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깨달음
가히 절경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무당산에서도 유독 경치가 아름다운 봉우리, 강호인들은 그곳을 태극봉(太極峰)이라 불렀다.
천하제일검, 태극검제(太極劍帝) 정진진인의 거처가 있는 무당의 금역이자 정파의 성지.
“…….”
그 태극봉의 꼭대기에서 가부좌를 틀고 무릎 위에 검을 올려놓은 젊은 도사가 맑은 눈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게 뻗은 이마와 용과 같이 꿈틀거리는 짙은 눈썹은 청년의 명경지수와 같은 눈빛을 더욱 부각해주었고, 푸른 도복의 등에는 무당을 상징하는 태극의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보이느냐?”
선풍도골이란 이런 것이라고 대변하는 듯한 신선 같은 외모의 노인이 깨끗한 백의 도복을 입고 청년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둡습니다.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럼 보이는 게로구나, 유신아.”
“그렇습니까?”
“왜 아니겠느냐. 아주 똑똑히 보고 있지 않느냐. 허허허허.”
눈을 뜨고 폭포를 보고 있음에도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청년이나, 아주 똑똑히 보고 있다고 말하는 노인이나 그들이 도사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았다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도를 담는 그릇에 도만을 남겨놓고 모든 것을 쏟아버리니, 네가 찾는 도마저 버려져서 남은 것은 비어있는 그릇뿐이구나. 허나 그 그릇의 크기가 너무도 커서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어둠뿐이니라.”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현기가 가득한 말이지만 더없는 선문답이기도 하였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도란 잡으려면 잡을 수 없고, 갈구하면 할수록 멀어진다 하였습니다. 허니, 비우고 버리는 것만이 도를 얻는 길임을 알지만, 이 어찌 쉽게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렇구나. 네 말도 틀리지 않다.”
한가로운 오후 높은 봉우리에 좌정하여 맑은 물이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면서도 어둡다고 말하는 청년 도사, 그는 바로 무룡(武龍) 유신이었다.
“허면 이번에는 눈을 떠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예, 스승님.”
정진진인의 말에 대답한 유신의 눈이 감겼다. 대답과는 정반대로 눈을 감는 유신을 바라보며 정진진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허허허, 놀랍구나 놀라워. 화경에 이른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하는가.’
도현도장과 청현진인이 그러했듯이, 더없이 자애로운 눈으로 유신을 지켜보는 정진진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거의 다 왔구나. 서두를 것 없다 유신아. 조금 돌아가도 늦지 않는단다.’
다섯 살에 무당에 입문하여 일곱 살 때 처음으로 송문검을 손에 잡았다. 뼈를 깎는 수련과 생사를 오가는 실전을 겪어가며 화경의 깨달음을 얻었고, 50년의 세월을 은거하여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정진진인이었다. 하지만 유신은 청출어람이란 이런 것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듯이 서른도 안 되는 젊은 나이에 화경을 넘어 정진진인이 이룩한 현경의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천지인의 삼화를 이루었고(삼화취정 : 三花聚頂), 수목금토화의 오기가 조화로우니 (오기조원 : 五氣朝元) 능히 화경의 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진진인의 눈에는 유신의 정(情), 기(氣), 신(身)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그가 이미 걸어왔던 길이기에 그 해답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가르쳐 줄 수 없었다. 도는 스스로 깨치는 것이지 누군가가 인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뭐가 보이느냐?”
“세상을 가득 채운 환한 빛이 보입니다.”
유신의 대답에 정진진인이 감탄하며 생각하였다.
‘과연, 태극지체(太極之體)를 타고난 기재답구나.’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근골이 좋다 하여도 무공을 익히는 속도와 위력은 천차만별이었다. 그 이유는 처음 무공을 창시한 사람은 자신의 몸에 맞는 최적의 운기법과 초식을 만들었는데, 후인들이 그 초식을 무작정 따라 하여 익혔고 그것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당의 개파조사인 장삼봉은 중원에 있는 모든 토납공을 익혀보아도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강호의 존재하는 그 어떤 내가 기공도 나에게는 과유불급이다. 정녕 스스로 일대 종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자신에게 맞는 무공. 그것을 찾기 위해 창안한 심법.
