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117
114. 유명세 (3) >
114.
완벽한 준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준비하는 주체가 완벽하지 않기에 모든 상황을 대비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자위하기 위해 최선이라 말하는 건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거의 3주 동안 무수히 많은 행사를 치르며 여러 사람을 만나 앞으로의 일정을 조정한 이한은 훈련실에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복잡한 문제가 산재해 있었지만 그래도 테라는 공멸의 길을 걷지 않게 되었다. 일단 내가 그것을 막을 것이다.
루퍼스 사령관의 발언이 다시금 떠올랐다. 정치질 좀 해야 할 거라고? 필요하다면 한다. 유니온의 정점에 앉아야만 다가올 적을 상대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한다.
위이이잉!
그때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사령관님!”
훈련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바로 빌리였다.
“무슨 일이야?”
“습격입니다.”
“습격?”
이곳은 유니온의 중심부에 속하는 테라네스다. 다른 곳도 아니고 테라네스를 습격한다고? 침공이 시작된 건가? 짧게 반문하던 이한은 대번에 안색을 굳히며 빌리에게 되물었다.
“외계종족인가?”
“외계종족? 외계종족이라니요? 뭐가 되었든 그건 아닙니다. 엠파이어의 습격입니다!”
“엠파이어?”
에메스토 공작은 자신을 공격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칼란두를 황제 역시 스톰을 공격하면 공격했지 테라네스에 별도의 병력을 파견할 이유가···. 거기까지 떠올린 이한은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했다.
“설마 이건···. 내통인가?”
“내통?”
빌리는 이한의 말을 곱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급히 다시 말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슈트를 착용하시고 전투에 대비하십시오.”
이한은 빌리의 말대로 나노슈트를 걸치면서도 다소 느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여긴 테라네스다. 슈퍼솔져가 쳐들어와도 ESP 능력자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야.”
“통상적으로는 그렇겠지요.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다. 경보음도 상당히 늦게 울려 퍼진 상황입니다. 이걸 고려하면 사령관님 말씀대로 내통일 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적들 또한 ESP 능력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대화하는 사이에도 경보음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ESP 능력자가?”
ESP 능력자가 득실거리는 테라네스를 침공할 정도로 많은 ESP 능력자를 보유한 곳은 엠파이어 외에는 없다. 뉴트럴도 테라네스를 침공할 수준은 아니다.
콰아아앙!
콰아앙!
이윽고 테라네스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전투소음 역시 울려 퍼졌다.
‘이런 대대적인 규모의 침공이라면 대공을 방어하는 함대 측에서 먼저 저들을 감지했어야 했다. 이건 일부러 적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뚫렸을 리가 없어.’
경고음조차 한참 뒤에 울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한은 표정을 굳히며 서둘러 여러 무기를 착용했다.
“시에라는?”
“스펙터들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방어선을 무너뜨리면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지라 제가 사령관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빌리보다 이한이 더 강하다. 빌리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구축한 방어선이 무너질까 염려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면 방어선을 유지하고 다른 병사를 보내 합류하도록 전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빌리는 슈퍼솔져였으니까.
“나를 모시러? 그렇군.”
짧게 반문하던 이한은 그 이유를 즉시 알아차렸다. 여긴 타카스 행성이나 정체불명의 행성이 아니다. 바로 테라네스다. 아직 함부로 능력을 보여줄 수 없다.
빌리에겐 이미 자신의 계획을 밝혀 뒀기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슈퍼솔져인 빌리가 온 것이리라. 위험 상황에서도 필요 이상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시에라의 지시였을 수도 있겠지.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피슈웃!
모든 준비를 완료한 이한이 빌리에게 말했다.
“이동하자.”
“예. 사령관님.”
훈련실을 나와 시에라와 스펙터들과 합류하기 위해 움직이던 이한은 주변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하고 빌리에게 말했다.
“상황이 매우 좋지 않군. 적이 그만큼 강력한 ESP 능력을 발휘하는 건가?”
“ESP 능력도 능력이지만 적들은 슈퍼솔져에 준하는 신체 능력에 ESP 능력까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단말기를 조작해보던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쉽게 뚫렸는데? 테라네스를 경계하는 병력은 왜 이렇게 적어?”
