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156
제 156 화
“너무해…….”
은하가 눈물을 머금으며 칭얼거렸다. 유림은 그런 은하를 한번 보더니 그대로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세상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또 있을까.
비슈아드에 나라가 몇 개고 마을이 몇 개인데, 하필이면 가도 거기란 말인가.
사혈까진 봐줄 수 있었다. 어차피 사혈에서 가본 곳이라곤 소난과 달이 전부니까. 근데 왜 가도 꼭 그 ‘달’에 가냔 말이다!
“으으으…….”
“으아아아…….”
한쪽에선 은하가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선 유림이 미쳐 있는 풍경. 그 사이에 낀 쌍둥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그게 그렇게 싫은가?”
“싫어! 좋을 리가 없잖아!”
은하의 발악에 루아가 머쓱하게 웃었다.
“아니…… 그래도 다들 졸업할 때까지 집에 못 가는데, 이렇게라도 가면 좋은 게 아닌가 해서…….”
“못 가긴 왜 못 가. 방학도 있고 소원권 쓰면 갈 수도 있는데!”
“……그러고 보니 이건 소원 써서 집 가는 느낌이군…….”
유림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젠 미친 것을 떠나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첫 여행이었는데…… 별천지를 보고 싶었는데…… 집 근처로 여행을 가다니…… 왜 하필 달이야. 사혈에도 좋은 마을이랑 도시가 얼마나 많은데…… 달은 큰 선착장 하나랑 목공예품 아니면 볼 게 없단 말이야. 끽해야 근처 호수?”
달의 호수는 사혈에서도 뛰어난 명소였지만,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두 사람이 그런 걸 느낄 리 없었다.
두 사람이 음울한 기운을 계속 끌어오자 루아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을 위로했다.
“둘 다 기분 풀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재밌게 다녀오자. 응?”
“흐윽…… 눈물 나려 그래.”
“재밌게는 개뿔. 안 가, 씨.”
“에이~ 그러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아, 그래. 우리 너희 아버지랑 네가 살았던 곳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가본 적은 없잖아. 그거 구경 간다 생각하자.”
루아 딴엔 위로해 주고자 한 말이었지만, 속이 배배 꼬인 유림에게 곱게 들릴 리 없었다.
“야…… 잠깐. 왜 우리 집이 관광지가 된 거야?”
“아니, 좋게좋게 하자 이거지.”
그리고 이를 이어 레이먼까지 나와 두 사람을 달랬다.
“거기다 깜둥네 가족들도 궁금해. 자유 시간 생기면 소개해 줘.”
“킁- 알았어.”
은하는 콧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방문을 알렸다. 루아는 마치 자신이 이 방의 주인이라도 된 듯 문을 열어줬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어라? 모두 무슨 일이야?”
“조 때문에. 그보다 이것들 아직도 저 상태냐?”
“저 상태라니!”
“야! 네가 우리의 기분을 알아?!”
“알 게 뭐야.”
두 사람이 발악했으나 정말로 상관없는지 귀를 후비적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데몽이었다.
그들의 출입에 널찍했던 방 안이 금세 꽉 차버렸다.
데몽은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말했다.
“우리 조 짜야 하잖아. 어떻게 나눌까?”
그 말에 레이먼이 조금 의외라는 눈을 했다.
“같이 짜자고? 난, 너희 셋이서 할 줄 알았는데.”
“아-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많은 쪽이 더 재밌을 거 같아서. 거기다 달이면 유림이나 은하가 잘 아는 곳이잖아. 이왕 놀 거면 아는 사람 소개받아 가는 게 좋지. 그래서 이 둘을 각 조의 조장으로 해서 두 조로 나누려 하는데 어때?”
“아! 난 찬성!”
“나도 좋아.”
쌍둥이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그 의견에 찬성했다.
그러나 유림과 은하는 조금 얼떨떨한 상태였다. 당연히 같은 조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조가 갈린다 해서 항상 따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데몽의 말도 나름 일리가 있었기에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는 어떻게 나눌 건데?”
“뭘 어떻게 나눠. 하고 싶은 쪽으로 붙자. 어때?”
그 말에 레이먼이 활짝 웃었다.
“그럼 난 깜뚱이랑 조 할래. 디하르는 유림이랑 할 거지?”
“응.”
디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림도 나쁘지 않았기에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레이보단 디하르가 나.”
“잠깐, 그 발언 뭐야.”
“넌 좀 피곤해.”
“헐. 깜둥, 쟤 말하는 거 봤어?”
“괜찮아. 뽀송은 나랑 할 거니까.”
어쩐지 대화가 시끄러워지자 데몽이 바닥을 탁 내려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미안한데, 잡담은 나중에 하고 조부터 정하자고. 이거 교수님께 가져다 드려야 하니까. 하민이 넌 어떻게 할래?”
“나? 난…… 음…… 륜, 너는?”
“어…….”
륜은 멋쩍은 듯 뺨을 긁적였다.
“난 아무나 좋은데…….”
“그럼 륜은 저랑 같이 은하네 조 해요.”
갑자기 끼어든 루아의 말에 레이먼이 어라?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우리 조 하게?”
“응. 그래도 남매인데 같이 다녀야지. 아버지, 어머니 선물도 사야 하고. 하여튼, 저랑 같이해요, 륜.”
루아가 그러자며 부드럽게 웃었다.
륜은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고갤 끄덕였다. 며칠 전의 고백 때문에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 그녀가 무던히도 노력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서조차 거절하면 그건 예의가 아니겠지…….
“그래요.”
그리고 그 말에 데몽이 종이에 두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루아가 레이먼이랑 하면…… 테오도 은하네 조?”