태극무위심공(太極無爲心功).
그것이 바로 장삼봉 조사 이래 익힌 사람이 정진진인과 유신밖에 없다는 무당 최고의 토납공인 태극무위심공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내공을 쌓을 수 있고 그 정순함이 천하일절이며 위력 또한 무상이라 칭해지는 절세심공의 탄생 비화는 의외로 실용성이었다.
‘빈도의 무위가 현경에 이르러, 태극지체와 비슷한 신체를 갖추었기에 태극무위심공을 익힐 수 있었으나, 그건 말 그대로 축기와 운기가 가능했을 뿐, 오히려 태극기공만도 못한 효능이었지.’
현경에 경지에 도달한 후 모든 강호인들의 꿈이라는 생사경의 경지에 들기 위하여 안 해본 짓이 없는 정진진인이었다. 강호 역사상 생사경에 들었다는 인물은 무당의 조사인 장삼봉과 마교의 시조 단 둘뿐이었기에 당연히 태극무위심공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화경의 경지에서조차 익히지 못한 태극무위심공을 수련할 수 있다는 마음에 세상을 다 가진 것만큼 기뻐하였다.
그러나 태극무위심공은 정진진인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좌절하던 내게 새로운 꿈을 심어준 것이 바로 유신이었다.’
천애 고아인 유신이 무당의 제자가 되어 자신을 찾아왔을 때.
‘그때, 나는 장삼봉 조사께서 환생하신 줄만 알았지.’
유신을 처음 보며 느꼈던 전율. 그가 그토록 염원하면서도 대성할 수 없는 미완의 무공 태극무위심공의 꿈을 이루어줄 후인이며, 어쩌면 살아생전 생사경의 무인을 만날 수 있다는 포기했던 꿈이 되살아났다.
-이 아이를 나의 하나뿐인 기명제자로 들이겠다.
원래대로라면 유신이 받아야 할 배분은 청현진인의 사손뻘이 되는 정(正)자 배였으나, 태극검제의 적전제자가 된다면 무려 두 단계의 배분을 건너뛰어 무당의 장문인과 같은 배분이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일이었다. 당연히 모두가 반대하였지만, 그 누구도 정진진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녀석, 또래는 물론이거니와 강호에서도 적수를 찾기 어려웠는데 괴룡과 주룡이라는 아이들이 아주 좋은 자극을 주었구나.’
무공에 대한 재능도, 도사로서의 성품도, 수련에 임하는 태도 또한 부족하지 않았으나 화경에 들기 위해 유신에게 부족한 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과 무공에 대한 강한 열정이었다. 헌데, 그것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나타난 사신혁이 채워주었으니, 그야말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정진진인이었다.
“사부님.”
“오, 그래. 길을 찾았더냐?”
“오히려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러하느냐?”
“무량수불…….”
유신이 씁쓸한 얼굴로 도호를 외우며 몸을 일으켰다. 무당의 무공은 도가의 사상이 기본이 되는 상승의 무학이었다.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유신에게 있어서는 육체적인 수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수양이었고, 이는 필히 도가의 현기를 이해해야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비워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도인데, 비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비워야 할 것이 쌓여만 갑니다.”
“무량수불…….”
정진진인이 도호를 외우며 유신의 고뇌를 안쓰럽게 여겼다.
“계속 말해 보아라.”
“예, 눈을 뜨고 맑은 폭포를 보아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은 비우려는 제 마음이 쌓여가는 세속의 잔재들을 비우려 마음의 눈을 닫았으니 어두운 것이오, 눈을 감고 비우려 하니 오히려 마음의 눈이 열려 세속적인 것들이 저의 기를 혼탁하게 하는 일이 반복되었…….”
정진진인에게 깨달음의 고뇌에 대해 토로하며 조언을 구하려던 유신이 말을 잃었다.
