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ander of the Space Gamer RAW novel - Chapter 30
30.
이한은 팽팽하게 당겨진 몸의 긴장을 느끼며 짧게 숨을 내뱉었다.
‘좌우에 네 명, 전방에 네 명, 순찰하는 병력이 다시 세 명, 총 열한 명인가?’
적의 숫자와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이한은 폭풍처럼 몸을 튕겼다. 그 속도는 스틸아머를 입은 움직임에 비견될만 했다.
퉁! 투두둥!
이한은 몸을 날리며 먼저 전방의 병사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렇게 공중에 뜬 채로 이한은 다시 좌우를 향해 두 발씩 사격을 가한 뒤 바닥에 몸을 굴렸다.
퍼벅! 퍽!
“컥! 커허헉!”
“크헉!”
몸을 공중에 날리면서 사격했는데도 불구하고 이한의 총알은 하나같이 정확하게 적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적! 적이다!”
골목에서 튀어나온 순찰병이 크게 고함을 치며 건물의 벽 주변으로 엄폐했다.
이한은 짧게 숨을 고르며 다시 튀어 나갔다.
두두둥 두둥!
“컥!”
저들이 엄폐를 해도 예민해진 감각으로 정확하게 저들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기에 남은 세 명의 경계병 역시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은 채 세상을 달리했다.
저들과 전투하면서 이한이 사용한 총알은 정확하게 열한 발. 단 한발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냉철하게 전투를 수행했다는 뜻도 되었다.
이한은 사격자세를 풀지 않은 채 통로의 좌우를 휙휙 살핀 뒤 쓰러진 시체를 뒤적거려서 ID 카드를 찾아냈다.
그리곤 주변 패널을 이용해 건물의 지도를 개인용 단말기에 업로드했다.
현재 위치와 시에라의 위치를 확보한 이한은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쉬운 점은 건물에 존재하는 경계병들의 숫자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거리라면 그전에 이미 예민해진 감각이 적을 탐지하고도 남을 테니 말이다. 무기는 라이플 한정이면 충분했고 탄약도 넉넉했다. 시에라를 구출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한은 다른 통로로 진입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저 멀리 곳곳에서 폭발음이 연신 들려왔다.
위이이잉!
위이잉!
그와 동시에 경고음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시작했군.”
저항군의 작전이 시행된 모양이었다.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뭐든 간에 사용하는 것이 현명했다. 억 하는 순간에 저세상으로 떠나는 것이 전투였으니까.
폭발음을 들은 이후에 이한은 보다 저돌적으로 움직였다. 시간이 많다면 안전을 더 챙기겠지만 주어진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 이미 스테이션의 병사들을 적으로 돌린 상황에서 아이작의 수하들까지 스테이션에 당도한다면 생존 가능성은 일 할도 되지 않을 것이다.
퉁! 투퉁!
“크아악!”
이한은 병사들의 체중이 바닥을 울리는 진동을 느끼기 무섭게 그곳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컥!”
“크아악!”
가상현실에서 무공을 기반으로 한 능력을 얻었다고 해서 무슨 검을 들고 설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예민해진 감각으로 사격능력을 극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효율적인 전투를 치를 수 있으니까.
능력이 강화된다면 염동력 등으로 날아가는 총알을 마음대로 날아가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이한은 그렇게 적을 보지도 않고 전해오는 진동만으로 사격을 가했다. 그렇게 날아간 총알은 어김없이 경계병의 육체를 유린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이한은 시에라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사격을 가했고 그렇게 이한이 사용한 총알은 모두 40발이었다. 단 한 발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한 홀로 무려 40명에 이르는 경계병을 사살한 셈이었다.
이한은 이마에 총알 자국을 남긴 채 쓰러져 있는 병사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 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뒤 이한은 시에라가 감금된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시에라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시에라! 정신 차려!”
이한은 그렇게 외치며 병사들의 품을 뒤져 얻은 키로 감금실의 문을 열었다.
치이이익!
“흐읍!”
감금실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기묘한 냄새가 이한의 코를 자극했다. 이한은 급히 숨을 멈췄지만 이미 미량이나마 감금실의 공기를 흡입한 상황이었다.
이한은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길. 이런 실수를.’
미량을 흡입하고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기묘한 가스가 감금실에 가득 메워져 있었으니 이한은 시에라의 건강이 심히 염려되었다.
따라서 어지러운 중에도 이한은 급히 시에라를 들쳐메고 밖으로 나왔다. 어지러움에 크게 비틀거렸지만, 레벨업으로 신체 능력 역시 향상되었기에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한은 적당한 곳에 시에라를 눕혀놓고 기도를 확보하고 그녀의 숨을 확인했다.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료용품이라고는 전무한 상황. 이한은 즉시 그녀의 입에 숨을 불어넣고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제길! 정신 차려!”
다시 가슴을 누르고 입에 숨을 불어넣고 다시 가슴을 누르고 숨을 불어넣기를 반복했지만, 그녀의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젠장! 정신 차려! 시에라! 정신 차리라고!”
