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 fragrance goes ten thousand miles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163. 존재하지 않는다
제갈신기의 요청에 호응하여 소와 다수의 교도들을 이끌고 합류하여 수리 시설 확장 작업 중인 장무구를 찾아갔다.
장무구와 교도들은 나를 보자마자 우르르 몰려와 무릎을 꿇었다.
“공자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내가 완전히 회복한 모습인데도 누구 한 명 놀라지 않았다.
이들의 속성을 대략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 역시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곧 사방의 군웅이 주나라 왕실과 함께 허현을 노릴 것입니다. 교도들은 허현의 현민들과 협조하여…….”
길게 설명하고, 설득할 것도 없었다.
“공자님의 명을 따릅니다.”
광적인 신념과 믿음이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평천우명교는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빛을 쫓을 것이니, 평천우를 버리고 명교로 이어가도록 하세요.”
나는 그저 어둠보다 빛을 지향하고, 악보다 선을 쫓도록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 내 역할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명교를 창안하신 공자님의 가르침과 지도에 깊은 존경과 변함없는 순종을 바치고, 따르겠습니다.”
이들의 속성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명교가 이후로 어찌 나아갈지 감히 예측할 수 없었고, 나는 교도들의 외침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서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어 붉은 노을이 지평선을 따라 짙게 드리워, 덩그러니 솟아 있는 동산을 따스하게 덮었다.
동산의 밑자락에 이르고, 걸어 올라가 무덤 앞에 섰다.
풀이 많이 무성하게 자라 있을 줄 알았는데, 주변이 제법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동안 누군가 무덤을 돌보았다는 뜻이고, 자연스럽게 황보호한이 떠올랐다.
취옥장을 옆에 내려놓고, 간혹 유별나게 성장이 빠른 풀을 뽑으며 물었다.
“진 상궁, 참 좋은 사람이죠?”
황보호한뿐만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주위에 좋은 사람이 참 많았다.
동산을 올라오는 혁련미림과 탕난도 마찬가지.
“두 분께 수고를 끼치네요.”
저 둘은 안가의방을 나올 때부터 멀찍이 거리를 둔 채로 나를 따라왔다. 아마 그 이전부터 나를 지켜보았으리라.
감시의 목적이 아니라, 나의 안위를 걱정해서일 테고.
혁련미림은 빙긋이 웃었다.
“수고는요. 내가 좋아서 따라다닌 건데요.”
반면 탕난은 투덜거렸다.
“수고하는 줄 알면 작작 돌아다니지, 회복하자마자 여기저기 뭘 그렇게 싸돌아다니나. 어쨌든, 그 건방진 말투와 작별하고, 본래의 진 방주로 돌아와 다행일세.”
“탕 선배, 그동안은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건 여기가 끝입니다. 혼마가 찾아오기 전까지, 꼼짝도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방해할 사람도 없고, 무공을 수련하기 좋은 장소이긴 하군.”
사실 무공 수련에 적합해서 이곳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무공보다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왔습니다.”
마음을 닦기에 진 상궁의 옆에 있는 것만큼 좋은 곳이 없으니까.
탕난은 이게 무슨 소리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
“예전에 나는 몸이 강해지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생에서는 마음은 오히려 불필요하고, 감정은 방해물인 줄 알았고, 상승의 경지에서 벽에 부딪힐 때마다,
강력한 호적수와 마주쳐 위기에 빠질 때마다, 마음 탓을 하고,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다는 선택을 했다.
탕난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사실 강해지면 해결되는 것도 사실이긴 하잖는가?”
“그렇죠. 웬만해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강해지기만 해서는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합니다.”
“나를 왜 이겨? 혼마만 이기면 되지.”
탕난에게는 어이없는 고민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달랐다.
혼마를 이기고 난 후에는?
전생처럼 허망함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면?
혁련미림이 물었다.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는 건 무슨 의미죠?”
“스스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두려워하니, 부정적인 나를 이겨내지 못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사랑도 할 줄 모르는 걸 말합니다.”
그건 살아도 산 게 아닌, 죽음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전생에서 천하의 고수들을 모두 이기고도 죽기를 선택했던 거고.
“예전의 나는 외롭고 두려워, 결국 감정을 느끼지 말자 작정하고, 이도 충분하지 않아서 긍정적인 나를 죽이게 되었죠.”
“그렇다면 방주님은 부정적인 자신을 이길 만큼 강해지겠다는 거네요.”