“며칠 전 여러 섹터가 ESP 능력자에게 테러를 당했다고 하여 외부로 파견을 많이 나간 상황이었습니다. 사령관님 말씀대로 적과 내통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훈련실에 박혀 있느라 소식을 듣지 못했던 이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내통이든 뭐든 일단 생존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물론입니다.”
크르륵!
그때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슈퍼아머를 걸친 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견하기엔 엠파이어의 슈퍼솔져로 보였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슈퍼솔져는 슈퍼솔져라기보다는 매드솔져에 가까웠다. 병사의 양손은 이미 붉은 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바로 이놈들입니다.”
빌리는 급히 중화기를 들어 사격했다. 그건 이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투두둥! 투두둥!
빌리와 이한이 사격한 탄환은 엄청난 속도로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쇄도했다.
파지지직!
그러나 허공에 스파크만 남긴 채 그 모든 파괴력을 잃고 말았다.
“음?”
이한이 다소 당황한 듯 침음을 뱉자 빌리가 다시 사격을 가하며 소리쳤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기이한 놈들입니다. 이성이 없는 걸 봐선 지독한 생체실험의 결과물로 보입니다. 이런 실험을 자행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갖춘 세력은 엠파이어밖에 없습니다.”
두두두둥! 두두둥!
이한 역시 꿋꿋하게 전진하는 괴물을 향해 연신 사격을 가하며 대답했다.
“지금껏 이 사실을 숨길 수 있던 힘을 갖춘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칼란두를 황제겠군.”
하지만 이한은 눈앞의 괴물 같은 존재 때문에 당황한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크락투의 파장이?’
자신이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 묘한 파장을 잊을 수 없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젠 그것이 크락투가 내뿜는 파장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아니. 아니야. 이건 크락투 라기보다는 클론···.’
콰아아앙! 콰아앙!
그때 통로 벽이 무참하게 터져나갔다. 이한과 빌리는 급히 몸을 던져 폭발을 피했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저벅저벅.
“한 이드라실. 우리 동족의 원수!”
온몸이 푸른빛과 보랏빛으로 뒤덮인 자였다. 그의 상체는 모든 피부가 제거된 것처럼 피부 아래에 자리한 근육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는데 근섬유 하나하나가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고 그곳에서 바로 푸른빛과 보랏빛을 번갈아 가며 내뿜고 있었다.
“내 이름은 클라크다. 군단의 원수 오늘 네 목숨을 취해 동족의 원한을 갚고 군단을 부활시킬 것이다. 그런 후 모든 인류를!”
그는 바로 칼란두를 황제와 대면하던 클라크였다.
하지만 이한은 눈앞에 나타난 클라크의 말을 듣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하! 이런 바퀴벌레도 울고 갈 새끼들 같으니라고.”
이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제약? 목숨을 잃을 위기 앞에는 그런 제약도 아무 의미가 없고 애초에 그런 이능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그간 자신도 놀고 있던 게 아니다. 매 순간 치열하게 생존할 궁리를 하는 게 나다.
“칼란두를 이 새끼도 몹쓸 놈이네.”
타카스 행성에서 괴멸했을 것이 분명한 클론 군단이 어떻게 생존해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어도 칼란두를 황제가 실험하기 위해 몇 놈을 데려간 것이리라.
칼란두를 황제가 어리석은 작자가 아니라면 당연히 그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눈앞에 나타난 놈들이 전부일지도 모르지.
크르르륵!
이한은 자신을 향해 짓쳐온 엠파이어의 슈퍼솔져의 돌격을 슬쩍 피한 뒤 그의 목을 초진동검으로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뿜어져 나오는 피의 색깔이 선명한 붉은 빛이 아니라 검은빛이 다량 뒤섞여 있었다.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지독한 생체실험의 결과물이 분명했다. 그것을 본 이한은 칼란두를 황제를 죽여야겠다고 강하게 마음먹었다.