이한은 인공호흡을 쉬지 않고 실시하며 아까 확인했던 건물의 지도를 떠올렸다. 의무실. 의무실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너무 멀다. 이미 호흡이 끊어진 시에라가 버티지 못할 것이다.
‘방법이! 방법이 뭔가 있을 거다. 방법이!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이한은 다시 숨을 크게 불어넣은 뒤 그녀의 호흡을 확인했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시퍼렇게 변한 입술과 뻣뻣해진 사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또 한 명을 떠나보낸다고? 씨발!’
이한은 속으로 욕을 뱉으며 그녀를 살릴만한 모든 방법을 머릿속으로 모색했다. 당장 마법이라도 부리지 않는 한 그녀가 살아날 방도는 없어 보였다.
‘잠깐! 마법?’
이한은 즉시 몸에 깃든 초자원의 기운을 움직였다.
가상현실의 능력과 현실에서 그것이 구현되는 방식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어떤 무공이나 마법이나 초능력으로 기운이 운용되는 게 아니라 레벨업을 통해 몸에 깃든 초자원의 기운이 모든 이능을 가능케 만드는 거다.
가상현실에서 얻은 모든 능력은 도구다. 초자원의 기운을 익숙하게 다루도록 만드는 가이드라인 같은 거다. 따라서 이것들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무시할 이유도 없다. 간단히 아주 훌륭한 답안지를 앞에 두고 또 다른 답을 찾으려고 헤맬 이유가 없었다.
이한이 지금 떠올린 것은 치료 마법이었다.
‘대충… 이런 느낌이었던가?’
스스로도 뭘 하는 건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이한의 몸에서 초자원의 기운이 시에라의 몸으로 전달되었다.
화아악!
이한이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초자원의 기운이 시에라의 몸에 흡수된 이후였다.
“쿨럭! 쿨럭!”
시에라가 격한 기침과 함께 호흡을 토해내자 이한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시에라! 정신 차려!”
“한. 한이야? 보고 싶….”
힘겹게 눈을 뜬 시에라는 미묘한 말을 던지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한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그보다 시에라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호흡을 확인해보니 다시 끊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약한 호흡이었다. 서둘러 치료할 필요가 있었다.
“의료실로 가야겠군.”
이한은 즉시 시에라를 들쳐메고 의료실로 향해 빠르게 달렸다. 물론 한 손에는 라이플을 들고 말이다.
*
띡! 띠딕!
의료캡슐을 설정한 이한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의료실까지 오면서 경계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한의 불꽃 라이플에 의해 모조리 사살당했다.
의료캡슐에 뜬 시에라의 상태를 살펴보던 이한은 미간을 좁혔다. 대체 그 기묘한 가스는 뭐였지? 설마?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장 그것을 알아볼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이한은 의료캡슐 안에서 둥둥 떠 있는 시에라를 바라봤다. 한숨은 돌렸지만, 파도처럼 몰아치는 이 위기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유니온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엘린이라는 여인의 부탁도 부탁이지만 그보다 아이작의 레이븐함을 빠개버릴 전함의 지원이 필요하다.
통신실의 위치야 진작에 파악했던 것이니 다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시에라가 홀로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지금으로서는 별수 없었다. 일단 한숨은 돌렸으니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침몰당한다. 죽음이라는 지독한 바닷속으로.
‘주변의 병사들부터 모조리 처리해야겠군.’
이한은 살의에 찬 눈빛으로 라이플을 쥐었다.
*
띠딕! 띠딕!
단말기가 울리는 소리에 빌리는 즉시 응답버튼을 눌렀다.
“음? 사령관님! 어떻게 된 겁니까? 괜찮으신 겁니까?”
“음? 알겠습니다.”
이한의 통신을 그것을 끝났다.
띡!
뭔가 전송되었다는 신호음이 들렸고 빌리는 즉시 그것을 확인했다. 그건 지도와 시에라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큰 파티가 벌어질 모양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빌리의 손에는 저항군의 쓰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라이플이 들려 있었다. 이한의 지시한 대로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빌리 역시 저항군과 접선하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빌리는 지체하지 않고 이한이 지시한 곳으로 달려갔다.
*
지원요청, 자료전송, 빌리에게 시에라 호위요청까지 하는 순간 다시 모든 통신이 먹통이 되었다. 스테이션의 재밍이 다시 활성화된 모양이다.
“시에라와 내가 마신 가스가 어떤 생체실험의 결과물이라면, 시에라에게 생체실험의 결과물을 투약하기라도 했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엘린 그 여자밖에 없다. 무엇보다······.”
나를 죽이려던 놈을 살려둘 정도로 나는 착한 놈이 아니다. 마이노르 그 개새끼도 머리통을 터트려야만 속이 시원하겠다.
만약 유니온의 지원이 없다면 키아텍 스테이션에서 아군을 형성해야만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을 테니 엘린 그 여자를 돕는 건 내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이한은 말없이 옆에 내려놓은 라이플을 챙긴 뒤 밖으로 나섰다. 그가 향할 목적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31. 나는 나의 일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