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28
“그러니까…… 정말로 여기란 말이지?”
강상춘은 이를 갈며 호남단가라 쓰인 현판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그곳에 으리으리한 모습도, 웅장한 필체로 쓰여진 글귀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
그에게 굴욕을 주었던 두 여인의 생각만이 가득했다.
“예, 이곳이 맞다고들 합니다만…… 그, 소문주…….”
“뭐냐?”
“그냥 돌아가면 안 됩니까? 느낌이 이상합니다.”
철권문의 문도 금대길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까지 수소문하면서 보였던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불쌍한 이를 쳐다보는 눈빛, 혹은 안쓰러운 이를 바라보는 표정이다.
왜 그곳을 찾느냐 묻는다든지 무슨 일 때문이냐 질문을 던질 법도 하건만 사람들은 그러한 것 따위 아무래도 좋은 듯 단박에 가르쳐 준 것이다.
하나같이…… 조소(嘲笑)를 입에 걸고 말이다.
“그래 봐야 일개 무림세가 아니냐? 왜 그리 겁을 먹는 거야?”
“아니……. 그, 들어 보니 호남제일세가라 불린다고들 하고…… 잘못했다간 전쟁이라도 나는 거 아닙니까?”
“놀고 있구나. 우리 철권문이 무림세가 따위에게 굽힐 만큼 나약한 줄 아느냐?”
강상춘이 슥 뒤를 돌아봤다.
함께 온 문도 십여 명이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나같이 일류에 오른 이들이며 추후 황실행이 정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실력자들이다.
“호남제일세가? 하! 이놈들이 호남제일세가라면…… 우리 철권문은! 호남제일문파다! 그러니 기죽지 마라. 내 반드시 내게 치욕을 준 그것들을 잡아 족칠 것이야!”
무림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무림이나 황실 무림이나, 다 같은 사람이다 보니 그리 큰 역량 차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강상춘이다.
그가 보고 자란 것은 오로지 황실 무인들이 전부인 탓이다.
그리고 철권문은, 황실 무사를 무수히 배출해 내는 명문 중에서도 명문이다. 황실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철권문이라는 이름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 봤을 것이며 또 자연스레 권력을 지닌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역시 적지 않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강상춘이 지닌 자신감이다.
씩 웃음을 지으며 자신감을 가득 채운 그가 호남단가의 문을 열려는 그 순간, 느닷없이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움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움찔했다.
그것은 강상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눈을 마주하는 순간 느껴지는 기백이, 지금까지 보고 느껴 왔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지녔기 때문이다.
“뭐 하는 자들인데 남의 집에서 소란이오?”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한마디에 강상춘은 침을 삼켰다. 이자가 바로 이 호남단가의 주인인가? 과연, 호남제일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대단한 기백을 지녔다.
하지만 기죽거나 겁먹지 않는다.
강상춘은 그러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여…… 여기가 호남단가인가?!”
“눈이 없소? 위 현판 안 보이나 보군.”
“윽……! 나, 나는 강상춘이다. 철권문의 소문주이기도 하지!”
이내 자랑스럽게 철권문의 이름을 내며 가슴을 폈다. 지금까지 만난 이들은, 이 정도만 하여도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하여, 여기 또한 마찬가지라 여겼다.
권력과 힘으로 상대를 숙이게 하고, 그 계집들에게 복수한다.
강상춘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오?”
“엑? 나, 나는 철권문의…… 강상춘…….”
“그래서 뭐?”
사내, 아니 권무진은 슬슬 짜증이 난 표정이다. 귀를 후비며 한껏 인상을 찌푸리니 강상춘이 말을 잇지 못하고 눈알을 힐끗거렸다.
마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듯 말이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이가 있다.
“아- 철권문의 강상춘 대협이시로군요. 그런데 이런 곳엔 무슨 일로 오셨죠?”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함께 매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힐끗 강상춘과 주변에 있는 문도들을 눈에 담고, 한껏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나, 나는…….”
“아이참, 권 호위가 그렇게 노려보니 그렇잖아요. 자자, 잡아먹지 않으니 천천히 말씀하세요.”
“아니, 나는 아무 짓도…….”
권무진이 급하게 변명을 해 보았지만 매향은 조금도 신경을 쓰는 기색 없이 다시금 강상춘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저희 호남단가에……?”
나긋한 말투와 함께 웃음 짓는 그녀의 표정 때문인지 강상춘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제야 조금씩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였고, 어느덧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내 며칠 전, 이 근방에서 뱃놀이하다…… 두 여인을 보았소.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우리 배를 침몰시켜 내게 치욕을 주었소. 이 일을 어찌 생각하시오?”
“아- 그런 일이…….”
작은 탄성을 내지른 매향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더니 작은 한숨과 함께 미간을 움켜쥐었다.
“참, 거지 같은 일로 찾아오셨군요…….”
“뭐, 뭐라?”
매향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굳이 앞뒤 상황을 묻지 않아도 대강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사내란 놈들은 하나같이, 미색에 눈이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을 테니까.
특히…… 그 두 여인 중 한 명은 더더욱.
‘망할 계집애……!’
매향은 남궁소혜의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손뼉을 짝 쳤다.
“아-! 몹시 송구스런 일이지만…… 두 사람은 이미 이곳에 없답니다.”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오?”
“그게 두 사람은…… 악적 장삼태의 꼬임에 넘어가 집을 나갔습니다……. 흑.”
“아…… 악적?”
“예! 악적! 악적도 그런 악적이 따로 없죠. 대협, 부탁…… 아니, 도움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도…… 움?”
