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29
거봐라.
그러지 않았는가?
“…….”
“아음…….”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남궁소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또한 함께 있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 주변을 둘러보며 하나같이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장삼태가 찾은 마을은 있다.
하지만 그 형태만 있을 뿐, 건물들은 불타 없어져 버렸으며 주변은 마치 전쟁터를 연상시키듯 여기저기 칼자국이 나 있었다.
심지어 몇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남궁소혜가 급하게 단소미의 시야를 가리며 섰지만 기이하게도 단우현은, 이 상황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인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무림인의 짓이로군.”
“허…… 싸움이 꽤 크게 난 것 같구나. 습격을 당한 것인가?”
남궁천이 주변에 보이는 흔적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머릿속에 상황을 재현했다. 작은 마을을 상대로, 누군가 습격을 벌였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막기 위해 칼을 들었다.
“응?”
“평범한 마을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피식 웃음을 지은 단우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죽은 이들은 모조리 무림인이다. 습격한 이들도, 습격당한 이들도.
그런데 결코 평범한 마을일 리 없지 않은가.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무공을 펼칠 수 있다는 것부터,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이 많다. 하여, 도적이나 산적에게 습격을 당했다 하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이다.
“허허, 그렇다네. 칼자국이며 흔적이며……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가 없어.”
“아니, 그런 건 아무래 좋으니까 쉴 곳을 찾자고요. 어서 갑시다, 예?”
흥미로운 표정으로, 마치 사건을 파헤치는 조사관마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는 단우현과 남궁천을 돌아보며 장삼태는 긴 한숨을 쉬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질 것이다.
본래 묵으려 했던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다시금 마차를 몰아 다음 마을로 향해야 겨우 노숙을 면할 것이다.
그런데, 도통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제 노숙이라면 지긋지긋하건만.
“이보시오! 여기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오!”
그때 누군가 큰 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뛰어왔다. 푸른 도복을 입은 그들의 가슴에는 검문이라는 자수가 쓰인 것으로 보아, 어느 문파의 제자인 듯 보였다.
그가 서둘러 달려와 경계 어린 표정으로 일행들을 주시하니 주변을 살피고 있던 남궁천이, 부처의 웃음을 입에 걸고 앞으로 나섰다.
“허허허, 미안하게 됐네. 하룻밤 보내기 위해 찾아온 곳인데 이리되어……. 잠시 둘러보고 있었다네.”
“어서 나가시오!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으면!”
사내는 무슨 자신감이 그리 가득한지 커다란 목소리를 내며 검을 치켜들어 올렸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칼을 뽑을 수밖에 없음을 피력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기가 찬 장삼태가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남궁소혜가 그를 막아서며 지켜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대들이 알아도 될 일이 아니오!”
“허허, 그저 늙은이가 궁금하여 그러니 말해 줄 수는 없겠는가?”
남궁천이 새하얀 수염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웃음을 지었다. 신선 강림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풍모와 기운 때문인지 한순간에 사내의 표정이 풀어졌다.
하지만 곧 현실을 직시한 것인지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검파에 손을 얹혔다.
“당장 물러나지 않는다면 부득불 출수하겠소! 후회하지 마시오!”
“허허허, 꼭 그래야 하겠는가?”
“이곳은 검문이 관리를 하고 있소! 사안이 심각하니 더는 사건 현장을 훼손하지 말고 가라는 말이오. 알아듣겠소?!”
사내는 당당했다.
어떠한 사정이 있어 이런 곳에 오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장을 훼손하려 한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흔적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사내는 격하게 칼을 뽑으며 남궁천을 향해 겨누었다.
“허허허-”
* * *
“끄어어…….”
누워 있는 사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멋지게 칼을 뽑고, 상대를 향해 겨누며 한껏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위협적인 말을 꺼내면 되는 줄 알았다. 이 근방에선 적수가 없다는 검문의 문도이다 보니 자신들이 최고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검을 살짝 뽑는 순간 드러누웠다.
느닷없이 복부에 엄청난 충격과 고통이 몰려들었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바닥으로 처박히며 누워 버렸다. 뭐가 어찌 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에라이, 이 자식아. 그딴 놈한테 손을 쓰다니…….”
“허허, 위협을 위협으로 갚아 준 것이라네. 손을 쓰다니?”
남궁천은 너털너털 웃음을 지으며 사내 앞에 주저앉았다. 신음을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지도 않은 것인지 인자한 웃음과 함께 천천히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쥐어 잡아 올렸다.
“끄어억……!”
“허허허- 자네, 이 노부가 방금 뭘 물어봤는지 아는가? 아니면 한 번 더 물어야 하는가?”
“아…… 압니다…… 알아요……!”
“허허. 그래그래, 아니 다행이라네. 나는 또 손모가지 하나 정도는 비틀어야 입이 열리는 줄 알았다네.”
오싹-!
오금이 저릴 정도로 소름 돋는 한마디에 사내는 부르르 몸을 떨며 급하게 손목을 감추었다. 고작, 입에서 말이 흘러나온 것에 지나지 않은데 벌써 손모가지가 박살 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마치 강림한 신선이라 해도 믿을 것 같은 모습을 지닌 이가 이러한 짓을 하다니? 사내는 이제 죽어도 신선 따위 믿지 않겠다 다짐했다.
“하…… 할아버지…….”
