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18
제18화
김진서는 나를 본 즉시 담배를 숨기곤, 능숙한 솜씨로 불씨를 털어 껐다.
급한 대로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린 그녀는, 이내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으악, 윽.”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김진서는 도망치려던 도중 신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가만 보니 발목에도 깁스를 차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성한 곳이 없었다. 여기저기가 다 상처고 부상이었다.
쓰러진 이후에도 김진서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끙끙거렸다.
얼굴은 일그러졌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누가 봐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양새였다. 당장이라도 까무러쳐 쓰러질 정도로 고통이 억세 보였다.
부상이 심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부상에 비해 그 통증이 과했다.
“너 설마.”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했다.
인내의 성호를 하사받은 김진서는 ‘철인의 축복’을 다룬다. 왼손으로 타인의 고통을 빼앗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넘기는 축복.
그녀는 사건 당시 철인의 축복을 사용하여 30명분의 고통을 흡수하였다. 자기 몸을 건사하기도 힘든 와중, 남의 고통마저 자신이 떠안고 만 것이다.
혹자는 그것을 숭고한 희생이라 평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바보짓이었다.
내색은 않지만 김진서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과 파르르 떨리는 입술, 그리고 멀어진 시선이 그것을 증명했다.
희생의 대가는 언제나 참혹하다. 그렇기에 나는 희생이라는 말을 싫어했으며, 희생을 자처하는 이들을 어리석다 여겼다.
내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그러게 왜 그랬대.”
나는 고통에 떠는 김진서를 보며 말했다. 환자에게 할 만한 말은 아니었으나, 내 눈에는 그만큼 김진서가 바보로 보였다.
그렇게 아파할 거면, 애초에 희생을 자처하질 말았어야지.
……나도 그란브와의 권능을 사용하다 거의 죽을 뻔하긴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었다. 나 역시 손해를 감수해 가며 희생을 자처했으니까.
“큼.”
헛기침으로 머쓱한 마음을 털어냈다.
김진서는 여전히 심호흡을 하며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멍한 눈이 이윽고 나를 쳐다보았다.
“……말할 거야?”
“뭘.”
“이거.”
김진서가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가리켰다.
“뭐. 담배 피운 거 말할 거냐고?”
“응.”
“글쎄, 어쩔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발을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얼마나 아팠으면 이런 것에 의지하려 했을까, 하는 측은함만 들었을 뿐이다.
내 말을 들은 김진서는 고개를 푹 떨구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진짜, 흑, 아파.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돼? 이거 걸리면, 나…….”
목소리에 울음기가 가득했다. 고통으로 감정이 격앙된 모양이었다.
말에 두서는 없었지만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대충 봐달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아프면 다른 사람한테 넘기면 되잖아.”
“……뭘?”
“철인의 축복. 오른손으로 다른 사람한테 고통 넘겨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오른손을 상대의 이마에 대면 고통을 넘겨줄 수 있다. 반대로 왼손을 이마에 대면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조건만 충족되면 시전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능력이 발동된다.
김진서가 붉어진 눈시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미쳤다고, 내가 이걸 누구한테 넘겨. 나는, 흑. 쓰레기 아니거든. 너처럼.”
그녀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나름 그녀를 걱정해서 한 말인데, 쓰레기 소리를 들으니 내심 기분이 상했다.
“내가 왜 쓰레기야.”
“남이 아플, 거면. 흐윽. 내가 아픈 게 나아.”
“아, 그래.”
호구 소리 많이 듣겠네.
“그리고, 말 함부로 하지, 마.”
김진서의 목소리는 이따금 찾아드는 고통으로 드문드문 끊겼다.
“네가 대신, 아파줄 것도 아니면서, 말만 쉽게. 흑, 하지 말라고.”
“그럼 나한테 넘기든가.”
건넨 말에, 그녀가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이윽고 그 눈에 짙은 회의와 불신의 빛이 감돈다.
“하. 뭔 소리, 하나. 했네.”
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눈은 먼 허공을 쫓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예의상 건넨 말이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며 기대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막상 받을 생각도, 흑. 없으면서. 말은 쉽지.”
그녀가 뱉은 말에서 나는 징후를 엿보았다.
힘겨운 삶을 사느라 남에게 의지할 겨를이 없었던 이들은 두 가지 형태로 일그러진다.
첫째, 애정 결핍. 이 경우 타인에게 과하게 의지하려고 들며, 의지할 대상을 잃으면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둘째, 인간 불신. 오직 자신만이 불행하며, 타인의 불행은 별거 아니라 생각하는 부류.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극도로 피하며, 은연중에 타인을 멸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때로는 인간 혐오로 번지기도 한다.