“비워내고 다시 채우고 비워내고 다시 채우고……”
억지로 비어낸 것은 원치 않아도 다시 채워진다.
“반복…… 반복된다. 꽃이 피고 지며, 다시 겨울이 지나 피는 것처럼 반복된다…….”
그 자리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해진 유신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주저앉았고 자연스럽게 가부좌를 틀며 마음을 다스렸다.
“오욕칠정을 끊어내어 도를 이룬다 한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도란 무엇인가.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 도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을 억지로 비워내는 것인가.”
유신의 눈이 반개하며 더없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현기를 드러내었다.
“비워내고 채우고 무한히 반복되는 윤회가 돌고 돌아…….”
유신의 몸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태극(太極)이 된다.”
심장에서 뿜어진 피는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몸을 돌고 돌며 산소와 영양을 몸의 곳곳에 공급한다. 그러나 내공은 어떤가? 화경에 이른 고수라 할지라도 단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게 내기를 순환시킬 수는 없다. 인간은 잠을 자야 하고 운기조식을 하는 그 순간에도 상단전이 완벽하게 열린 현경에 이르지 않는다면, 내기는 머리까지 미치지는 못하니까.
“아아…….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도를 이루었고, 다시 도를 잃었으나, 잃었던 도가 돌아오니 그것이 곳 태극이요, 현경이었구나.”
그 말을 끝으로 유신의 눈이 감겼고, 정진진이 환희와 감격, 놀라움과 혼란이 섞인 감정을 애써 다스리며 유신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
“해냈구나, 드디어 해냈어! 장하다, 정말 장하다 유신아.”
대자연의 기를 무럭무럭 빨아들이며 환골탈태를 시작하는 유신을 보는 태극진인의 입에서 기쁨에 겨운 도호가 흘러나왔다.
“무량수불…….”
무인이 뼈를 깎는 수련과 깨달음의 과정을 거쳐서 절정의 경지에 이르면 하단전의 활용이 극대화되어, 무림인들이 꿈에서도 바라는 강기(剛氣)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강기의 운용이 원활해짐에 따라 기의 수발이 더욱 자유로워지고, 하단전에 자연의 기가 가득 찼을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절정의 경지를 넘어 초절정의 경지인 화경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유신이 화경에 도달한 지 1년도 되지 않았거늘……. 허허허, 선재. 선재로다.’
하단전의 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른 신체가 화경에 도달하여 환골탈태를 통해 무공을 펼치는데 최적화된 신체로 재구성되는데, 이때 중단전이 열리며 본격적으로 초인의 반열에 들어선다. 화경은 신검합일의 단계로써, 검과 사람이 완벽히 하나가 되는 단계였다. 여기서 한 번 더 깨달음을 얻어 현경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마음으로 검을 잡는 단계, 즉 심검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후우~ 후우~”
유신에 호흡에 따라 방대한 자연의 기가 그의 체내로 흡수되었고, 그에게서 느껴지던 무공의 흔적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현경의 경지에 접어들어 내공이 완벽히 안으로 갈무리되는 진정한 반박귀진의 경지에 접어드는 과정이었다.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구나.’
그 순간, 정진진인조차 예상할 수 없었던 이변이 일어나며 그의 표정이 굳었다.
“왜 기가 다시 빠져나간단 말인가?”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치며 유신의 하단전과 중단전을 가득 채운 자연의 기가 상단전을 연 것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정진진인 역시 현경의 경지에 접어들 때 거쳤던 과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진진인의 경험대로라면 여기서 환골탈태의 과정이 끝나고 자연의 기가 완벽히 단전에 갈무리 되었어야 했다. 헌데, 어째 유신에게 흡수된 자연기가 정제되지 않고 다시 빠져나간단 말인가.
“저건?!”
무당의 조사인 장삼봉 진인이 대오각성하여 신선이 되어 선계에 오를 때 나타났다는 상서로운 태극 문양의 서기가 유신에게서 발현되었다.
무당의 전설. 태극(太極)의 서기(瑞氣).
“허허허, 전설의 재현을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무량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