그때 클라크가 이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더 발악해라. 너의 눈알과 너의 뇌는 네 모든 것을 파먹을 때까지 내버려 둘 것이니.”
“지랄하고 있네. 빌리! 살아남도록!”
클라크 주위로 쏟아져나온 병사들을 바라봤다. 모두 클론 군단이었다.
이한은 그 말과 함께 초진동검을 양손에 나눠쥐고 놈들을 향해 쇄도했다. 클론 군단이 뭐 어떻게 ESP 능력까지 얻은 모양인데 그까짓 능력따위 발휘할 새도 없이 모조리 베어버리면 그뿐이다.
“염려 마십시오.”
빌리 역시 중화기를 들고 사격하며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퉁퉁투퉁!
*
유니온의 묵인 아래 테라네스에 침공이 일어나던 그 시점. 이한을 대신해 스톰을 이끄는 륭샤오핑이 자리한 스테이션에도 적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에스타른족의 기술을 몸에 적용한 슈퍼솔져는 저들의 침투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었고 비단 슈퍼솔져가 아니더라도 스테이션에서 모집한 일반 병사들 역시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저들 역시 향상된 기술이 적용된 라이플이나 쉴드를 이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콰아아앙!
그러나 스테이션이 파괴되는 일은 막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저들의 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것도 아니고 여러 개의 스테이션을 저들의 손에 잃은 후에야 함정을 파고 저들을 끌어들인 상황이라 이미 물적·인적 피해가 상당했다.
어쨌든 함정에 들어온 이들의 면면을 살피니 리퍼, 엠파이어 등으로 구성된 자들이었다. 저들에 의해 파괴된 스테이션의 상황은 그야말로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분노가 들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륭샤오핑은 개인적인 원한까지 그 분노에 더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습격자들을 이끄는 자가 자신의 원수였기 때문이다.
“기스모토 히데키···.”
“내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나? 흠. 함정인가? 함정이라면 여기에 스톰의 주력병력이 모였다는 뜻이겠군. 안타깝지만 너희는 이제 끝이다.”
륭샤오핑은 들끓는 분노와 무관하게 무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륭샤오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폭발이 스테이션 외부에서 울려 퍼졌다.
콰아앙! 콰앙!
그와 동시에 허공에 홀로그램이 생성되며 여러 척의 함선이 스테이션의 공격으로 인해 모조리 파괴되는 모습이 송출되었다.
“너희는 우리의 기술력을 탐하면서 우리가 이미 그 기술력을 병력으로 전환했음은 간과한 모양이로군.”
기스모토 히데키는 적의 주력병력을 상대로 승리할 수 없으면 은신한 함선을 이용해 모든 것을 폭파시킬 예정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적의 주력을 소멸시킬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임무 성공이니까.
임무의 성공만을 위해 살아왔던 삶이다. 임무를 성공시키고 죽는다면 명예로운 죽음이 될 터. 따라서 기스모토 히데키는 임무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이야 어떻게되든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조금 전의 폭발로 함선으로 스테이션을 쓸어버리는 계책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껏 파괴한 기존의 스테이션과 완전히 달랐다. 스테이션을 요새화시켰다니. 이쯤되면 가히 공중요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직접 쓸어버리고 임무를 성공시키면 될 일이니까.
기스모토 히데키는 주변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죽여라! 모조리!”
두두두둥! 두두둥!
그와 동시에 양측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륭샤오핑은 중화기를 들고 기스모토 히데키를 향해 내달렸다. 인고의 시간 끝에 드디어 묵은 원한을 벗겨낼 때가 왔다. 드디어!
륭샤오핑은 들끓는 분노를 차갑고 예리하게 갈았다. 섣불리 상대할 놈이 아니었으니까.
투두두둥!
륭샤오핑이 중화기를 난사하기 무섭게 히데키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륭샤오핑은 당황하지 않고 돌아서며 다시 중화기를 사격했다.
티티팅! 파지직!
히데키는 급히 피했지만 몇 발 스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쉴드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은 가할 수 없었다.
그 가운데 히데키는 몸을 빙글 돌려 륭샤오핑을 향해 초진동검을 유려하게 휘둘렀다.
부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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