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 9 Master Inspection Technique RAW novel - chapter 103
그래서 그녀는 카일이 제복을 입은 모습을 볼 때 마다 이렇게 싱글거렸다.
“천천히 마차를 타고 오는 거이 너도 편할 텐데 오늘도 나와 같이 말을
탈거냐?”
마차를 타는 것 보다 더 느린 속도로 말을 타는 에밀리였다. 그래서 카일
은 그 이야기는 재고도 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마차 이야기만 꺼
냈다. 하지만 역시나 에밀리의 대답은 노였다.
“당연한거 아니야? 내가 지난 반년 동안 언니에게 갈 때 언제 마차 타고
간 적 있어? 어머니랑 아버지도 오빠가 나를 데리고 갈 줄 알고 나오지도
않으시는 거 봐.”
카일은 자신에게 서슴없는 에밀리를 맑은 사파이어 빛 눈으로 지그시 바
라보았다. 그냥 보는 것이었지만 검을 익히는 이라서 그런지 예리하기 짝
이 없는 시선이었다. 예쩐 같았으면 그 시선에 두려어서 그에게 말도 못
걸었을 에밀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그의 시선을 마주 보면서 계속 생
글거렸다.
“그렇게 봐도 이젠 하나도 안 무서워.”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확실히 카일은 변했다. 예전에는 로니엘 이외의 가족
에게는 무관심 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았다. 로웨나가 결혼을 하면서부터
그는 변했다. 슬쩍 보면 여전히 로니엘 외의 가족들에겐 냉랭한 것 같았지
만, 알고 보면 은근히 알게 모르게 가족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게 보였
다. 그리고 그런 가족 중에서도 카일이 특히 챙기고 있는 게 바로 에밀리
였다. 주로 에르미나나 로웨나와 같이 있었기에 눈치만큼은 그들 못지않게
좋은 그녀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처럼 카일에게 이
야기를 할 수 있었다.
“가자.”
조금은 당돌해진 에밀리의 모습에 카일은 언제나처럼 약간의 한숨을 쉬며
현관을 나섰다. 에밀리를 자신의 말에 태우고 황성까지 가는 건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나도 많이 끌었다.
황성 근위 기사단의 기사가 백마를 타고 푸른 머리의 귀여운 동생을 앞에
태우고 다닌다는 건 스스로 사람들의 동화 같은 상상의 나래에 희생 량이
되겠다고 자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클레이톤 가의 다른 가족들처럼 카일의 인물 또한 상당히 좋았기에,
현재 케이른 시에서는 그를 대상으로 한 별의 별 낭만적인 소문들이 떠돌
고 있는 중이었다. 바야흐로 케이른 시의 모든 여성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어릴 적에 앓았던 자폐증 기질 때문에 아직도 다른 이의 시선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에겐 무척이나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가능하
면 에밀리와 같이 말을 타고 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그는 별 수 없을 것 같다.
“에휴.”
카일은 그렇게 에밀리 모르게 작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먼저 자신의 말
에 태웠다. 그리고 뒤 따라 자신도 말 위에 오르며 에밀리의 모습을 한번
보았다.
“그렇게 치마 잘 잡고 있어라. 아직 어려도 여자 아이 치마가 너무 펄럭이
면 좋지 않으니까.”
“알았어. 한두번 타는 것도 아니니까 나도 잘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어서
가자.”
카일은 에밀리가 두 손으로 치마가 펄럭이지 않게 꼭 잡은 것을 보고나서
야 말을 움직였다.
“오늘도 카일 오빠와 같이 왔니?”
자신의 처소에 환하게 웃는 에밀리가 들어오자 로웨나가 말을 걸었다.
그때의 사건이 있은 후로 로웨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바로 이처럼 가족들
하고만 있을 때면 이렇게 예전처럼 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건 황태자비라는 지위에 오름으로써 겪을 위험을, 황성에 들어 온지 1년
도 안 되어서 겪은 로웨나에 대한 세르디오의 배려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황제와 황비 또한 이 일을 알고 있었지만 세르디오의 당부와 그녀에 대한
처지를 알기에 암묵적으로 묵인을 해주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덕에 가족들은 이전보다 더욱 자주 로웨나에게 다녀갔고,
그 중에서 그래도 시간이 가장 많이 남는 에밀리의 방문이 가장 많았다.
덕택에 현재 로웨나는 늘 활기가 넘치는 얼굴로 황성에서의 생활을 하고 있
었다.
“응. 어쩌면 오늘 또 오빠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 하나가 더 늘어났을지
도 모르겠어. 호호호.”
“좋겠네.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카일 오빠에게 그런 모습은 절대 볼 수 없
었는데 말이야. 뭐 요즘 내게도 예전보다는 잘 하긴 하지만… 아버지를 닮
아서인지 근위기사가 되어서 그런지 아직도 카일 오빠는 격식을 차려서
서운해.”
