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41
제 141 화
“자네가 봤을 땐 어때?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던가?”
유림은 그 질문을 능청스럽게 넘겼다. 최대한 당황한 척하며 말이다.
“교수님…… 전 이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어요…….”
사실 속으로나 하는 말이지만 모두가 다 의심스러웠다. 지금 제 앞의 다단도 그랬다.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이사장님과 히야스 교수님뿐.
“그렇군. 내가 상당히 성급한 질문을 했어.”
“하하하…….”
“어쨌든 일이 곤란해졌어. 한 가지 확실한 건 케이가 상당히 위험한 위치에 있단 거야.”
좀 전의 질문보다 더 예상치 못한 말에 유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요?”
“그가 의심을 만들었으니까.”
“네?”
“그로 인해 전임 교수들이 서로를 의심하게 됐잖아. 내부의 적이 이 안에 있다면 조급하게 생각할 거야.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수도 있으니까. 모르는 것과 범위가 정해진 것은 천지 차이지.”
다단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행보로 봐선 멍청하게 나서서 일을 그르치진 않겠지만, 준비는 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중 하나가 케이의 목을 치는 걸 거야.”
유림은 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어째서 이 생각을 못 한 걸까.
“하지만…… 이사장님이 쉽게 당할까요?”
저도 모르게 반박 아닌 반박이 튀어나왔다.
“확실히 쉽게 당할 실력은 아니지…… 하지만 지금의 케이는 많이 약해졌으니까.”
에?
“약해지다뇨?”
유림이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순간 다단의 얼굴에 난처의 빛이 떠올랐다.
“이런…… 말실수를 했군.”
시선을 슬쩍 피하는 그 태도에 유림이 그를 부르며 재촉했다.
“교수님.”
무슨 일이 있어도 듣겠다는 확고한 시선에 다단은 유림이 이대로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을 깨닫고 곧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으음…… 사실 지금 케이는 제 실력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어째서요?”
“클레이즈를 유지하기 위해선 이사장의 힘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거든. 아마 힘 대부분이 그쪽으로 사용되고 있을 테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클레이즈를 유지하는 데 이사장의 힘이 필요해? 어째서?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유지하는 데 힘을 쓰다뇨?”
“자세한 건 설명해 줄 수가 없어, 나 또한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클레이즈에 걸려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법을 이사장이 관리하고 있다는 거야.”
그 소린 클레이즈에서 마법으로 운영되는 모든 것이 이사장님의 힘으로 돌아간단 건가?
아니, 그건 말이 안 됐다. 아무리 이사장님이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많은 양의 마법을 쓰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뭐지? 단순하게 유지한다는 건가? 아니, 그걸 떠나 왜 이사장님만 그러는 거지? 다른 간부 교수님들도 있잖아. 상식적으로, 분배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어쩐지 수수께끼가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답답한 거 싫은데, 이렇게 두루뭉술한 건 더 싫고.
유림은 다단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정말로 아는 게 없는지 더 이상의 말은 해주지 않았다.
어쨌든 이사장이 위험한 위치라는 건 변함없었다.
아까 교수님들이 그랬다, 내부의 적이 전임 교수가 되었음에도 가만있는 건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일 확률이 높다고. 그게 아니면 때를 노리거나……. 전자라면 그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 높은 자리를 노릴 것이고 후자라면 그때 가장 큰 방해가 될 이사장님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 상황 못지않게 최악의 위치구나…….’
아니, 어찌 보면 나보다 더 심했다.
클레이즈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모든 학생과 관계자들을 지키고 통솔하는 자. 아마 엄청난 압박감과 의무감을 느끼고 계시겠지.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제힘을 사용하지 못하고, 친구들을 의심해야 하며, 역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이만큼 고독하고 외로운 자리가 또 있을까.
새삼 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이라면 분명 진즉 도망쳤을 텐데.
대체 얼마나 강해야 그런 상태에서도 저 자신을 다잡을 수 있는 걸까. 거기다 따지고 보면 이사장님은 자신이나 루아네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거나 한 관계자가 아니었다, 제삼자에 가깝지.
근데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
순간 자신이 한심하다 못해 찌질해 보였다.
그 사람은 그렇게 죽어라 싸우는데 가장 크게 연관된 자신은 각오를 운운하면서 한발 빼려 하다니…….
아버지, 진짜 나 구제 불능인가 봐요.
“이사장님…… 힘드시겠죠?”
“그러겠지, 내색은 안 하지만.”
유림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테이블만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다단 교수님, 전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한편으론 개운해진 듯한 유림의 표정에 다단이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교수님은 계속 여기 계실 건가요?”
다단은 대답 대신 책을 들어 보였다. 그제야 그가 진유에게 책 이야기를 한 걸 떠올린 유림이 머쓱하니 웃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나중에 또 보도록 하지.”