“그래서 나를 알려고 하는 겁니다. 어느 선인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으며, 적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며,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면 싸움마다 반드시 위태롭다. 이제까지 나는 부정적인 나도, 긍정적인 나도 몰라, 매번 위태롭기만 했으니, 작정하고 둘 다 알아보려고 합니다.”
더불어 왜 강해지려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관한 답도 얻을 수 있게 되리라.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되면 혼마도 이길 수 있게 되나요?”
“모르겠습니다.”
탕난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결론이 뭐 그래. 모르면 어쩌자는 건가?”
“단편적으로 판단하여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대로는 혼마를 이길 수 없습니다.”
혼마는 전생의 나를 습득하여 무상제일공을 얻었고, 혼마진기와 천마귀공을 합일하여 천마신공(天魔神功)을 완성함으로써, 극마(極魔)의 경지에 올라섰다.
물론, 나는 전생의 나와 합일하며 경험이 증가했고, 감정을 되살려 막대한 선천기도 되찾아, 이기지 못할 상대가 없으나, 혼마는 예외였다. 자신의 혼정에, 천마와 제자들의 마정까지 흡수한 혼마의 기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니까.
현생의 나보다 몇 배 오래 살았던 만큼 단련된 육신의 우위 또한 무시할 수가 없고.
그래서 별궁에서도 속절없이 당했던 거고.
“그렇다면 더욱 무공을 연마해서 강해져야지.”
“탕 선배. 내가 짧은 기간에 전력을 다해서 무공을 연마한다고 해도 혼마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자포자기하며 마음이나 다독이고 있겠다고?”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허무맹랑한 말장난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다른 누구의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다.
역시나 탕난은 수긍하지 못했다.
“성찰은 혼마를 이기고, 위기를 다 극복하고 난 뒤에, 어디 동굴에 들어가 벽을 거울삼아서 좌선하며 하는 거지.”
그러나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당장 경지가 높아지지 않는다고 실망하여 무공을 놔버려선 안 돼. 그건 무인의 자세가 아닐세. 단시간에 경지를 높일 수는 없겠지만, 실전 경험은 쌓을 수 있네. 초식도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비무로 가능하네. 내가 비무 상대가 되어주지. 막내 아가씨도 함께. 그렇죠, 막내 아가씨?”
“저야 도울 수 있으면 좋죠.”
“감사한 제안이지만…….”
아니다.
‘오만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중에 가장 큰 것이니, 혼자서 답을 얻고, 그것이 진리라는 생각이 오만이 아니면 무엇인가.’
나 혼자 잘난 줄 알고,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하려는 태도 또한 내가 저지란 과거의 잘못 중 하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그렇게 하시죠.”
마음을 살피고, 성찰하는 건,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대소변을 해결할 때도 할 수 있으니, 시간이 부족하다며 나를 돕고자 하는 좋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판단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일어나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해가 창창한 낮과 달이 밝게 빛날 때면 혁련미림과 탕난을 상대하며 무공을 연마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이성과 감성을 분리하여 시간을 보냈다.
“고기가 다 구워졌습니다.”
이성은 사냥하고, 요리하고, 먹고, 자고, 대화하고, 무공을 논하는 데 사용하고.
‘우주 만물은 다 실체가 없이 공허한 것이지만, 인연의 상관관계에 의해 그대로 제각기 별개의 존재로서 존재하느니…….’
감성은 무상제일공을 운용하면서 칠정오욕을 관조하고, 그러한 감정들이 요동치고 번뇌에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탐구하고, 솔직하고 거침없이 드러내고, 명확하게 밝은 상태를 터득하고자 했다.
시간이 흘러.
“방주님, 엄청난 숫자의 무림인들이 허현을 찾아왔습니다.”
송웅에게서 천하제일무술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찾아온, 문파에 속하거나 낭인으로 떠도는 온갖 무인들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진 방주, 지금 남의 초나라, 북의 진나라, 동의 제나라, 서의 진나라…….”
공손앙에게서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강국뿐만 아니라, 각기 그들을 뒷받침하는 연나라, 송나라, 위나라, 한나라 등의 중소 제후국도 군대를 이끌고 허현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궁쾌, 이릉 등도 때때로 찾아와 대회를 준비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과정을 전했다.
