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Witches RAW novel - Chapter (1008)
EP.1014 #243_스카우트는 어려워(2)
#1008
1.
슈렐리옴 소학회의 학회장에게 소개받아 마지막 포섭 대상이 된 물색 수도회는 사실 앞선 세 학회에 비하면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다.
학회원 수는 둘째치고 영향력 역시 타 학회에 비해 밀리는 까닭이다.
실제로 슈렐리옴의 학회장 ‘메르세데스 아이샤’는 여러 학회장과 만남을 주선해줄 수 있다 제안했으며 시우에겐 수도회보다 더 좋은 초이스도 있었다.
더 좋은 선택을 뿌리치고 물색 수도회를 포섭대상으로 삼은 건 연인들에게 예쁜 속옷을 선물하고 싶다는 흑심 탓이 아니다.
현시점 헤세드 학회가 그럴듯한 구실을 갖춘다 한들 공적인 도로시와 린네를 즉각 학부장으로 기용하는 건 무리가 따랐다.
두 사람이 게헨나 측으로 전향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헥센나흐트의 기밀 사항을 전달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게헨나 여론의 반발은 물론이고 학회 내에서의 명분도 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시우는 먼저 학부를 개설해두고 그것을 징검다리 삼아 두 사람을 외부 강사로 기용할 예정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물색 수도회의 연구 분야는 상징마법 및 종교적 심상 구현.
즉, 도로시 누님의 전공분야이자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소중한 학회였다.
그러나 아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린 수녀장의 말로는 두 사람이 함께 성지 순례를 했다고 하지만 그게 거짓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은원 관계에 엮인 처지일지도 모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번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그래?]“원래 아는 사이신가요?”
[으음~ 전에 잠깐 같이 여행길에 오른 적이 있긴 한데….]어쩐 일로 도로시는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의뭉 떨기와 본심 감추기는 천 년 묵은 여우보다 능한 그녀가 시우에게 불편함을 들킬 만큼.
[달링이 날 위해 이렇게 노력해준다니. 정~말 기뻐]거기다가 갑작스러운 화제 변경을 할 만큼이나 말이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물론이야~ 예쁘게 꾸미고 기다리고 있을 게] [도로시. 낭군의…]-뚝
옆에서 린네의 목소리가 들릴 무렵 별다른 설명 없이 연락을 끊은 도로시.
결국 함께 현세로 나가게 된 아린 수녀장에게 자초지종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도로시 님과는 어떤 인연이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신실의 마녀라는 이명답게 실로 자애로운 성직자의 분위기를 풍기는 아린 수녀장.
그녀는 먼 추억을 되살리는 듯 아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녀 된 몸으로 주의 영광과 기적을 믿는 자라면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과 믿음에 대한 흔들림이죠.”
그 고뇌는 일반적인 신자의 것보다 무겁다.
성서는 신의 기적 이외의 사특한 마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단시하며 배척하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성서에는 마녀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사이한 힘을 부리는 주술사 혹 탕녀로서 마녀를 언급하는 부분은 있으나 그건 실재하는 마녀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당시 낙인을 물려받은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던 아린 티안드라는 고뇌를 거듭 중이었다.
신은 정말로 존재한 것인지.
만약 존재한다면 마녀는 당신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밤낮으로 기도를 드려도 들려오지 않은 답에 그녀는 과감히 현세행을 결심했다.
성지 순례를 위해서였다.
성자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성전산, 고락가를 둘러보았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 야보고의 길을 거닐며 답을 찾고자 하였다.
바티칸 시국으로 여행지를 옮겨 성 베드로 대성당의 아름다움을 묵도하며 신의 자취를 찾고자 노력했다.
허나 어떤 노력도 아린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했다.
오히려 평범하게 기도를 올리고 눈물을 흘리는 인간 신자들 사이에 섞여 마녀와 인간의 괴리감, 신과 마녀의 거리감을 선명하게 체험했을 뿐이다.
도로시를 만난 건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이 본격적으로 창궐하기 전.
1차 세계 대전이 남긴 음울함과는 반대로 여상한 화려함을 자랑하는 오투리오 호텔의 라운지에서였다.
‘다, 당신은….’
‘응?’
이 무렵에도 ‘구도의 마녀’ 도로시 사하퀴엘은 공적으로서의 명성을 떨치고 있었기에 아린은 죽음을 직감했다.
‘귀여운 수녀님이네~ 괜찮다면 내일 함께 미사에 가지 않을래?’
허나 예상과 달리 도로시는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아린에게 커피를 권했을 따름이었다.
말이 권유지 아린은 도로시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반강제로 초호화 스위트룸에 함께 머물게 되었기에 도망을 친다는 선택지 또한 주요하지 않았다.
온몸을 오들오들 떨며 신에게 기도하던 아린은 다음 날 도로시와 함께 대성당을 찾았고 조용히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는 도로시의 옆모습을 보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아린은 물었다.
‘신은 정말 존재할까요? 만약 존재한다면 저는 어떤 신앙을 품고 그분을 바라봐야 할까요? 저의 존재 자체가 그분의 말씀과 뜻을 거스르는 건 아닐까요?’
이에 도로시는 답했다.
‘난 그런 거 몰라. 하지만 이따금 떠올리곤 해. 불완전한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받아들이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렇게 으리으리한 대성당을 짓고, 신을 찬미하는 거룩한 찬송가를 만들고, 교황과 추기경과 사제와 신부에게 신과 신도를 연결짓는 중재자 역할을 맡기는 게 과연 신의 말씀대로 행해진 일일까?’