“아니, 난 한유림하고 갈래.”
“어?”
“응?”
테오의 반응에 루아를 제한 모두가 의외라는 듯 바라봤다. 당연히 루아가 있는 쪽에 갈 줄 알았는데 유림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테오가 좀 이상했다. 륜과도 뭔가 어색했고, 전처럼 루아를 찾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무언가 고민이 있는 것처럼 종종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하민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림이네 조 할래. 데몽은 은하네 조 해. 그렇게 넷, 다섯으로 나뉘자.”
“어…… 그래.”
레이먼하고 붙어 있고 싶진 않았지만, 하민이 너무 단호하게 말하는 터에 어쩔 수 없었던 데몽이 탐탁지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조를 나눠 적은 뒤 히야스 교수님께 명단을 드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오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넌 좀 더 놀다 오지?”
“피곤해. 좀 자려고.”
데몽은 뭐라 말하려다 이내 입술을 달싹이더니 알겠다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데몽이 다녀오겠다며 테오와 함께 방을 나섰다.
유림은 두 사람이 나간 문만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데몽이 올 때까지 카드 게임이나 하자는 말에 시선을 방 안으로 돌렸다.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축제 이후 유림은 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새벽에는 디하르와 함께 아침 운동(정확히는 체력 단련)을 했고, 수업이 끝난 뒤엔 쓸 만한 나뭇조각들을 모으거나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보냈다.
늦은 저녁이 되면 다시 디하르에게 검을 배웠고, 밤엔 오래간만에 손이나 풀 겸, 나뭇조각을 가져와 손바닥만 한 원숭이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다 만들어 은하에게 선물로 주었을 땐, 일주일이 지나 1클래스의 여행 일이 다가와 있었다.
유림과 은하는 가방을 메고 제1교사 앞으로 향했다. 클레이즈의 정중앙에 있는 교사로 작은 박물관과 함께 교수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회의실 등이 자리한 곳이었다.
두 사람이 그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대부분의 학생이 와 있었다.
일행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유림은 나무 벤치에 모여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곤 그쪽으로 향했다.
“여~”
유림과 은하의 인사에 일행이 그들을 반겼다.
“어서 와.”
은하는 모두와 인사를 나누다 문뜩 루아의 옆에 있는 큼직한 가방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방 엄청 커.”
그 말에 유림도 루아의 가방을 발견하곤 질겁했다. 커다란 여행 가방만 해도 기가 막힌데 그 위에 큼직한 가방이 얹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뿐인가. 레이먼이 어깨에 멘 작은 가방도 루아의 것이었다.
“이민 가냐?”
“무슨 소리야. 그나마 교복 입는다 해서 이 정도라고.”
……대단하군.
입학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짐을 챙기지 않은 유림은 홀쭉한 제 가방이 볼품없어 보여 괜히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걸 본 레이먼이 눈을 깜빡였다.
다들 루아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아무리 교복을 입는다 해도 여행이었고, 옷을 제하더라도 생필품들을 챙겨 가야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당일치기도 아닌 5박 6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 유림과 은하의 가방은 너무나 작았다. 심지어 작아도 짐이 잔뜩 들어 빵빵한 은하와 달리 유림의 가방은 안에 든 게 없어 축 늘어져 있었다.
“짐 안 챙겼어? 가방이 너무 작잖아.”
“뭐하러 챙겨. 필요한 거 있으면 그냥 집에 들르게.”
그 말에 모두가 ‘아’ 하고 납득했다.
제 집으로 여행가는데 짐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더욱이 자유 시간이 많을 거라고 히야스가 그렇게 강조까지 했는데.
때문에 지금 가방엔 여행 시 쓰라고 지급 받은 통신구와 잘 때 입을 편한 옷 한 벌, 그리고 여벌의 속옷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생필품은 없었다. 사실 이것도 유림의 입장에선 많이 챙긴 거였다.
“그러다 집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면 어쩌려고?”
하민이 괜찮냐는 듯 묻자 유림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 뭣하면 하나 만들면 되지. 널린 게 나무일 텐데.”
유림의 말에 테오와 레이먼이 뒤늦은 사실을 깨달은 사람처럼 손뼉을 치며 혀를 찼다.
“맞다! 만들면 되는구나. 나 칫솔이랑 비누 왜 들고 왔지? 그냥 가볍게 올걸.”
“젠장, 한유림의 능력을 잊고 있었어.”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후회에 데몽이 어깨를 으쓱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쯧쯧. 그러게 나처럼 가볍게 와야지.”
그제야 데몽의 가방이 다른 애들과 달리 덜 빵빵하단 것을 깨달은 유림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쳐다봤다.
“……안 챙겨왔냐?”
“당연하잖아. 네가 있는데 왜 챙겨.”
“…….”
정말이지 너무 당당해 할 말이 없었다.
축제 때 유림에게 안경을 부탁한 이후로 여분 안경을 비롯해 노트, 펜 등을 만들어달라 했던 데몽. 어차피 크게 어려운 것들도 아니었고 나름 연습한다 생각하고 해줬으나 어째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거 좀 있으면 집도 만들어달라 하겠어…….”
“그것도 나쁘지 않군. 난 큰 집은 별로야. 마당 하나 딸린 아담한 게 좋아.”
천연덕스런 말에 유림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당 하나 딸린 시점에서 이미 작은 집이 아닙니다만?”
“말이 그렇단 거지.”
그가 키득거리며 안경을 고쳐 썼다.
“진짜 내가 말을 말아야지.”
결국, 유림이 졌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갤 돌렸다. 그때 하민이 불쑥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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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