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 fragrance goes ten thousand miles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124. 없앨 수만 있으면
중행범연합에 합류한 지원군의 규모는 일군에 육박했고, 상군(上軍)이라 명명했다.
상군은 일왕자 희오의 지휘 아래 주행열의 친위군과 최길의 중군 사이에 자리하고 중군의 뒤를 받쳤다.
“저들의 중군은 우리 두 배다. 우리 중군을 먼저 무너트릴 생각이다. 그다음 좌우군과 호응하고, 우리 좌우군을 칠 거다.”
조을은 단번에 중행범연합의 의도를 파악했다.
“저들 전술은 뻔하다. 멍청하다. 하지만 우리보다 두 배 많다.”
속이 뻔히 보이는 단순한 전략이어도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중행범연합이 유리하다는 의미.
이때, 지백요가 전령을 보냈다.
“원수께서 중군은 방어에만 치중하라 명하셨습니다.”
조을은 지백요의 의도 또한 바로 알아챘다.
“지백요 원수는 적의 중군만 붙잡으라고 한다. 자기들이 적의 좌우군을 무너트린다고 생각한다. 이쪽 중군이 약하고, 적은 좌우군이 약하다고 믿는다.”
중행범연합의 병력이 많기는 하나, 중군에만 집중적으로 몰려 있고, 그렇다면 애초 계획대로 좌우군만 무너트리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을은 동의하지 않았다.
“착각이다. 판단이 틀렸다. 적의 좌우군은 더 강하다. 중군의 움직임 봐라. 좌우군의 움직임 봐라. 좌우군은 중군보다 정확하다. 빠르다. 중군은 많아서 강하다. 좌우군은 그냥 강하다. 우리 좌우군 이기기 어렵다. 우리도 방어만 해선 무너진다.”
그래서.
“공격이 가장 좋은 방어다.”
조을은 명령을 내렸다.
“진격한다. 공격한다.”
좌우군에는 신호를 보낼 것도 없었다.
중군이 무너지면 좌우군도 무너지니, 중군이 포위당하지 않게 좌우군도 중군을 따라 전진하여 적의 좌우군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 * *
지백요의 전차는 가장 크고 화려하면서, 단상까지 설치해 시야를 높였다.
그래서 중군과 멀리 떨어진 후미에서도 전장이 넓게 보였다.
“윤갈!”
참모라 하지 않고 이름만 부른 것은 그만큼 지백요가 마음이 급하고, 화가 났다는 의미였다.
“중군이 왜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가.”
윤갈은 진천에게 대장기를 주었으니, 명령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여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걸 가까스로 억눌렀다.
중군이 앞장서 도강하고, 중행범연합의 공세를 홀로 감당하게 하려면 대장기를 줘야 한다고 조언한 게 윤갈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오히려 잘되었습니다.”
“무엇이?”
“적의 중군이 두 배나 되니, 겁을 먹고 몸을 사려 꼼짝도 하지 않거나 멋대로 전장에서 이탈할 줄 알았는데, 스스로 호굴에 뛰어드는 격이 아닙니까.”
그들은 진천을 제거할 방법으로 중행범연합을 이용하기로 했다.
중군을 맡겨서 앞세워 싸우도록 하면 그가 죽을 수 있고, 상처만 입어 생존하더라도 지휘에 경험이 없는 만큼 중군이 괴멸에 가까운 피해가 생길 게 당연하니, 이를 빌미로 삼아서 군령으로 처형한다는 계책이었다.
적을 도강하도록 유인하는 걸 불허하고, 대장기까지 주며 도강을 강요한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거야 지원군이 저렇게나 많이 있을 줄 몰랐을 때의 이야기 아닌가. 중군이 무모하게 나섰다가 속절없이 무너지면, 좌우군도 무사하지 못할 걸세.”
“염려하지 마십시오. 적들이 중군의 뒤로 지원군을 붙인 것은, 우리쪽 중군이 가장 약체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강한 병력을 중군으로 삼고, 지원군까지 붙여 힘을 키우는 식으로 승기를 잡으려는 속셈이지요. 이는 적의 좌우군은 우리 좌우군의 전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니, 중군이 무너지기 전에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의 중군이 아무리 강하고 많아도, 우리 좌우군이 좌우에서 몰아치면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 지백요는 그제야 표정이 풀어졌다.
“그럼, 좌우군의 속도를 늦추라고 해야겠군. 괜히 중군이 당하는 걸 보고 도우려고 하면 곤란하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적의 중군과 좌우군이 여력이 생겨 중군을 합공할 여지를 주게 되고, 중군이 어찌할 틈도 없이 너무 빨리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좌우군도 위험해지죠. 어차피 야인군 위주의 전력으로는 적의 중군을 당해내지 못하니, 그냥 두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좌우군에서도 무리해서 중군을 돕지 않을 겁니다. 중군 쪽으로 가겠다고 방향을 틀었다가, 적의 좌우군에게 허리를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적의 좌우군을 먼저 무너트린 연후에, 상황을 봐가며 중군의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게 낫다는 거로군.”
