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29
제 229 화
“잠깐, 그 소린 내부의 적이 얼음을 녹이기 위해 안젤리카 씨를 잡으러 올 수도 있단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녀석들이라면 그곳을 얼린 게 안젤리카라는 걸 눈치챘을 테니까.”
단호하게 떨어지는 대답에 유림이 숨을 삼켰다.
히야스가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긴장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안젤리카 씨는 지금 어디 계시죠?”
“안전한 곳에 숨어 있으라 했어.”
“어디 숨어 계신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래.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그 어떤 일이 터져도 나오지 말라 했으니까.”
“……히야스 교수님이 살아 계신 건 알고 있나요?”
덴 케이가 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유림은 애먼 아랫입술만 질겅질겅 씹었다.
내부의 적이 클레이즈에서 가장 얻고 싶어 했던 것이 얼음 서고에 있는 방대한 자료와 정보였으니, 분명 안젤리카를 데려가기 위해 한 번은 클레이즈에 다시 올 것이다.
전임 교수님들이 크게 다친 이때에 말이다.
“최악이네요…….”
“더 최악인 건 이게 녀석들을 잡을 유일한 기회라는 거지, 놓쳐선 안 될 기회이기도 하고.”
실로 맞는 말이었다. 자신들은 얼음 서고에 갈 수 없을뿐더러, 내부의 적이 작정하고 숨어버리면 찾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이야. 지금 클레이즈에 남아 있는 사람은 다 합쳐도 서른 명을 넘지 않으니까.”
그 말에 유림은 저도 모르게 눈을 홉뜨고 말았다.
“서른 명? 왜요?”
“방학을 해서 다 돌려보냈거든.”
방학이라니. 이 무슨 태평한 단어란 말인가.
“아니, 그래도 몇 명은 남겨놨어야죠. 내부의 적이 다시 클레이즈에 올 걸 알면서도 전력을 밖으로 내보냈다고요?”
클레이즈는 말 그대로 인재들의 집합소였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교수들도 그랬다.
일반 교수님들도 전임 교수들보다 조금 뒤처지는 거지, 어지간해선 어딜 가도 꿇리지 않는 뛰어난 실력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거의 다 돌려보내다니.
학생들이야 보호의 명목으로 보냈다 쳐도, 교수들까지 보내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교수님들이라도 다시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안 돼.”
대답은 너무나 단호했다.
“어째서요?”
“까딱하다간 얼음 서고에 대한 정보가 밖으로 새 나갈 수 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얼음 서고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하단 건 잘 아는 사실이었다. 덧붙여 그곳의 존재를 아는 이가 이사장님을 포함해 몇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내부의 적에게 지게 될 경우 그곳을 아예 빼앗기는 게 아니던가.
도통 이해할 수 없어 눈만 깜빡일 때, 내내 가만있던 아슈팔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곳의 정보가 밖에 드러난다 해도, 어차피 큰 문제없지 않나요?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건 라의 문의 열쇠를 가진 사람과 그 사람이 허락한 사람뿐이고, 설령 간다 해도 그곳의 얼음은 안젤리카 씨가 아니면 녹일 수 없으니까요. 애당초 클레이즈는 세계 3대 도서관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학교의 이름 때문에 쉽게 넘보려 하지도 않을 겁니다.”
차분한 어조로 깔끔하게 반박하는 아슈팔을 보며, 유림이 맞다며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그러나 케이는 계속 표정을 굳힌 채,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아슈팔이 드물게 인상을 쓰며 따지듯 물었다.
“저는 이사장님이 뭣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툭 까놓고 말해 데몽을 비롯한 1클래스 몇몇도 얼음 서고의 존재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네 말대로 얼음 서고의 존재를 아는 애들이 몇 있어. 그렇기에 그 애들을 다른 애들과 달리 학교에 남겨둔 거고.”
이건 또 무슨 돼지 똥 싸는 소리인 걸까.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케이를 바라보자 그가 침음을 삼키며 작게 말했다.
“……내부의 적이라면 분명 지금쯤 얼음 서고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얼추 짐작했을 거야. 그만큼 똑똑한 녀석들이니까. 그렇기에 학교에 너무 많은 사람이 남아 있는 건 안 돼. 녀석들이 클레이즈에 와서 입을 잘못 놀려 그곳의 위치가 드러난다면, 그건 곧 학교의 위치가 밝혀진다는 것과 같아.”
“……얼음 서고랑 클레이즈의 위치가 무슨 상관인데요?”
“두 사람 다 얼음 서고가 어디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
덴 케이의 갑작스러운 반문에 아슈팔과 유림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으로 만든 가공간 아니었습니까?”
“……난 단순하게 펜시리움(빙설의 땅)쯤이라고 생각했는데…….”
“둘 다 틀렸어. 얼음 서고는 클레이즈의 북쪽 산 너머에 있어.”
순간 유림과 아슈팔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놀랍단 생각보단 당혹스러움이 먼저였다. 클레이즈의 북쪽 산이라면 학교의 경계를 나타내는 길고 커다란 산을 말하는 게 아니던가. 그 뒤라니…….
“……얼음 서고가 클레이즈 위에 있다고요?”
“그렇게 가까이에 있었던 겁니까?”
“그래.”
거듭된 확답에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또 하나 그려졌다.
“그럼 라의 문 열쇠가 없어도 그냥 걸어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아슈팔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덴 케이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이 질문에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 불가능해.”
“왜요?”
“독기 때문에.”
“…….”
“…….”
짤막한 대답 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단순한 착각인 걸까.