유림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다단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다 문뜩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혹시 정말 실례가 안 된다면…… 내부의 적이 누군지 알게 되었을 때 제게도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다소 뻔뻔하고 민감할 수 있는 질문임에도 다단은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았다. 도리어 진짜 그 이유가 궁금하다는 듯 순수하게 반문했다.
“어째서?”
“돕고 싶어서요.”
유림의 입에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확고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다단의 입술이 연한 곡선을 그렸다. 유림이 지금 하는 말이 저가 아닌 다른 이를 향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너에게 신임을 받는 모양이군.”
“네?”
“자신을 믿는 절대적인 제자. 교수라면 꼭 한 명은 있었으면 하는 제자지.”
“…….”
눈만 깜빡이는 유림을 보며 다단이 물었다. 그건 그녀에게 처음으로 하는 제대로 된 질문이기도 했다.
“한유림, 자네는 나를 도와줄 수 있나?”
“……예?”
대답 대신 들려온 질문에 유림이 저도 모르게 표정을 살짝 구겼다.
“만약 내가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다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묻는 거야.”
“…….”
순간 풀이라도 붙인 것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림은 어째서 다단이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그가 이사장이 저에게 했던 것 이상으로 간절하게 묻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니…… 이건 분위기라기보단…….’
유림이 아주 잠깐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전 교수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아요.”
“그렇다 해도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다시금 유림이 입을 다물었다.
비록 제대로 이야기한 건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유림에게 있어 다단은 그 누구보다 큰 인상을 남겨준 교수였다, 그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쪽으로.
유림은 한참 동안 그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교수님께 곤란한 일이 생기거나 제 힘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그땐 꼭 도와드릴게요.”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다단이 진한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그래, 고맙군.”
그리고 덧붙였다.
“나도 내부의 적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다면, 가르쳐 주도록 하지.”
단, 다른 아이들한텐 비밀로-
짧게 그 말을 덧붙인 다단의 모습에 유림이 따라 웃었다.
그녀는 다시금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문이 닫히고, 다소 무거운 침묵이 방안에 내려앉았다. 조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다리를 꼬며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좀 전의 유림이 했던 모든 행동과 말이 다시 재생되듯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다부져진 눈동자와 자신을 돕겠다던 작은 입.
순간 그의 입가에 진한 곡선이 그려졌다.
유림은 스스로가 대단하지 않다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다단이 막 방에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유림은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 나올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즈네가 등장한 그 순간 모든 기척을 죽였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솔직히 다단은 그 상황에 적잖게 놀랐다. 특유의 무뚝뚝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노골적으로 표정이 변했을 정도였다.
만약 자신이 들어오기 전에 기를 숨겼다면 그 또한 유림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 정도로 유림의 능력은 완벽했다. 하진도, 이즈네도 그 사실을 몰랐으니까.
거기다 타 형에 비해 타인의 늄과 기척에 예민한 6형의 교수인 진유도 눈치채지 못했다.
“무섭군.”
실로 무서운 실력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발휘한 능력이 그 정도라니. 아니면 몸에 배어 있는 건가?
과연 그녀가 담고 있는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본인은 그걸 어디까지 알고 사용할 수 있을까.
다단은 유림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며 책장에서 꺼내온 책을 펼쳤다. 클레이즈의 담당 교수들이 작성했던 논문 중 우수한 논문만을 모아 엮은 책이었다.
그는 맨 앞장에 존재하는 목차를 살폈다. 그러더니 페이지를 넘겨 책의 중간쯤을 폈다.
굵은 글씨의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늄의 조율과 공생.’
그는 시선을 내렸다. 순간 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흐음- 그렇군.”
다단이 작게 중얼거리며 논문의 가장 윗부분을 읽었다. 그곳엔 논문을 작성한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세룬 아론드.]다단은 자신이 본 사실을 확인하듯 작성자의 이름을 다시 읽었다. 순간 그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래…… 역시 세룬 교수님은…….”
***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얼음 송곳이 그대로 땅에 메다꽂혔다. 테오는 그 공격을 가뿐하게 피한 뒤 그대로 도약해 데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가로 그었다.
“젠장!”
테오의 공격에 데몽이 잽싸게 몸을 낮춘 뒤, 얼음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기 무섭게 검과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테오의 힘을 나타내듯 견고하게 짜인 얼음벽이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데몽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자신이 만든 얼음을 저렇게 무식하게 부숴 버릴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을 것이었다.
“무식하게 힘만 센 자식 같으니라고.”
“시끄러워! 재수 없게 머리만 좋은 자식아.”
서로를 향해 욕설을 내뱉은 두 사람이 다시금 강하게 한 번 충돌하더니 뒤로 떨어졌다.
8강 두 번째 조.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시합 중 하나이자, 당사자들도 굉장히 기대한 시합,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은하가 엄청나게 보고 싶어 했던 시합인 데몽과 테오의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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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