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30
제 230 화
“그럼 이제 어쩌지?”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는 듯한 루아의 목소리에 하민이 최대한 침착하게 답해주었다.
“일단 학교 안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어쩌면 결계가 있거나 마법으로 만든 가공간 같은 곳.”
“그런 곳이라면 우리 실력으론 무리잖아…….”
“……요한을 부를까?”
디하르의 말에 데몽과 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의 끝에 숨어 있던 유림을 찾은 그였다. 그러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정보부를 이끌지 않던가. 분명 늄을 잡을 수 없는 장소가 어딘지 알 수도 있다.
레이먼은 키르를 꺼내 요한에게 통신했다. 그러나 신호음만 이어질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
성격 급한 테오가 레이먼의 키르를 뺏듯이 받아 몇 번 더 걸어봤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악! 이 자식은 또 왜 안 받아!!”
레이먼의 키르라 차마 집어 던질 수 없었던 테오는 대신 제 머리를 박박 헤집으며 열을 냈다.
디하르는 키르를 쳐다보다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다.
“차라리 교수님이나 이사장님께 여쭤보자. 그편이 더 빠르겠어.”
확실히 무식하게 찾는 것보다 그들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형이랑 세룬 교수님은 교수님들 전용 기숙사에 계셔.”
하민의 말에 일행은 그쪽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데몽은 코트의 단추를 목까지 꽉 잠그며 은하에게 말했다.
“은하 넌 다시 한유림 늄 잡아봐. 한 번만 하지 말고 수시로 잡아. 그러다 느껴지면 말하고.”
“응.”
일행은 그대로 기숙사 건물 밖으로 향했다. 커다란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시린 눈발과 겨울 특유의 찬바람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데몽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내리는 눈을 지겹다는 듯이 바라봤다.
은하가 아, 하고 소리를 낸 건 그때였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추기라도 한 듯 일행이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비단 은하가 소리를 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새하얗게 뒤덮인 눈길 위로 두 개의 인영이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꽤나 먼 거리에 눈까지 내려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일행 모두 그 두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바람에 나부끼는 긴 자색 머리칼이 보였으니까.
학교에 남아 있는 인물 중 저렇게 아담한 키에 자색 머리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와 같이 올 키 큰 사람도 한 명밖에 없었고.
“림이다…….”
“유림…….”
두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과 함께 흐릿했던 모습이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제 품보다 훨씬 큰 외투와 땅으로 향한 시선. 그 잠깐 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사뭇 진지해 보이는 유림과 그런 그녀의 옆에서 걸음을 맞추고 있는 샨.
은하는 울먹임을 참으며 유림을 불렀다.
“림!!”
그 소리를 들었는지 유림이 고개를 들어 친구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은하……?”
유림은 그만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어쩐 일인지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그란 눈이 두어 번 깜빡였다.
“……? 뭐야, 추운데 왜들 다 나와 있어?”
유림은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진심으로 궁금한지 그리 물었다.
그리고 이 태평한 질문에, 잔뜩 쌓여 예민하게 치달았던 걱정이 분노로 바뀐 건 어찌 봤을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한유림, 너 이 개자식!!”
테오가 쩌렁쩌렁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유림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와 발을 날렸다.
유림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굴렸다.
“우악!”
거친 발길질이 허공을 가르며 섬뜩한 바람 소리를 냈다.
까딱하다간 어디 하나 부러졌을 법한 공격이었다.
……이게 미쳤나?
경악에 찬 유림은 한바탕 퍼부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보다 테오의 고함이 먼저였다.
“감히 피해?!”
“……하? 너 같으면 안 피하겠냐! 이게 뭔 짓이야!!”
유림은 테오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그때 뚜둑- 거리는 뼈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
유림은 뻣뻣한 고개를 천천히 돌려 뒤를 돌아봤다.
데몽과 루아가 더할 수 없을 만큼 살벌한 표정으로 손을 풀고 있는 게 보였다, 덧붙여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도.
“뭐, 뭐야. 너희 진짜 왜 그래?”
유림은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뒤쪽에 테오가 있음을 깨닫고 걸음을 멈췄다.
“한유림.”
음산하게 깔린 데몽의 목소리가 유림의 귀를 두드렸다.
“으, 응?”
“너…… 어금니 꽉 깨물어라. 혀 깨물면 골치 아프니까.”
“야…… 뭐, 뭔진 모르겠는데 우리 말로 하면 안 돼? 갑자기 왜들 이래.”
그러자 이번엔 루아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열흘 넘게 안 깨어난 것도 모자라, 휑하니 사라져 버려서 사람 걱정 시켜놓고선 한다는 소리가 ‘추운데 왜 나와 있냐’는데, 너 같으면 열 안 받겠냐!”
“내가 열흘 넘게 잤다고?!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 잠깐, 나 스무 살이야?!”
“지금 그게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 지가 않네…….”
유림은 살벌한 분위기에 말을 바꿔 잽싸게 해명했다.
“미안…… 근데 거기엔 피치 못할 사정이…….”
“문답 무용!”
답지 않게 유식한 말까지 꺼내며 삿대질하는 루아의 모습에 유림이 식은땀을 흘렸다.
분위기를 보니 장난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실로 이를 증명하듯 등 뒤에 있던 테오가 거대한 그의 검을 뽑아 들었으니 말이다.
스릉 하고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귀를 울렸다.
“테오, 도망 못 치게 다리부터 부러트려.”
