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254
제 254 화
해우가 마른침을 삼킨 뒤 말했다.
“제가 아는 한은 여덟 명이 전붑니다. 그 외엔 없어요.”
애당초 얼음 서고에 갔던 인물은 그 여덟이 전부였고, 올 때도 부러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때문에 클레이즈 내에 그들의 조력자가 남아 있는 게 아니라면 신호탄을 터트릴 인물은 없었다.
“설마 학교에 내통자가 있었던 걸까.”
하민의 질문에 테오가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학교에 남은 사람들은 지하 대피소에 있잖아. 거긴 이사장님의 허락이 있어야지만 나올 수 있다고 했어. 거기다 거기 입구는 바로 이 근처잖아. 나왔으면 우리가 눈치 못 챘을 리 없어.”
물론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3클래스 네 사람이 너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들 또한 아닐 것이다. 다른 걸 떠나 그 안에 요한이 섞여 있었다. 내부의 적을 찾기 위해 샨을 클레이즈에 부정 입학까지 시킨 그가 내통자를 품었을 린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물이 또 있단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일행의 머리 위로 내내 놓치고 있던 인물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에 확신을 주듯 진유가 낮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래서……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죠.”
그 말과 동시에 테오와 샨, 그리고 은하의 고개가 동아리 교사 쪽으로 돌아갔다.
***
이즈네는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좀 전 진유가 동아리 교사 앞에서 테오와 샨과 대치했을 때, 사실 그는 이미 자신의 신물 두 마리를 건물 안으로 들여보낸 후였다. 그리고 위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무렵 이즈네는 신물들의 도움으로 다리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다.
이를 들키지 않았던 건, 동아리 교사에 자체적으로 늄의 기운을 차단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유림이 탈출로를 무너뜨리지 않은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아마 후에 자신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남겨둔 거겠지만, 그것이 역으로 제게 탈출의 기회를 주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쉽게 찾지 못할 길이기에 안심한 거겠지. 하물며 이곳은 칠흑처럼 어두웠으니까.
하지만 이쪽엔 신물 두 마리가 있었다. 물론 곧 그 소환이 풀리긴 했지만, 이즈네는 안전하게 두 신물의 도움으로 건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학교를 뒤덮은 신물과 괴물들을 피해 결계석을 찾았다.
사실 이건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그들로선 덴 케이가 어떤 방식으로 클레이즈를 지키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커다란 결계가 하나쯤은 있을 거라 예상한 다단이 후일을 대비해 이즈네에게만 살짝 언질을 해두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땐, 그것을 찾아 부수라고.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안젤리카든 히야스든 그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물론 그걸 이렇게 빨리 찾아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면 오랫동안 케이를 봐온 것이 큰 도움이 된 걸지도 모른다. 의도치 않게 그의 성격이나 습관에 대해 알아버렸으까.
이제 남은 일은 안젤리카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
만일 그래도 그가 나오지 않거나 케이가 독기를 해독하지 못해 위험해진다면 우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2차 계획을 짤 것.
이즈네는 긴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새하얀 금이 하늘 전부를 뒤덮고 있었다.
점점 그 균열을 크게 하는 결계를 바라보며 그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
“이즈네가…… 탈출했단 말이죠.”
속이 부글부글 끓는지 인상을 팍팍 구기는 세룬을 보며 진유가 고소하단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얼마 안 있어 그의 발길질에 얼굴을 다시 구겨야 했지만.
“설마 이런 발칙한 짓을 준비했을 줄이야.”
“하……. 그러게요. 저도 이런 걸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전혀 몰랐다는 투에 세룬이 미간을 좁혔다.
“능청 떠는 거예요?”
“사실입니다……. 이건 계획된 일이 아니거든요. 정 못 믿겠다면 해우한테 물어보면 되겠네요. 저처럼 그도 아는 게 없을 테니까요.”
정말이냔 하진의 눈빛에 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면 제일 먼저 케이한테 이 사실을 알렸을 거야.”
아무래도 이건 이즈네 독단이거나 다단하고만 이야기를 한 듯해.
작게 덧붙이는 말에 데몽이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계획을 공유 안 했다는 소린가요?”
“응. 그 정도로 친밀한 조직은 아니거든.”
그의 말대로 내부의 적은 그렇게 공고한 집단이 아니었다.
우선 한 번 그 맥이 끊겼다 다시 이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두 번째는 클레이즈 전임 교수였던 그들 각각의 욕망이 너무나 뚜렷한 게 문제였다.
하지만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중간 과정은 같았다.
늄의 진리,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 내부의 적은 그 어떤 짓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제 입장에선 나쁘지 않네요…….”
진유가 옅게 웃었다.
그는 이즈네처럼 늄의 진리를 찾아 세상에 돌려준다거나 하는 원대한 꿈도 없었고, 다단처럼 무언가 따로 생각하는 게 있지도 않았다. 그저 순수한 뜻 그대로 늄의 진리를 알고 싶었다.
“그 많은 역사를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손이 떨릴 지경이군요.”
아이들의 입장에선 공포 그 자체인 하늘이 진유에겐 어떤 기적보다 멋있게 보였다.
저게 깨지면 엄청난 양의 독기가 새어들어 오겠지.
결계를 복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고, 제아무리 안젤리카라 해도 불안전한 클레이즈 땅에 계속 숨어 있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죽으면 안 된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분명 안전한 곳을 찾아 나올 것이다.