하지만 나는 듣기만 할 뿐, 일절 지시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
저들도 이제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 경험을 축적하여,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히 제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시시콜콜 캐묻고, 왈가왈부하는 건 잔소리에 불과하고, 방해만 될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제를 오늘처럼, 오늘을 내일 같이 일관되게 무공을 연마하고, 마음을 수련하며, 누구든 찾아올 때마다 변함없이 흔들림 없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면서 평온한 태도로 맞이하고, 들어주고, 배웅했다.
허현으로 가야 할 때가 되었을 때 탕난이 물었다.
“어때, 혼마를 이길 수 있겠나?”
“모르겠군요.”
혁련미림은 말했다.
“아버지가 그랬어요. 무리를 이끄는 자는 크게 대단하고, 특별해야 하는 게 아니라고요. 평소 동료와 수하를 믿으며 일을 맡기고, 다 함께 싸워야 할 때 제일 앞에 서는 용기를 보이면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방주님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모르겠다는 대답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조금 복잡한 표정의 탕난도 나름의 위로와 응원을 했다.
“솔직히 진 방주가 이렇게 강한데도 진다면, 천하의 그 누구도 혼마를 이길 수 없네. 인생 뭐 있는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죽을 때 여한이 없으면 되는 거지.”
겉으로 어떻게 보이든 나는 담담했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무림인이 허현에 들어와서 대회가 열리길 기다릴 때, 마치 때를 노린 듯 거대한 병력과 함께 등장한 군웅들이 일제히 허현을 포위하여, 항복을 요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마치 함정에 빠져 천하의 고수들과 수천의 병력을 홀로 맞서다가 오욕칠정을 완전히 없애버렸다고 생각했던 전생의 그 날처럼, 더 그럴 수 없이 평온했다.
그런데 경공을 펼쳐 순식간에 허현에 들어섰을 때,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다.
본래부터 허현에 살았던 사람들, 내가 허현에 들어온 이후에 허현으로 이주한 사람들, 병사들, 낭인들, 산융족, 그리고 천하제일무술대회에 참가하거나 구경하러 방문한 무림인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들 중에는 천하의 고수들도 있고, 전쟁에 이골이 난 병사들도 있었지만,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공포심을 느끼는 대상은 당연히 드넓은 논밭 너머에 진을 친, 셀 수도 없이 많은 병력이었다.
허현은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와 절망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잘못된 건 저들이 아니었다.
‘또 나만 생각했다. 내 몸 상태, 내 마음 상태, 내 감정이 냉철해졌으니, 다른 건 상관없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러니까 저들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나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다.
때로 답답하고, 짜증 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과 함께이고, 인원의 많고 작음을 떠나 그사이에 섞여 있을 때 진정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내가 살아가야 할 목적을 알고,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
아니, 원래도 알았고, 중간에도 몇 번이나 실감했으나, 나 자신만 중시하다 보니 타인의 고통과 절박함을 외면하며 자꾸 잊기를 반복했던 거다.
그래서 지금도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애초 고민은 필요 없었다.
답은 간단했기 때문이다.
저들을 지켜야 한다.
내가 강할수록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더 늘어나겠지.
나를 아는 이들이 다가와 말했다.
“모든 길의 폭을 줄였고, 논과 밭의 고랑을 역방향으로 했기에 저들의 전차는 무용지물에 가깝소.”
“격전이 벌어지면 명교에서 제공한 수많은 소를 저들 쪽으로 일제히 몰아갈 것이니, 단번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저들은 복우산에 광산이 있는 걸 모르고, 허현이 뛰어난 장인들과 대장간을 갖추고 있음을 모르고, 그래서 허현의 장정들이 모두 무장한 줄도 모르니, 엄청나게 당황할 거요.”
모두 웃으면서 자신들이 불리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잔뜩 긴장한 낯빛까지 숨기진 못했다.
“진 방주, 미안하네.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무림인들은 모두 싸우지 않을 거라며 중립을 선언했네. 일부는 대회와 상금을 미끼로 자기들을 끌어들였다고 분노하기까지 하니…….”
그래서 나를 원수 보듯 노려보았군.
이때, 북쪽 병력이 좌우로 갈라지고, 크고 화려한 마차가 나타났다.
말 수십 마리가 끌고, 전차 열 대를 합쳐 놓은 듯한 크기, 여러 깃발과 금은 장식으로 치장하여 높이 세운 대까지, 패자로 칭송받는 제후들도 감히 누릴 수 없는 사치였으니, 주나라의 왕을 태운 마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