“알았어.”
‘알았어’는 무슨 ‘알았어’야! 그리고 뭘 부러트려!!
끔찍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유림이 마른침을 삼키며 눈치를 살폈다.
뭔가 무기로 변형할 만한 거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애석하게도 지금 수중엔 나뭇조각은커녕 비녀도 없었다.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새하얀 눈뿐.
결국, 구조를 요청하는 눈으로 다른 친구들을 쳐다봤으나 도와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지 이쪽을 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샨! 너 빠져. 끼어들면 진짜 화낼 거야!”
유일한 동아줄인 샨조차 열을 잔뜩 내는 루아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데몽의 주위로 몰리는 시린 공기, 루아의 손가락 위에서 터지는 스파크,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테오의 눈 밟는 소리.
유림은 손을 살짝 들어 항복의 자세를 취하며, 그들 몰래 신발에 늄을 부여했다.
“음…… 저기 얘들아, 나 깨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기운 없거든? 우리 조금만 진정하고, 세계 제1의 마법 대학 학생답게 대화로 풀어보지 않을래?”
“그럴 생각 없는데.”
“말 돌리지 마라.”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데몽, 테오, 루아가 답하며 점점 다가왔다.
“아니, 그건 진짜 많이 미안한데…….”
유림은 그대로 눈치를 살피다, 잽싸게 옆길로 내달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도주에 세 사람이 짤막한 욕설을 내뱉으며 따라 달렸다.
“야! 거기 안 서?!”
“잡히기만 해봐!”
“한유림!”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유림과 전속력으로 쫓아가는 세 사람. 뽀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의 발자국이 이리저리 찍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은 시끄러운 재회가 눈밭 위에서 펼쳐졌다.
***
기숙사 꼭대기 층의 빈방 창틀에 걸터앉아 있던 코니룸은 창 너머로 보이는 1클래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미야, 저것 봐. 애들 엄청 재밌게 논다.”
얼음과 전기, 검을 피하느라 죽을 맛인 유림을 두고 하기엔 지나치게 순화된 표현이었으나, 클레이즈 생활에 익숙해진 코니룸에겐 노는 걸로밖에 안 보였다.
그리고 이는 미야이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기운들도 좋아.”
기어코 눈밭에 굴러 세 친구에게 잡혀 버린 유림을 보며 옅게 웃던 미야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긴 뒤 고개를 돌렸다.
“열흘 넘게 못 깨어났다 해서 걱정했는데, 저렇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 괜찮은 거 같네.”
다행이야- 란 말을 덧붙이자, 의자에 앉아 키르만 만지작거리던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 변화가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 때문일까. 분명 움직였음에도 살아 있는 사람 같단 생각이 안 들었다.
미야는 어쩐지 선뜩선뜩한 기분에 미소를 지웠다.
방학식 날, 집으로 돌아가려던 미야와 코니룸을 붙잡은 건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물론 내부의 적과 진급시험의 일 때문에 학교에 남아 있고 싶었던 두 사람에겐 반가운 말이었다.
어째서인지 이사장님은 요한을 학교에 남게 해줬고, 자신들은 이를 핑계로 눌러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요한은 자신들을 왜 붙잡았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아니, 얼굴을 보는 것도 방학식 이후로 지금이 처음이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연락도 없었고,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으니까.
그러다 좀 전 갑자기 연락해 이곳으로 오라 부른 것이다.
“이제 슬슬 말해줄래? 우릴 왜 붙잡았는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미야의 말에 코니룸도 시선을 돌렸다.
요한은 키르를 재킷 안주머니에 넣은 뒤, 의자 등받이에 등을 파묻었다.
“할 일이 있어.”
서늘하리만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평이하게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간결하다 못해 짧은 말에 미간을 구겼다.
“할 일?”
“그게 뭔데.”
“원래는 여덟 명이 해야 했을 일.”
참으로 의뭉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그가 괜히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었다.
눈치 빠른 미야와 코니룸은 직감적으로 자신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즉, 하겠다고 말했을 때에만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는 것이다.
코니룸이 이를 갈며 말했다.
“야, 지금 장난하냐? 우리가 단순히 호기심과 걱정만 가지고 여기 남은 줄 알아? 내부의 적인지 뭔지를 들은 순간부터 한 번도 가벼운 마음으로 있었던 적 없어.”
“……미안한데, 그런 선택권은 기분 나쁘기만 할 뿐이니 빨리 본론을 말해줬으면 좋겠어. 우리가 뭘 하면 되는데.”
그딴 배려 필요 없으니 빨리 이야기하라는 두 사람의 태도에 가만히 그들을 응시하던 요한이 작게 웃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표정 변화에 코니룸과 미야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실로 요한이 두 사람의 앞에서 이렇게 웃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쓸모없는 배려를 했어.”
그는 뻣뻣하게 굳은 두 사람을 향해 어쩐지 조금 편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알겠어. 설명할게.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해야 할 일 참 많네. 그래서 그게 뭔데.”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해.”
“사람? 누구. 샨?”
“아니, 샨은 안 돼. 걘 형이 뚜렷하지 않으니까.”
실로 샨은 입학시험 때 팔찌가 검은색이 될 정도로 형의 경계가 흐릿한 체질이었다.
근데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 걸까.
코니룸은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물었다.
“그럼 누구?”
그리고 이 질문에 요한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클레이즈의 지하에 갇혀 있는 열혈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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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