김진서의 경우 후자인 듯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녀가 피렌체 이사장의 딸이라는 사실만 소문으로 들어 알 뿐이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토록 타인을 불신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두 부류는 포교하기가 쉬워. 이런 사람들은 의지할 데가 없어서, 으레 종교와 신에 의지하곤 하거든.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을 보면 적극적으로 포교를 해라.”
아버지는 내게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주며, 위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았다.
그날 집안일도 다 아버지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에도 보통 아버지가 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런 김진서의 심리를 잘 이용해 보기로 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나 혼자, 아윽. 일어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어? 너, 너 뭐 해.”
나는 김진서의 오른손을 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지만, 고통 때문인지 부상 때문인지 김진서는 저항하지 못했다.
툭.
이윽고 무엇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숨이 멎고 전신의 근육이 빳빳하게 경직됐다. 손끝과 입술과 눈꺼풀이 덜덜 떨렸다. 도저히 의식을 붙잡기가 어려웠다. 뇌가 저릿저릿 아리기까지 했다. 불어오는 바람조차 칼날처럼 쓰렸다.
고작 몇 초. 그것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김진서는 이런 통증을 며칠씩이나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와 달리 부쩍 예민하던 그녀의 언행도 이해가 갔다. 이정도로 아프면 타인을 배려할 겨를조차 없을 것 같았다. 감히 말하건대, 성인군자가 와도 욕지거리를 내뱉을 정도다.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기를 찰나.
이윽고 떨림이 멎었다. 호흡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나른한 졸음이 밀려들었다. 통증은 일찍이 사라지고 없었다.
[폭탄 돌리기냐? 일단 내가 흡수를 해주기는 했다. 따끔하군.]렉바가 고통을 흡수해준 덕이었다.
철인의 축복을 통해 넘겨받은 고통은 일종의 ‘저주’ 취급을 받으므로, 렉바에게 그 고통을 넘기는 것이 가능했다. 인간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긴 세월을 살아온 렉바에게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짝 따끔한 정도다.
“뭐 해.”
김진서가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고통을 나에게 넘긴 덕분에 말에는 끊김이 없었다.
“뭐 한 거야? 다시 줘. 오라고, 빨리……!”
그녀가 허둥대며 왼손을 내 이마에 얹었다. 고통을 다시 빼앗아 올 생각인 듯했다. 그러나 미수에 그쳤다.
그녀의 왼손에 붕대가 감겨 있기 때문이었다. 김진서가 붕대에 감긴 손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아. 견딜 만해.”
정작 고통을 견딘 것은 내가 아니라 렉바였지만, 아무튼 견딜 만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거짓말하지 마. 그러다 기절하면 어쩌려고, 멍청아. 뭐 하는 거야, 진짜……!”
허나 김진서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왼손을 필사적으로 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어떻게든 고통을 회수할 생각인 것 같지만 어림도 없었다.
붕대 너머로는 철인의 축복이 발동되지 않으니까.
어찌됐건 김진서의 고통을 빼앗는 것에는 성공했다. 이제 다음 행동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피잉─!
날카롭고 가느다란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그와 함께 김진서의 상처가 치료되었다.
정확히는 ‘복원’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복원 주술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잘하는구나. 쓰라고 할 때는 안 쓰고, 막상 쓰지 말라고 할 때 쓰는 게 참 마음에 안 들지만.]렉바가 내 주술에 대한 감상평을 읊었다.
내가 김진서에게 사용한 것은 ‘하급 복원 주술’. 복원 주술만큼은 통달의 경지에 이른 나이기에, 하급 복원 주술을 사용할 때는 주술진을 그릴 필요조차 없었다.
이것으로 군데군데 있던 잔상처가 치유됨은 물론, 떨어지기 직전이었던 그녀의 손가락도 완벽히 접합되었을 것이다.
“너 또 뭐 한 거, 야?”
김진서가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치유. 손가락 붙었을 거야.”
실제로는 ‘복원’이었지만, 어찌됐건 상처를 치료한다는 점에선 같았다.
내 말을 들은 김진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너. 실습 때는 치유 실패했잖아.”
“성공했는데? 하급 치유.”
“그러니까! 그게 실패잖아!”
내 기준에선 엄청난 성공이었는데……. 내심 풀이 죽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김진서는 사색이 된 얼굴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붕대를 감은 왼손을 부여잡았다.
“이거, 대충 치료하면 흉 진다고. 치유 사제님이 나중에 안정되면 하라고 그랬는데.”
“아, 그래?”
