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28
28.
이 세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 정도가 나날이 더해가고 있었다.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없던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나를 규정하던 기존의 것들이 모조리 파괴되면 자연스럽게 혼란이 밀려온다.
진천마신공? 초월의 마도서? SSS급 잠재력?
벌써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이름이 뭐였더라? 코스타였던가? 어쨌든 그자가 구현한 가상현실에서 무공, 마법, 초능력으로 대변되는 최상의 능력들이다.
나는 레벨업이라는 기현상을 통해 그 능력을 현상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 이상한 녀석이고.
결국 이 모든 현상은 초자원이라 통칭되는 프로젤과 세라메틱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정리하자면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가상현실에서 활용하게 되면 내 능력이, 현상세계에서 활용하게 되면 초인공지능의 능력이 업그레이드 되는 식으로 구현된다. 세부적인 사항만 조금 다를 뿐 결국 내 전력의 상승이다.
물론 모든 사령관이 프로젤과 세라메틱을 활용해 초인공지능을 업그레이드 하지만 그건 어떤 정해진 시설을 건축하고 더 많은 초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을 뿐이며 무엇보다 사령관의 능력 상승 사례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일단 워의 대답으로는 그렇다.
내게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소리다. 어디 실험실에 처박혀 비명이나 지르고 싶지 않았기에 워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을 금했다. 워가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이 비밀은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다.
스테이션 병사가 고함을 치며 라이플을 겨누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펼쳐진다.
그 기현상 속에서 나는 병사의 등 뒤로 돌아갔고 병사는 내가 있던 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볼 뿐, 내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돌리지도 못했다.
진천마신공? 초월의 마도서? SSS급 잠재력? 이름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현상세계에 구현된 이것들은 구분 없이 얽히고설켜 내게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선사했다.
설정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나 레벨업을 하면 할수록 설정 그대로의 능력을 아니 그보다도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이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떤 게임에서도 이유 없는 레벨업은 없으니까. 현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다른 병사를 가볍게 처리한 이한은 다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이 능력은 가히 대단하지만, 지속성이 좋지 않다. 아마도 초자원의 활용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프로젤과 세라메틱······.’
앞으로 무엇을 하든 간에 최우선 확보해야만 한다. 레벨업의 조건 역시 초자원의 빈번한 활용이고 아마 그것만이 경험, 곧 경험치가 될 테니까.
여기서 문제는 초자원을 원하는 세력은 넘쳐난다는 점이다. 그러니 나는 독불장군할래. 유니온이든 엠파이어든 뉴트럴이든 씨발 다 꺼져! 이러다가 영원히 퇴출될 수 있다. 삶에서. 그럴 이유도 없고.
결국 초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선 최전선에 나가서 싸워야만 한다. 그렇게 싸워서 얻은 초자원을 소속된 세력에 일정량 지급하고 남은 초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자들이 바로 사령관이라는 족속이다.
다시 말해 복잡한 정치문제가 결부되어 있더라도 유니온의 사령관 위를 확정하는 것이 필수절차라는 뜻이 된다. 현 상황에서는 테라행이 될 테고.
그렇다고 해도 시에라는 구출해야 한다. 그녀는 내 목숨을 구한 장본인이니까. 앞으로 발생할 일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그냥 여기서 죽는 게 편하다.
이한은 목이 돌아간 병사의 물품을 빠르게 수색했다.
“쯔.”
사람을 죽인 것도, 시체를 뒤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이 새끼 쓸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퉁!
티딩!
탄환이 벽에 맞고 튀어 오르며 불꽃을 튀겼다. 뭔가 섬뜩한 감각에 몸을 급히 틀지 않았다면 저 탄환은 벽을 맞고 튕겨 오르는 게 아니라 상체를 관통했을 거다.
‘제길.’
이한이 몸을 숨기기 무섭게 탄환이 빗발치듯 터져 나왔다.
두두둥! 두둥!
프로젤과 세라메틱의 변형으로 추정되는 기운을 사용하면 동체 시력과 반사신경이 놀랍도록 향상되는 것은 물론 무공, 마법, 초능력이 혼재된 기묘한 능력과 기술을 일정 부분 사용할 수 있기에 지금껏 맨손으로도 위기를 극복해왔지만 이렇듯 집중포화를 받는 상황에서는 이한도 별 답이 없다.
티딩! 티디딩!
“순순히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항복해라!”
엄폐물 뒤에 숨은 이한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퍽이나!”
