그녀의 작은 몸 전체를 가리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러다 문득, 겉옷에서 단우현의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킁킁하며 맡아 보니 사내답지 않은 좋은 냄새다.
“개냐?”
“…….”
“윽?! 이, 이상한 생각 하지 마요!”
장삼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당문혜를 바라봤다. 사천당가의 악귀나찰이라 불리는 여인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마치 남궁소혜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제갈연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느낌.
모든 여자가 같은 성격일 수는 없으니 이것은 이거대로 재미있는 그였다.
“다 큰 계집애가 그런 짓 하는 거 아니다 너. 아무리 시집갈 나이 지났다 해도 말이지.”
“아니라고?!”
당문혜가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품에 비수 하나만 있었다면 당장 장삼태의 눈을 후벼 파 버렸을 거다.
그러지 못하는 게 한이라면 한이다.
“되었다. 말싸움 그만해라.”
“으…… 도…… 도대체 무슨 일이죠?”
당문혜가 화를 가라앉히며 주섬주섬 옷깃을 여몄다. 그런데도 시원스레 들어오는 바람에 다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단우현을 힐끗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역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말해 봐라.”
“하아? 역귀요? 그런 놈은 또 왜……?”
당문혜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랫동안 무림맹에서 그를 잡기 위한 노력을 하였음에도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얼마 전 북경에서 벌어진 일로 인하여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북해의 일 탓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당문혜가 묘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의문을 해소해 주지 않은 채, 그저 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같은 말을 되물었다.
“말해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