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A.C RAW novel - Chapter 82
제 82 화
레이먼은 베개를 끌어안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 새벽 3시. 어째서인지 데몽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레이먼은 어두운 곳에서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이 증세는 더 심해졌다.
“…….”
지독할 정도로 적막한 방. 그 끝없는 침묵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웠다. 정말로 무서웠다.
결국, 레이먼이 침묵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베개를 끌어안은 채 디하르와 하민의 방으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 했다,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지만 않았다면.
이 늦은 시각에 찾아오다니…… 대체 누구지?
레이먼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 다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입술을 짓씹으며, 문에 귀를 갖다 대자 문 너머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
“레이먼? 나 테오.”
“테오?”
테오?
자신이 아는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온몸을 짓누르던 긴장이 사라지고 안도감이 퍼졌다.
“무슨 일이야?”
레이먼은 한층 가벼워진 목소리로 문을 열었다.
“방에 데몽 있어?”
“아니, 아직 안 왔어.”
아직 안 왔다니. 테오가 미간을 구기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로 어딜 갔는지 데몽이 없었다.
“진짜 없네. 혹시 어디 나간 거야?”
“아니, 아까 너희랑 만난다고 나간 이후로 오지 않았어.”
“아까라니?”
“점심때 말이야. 너희 만난 거 아니었어?”
만났다. 하지만 그건 무려 열두 시간도 더 된 이야기였다.
“혹시 연락 같은 거 없었어?”
테오의 질문에 레이먼이 고개를 내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니, 전혀.”
“그래…….”
“왜?”
“아니…… 연락이 안 돼서.”
“통신은?”
“……그게.”
레이먼의 질문에 테오가 미간을 좁혔다. 잠시 후, 그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연락이 안 돼.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통신 자체가 되지 않아.”
“통신이 아예 안 된다고?”
“그래. 아무 반응이 없어.”
“그게…… 가능해?”
“나야 모르지. 근데 그래.”
테오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먼은 품 안의 베개를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얼마 전의 일이 생각나면서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테오를 불렀다. 쪽빛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테오…… 혹시 너희 최근에 무슨 일 있어?”
“뭐?”
“아니…… 요즘 좀 이상한 거 같아서.”
실로 요즘 데몽네들의 행동이 꽤 수상했다. 자꾸 서운하게 저들끼리만 모이지 않았던가.
거기다 그들의 뒷조사를 부탁한 샨도 신경 쓰였다.
샨이 그러지 않았던가, 우리에겐 아니어도 그들에겐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일에 샨과 데몽네들이 얽혀 있는 거라면?
“…….”
짙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레이먼은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했다. 이는 테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어떤 의도로 물어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표정을 보니 그냥 한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대충 넘기자니 괜히 수상함만 심어주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때,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레이먼, 자?”
디하르였다.
레이먼은 테오를 한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어? 테오도 있었어?”
이 늦은 시각에 테오가 레이먼네 방에 있는 것이 의외였는지 디하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뭐 잠깐 볼일이 있어서……. 그보다 무슨 일이야?”
멋쩍게 웃는 테오를 보며 디하르가 미간을 구겼다. 그의 오드아이가 난처함을 담고 있었다.
디하르는 또 무슨 일이기에 이러나 싶어 레이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뜩 그의 뒤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붉어진 눈으로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은하였다.
“깜둥이?”
은하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너 왜 그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부드러운 쪽빛 눈동자와 다정한 어투와 마주한 순간, 결국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으아아아앙! 어떡해, 레이먼. 림이 없어……. 아무리 해도 림의 늄이 잡히지가 않아.”
은하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은하가 울음을 그친 건 그로부터 약 십여 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그사이에 루아와 륜, 그리고 하민 또한 레이먼의 방에 모이게 되었다.
“괜찮아?”
이제야 진정이 됐는지 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먼은 그녀가 눈을 식힐 수 있도록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을 건네주었다.
“대체 유림의 늄이 안 잡힌다는 게 뭔 소리야?”
레이먼의 질문에 은하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의 나침반이었다.
“림이 자기 걸 만들면서 나한테도 하나 만들어준 거야. 서로의 늄을 잡아서 위치를 알려 주는 건데, 아무리 해도 림의 위치가 잡히지 않아.”
“그냥 좀 멀리 있는 거 아닐까?”
“아니야. 학교에서 이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거기다 림이 그랬어, 나라를 오갈 정도로 정말로 먼 곳이 아니라면 잡힐 거라고.”
“…….”
레이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은하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유림이 있는 곳은 클레이즈 밖이거나 마법으로 고립된 장소란 의미였다.
어떻게 하지?
“유림이 언제 나갔는데?”