마치 누가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친 것처럼 둘 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된다는 것과 동시에 그곳밖에 없다는 모순된 생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이런 그들에게 답을 주듯 케이가 입을 열었다.
“클레이즈의 이사장은 계승받을 때, 두 가지의 금기를 맹약하지. 첫 번째, 클레이즈의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두 번째, 클레이즈의 위치를 세상에 들키지 않는다. 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이루어져선 안 되며, 이를 지키기 위해 클레이즈의 이사장은 8형만이 할 수 있어. 해독이 불가능한 독기의 본질을 바꾸고, 저주받은 땅에 물들 사람들의 늄을 계속 순환시킬 수 있는 8형만.”
점점 파리해지는 두 사람의 안색과 달리 케이는 조금의 동요도 없는 차분함, 그 자체였다.
한편으론 오래전부터 이 둘에게 이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너희가…… 아니, 너희를 비롯해 지금 클레이즈에 남아 있는 모든 이들이 평생 숨기고 지켜야 할 이야기야. 덧붙여 내가 너희에게 무리한 도움을 부탁하는 이유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만 홉뜬 유림과 아슈팔을 보며 케이가 쓰게 웃었다.
잠시 후, 그가 말을 이었다.
***
은하가 방을 나선 뒤, 아이들의 대화는 자연스레 끊기게 되었다. 결국, 일행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데몽과 레이먼은 침대에 앉아 좀 전 은하가 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복잡했다. 한편으론 걔가 뭣 때문에 그렇게 숨기고 또 숨기려 했는지 이해가 갔다.
레이먼은 멍하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눈이 어찌나 많이 내리는지 이러다 세상이 다 눈에 파묻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하와 유림이 만났던 날도 이렇게 눈이 많이 왔었다고 했지.
새하얀 눈밭에서 눈을 떴을 때, 그리고 양부와 은하를 만났을 때 유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있잖아…….”
레이먼의 조용한 부름에 데몽이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어쩌면 클레이즈에서 유림을 다시 만났을 때 화를 냈어야 할지도 몰라. 아니…… 연구실에서 구출되었을 때부터 그렇게 놔두면 안 됐어…….”
“…….”
“난 왜 그때 걔가 곧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던 걸까.”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울적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레이먼이 침대 머리에 이마를 박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데몽은 가만있다 위로하듯 툭 하고 내뱉었다.
“그때의 넌 고작 열 살이었어. 그런 걸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나이가 아니라고.”
“……맞아. 열 살이었지, 유림이도 열 살이었고. 똑같은 아이였는데…….”
“…….”
데몽은 이번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뭐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말해 맘이며 머리며 심란해 레이먼을 다독여 줄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한유림이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할 때였다.
“뽀송!!”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은하가 방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레이먼과 데몽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바라봤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은하는 크게 울먹이며 레이먼을 찾았다.
데몽도 레이먼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유림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그리고 이런 불길함에 쐐기를 박듯 은하가 입을 열었다.
“큰일 났어. 림이 없어. 림이 방 안에 없어!”
“유림이 없다니? 샨은? 샨이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
“샨도 없어. 통신도 되지 않아. 늄도 안 느껴져. 내가 방을 비우는 게 아니었어. 방에 계속 있어야 했어.”
은하는 레이먼의 품에 안겨 그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은하를 다독이는 레이먼을 보며 데몽은 뒤늦게 간과한 사실을 떠올리고 혀를 찼다.
유림에게 늄의 이식이란 건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히야스의 늄을 이식받고 살아났다는 걸 알게 된다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샨이 같이 사라졌단 건데……. 제길, 이런 걸 다행이라 여기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히는군.
데몽은 다급히 키르를 꺼내 테오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에게 나오라며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레이먼과 은하를 데리고 만나기로 한 기숙사 1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기 무섭게 아이들이 오는 것이 보였다.
허겁지겁 나온 탓에 이제야 검집을 어깨에 걸치는 테오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길, 한유림 이건 차분하게 마음 다스릴 시간도 안 주냐.”
좀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자고 있다던 애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정말이지 사람 고생시키는 덴 타고난 녀석이었다.
“샨이 한유림 본다고 한 거 아니었어? 갑자기 사라졌다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자세한 건 몰라. 박은하수 말론 늄이 안 잡힌대.”
데몽의 대답에 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늄이 안 잡히다니…… 유림의 늄이 안 잡혔던 건 얼음 서고에 갔을 때뿐 아냐?”
그리고 이 질문에 일행 주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얼음 서고라니. 지금 그곳은 내부의 적이 점령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는 건 설마…….
“우으으윽…….”
은하가 눈물을 다시 뚝뚝 흘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데몽이 욕을 내뱉었다.
“너는 왜 재수 없는 소릴 해서!”
“아, 아니…… 냉정하게 말하는 거야. 내부의 적이 데려갔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멍청한 소리 하지 마. 거기다 한유림 혼자 있던 것도 아니고 샨도 같이 있었어. 정말 잡혀간 거면 전투의 흔적 정도는 남았어야지. 그게 아닌 걸 보면, 샨이 데려가거나 혹은 누가 불러서 데려갔을 확률이 더 커.”
데몽의 말에 하민이 자기 생각도 그렇다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납치는 아닐 거야. 이즈네 교수님은 유림을 죽이려고 했어. 근데 굳이 납치해 갈 리 없잖아.”
거기다 멀리도 아니고 같은 기숙사 건물 안에 있었다. 아무리 내부의 적이 대단하다 해도 이렇게 조용하게 유림을 납치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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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