도로시의 대답은 지극히 이단적이었다.
신앙에 대한 어떠한 존중이나 두려움, 혹은 경외심마저 품지 않는 듯 보였다.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다 보면 마음속 한가운데 거룩한 빛을 느낄 때가 있어. 아마도 내게는 그것이 신이겠지.’
허나 아린의 눈엔 너무도 성스럽고 신실해 보였다.
“그 이후론 반년 정도 함께 여행을 다녔습니다. 가끔은 싸우고, 가끔은 의견이 달라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제게 있어선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음…. 그렇군요.”
출국절차를 밟기 위해 대기하며 적당한 대답과 함께 아린 수녀장의 옆얼굴을 본 시우.
어라?
시선을 느꼈는지 아린 수녀장이 눈을 마주해왔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당장은 얼버무렸지만 추억의 앨범을 펼쳐 든 것처럼 아득해 보이는 아린 수녀장의 표정에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2.
제머나이 저택에 드메르 남작이 찾아오는 건 몹시 드문 일이다.
두 가문은 사업상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 할뿐더러 드메르와 알비레오가 오랜 앙숙이라는 건 보더 타운 춘식이도 알만큼 공공연하니 말이다.
진심으로 증오한다, 사생결단을 내고 싶다 수준은 아니지만 ‘반에서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애’ 수준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이다.
일전에도 리센느 서기를 충동해 시우의 논문에 표절시비를 걸고, 살롱에선 사사건건 기 싸움을 하며 알비레오를 이기려 들지 않았던가?
그랬던 드메르 남작이 대뜸 찾아오다니.
알비레오는 곤혹스러움 이상의 황당함을 느꼈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나요?”
“네, 무척 놀랐네요. 뭐 돈이라도 빌리러 왔어요? 우리는 이자가 비싼데.”
자연스레 퉁명스러운 응대를 하는 알비레오 앞에 드메르 남작은 쓴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악연이 참 길었죠?”
평소와는 어째 다른 분위기.
무슨 일이 있나 싶다.
하지만 별다른 연유도 없이 태도를 바꿔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말하는 악우에게 ‘응 그러자!’라고 답할 만큼 알비레오는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었다.
“당신이 먼저 사사건건 시비를 걸잖아요.”
“무슨 말인가요? 알비레오야말로 제가 뭐 하나 잘되면 태클 걸면서.”
“솔직히 그쪽이 내가 시비 걸 깜냥인가?”
“정말 말버릇하곤. 정말정말 교양이 없네요.”
험한 소리한번 입에 올리지 않고 가식적인 미소를 띠운 채 평소처럼 투닥이는 드메르와 알비레오.
이래서야 살롱에서 일상의 연장이다.
“후우, 아니.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하여간 당신만 있으면 제가 제가 아니게 된다니까요? 좀 점잖게 맞이해주면 안 되나요?”
“초대도 없이 찾아와서 험담하는 건 손님의 도리고요?”
“내가 말을 말지.”
드메르 남작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 이거나 받아요. 더 있다간 열불 나서 또 싸우겠네.”
알비레오 앞에 드메르나 내민 건 푸른 다이아몬드가 박힌 꽤 고가로 보이는 목걸이였다.
“이건 갑자기 뭐죠?”
난데없는 호의에 경계하는 알비레오.
“생각해보니 알비레오 백작은 계승을 앞두고 있잖아요.”
“이거나 먹고 빨리 계승하라고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신경질을 내려던 드메르 남작은 쑥스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알비레오가 있어서 사교 활동도 재밌었다고요. 거기에 대한 감사의 표시에요. 지금 말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아무튼 받아둬요.”
악우라 한들 계속 얼굴을 맞대고 해프닝이 생기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이기 마련.
드메르에게 알비레오는 라이벌이자 질투 나는 상대였지만, 그런 알비레오가 없었더라면 붉은 지붕 살롱을 지금처럼 재미나게 드나들지도 않았을 것도 사실이다.
드메르의 행동이 가식이나 꿈꿈한 속내를 감춘 게 아닌 진솔한 표현이란 걸 알아차린 알비레오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드메르 남작, 애인이 생기더니 상당히 소녀처럼 변하셨네요?”
“흥, 이 나이에 소녀는 무슨. 계승식을 하기 전에 알려줘요. 말도 없이 홀라당 떠나버리지 말고.”
“알겠어요. 고맙게 받을게요, 드메르.”
드메르 남작은 멋쩍은 표정으로 훌쩍 나타났을 때처럼 훌쩍 떠나버렸다.
응접실에 혼자 남은 알비레오는 가만히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
마녀의 마음이라는 건 참 간사하다.
마녀에게 계승은 숭고하고도 명예로운 행위다.
원래라면 알비레오는 남겨질 쌍둥이에 대한 걱정을 느꼈을지언정 홀가분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꼈겠지.
하지만 지금 그녀에겐 시우를 통한 변칙 계승이라는 편법이 있다.
새로운 길이 생기자 같은 상황에서도 자꾸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자랑스레 낙인을 계승한 쌍둥이와 그런 쌍둥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데네브라던가.
결혼식에서 쌍둥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알비레오라던가 말이다.
그런데 어쨌건 변칙 계승을 플랜 B로 남기려면 다시 신시우와 동침을 해야 하는데….
-꾸울 꾸울
“하아….”
간만에 떠오른 흑역사에 몸을 부르르 떠는 알비레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