그래도 이젠 카일과 세빌 빼고는 다른 가족들과는 종종 예전처럼 지내서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그런 둘의 모습에 조금은 외로운 생각이 드는 로웨
나였다. 장난스럽게 말하며 웃었지만, 눈웃음 짓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
녀답지 않은 작은 슬픔이 서렸다. 그 모습에 에밀리는 괜히 마음이 아팠다.
“카일 오빠랑 아버지가 원래 성격이 그렇잖아. 그래도 시간이 가면 둘 다
좋아질 거야. 특히 카일 오빠는 로니엘 오빠가 뭐라고 하면 금방 예전처럼
언니에게 말 할걸? 아버지를 설득하는 건 형부에게 맡겨. 그럼 둘도 생각
을 고칠 거야.”
아직은 어려서인지 전하라는 소리를 하다가도 금방 거리낌 없이 형부라는
소리를 잘 하게 된 에밀리였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로웨나는 진심으로 기
뻐했다. 에밀리의 저 말이 그녀 자신은 물론 세르디오에게도 큰 기쁨을 주
는지 에밀리는 모를 것이다.
황태자로서의 삶 때문에 이런 일반적인 처가의 모습을 내심 부러워하면서
도 꿈도 꿀 수 없었던 세르디오가 에밀리의 그 말에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떠올리자 로웨나의 입 꼬리가 한껏 위로 올라간다.
“그래. 나중에 한번 그이랑 로니엘 오빠에게 부탁을 해봐야겠다. 그런데
그이야 매일 만나니까 괜찮지만 로니엘 오빠를 통 보기가 힘들어서 언제
카일 오빠를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로니엘 오빠는 오늘도 집에 없는
거니?”
집에 있을 때는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카일도 이젠 예전 보다 더 자주 보
게 되었다. 그런데 로니엘은 그 사건 뒤로 오히려 더욱 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로니엘 오빠 본 지는 나도 정말 오래 됐어. 오빠랑 아침 식사를 같이 한
지도 오래 됐고. 나가는 것도 그렇게 일찍 나가고 들어오는 것도 남들 다
잘 때나 되어서야 들어오니까. 무슨 수련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
어. 아버지는 오빠가 검을 수련하러 다닌다니까 좋아서 말리지도 않아. 오
빠 본지도 이제 일주일도 더 된 것 같은데 오늘 저녁에는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렇게 시작된 로니엘에 대해 에밀리의 투덜거림이 계속되었고 로웨나는
그 말을 옆에서 거들며 한참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편 그 시각 산림이 울창한 크로노도 산맥에선 그런 여동생들의 애정 섞
인 불만을 알지 못하는 로니엘이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다.
제법 가볍게 하루의 할당량이었던 4대 기초 검술 수련을 다한 로니엘은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푸른 오러 블레이드를 띄는 은빛 미스릴
검에 조금씩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렇게 마나의 양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
자 서서히 익숙해진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반년 동안 끊임없이 해 왔던 수련이었기에 그 고통은 카일과의 전
투 때에 비해선 훨씬 무디게 느껴졌다. 검에 흐르는 마나의 양이 많아질수
록 고통도 커졌지만 로니엘은 아무 내색 없이 검에 주입되는 마나의 양이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하고 있는 기의 양과 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간의 기다림 후, 온 몸의 모든 기를 이용해 펼친 오러 블레이드만
큼 의 마나가 검에 모였다.
“하앗.”
기합성과 함께 푸른빛을 띤 검이 허공을 갈랐다.
강한 힘을 가진 검이 자유롭게 춤춘다.
새털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때론 강철처럼 묵직하게. 때론 송곳처럼 날카
롭게.
자유자재로 검로와 기세를 바꿔 가며 움직이는 검과 청은발의 머리
를 휘날리며 그 검과 동화 된 듯이 움직이는 로니엘, 그리고 이제 막 석양에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는 크로노도 산맥의 울창한 숲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자유롭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온 몸에서 흐르는 땀이 연한 은회색 겉옷까지 모두 적셔버릴 정도로 그는
많은 양의 땀을 흘렸다. 하지만 로니엘은 조금도 힘이 부치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검은 처음보다 더욱 힘차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오로지 검만을 직시하는 은청색 눈동자는 끝없이 반짝였다. 오직 검에만
빠져든 그는 검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검에 집중
을 해도 기와 마나의 반발 때문에 적지 않은 고통이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그 고통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로니엘은 그 고통
이 안 느껴지는 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몸에서 얼마만큼의 땀이 흐르는지. 그리고 주위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는
알지도 못했다. 검을 수련하면서 두 번의 깨달음을 얻었던 그 두
순간들처럼 그는 검 외의 모든 것을 잊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욱 깊은 무
념무상의 상태에 들어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태아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올 때 느끼는 본능적인 이끌림과 같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손
안에 든 검속의 상태를 주시했다. 그 속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로웠다.
마나와 기의 끝없는 반발은 조금도 일지 않았다. 두 기운이 하나로 섞여들어
간 것처럼 그것들은 조용히 하나가 되어 검속에 녹아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것을 인지한 그 순간 그의 뇌리에 하나의 영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