남궁소혜마저 그 광경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천하의 검황이…… 사람을 두들겨 패다니.
심지어, 쓰러진 이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올리는 행동은, 사도학이나 할 것 같은 행동이 아니던가. 누가 저 인간을 보고 정파의 기둥 검황이라 말하겠는가.
창피함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허허, 해서 또다시 질문을 해야 입이 열리겠는가?”
“아…… 아닙니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야지, 암. 늙은이를 힘들게 하지 말게나.”
사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카락을 쥐고 있는 남궁천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거짓말을 했다간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 협박이라도 하듯 말이다.
그렇기에 사내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곳은 천지교의 분교였습니다……. 해서, 저희 검문이 토벌을 했던 곳인데…….”
“천지교? 요즘 중원에서 암약한다는 그놈들 말하는 겐가?”
두 패로 갈라져 버린 정파의 틈을 파고든 세력.
그것이 바로 천지교라 불리는 곳이다.
어둠 속에서 암약을 하며 순식간에 세력을 불렸으며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교인이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지부가 세워졌는지 그 수를 제대로 아는 이조차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천도회는 물론이며 무림맹마저 이들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나의 마을을 통으로 지부로 만드는 놈들이라…… 재미있구나. 하지만 보아하니…… 무너트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나 보군.”
단우현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며 입을 열었다. 모든 일을 해결했다면 굳이 사람을 남겨 현장을 보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시신조차 치우지 않았다.
아직 조사할 것이 남았다는 의미다.
“에…… 예, 이곳에 천지교 사천황 중 한 명인…… 악적 추작한을 잡으려 했습니다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악적? 별호 참 희한하구나. 허허허.”
“아, 악적이라 부르는 것은 사내들이 붙인 또 다른 별호고…… 진짜는 마성자(魔性子)라 불립니다.”
“호오, 마성자라? 흥미롭군.”
“아니, 그보다…… 사천황이 뭐예요, 사천황이…….”
남궁소혜는 양어깨를 감싸 쥐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신이 무슨 사천황이니 오천황 중 한 명이니 하며 불린다면 무림에 나서고 싶지 않을 거다.
남궁소혜는 힐끗 남궁천과 사도학을 바라봤다.
저도 모르게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자를 잡기 위해 홀로 남아 흔적을 찾고 있다?”
“예, 예. 제가 그런 것은 가장 잘하기에……. 다른 문도들은 주변을 수색하고 있을 겁니다.”
사내는 주변에 다른 동료들이 있다, 라는 것을 피력하며 혹여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했다. 동료가 있으니 살려 달라는 의미였을까?
하지만 이들은 그런 것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마성자……. 마성자,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는데요?”
“아…… 저도요.”
그때 장삼태와 남궁소혜가 머리를 굴렸다.
악양이나 장사에 가장 많이 가는 두 사람이다 보니 중원무림에 대한 정보가 세가에 있는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들어온다.
마성자 역시 그 부분 중 하나다.
“뭐 하는 놈이냐?”
“아, 그 여인들을 단박에 현혹시킨다 해서…… 붙여졌을걸요, 아마?”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요. 듣는 순간 아…… 부러운 능력을 지닌 놈이구나, 생각했습죠.”
장삼태는 저자에서 들은 소문을 떠올리며 주먹을 왈칵 쥐었다. 사내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든 부러워 할 법한 능력이 아니던가.
왜 자신은 그러한 것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을까 싶었다.
“여인들을 현혹시킨다?”
“예! 여인들을 현혹시켜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들의 신자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을 이용해 사내들을 농락하고 그렇게 또다시 신자를 만듭니다.”
“그야말로 사내들에겐 악적이로군. 이제야 왜 악적이라 하는지 알겠군. 하하.”
단우현은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웃음을 지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중원 모든 사내들에게 있어 적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일이라면 무림맹이나 천도회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 중소 문파가 나설 만한 일이 아닐 텐데?”
그때 사도학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천지교라는 암약 단체의 지부를 공격하는 일이다. 응당 중원무림의 기둥이라 불리는 무림맹 혹은 그 뒤를 잇는 천도회가 나서야 했을 일이다.
검문이라는 듣도 보지도 못한 곳에서 직접 나선다는 것은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그……. 저희 검문에서도…… 문주님의 애첩이 당해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푸하하-”
장삼태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단속을 얼마나 못했으면 그리되었을까 싶으면서도, 사내로서 울분이 치솟을 만하다 여겼다. 또, 여인을 현혹시키는 놈에게 화를 내면서, 제 놈은 본처를 놔두고 첩을 들였으니 그놈이 그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문의 사내 역시 창피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며 푹 고개를 숙였다.
“허허, 어쨌든 살았으니 다행이네. 하지만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무림맹이나 천도회의 손을 빌리게나.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것이야.”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상당히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나름 실력 있다 자부를 했지만 생각보다 상대의 실력이 높아 열이 넘는 이들이 죽임을 당했다.
남궁천의 입에서 흘러나온 운이 좋았다, 라는 말이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말인 셈이다.
“자, 어쨌든 이분은 이제 놓아 드리도록 하고……. 저희는…….”
그때 남궁소혜가 슬그머니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악적이니 천지교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맨날 해 봐야 잡으러 갈 것도 아니니 다 쓸모없는 것들인 셈이다.
지금은 그저.
“노숙할 곳을 찾아보죠. 하아…….”
또다시 노숙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