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반역
“이처럼 제 일신의 알량한 힘을 믿고 오만방자하게 나오니 무슨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영왕이 연왕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헌데, 마지막 말이 상당히 재미있구나. 강호의 도리대로 하라니. 결국 힘으로 해결하자는 뜻이 아니더냐.”
“사신혁이라는 놈, 제국의 차기 황제인 주윤문을 등에 업고 무력 또한 초절정고수라 하니, 황실에 자신을 제압할 만한 자가 없을 거란 확신에 그리하지 않았겠습니까.”
“헌데 그 말을 듣고도 진강전이 가만히 있더냐?”
“그렇지 않아도 그조차 심각하게 고민하더군요. 다만 어전이고 무력을 행사하여도 그놈이 도주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잡을 방법이 없으니 포기한 듯합니다.”
“과연, 그리된 것이군.”
연왕이 궁금했던 것이 해소되었는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무슨 뜻이냐?”
영왕의 질문에 연왕의 기세가 일변하였다.
“저를 포함한 번왕 모두는 연왕 전하의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단?”
“금의제존위군은 황위계승권의 쟁탈전에 한해서 이미 중립을 선언하였습니다. 즉, 세자가 금의제존위군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세자가 즉위식을 가지기 전, 세자를 폐위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해야겠지요.”
“……어떻게 말이냐.”
“번왕들의 가용 병력을 모두 황궁으로 집결시킬 생각입니다. 황궁을 포위하여 세자를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명분은?”
“무능한 조카님께서 간신들의 입에 발린 말과 함께 태조를 현혹하여 세자의 위를 찬탈하였으니, 어찌 하늘이 벌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소. 정도면 적당하겠지요.”
지금껏 연왕이나 영왕 같은 번왕에 비해 백성들에게, 신하들에게 보여준 것이 없는 세자를 꼬집는 명분이었다.
“계획은?”
“황궁에 있는 동서남북의 진입로를 포위하여 세자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중 북문은 중립을 선언한 진강전과 그를 따르는 금의위와 동창의 본부가 있는 곳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렇겠지.”
“해서, 나머지 세 개의 문을 한쪽은 제가, 다른 한쪽은 연왕 전하께서,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노왕을 주축으로 한 나머지 번왕들의 군세가 틀어막을 것입니다.”
영왕의 설명을 들은 연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주권 이 녀석 벌써 거기까지 생각해 두었구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을 준비한 것인가.’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자 하였다. 그러나 누가 황제가 될지는 정하지 않았다. 차기 황제가 될 자가 누구더냐? 스스로가 황제가 될 만한 그릇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연왕의 말에 영왕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부족하지는 않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왕 전하께서도 소제의 생각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크크큭…….”
야욕을 드러낸 영왕의 말에 연왕이 살벌한 표정으로 낮게 웃었다.
“과연, 이제 내게도 그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냐?”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형님께 좋은 제안을 할 뿐이지요.”
“제안?”
“그렇습니다. 형님의 일손도 이 아우가 많이 덜어드렸다고 자신합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영왕의 말에 연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닥치라고 해도 할 말은 하는 놈이 아니었더냐. 해보거라.”
“연왕 전하를 제외한 다른 번왕들은 공식적으로 황위계승권을 포기하였고, 이것이 그 서명서입니다. 황위계승권 포기에 따른 대가는 그들의 신변을 보장하고 그들이 선대 황제께 하사 받은 봉지 또한 온전히 보전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영왕이 품에서 황금색 비단으로 곱게 감싼 연판장을 꺼내었다. 연왕이 영왕에게 연판장을 받아 내용을 살펴보니 과연 영왕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 이제 여기에 내 서명을 받으러 온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잘 살펴보십시오. 애초에 그곳에 연왕 전하의 성함은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말 돌리지 말고 속내를 밝히거라.”
“저와 연왕 전하 중 주윤문을 먼저 사로잡는 쪽이 황위에 오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거 재미있구나. 하하하하!”
연왕이 영왕의 제안을 듣고 크게 웃었다.
“그래, 네 제안에 따른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주윤문을 치기 위해서 나와 너, 그리고 다른 번왕들이 세 방향으로 진입할 때, 가장 수비가 약한 쪽으로 진입하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겠구나.”
“그래서 형님께 한 가지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말해 보거라.”
“형님께서 가장 먼저 고르시지요.”
“무엇을 말이냐?”
“진입할 방향을 말입니다.”
“호오……?”
“아니면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왕이 연왕을 향해 자신 있는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것은 연왕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사신혁이라는 자가 지키는 곳을 제가 치겠습니다.”
“진심이더냐?”
“물론입니다. 제가 허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
연왕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놈이 사신혁에 대해서 몰라서일 리는 없다. 사신혁이 있는 쪽을 공략하면서도 주윤문을 가장 먼저 사로잡을 자신이 있다는 건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왕이 살짝 도발적인 눈으로 연왕에게 물었다. 자신 없냐? 라고 말하는 듯한 영왕의 눈빛이었다.
‘그래, 한 번 속아주마. 네가 무슨 수를 쓰는지, 뭘 믿고 이렇게 나섰는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연왕 주체가 영왕을 보며 말했다.
“수락하겠다.”
* * *
황제의 장례를 모두 마치고 공식적으로 처음 열린 어전회의에서의 안건은 역시나 주윤문의 즉위식에 관련된 것이었다.
“더는 지체하여서는 아니 되옵니다 세자전하.”