지원 시기는 당연히 중군의 상태, 그리고 진천이 어떤 상황에 몰렸는가에 따라 결정할 것이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하하하, 참으로 훌륭한 전략일세.”
웃음까지 되찾은 지백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좌우군에 전령을 보내서 줏대 없이 움직이지 말고, 최대한 적의 좌우군을 무너트리는 데만 집중하라고 당부해야겠어.”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말이야. 검후는 무사했으면 싶군. 외모를 떠나 그처럼 뛰어난 무인을 죽게 하는 건 낭비 아닌가.”
윤갈은 내심 한숨을 쉬면서도 겉으로는 웃었다.
“검후는 뛰어난 고수입니다. 그녀 옆에는 천하의 고수가 호위를 서고 있지요. 적들의 공세가 아무리 거세도 그녀를 어쩌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강호의 무인 아닙니까. 진 방주가 죽어서 싸울 명분을 잃고, 자기들의 안위까지 위태로우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알아서 도망칠 겁니다.”
“허험, 단순히 무사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꼭 내 옆에 두고 큰일에 쓰고 싶어서 그러네.”
결국, 혁련미림의 아름다움이 탐나서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속내였다.
윤갈은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수님의 뜻이 그러하시면 그녀가 무사하도록, 그리고 원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손을 써보라고, 지 장주에게 말을 해두겠습니다.”
물론, 윤갈은 지백요의 바람대로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어수선함을 이용해 혁련미림과 탕난 둘 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죽이라고 사주할 생각이었다.
* * *
진천은 어자에게 지시했다.
“달려봅시다.”
어자는 고삐를 흔들고, 네 마리 말을 능숙하게 조종하여 대지를 내달렸다.
추가 지원을 받아내 100대에 이른 다른 중군의 전차들도 뒤따라 달렸고.
지금쯤 아군의 좌우 군장들은 놀라고 어이없어하고 있을 거다.
전차는 배정된 보병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단으로 움직였다가는 앞을 막고 좌우로 진입한 적의 보병에게 공략될 수 있어서, 매우 위험했다.
하지만.
“더 빨리 갑시다.”
한층 전차의 속도를 높이게 했고, 좌우로 날개처럼 길게 자리 잡아 따라오는 전차들도 망설이지 않고 보조를 맞추었다.
상황을 파악한 적군은 진격 속도를 높였다. 도강하는 걸 방치하고,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까지 주었으나, 전투에 돌입한 만큼 전차들을 고립시켜 완파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을 거다.
어느덧 아군의 병력과 거리가 크게 벌어지고, 적군과는 한층 가까워졌다.
어자에게 지시했다.
“늦추세요.”
어자가 전차의 속도를 줄였다.
자연스럽게 좌우 전차들의 속도도 줄었다.
어자에게 지시했다.
“정지하세요.”
어자는 전차를 완전히 멈춰 세웠다.
마치 너무 앞서 달렸고, 보병들이 너무 뒤처졌음을 뒤늦게 깨닫고 당황하여 멈춘 것처럼.
다른 전차들도 우르르 섰다.
어자에게 지시했다.
“돌리세요.”
어자는 능숙한 솜씨로 고삐를 흔들어 네 마리나 되는 말 머리를 어려움 없이 돌렸지만, 전차의 크기와 움직임 때문에 크게 반원형을 그리느라 완전히 돌아서 때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다른 전차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적군과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달려요.”
어자가 고삐를 흔들었고, 말은 온 힘을 다해서 땅을 박차며 나아갔지만, 속도가 정상 궤도에 오르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반면 적군의 전차는 속도를 더 높이며 달려왔다. 발로 뛰어야 했던 보병들이 급격히 뒤처지고 있었으나, 그들은 오히려 고삐를 흔들고, 채찍질까지 하며 말을 재촉했다.
지한위조연합 중군의 전차들이 속도를 한껏 올리기 전에 따라잡을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서였다.
두두두두!
중행범연합 중군의 바람대로 확실히 추격 거리는 좁혀졌고, 지한위조연합 전차들은 아직 최대치의 속도를 내지 못했으며, 지한위조연합의 보병들이 합류하기까지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팽찬을 비롯한 각 전차의 거좌(주인)들이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이어서 진천을 보았다.
아직은 아니다.
그래서 고개를 흔들었다.
적군의 전차들이 추격 거리를 더 줄였다.
거좌들이 또 돌아보고 쳐다봤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래서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쿠쿠쿠쿠쿠-
적 전차들의 바퀴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흥분한 적군 중군장의 말도 들렸다.