전임 교수 셋을 포함해 1클래스 대부분은 제1교사에, 나머진 다단이 잡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리리아는 덴 케이를 지키느라 온실에서 안 나오는 듯했다.
즉 안젤리카를 지킬 수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단 것이다. 그리고 홀로 있는 그를 이즈네가 제압하지 못할 리 없었다.
하물며 안젤리카와 이즈네는 상극이었다. 그녀의 독이면 안젤리카의 하반신 따윈 순식간에 없애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이후 그를 잡아 얼음 서고로 가거나, 혹은 그 자리에서 죽이면 된다.
진유도 얼음 서고로 이어진 라의 문의 승인을 받았기에 기회를 틈타 그곳으로 도망치면 됐다. 그곳으로 이동하는 데 늄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물론 금지된 땅에 가면 클레이즈론 다시 올 수 없겠지만, 그곳의 지식을 습득한다면 바로 대륙으로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터.
이건 전적으로 그곳의 열쇠를 가진 자신들이 유리한 전투였다.
얼음 서고 안의 역사를 볼 생각에 상기된 진유를 보며 세룬이 다시금 그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뭘 잘했다고 자꾸 처 웃어요.”
진유가 고개를 숙인 채 컥컥거렸다.
“설령 이곳이 독기로 뒤덮이고 안젤리카가 죽는다 해도 당신들의 계획이 성공할 일은 없을 거예요. 얼음 서고 안의 무한한 지식을 볼 수도 없을 테고요.”
“……자신만만하시네요. 이제 곧 결계가 깨져서 이곳이 독기로 뒤덮일 텐데도요.”
결계 전부에 거대한 금이 가 섬뜩한 광경을 연출했음에도 세룬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 알지 않을까요?”
“어디 그 여유만만 한 얼굴이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는지 보죠.”
그 말이 도화선이라도 된 걸까.
얇은 흰색 실이 겹겹이 둘러진 것처럼 조각조각 나뉜 결계가 이윽고 그 형태를 무너트리고 말았다.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갈라진 결계 조각들이 땅을 향해 쏟아졌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마치 유리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일행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보호하고 말았다. 레이먼과 은하는 데몽의 뒤에 바짝 붙어 숨은 지 오래였다.
한겨울의 새벽보다 더 차가운 공기. 하늘을 뒤덮는 독기. 어둑해진 하늘과 세상에 일행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금지된 땅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해도 구름도, 그 무엇 하나 보이지 않은 적보라색의 안개가 머리 위에 있었다. 그것은 흡사 혼돈을 하늘에 박아둔 것만 같았다.
생명의 침입을 거부하는 땅. 모든 것을 앗아가는 곳.
마치 정체를 모르는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공포가 어깨를 짓눌렀다.
이사장님 덕분에 바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이 주는 위압감은 결코 무시하지 못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만만하던 세룬조차 표정을 굳힐 정도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걸까. 하민이 덴 케이에게 연락하기 위해 다급히 키르를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느낌과 함께 공기가 뒤바뀌었다.
호수에 잔잔한 파문이 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늄의 기운이 고리 모양으로 퍼져 나갔고, 삽시간에 기온이 올라가며 주변의 풍경이 하나둘 생기를 품었다.
딱히 호흡이 불편했던 것이 아님에도 숨쉬기가 편해졌단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클레이즈의 네 방위에서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귀가 아플 만큼 불어오는 바람에 은하가 머리칼을 움켜쥐며 고갤 들었다.
흡사 거대한 바람이 독기를 밀어내는 것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던 적보라색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윽고 드러난 새파란 하늘과 햇빛에 반짝이는 세상.
이걸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꼭 세상이 뒤집힌 것 같았다.
***
이즈네는 눈앞에서 펼쳐진 일에 그만 숨을 쉬는 것도 잊고 말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계석은 확실하게 부쉈다. 눈앞에서 결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도 목격했다. 근데 왜 클레이즈는 멀쩡한 거지?
얼음 서고의 얼음을 녹이기 위해 이런 위험한 수까지 썼는데 그조차도 수포로 돌아가는 건가?
마른침을 삼키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이즈네는 문뜩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단 걸 깨달았다.
황급히 자세를 고쳐 잡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잃어버린 제 검 대신 들고 나온 유림의 검을 들어 보였다.
순간 그녀는 제 눈앞에 있는 인물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보스?”
분명 온실에 안전하게 있을 거라 생각한 덴 케이가 그녀의 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엔 리리아가 상당히 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래간만이군, 이즈네.”
“보스가 왜…….”
이즈네는 그가 어째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물며 곰방대까지 물고 있는 저 여유는 또 뭐란 말인가.
필사적으로 결계를 부순 자신과 달리 태연한 그 꼴을 보자니 괜히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날카로운 질문에 들려온 대답은 지나치리만큼 여유로웠다.
“온실에 있을 이유가 사라져서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죠? 설마 좀 전의 일도 당신이 한 건가요?”
“반은 내가 한 거지.”
“그게 무슨…….”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이즈네를 보며 케이가 곰방대를 탁탁 털었다.
“영민한 제자들이 내게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더군.”
그리고 수석에서 느껴지는 꽉 찬 늄의 양에 드물게 미소 지었다.
“정말이지. 너무 훌륭해서 탈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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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