나 같아도 동료 죽인 놈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사람을 죽인다고 경험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닌 바에야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섣부른 동정은 내 목숨만 위협할 뿐이다. 저들 목숨도 소중하지만 까놓고 그게 내 목숨만큼은 아니잖아.
피이잉!
탄환이 허공을 찢는 섬뜩한 파공음이 귓가를 울리자 이한은 욕설을 나지막이 뱉었다.
“이거 빼박 외통수인데······.”
동체 시력과 반사신경이 좋아졌다고 해도 빗발치는 총알을 피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고 몸이 무슨 강철처럼 단단해져서 총알을 튕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레벨업을 더 한다면 모를까 어쨌든 일반인에서 조금 나아진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 쓸만한 건 몸을 움직이는 무공에 연관된 지식이 대부분이었고 마법과 초능력에 연관된 능력이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그냥 없다 생각해도 무방했다.
라이플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상대하겠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빈손이다.
저들이 무슨 스페이스 마린도 아니고 초진동검과 같은 비상용 근접무기를 스테이션 경비병들이 착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무엇보다 맨손으로 쓰기엔 너무 위험한 무기니까.
이한은 급히 주변을 살펴봤다.
주변으로 제법 높은 건물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는데 이한은 으슥한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저벅저벅!
정신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상승한 감각은 저들이 견제사격을 가하며 계속해서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러나 이한은 당장 피할 공간이 없었다. 막다른 골목이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시에라를 구출하기는커녕 벌집이 될 판국인데······.’
이한은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넷, 아니 다섯이군.’
라이플을 든 다섯 명의 군인들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이한은 머릿속으로 저들을 어떻게 살해할 것인지에 대해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시뮬레이션했다.
짧은 순간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지만 외통수였다. 서넛은 어떻게 처리하겠는데 나머지 한두 명이 사격하는 총알은 어떻게 해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아직 시에라가 감금된 곳으로 추정되는 빌딩에 다다르지도 못했는데 중상을 입는다면 죽지는 않더라도 구출 임무는 거기서 접어야 할 것이다.
저벅저벅!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서너 명이라도 처리하려면 지금 움직여야 한다. 이한이 다리에 힘을 주고 튀어나가려는 순간 요란한 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두두두! 두두!
“컥!”
“커어억!”
털썩! 털썩!
엄폐하고 있던 이한은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쓰러진 자들이 지금껏 자신에게 사격을 가하던 병사들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 한 이드라실. 맞나요?”
그때 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한은 여인 외에 일단의 무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보지도 않고 감각만으로 알 수 있다는 게 내심 참 기묘했다.
“저는 엘린이라고 해요. 당신을 해칠 생각은 없어요.”
그러나 이한은 섣불리 몸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엘린이라고 했습니까? 도움을 준 건 고맙습니다만 왜 병사들을 죽인 겁니까?”
“간단해요. 마이노르가 저희 모두를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죠.”
“마이노르가 당신들 전부를? 왜?”
“거기서 계속 그러고 있을 건가요? 곧 지원병력이 당도할 거예요. 거두절미하고 한 이드라실. 당신은 유니온 소속이라고 들었어요. 맞나요?”
“그렇습니다만?”
“다시 소개하죠. 민간기업 제르카 소속의 수석연구원 엘린입니다. 이곳에서 끔찍한 생체실험이 자행되고 있어요. 유니온의 도움이 필요해요. 엠파이어라도 상관없죠. 끔찍한 일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한은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저들이 마이노르의 수하라면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었다.
“나갈 테니 쏘지 마십시오.”
이한은 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무리 중에서 한 사내가 급박하게 외쳤다.
“엘린! 놈들의 지원병력이 곧 당도합니다.”
“한! 이쪽으로! 서두르세요.”
이한은 빠르게 저들 무리에 합류하며 질문했다. 아무리 봐도 이들은 저항군처럼 보였다.
“으흠. 빌리가 벌써 접선한 겁니까?”
엘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한에게 반문했다.
“빌리? 그게 누군가요? 어쨌든 라이플을 다룰 줄은 알겠죠?”
“물론입니다.”
“엘린!”
“믿을 수 없다면 구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건네주세요.”
엘린의 말에 저항군으로 보이는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한에게 라이플을 건네줬다. 오매불망하던 라이플을 조작하며 걸음을 빠르게 옮길 때 엘린의 말을 이어졌다.
“다수의 병력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 기회예요. 절대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한! 저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확하게는 유니온의 도움 말입니다.”
29. 나는 나의 일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