“크하하하! 중군장이 누구냐! 나는 중행범연합 중군의 장 최길이다! 꽁지 빠지게 도망치지 말고, 당당히 나와 맞서라!”
최길은 중행열의 애첩인 여동생 요시가 이불 속에서 열과 성을 다해 청원한 덕에 중군장이 된 자였다.
사실 능력이 없는 자는 아니었다. 대도를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는 인근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용력이 뛰어난 장수였으니까.
그러나 용력만 뛰어나다면 거좌를 호위하는 거우가 되어야지, 군장을 맡아서는 안 된다. 군장은 이럴 때 더욱 냉정하게 상황을 살피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길은 냉정하지도, 냉철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쫓아라! 저놈들의 엉덩이에 창을 꽂아주자꾸나!”
오히려 무리를 다그쳐 더욱 가까이 붙었다.
뒤를 돌아보았고, 이번엔 다른 전차의 거좌들이 눈으로 묻기도 전에 손을 들었다.
거좌들은 즉시 거자들을 어깨에 들쳐메고, 거우와 함께 난간을 박차며 뛰어올라 달리는 말에 올라탄 후, 전차와 말을 잇는 고리를 잘랐다.
사실 거자만 본래부터 전차를 타던 이들이고, 나머지 거좌와 거우들은 경공을 익힌 낭인들로, 처음으로 전쟁 중에 전차에 올랐다.
승마술은 최근 훈련 중에 배운 것이고.
히히힝-
몸이 가벼워진 말들은 쏜살처럼 앞으로 뛰어나갔고.
콰쾅-
마차는 앞으로 기울며 크게 뛰어올랐다가 땅에 떨어지거나, 앞으로 기울어지며 들이박고 파편을 흩뿌리며 격렬히 뒹굴었다.
그리고.
쿠광-
창이 닿을 만큼 바짝 따라붙었던 적의 전차들은 갑자기 치솟았다가 떨어진 전차에 깔리고.
“멈… 아악!
앞을 막은 전차를 피하지 못해서 전속력으로 들이박아, 함께 뒹굴었다.
수백 대의 전차가 부서지며 뒤엉키고, 피와 살, 비명까지 더해지며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그러나 참상을 만들어낸 팽찬과 낭인 무리는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달렸다.
곧 두 배나 많은 적의 보병이 밀물처럼 들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천은 그들과 함께 가지 않고 남았다.
왼손에 조을에게 빼앗은 창으로 만든 지팡이를 들고, 반파된 전차 아래에 등을 지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수만의 병력이 마주하여 달려오는데, 폭풍이 오기 전날의 밤처럼 고요하구나.”
그냥 고요한 게 아니라, 양측이 일으키는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주위의 모든 소음을 잡아먹으며, 하늘이 세찬 소나기를 퍼부을 때처럼 고요했다.
고통이 극단에 이르면, 오히려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가 없다더니,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다.
온갖 문제와 걱정, 불만, 다툼들을 집어삼키며 그저 서로 죽고 죽이며 승리와 패배라는 폭력적 결과로 단순화시켜버리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전이 일어나 진나라의 백성들이 고초를 겪는 게 아니라, 정치하는 귀족들이 자기들의 무능으로 나라가 어렵고 백성들이 고난에 빠지게 된 걸 감추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닐까 하고.
그렇다면 귀족들을, 왕족들을, 정치하는 자들을 다 죽이면 전쟁을 겪지 않게 되는 걸까?
‘알 수 없지.’
그런 세상이 존재할 수나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물이 고여 썩고, 악취를 풍기는데, 트일 길을 만들지 않고 계속 고이고 고이게만 하면, 더는 막을 수 없어서 걷잡을 수 없이 터지는 게 전쟁이다.
그러니 의협이란 물이 썩어 악취를 풍기지 않도록 애초부터 고이지 않게 애쓰는 행위이며, 모른 척 방치했다면 가래로 막을 일을, 먼저 나서서 호미로 막아내는 행위가 아닐까.
하지만 이미 고인물이 터졌다면, 늦은 걸까?
맑은 향기와 달리 악취는 멀리 가지 못한다.
악취란 모두가 괴로워하니, 그 근원을 미워하고 없애려 하니까.
그렇기에.
‘늦은 건 없다.’
일이 벌어지고도 최선을 다해 악취를 없애려 노력하고, 그래서 없앨 수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저벅저벅저벅!
등진 전차 뒤로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적의 장수가 병사들을 다그치는 고성도 들려왔다.
“걸음을 늦추지 마라! 창을 들어라! 머뭇거리는 자는 군령으로 다스려, 목을 칠 것이다!”
눈을 뜨고 일어났다.
이제 썩은 것을 도려내고, 악취를 제거하고, 맑은 향기를 되찾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