매향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강상춘의 손을 부여잡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매향의 미색이다. 심지어, 그 초롱초롱한 눈빛과 향긋한 꽃내음까지.
무릇 사내라면 애간장이 녹을 수밖에 없다.
강상춘의 눈빛이 갑작스레 돌변했다.
“하아…….”
그것을 바라보며 권무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그런데 호북은 왜 가는 겁니까?”
마차를 몰고 있는 장삼태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십 년 만에 갑작스러운 유람이라니? 십 년 동안 호북을 벗어난 적이 없는 단우현이었기에 이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마차 안을 바라봤다.
분명, 들었을 것인데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저 인간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는 게 없다.
아니면 나이를 먹은 탓에 듣는 귀가 가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 그쪽이 조금 더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같이 나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장삼태가 오싹한 기분과 함께 생각을 지워 냈다. 어디선가 한기가 스며드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테니까.
“뭐, 단 공자가 하고자 하는 일이니까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그때 다소곳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빼어난 미모와 귀를 녹이는 미성을 지닌 남궁소혜다. 화가 나면 무섭긴 하지만 평소에는 나긋한 성격을 지닌 탓에 그 외모와 품성이 중원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여인이다.
매향과 비교하면 더더욱 말이다.
“어휴…… 매향이 저것에 반만 닮았어도…… 컥?!”
퍼억! 하며 남궁소혜의 검갑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 세게 휘두른 것은 아니지만 장삼태는 고삐를 놓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골이 띵할 정도로 아픔이 느껴졌다.
“그런 소리를 입 밖으로 내니까 바가지가 긁히는 거예요. 알았어요?”
“크윽…… 망할 계집년 같으니…….”
“쓰읍!”
“…….”
장삼태는 입을 다물었다.
살벌하게 빛을 내는 남궁소혜의 눈빛이 매섭다.
그렇지 않아도 단우현이나 남궁천, 사도학에게 기죽어 가는 그다. 이제는 한 사람이 더 늘어 버렸으니 괜한 마음에 날카롭게 쏘아보는 것으로 분을 토했다.
“하여튼간…….”
“뭐요?”
“노처녀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던데…… 힉?!”
서걱-!
순간, 장삼태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다.
뻗어지는 것을 보았음에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대비하고 있었다 한들 장삼태는 손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남궁소혜의 수준은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랐던 탓이다.
“운 좋은 줄 알아요, 당신. 내가 아니었으면 진작 머리가 잘렸을 테니까.”
“아- 진짜, 장주님! 이 계집은 왜 데리고 다니는 겁니까?!”
화가 난 장삼태가 언성을 높이며 단우현을 찾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단우현에게 기대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소리를 높이며 짜증을 내니 그제야 마차 안에서 반응이 왔다.
“시끄럽구나. 그보다, 마을은 얼마나 남았나?”
“으음, 머지않았습니다. 반 시진 정도일까 싶은데…….”
장삼태는 머릿속에 넣어 두었던 지도와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분명, 이 근방에 작지만 쉴 만한 마을이 존재할 것이다.
슬슬 해가 져 가기도 하고 있으니 노숙을 하고 싶지 않으면 되도록 빨리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우현이라면 마을이 가까이 있어도 돈을 쓰지 않기 위해 노숙을 선택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궁소혜 역시, 그것을 잘 아는지 장삼태를 향해 재촉하는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돌려 단우현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벌써 노숙할 장소를 탐색하고 있는지 고개를 내민 그가 슬슬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궁소혜가 그것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고……. 단 공자, 지금 무림 상황은 알고 떠나는 여정인가요?”
“무림의 일도 알아야 하나?”
“그야…… 당신이 움직이면…….”
무림이 움직이니까.
남궁소혜는 아무런 자각조차 없는 단우현의 말을 들으며 망연자실했다. 틀림없이 그는, 무림인들과 엮이지 않을 생각으로 나선 여정일 테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그의 생각대로 되었다면 십여 년 전, 무수히 많은 무림인과 엮인 사건들 또한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마치 사건이 단우현을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보니 이번 여정이 순탄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 오로지 단우현 혼자만일 것이다.
또한 그가 나서지 않는다 하여도, 곁에 있는 누군가가 칼이라도 뽑는다면 온 무림이 들썩일 정도로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정녕 그걸 모르는 건가.
남궁소혜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중원무림에는 천지교(天地敎)라는 무리가 암약하며 천도회와 무림맹을 습격하고 있고, 서쪽으론 포달랍궁이 득세……. 이거, 절대 웃으면서 끝날 여정 같지 않죠?”
“재미있구나. 한데…… 포달랍궁은 무너졌다 하지 않았던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잖아요. 애초에 서장 최고 세력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리 없죠. 비록…… 약해지긴 했을 테지만…….”
포달랍궁은 서장을 대표하는 세력이다.
비록 많은 이들이 죽고 건물이 불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영향력과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급이 숨겨져 있던 곳은 화마를 피해 갔고, 일 때문에 나갔던 이들이 복귀하며 포달랍궁을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비록 많은 제자를 잃었으나, 여전히 서장의 군주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걱정하지 마라. 엮이지 않을 것이니…….”
웃음을 짓는 단우현의 말에 모든 이들이 실소를 흘렸다. 심지어 마차를 몰고 있던 장삼태조차 콧방귀를 뀌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현 중원에서 가장 큰 행운을 가진 이가 누구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단소미다.
그렇다면 반대로.
중원 역사상 가장 많은 사건 사고를 끌고 다니는 사람.
그게 누구인가?
다름 아닌 무신(武神) 단우현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그의 웃음소리에 남궁소혜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