“그렇습니다. 어서 즉위식을 서두르셔야 하옵니다.”
“무릇 만물에는 주인이 있는 법입니다. 하물며 제국의 황위가 공석으로 비어 있는 것은 말도 되지 않사옵니다. 서두르십시오 세자전하.”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특히나 알게 모르게 차기 황제로 연왕이나 영왕을 지지하는 신하들은 주윤문의 즉위를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무작정 서두른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대행황제의 장례식이 끝난 지도 얼마 지나지 아니하였고…….”
“그리고 각 영지로 돌아가신 번왕 전하들과 더불어 지방의 고위관리들을 또다시 황궁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이민족들과 오랑캐들에게 있어서 국경을 넘볼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는 것과 같사옵니다.”
“황실의 재정 상태도 넉넉지 아니하고…….”
일리 있는 반대파 신하들의 의견에 주윤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신하들이 갑론을박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주윤문이 손을 들었다.
“그만.”
모든 신하들의 시선이 주윤문에게 집중되었다.
“공부와 호부 그리고 예부와 병부는 본 세자의 즉위식에 관한 기획안과 예산을 협의하여 다음 어전회의 때까지 보고하시오.”
“예, 전하”
“비록 대행황제께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분이 세운 대명제국의 천년지계를 위하여 앞으로도 경들의 많은 도움을 바라겠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럼 오늘의 어전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지요.”
주윤문이 먼저 자리를 떴고, 그 뒤를 형관오와 어전호위들이 따랐다.
세자가 어전을 빠져나가자, 뜻이 맞는 관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앞으로의 일을 쑥덕거렸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세자전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시류에 맞지 않겠는가?”
“연왕이나 영왕 전하께서 과연 가만히 계실 거 같은가?”
“아니, 그래도 설마 무력을 쓰겠는가? 군사를 동원하여 황궁으로 진격하는 것은 명백한 반역인데, 설마 그런 짓을 하겠는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반역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은 반역을 진압한 다음이지. 만약 진압하지 못한다면…….”
* * *
“자 그럼~!”
루시아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커다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음료와 간식거리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자본주의의 맛이군.”
신혁이 피식 웃으며 쿠키와 아메리카노 병을 손에 들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테레사함에서 생활하며 현대의 맛을 알고 푹 빠져버린 윤제 역시 이게 웬 떡이냐 싶은 마음으로 재빨리 콜라를 손에 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주군.”
“이럴 때 보면 빅토리노 씨가 참 센스가 좋은 것 같아요.”
빅토리노가 준비해준 간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루시아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티타임을 즐기고 자리를 정리할 때 즈음.
똑똑.
“대인, 형관오 금의위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담소를 나누던 신혁 일행의 숙소 문을 두들기며 얇은 목소리로 내관이 보고하였다.
“들어오십시오.”
“그간 격조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예, 뭐 보시다시피. 일단 앉으시죠.”
신혁이 형관오의 말에 피식 웃으며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유시아를 비롯하여 이제는 신윤제와도 어느 정도 안면을 튼 형관오였기에 거리낌 없이 신윤제의 옆자리에 앉았고, 루시아가 자연스럽게 형관오에게 콜라를 한 병 건네주었다.
“음? 이건?
“드세요, 신혁 오라버니가 즐겨 드시는 음료예요.”
“예, 감사합니다.”
형관오가 별생각 없이 루시아가 준 병에 든 음료를 입에 대었다.
“크으~?!”
그리고 형관오의 입에서 나오는 탄성.
“이건……?!”
“예, 드실 만하죠?”
“정말 놀랍습니다! 입에서 톡톡 튀는 것이……. 신혁 선생은 이런 음료까지 만드실 줄 아시는군요.”
“제가 만든 건 아닙니다만,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죠.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한창 바쁘실 텐데요.”
형관오가 신혁의 숙소를 방문한 목적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신혁 선생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최대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았기에, 신혁 일행은 각자의 잔에 커피와 콜라를 한 잔씩 더 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잔이 채워질 무렵 형관오가 최대한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에 세자전하의 즉위식에 대한 사항이 확정되어 황궁에서는 즉위식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즉위식의 날짜는 오늘을 기준으로 정확히 한 달이 남았습니다.”
“고무적인 일이지요.”
신혁이 이제 한 달만 더 여기서 버티면 계약을 완수하고 테레사함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윤제의 복수도 하고 의천검과 용신주도 얻고, 꽤 남는 장사였기 때문에 그의 표정은 밝았다.
“그렇습니다. 해서 세자전하께서는 관례에 따라서 각성의 성주들과 고위관료들에게 기별을 보내셨습니다. 세자전하께서 황위에 오르실 즉위식에 참석하라고 말입니다.”
“그렇군요.”
신혁 일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영왕 전하의 서신에서 말입니다.”
“영왕이라면…….”
“예, 아마 보셨을 겁니다. 황제 폐하의 장례식장에서 말입니다.”
“아, 그분이요.”
신혁이 영왕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영왕 전하께서 모든 번왕들을 대표하여 서신을 보냈사온데 서신의 내용이 반역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반역이요?”
“요약하자면 즉위식으로부터 일주일 전, 진정한 대명제국의 황제를 하늘이 정해줄 것이니 세자께서도 잘 준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형관오가 그때 주윤문이 느낀 모욕과 분노가 떠올랐는지 그도 몸을 떨며 말했다.
“그 말은……?”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돌아가는 것 같더라니.
“예, 공식적인 반역입니다. 번왕들이 드디어 일을 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