“아까 데몽 만나러 간다면서 나갔는데…….”
그 말에 가만있던 테오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잠깐, 그렇다는 건 유림도 데몽처럼 점심서부터 안 들어온다 이거야?”
이번엔 디하르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데몽도 없어?”
“어. 나도 연락이 안 돼서 걔 찾으러 온 거야.”
루아는 테오와 은하, 그리고 레이먼을 번갈아 보더니 오만상을 찌푸렸다.
“뭐야.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야?”
이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가만있던 하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해서…… 지금까지 안 돌아온다 이거야?”
약속이 있다고 나가더니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민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침음을 냈다.
확실히 이 시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건 이상했다. 거기다 유림이라면 몰라도 데몽은 이렇게 말도 없이 사라질 위인이 아니었다, 친구들을 걱정시킬 이는 더더욱.
어쨌든 만나기로 한 두 사람이 한꺼번에 사라졌으니, 같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어디 있냐는 거겠지만.
“림…… 괜찮은 거겠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다시 울 것 같은 은하의 표정에 레이먼이 안절부절못하며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루아가 고갤 돌려 디하르를 바라봤다.
“그냥 교수님들께 말씀드릴까?”
“……그건 생각을 좀 더 해보자.”
“왜?”
“만일 유림과 데몽이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거라면…… 아니, 들어가면 안 될 곳에라도 간 거라면 생각보다 일이 커질 수가 있어. 그게 자의든 타의든 말이야.”
루아는 디하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파악하고 표정을 굳혔다.
“퇴학을…… 당할 수 있단 거야?”
“그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통신이 되지 않는다는 건 그들이 있는 곳이 보통 장소가 아니란 의미였고, 만약 그 장소가 학교 밖이나 학생에게 허락되지 않은 곳이라면 학교 측에서 무사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심하면 퇴학까지도 당할 수 있었다.
“그럼 어떡해?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기다려?”
루아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하민이 모두를 진정시켰다.
“자자, 일단 모두 다 진정하자. 어쨌든 걔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상, 찾으러 간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그니까 나도 디하르처럼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거기다 우리의 걱정과 달리 금방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하민이 모두를 설득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반기를 드는 테오였다.
“아냐. 찾아야 해.”
평소와 달리 사뭇 진지한 목소리였다. 표정도 그러했다.
“찾아야 해.”
마치 강조하듯 같은 말을 반복하는 테오의 모습에 륜이 미간을 좁혔다. 평소의 그라 치기엔 뭔가가 이상했다.
“테오, 너 왜 그래?”
“잊었어? 데몽이 어떻게 나갔는지.”
어떻게 나갔냐니? 분명 한유림한테 뭐든 정보를 얻어 오겠다고…….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그리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가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유림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간 데몽이 도리어 이쪽의 목적을 들켜 역으로 위험해진 상황을 말이다.
거기다 그들은 아직까지 유림이 그들과 한패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
한번 나쁜 생각이 들기 시작한 머리는 마치 그것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듯 연신 불길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륜은 저 스스로가 한심해 미칠 것만 같았다. 애초에 유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데몽을 혼자 보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왜 이렇게 멍청할까.
륜은 답답함에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테오의 말대로 더 늦기 전에 데몽을 찾으러 나가야 했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하지? 대체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무리였다. 만약 유림이 적이라면, 이들 중에 그녀와 같은 편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 중 셋은 무려 유림뿐 아니라 샨이란 사람과도 교집합이 있었다.
조심하는 게 당연했다.
륜은 테오에게 작게 눈짓한 뒤, 모두를 향해 말했다.
“저기 미안한데, 나랑 테오는 일단 방으로 돌아갈게.”
꽤나 갑작스러운 발언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니까 우리 둘이 따로 데몽을 찾아본다고.”
“뭐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륜의 태도에 레이먼이 인상을 찌푸리며 따지고 들었다.
“너희 진짜 이상해. 테오 넌 평소라면 어련히 들어오겠지 하고 넘길 텐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걱정하고, 륜 너는 갑자기 따로 행동하려고 하고.”
레이먼이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뭔가를 숨기려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샨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이들의 조사를 부탁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나쁜 일을 하거나, 위험한 일에 연관되었거나.
문제는 그런 데몽과 유림이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유림이…… 괜찮은 걸까?
레이먼은 불길한 마음을 애써 달랬다.
“테오, 너네 정말 뭐 있지?”
“뭐가.”
“분명 우리한테 숨기는 게 있어. 그렇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테오가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표정을 고쳤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레이먼의 말로 인해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여 있었다.
제길, 1초라도 빨리 찾아야 할 때에 이런 성가신 일이 생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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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즈 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