“자꾸 쓸데없는 짓거리를 해, 왜? 흉 지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김진서는 혹시라도 흉터가 남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재차 말하듯 나는 복원 주술에 있어서는 통달의 경지다.
하급 복원만으로 잘린 팔도 접합할 수 있는데, 하물며 손가락 접합 따위에 흉터가 남을 리가 없었다.
“흉터 남으면 책임질게. 근데 어차피 안 남을 거야.”
“하급 치유인데 어떻게 흉터가 안 남아. 또, 말만 쉽게…….”
김진서가 내게 울분을 토하려 했으나,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말을 멈추었다.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얼추 짐작이 갔다.
나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확신이 있을 때만 말을 한다. 아까도 그랬듯이.
“집 가서 붕대 풀고 확인해 봐. 정 걱정되면.”
“…….”
김진서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 눈빛에 걱정과 초조, 그리고 약간의 분노. 그 외 무력감과 상실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비쳤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어색한 정적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었다.
부우우웅──!
그때, 우렁찬 배기음과 함께 골목 어귀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흰색 외제 차였다.
차창 너머로 낯선 남자가 고개를 내밀어, 나와 김진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가씨?”
행색과 말하는 태도로 보아, 김진서의 운전기사인 듯했다.
운전기사는 눈물을 흘리고 있던 김진서를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나를 흘겨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에는 명백한 적개심이 깃들어 있었다.
조금 억울했다. 김진서를 내가 울린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네가 울린 게 맞다.]렉바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한창 복잡해질 무렵, 김진서가 차에 탔다.
차는 금세 골목을 빠져나가 어딘가로 향했다. 골목에 매캐한 담배 냄새와 매연 냄새가 감돌았다.
[내가 그냥 지나가라고 했을 때 갔어야지. 뭘 기대한 거야? 도와주면 네놈에게 반할 거라고 생각했나?]“이사장 딸이니까 친해지면 언젠가 도움이 될 것 같았죠. 잘된 것 같지는 않지만.”
[친해지기는 무슨. 네놈을 피해 다니지만 않아도 감사할 지경이다. 내가 보기엔 그래.]렉바가 태연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독설을 뱉었다. 할 말이 없었다.
[너는 쓸데없는 정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걸 부끄러워하지. 언젠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다가갔다, 라는 말도 거짓말이고.]“좀, 그만. 머리 아파요.”
“아, 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김진서는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웠다. 오는 내내 마음이 우울했다.
고통이 사라진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손가락이었다.
‘……무서워.’
붕대를 풀기가 두려웠다. 하급 치유를 통한 접합 치료는 반드시 흉터가 남는다.
심지어는 접합이 제대로 안 되어, 손가락 모양이 기괴하게 뒤틀려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 평생토록 손가락이 기형인 채로 살아야 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흉터 남으면 책임질게.”
문득 도선우의 말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뭘 믿고 저리 당당한 건지 모르겠다.
하급 치유도 제대로 못 하고 쩔쩔매던 주제에. 수면 조절 하나를 못 해서, 입학식부터 잠이나 잤던 주제에. 악마종 퇴치 실습 때도 개인행동이나 하고……!
물론 그때는 도선우 덕분에 1등을 하긴 했지만, 아무튼.
김진서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채로 그를 원망했다.
한참 속앓이를 하던 그녀는, 이윽고 마음을 다잡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발.”
그녀는 걸터앉은 채로 천천히 왼손의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붕대가 한 꺼풀 벗겨질 때마다 떨림이 거세졌다.
그렇게 붕대가 모두 풀리고, 잘렸던 중지가 드러났을 때.
“어. 어? 헐. 와!”
김진서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촉촉했던 눈시울이 단숨에 말랐다.
말끔했다.
접합부는 흉터 하나 없이 말끔했다. 접합도 아주 잘됐다.
김진서는 멀쩡해진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또 만져도 보았다. 감각도 감촉도 전부 온전했다.
“……!”
김진서가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지르며 방방 뛰었다. 이 정도면 내일부터 당장 일상생활을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일상생활만이 아니다. 그간 쉬었던 운동을 시작해도 될 정도였다.
김진서는 ‘흉터가 남으면 어떡하지’, ‘또 버려지는 건 아닐까’ 하며 의미 없는 걱정을 하던 과거의 자신을 비웃었다. 절대 흉터가 남지 않을 거라던 도선우의 말이 맞았다.
……도선우의 말이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도선우의 앞에서 무척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왜 그랬을까.
기분이 안 좋았다는 말로 변명하기에는, 도선우에게 너무나 큰 빚을 졌다.
하급 치유에 쩔쩔매던 그가, 어떻게 이 정도로 완벽한 치유를 해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의문을 가지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 먼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