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검을 치우지 않은 채, 이안이 덧붙였다.
“설명은?”
“해 드리겠습니다. …전부.”
“좋아.”
루스를 툭 밀어내며 멱살을 놓은 이안이, 입을 벌린 필립을 돌아보았다.
“이자는 지금부터 네가 맡아라. 만약 네 목숨까지 위험하게 하면 내 손으로 죽일 거니까, 그렇게 알고.”
“…들으셨죠, 사제님? 제 뒤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십시오.”
애써 태연하게 내뱉은 필립이 루스를 돌아보았다.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루스가 목이 떨어질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이안을 두려운 듯 일별한 그가 덧붙였다.
“저, 정말 예배당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겨우 두 분이서는-”
쿵, 문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펄쩍 뛴 루스가 숨을 멈췄다. 이안이 곧바로 몸을 돌리는 가운데, 필립이 루스의 팔뚝을 움켜쥐며 미소 지었다.
“염려 마십시오. 사제님은 그저 보고 들은 것들을 전부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루스를 이끌고 걸음을 옮기며, 필립이 미소 지었다.
“가면서요.”
“아니, 자, 잠깐….”
루스가 더듬대는 사이, 이안이 문을 벌컥 밀었다. 문에 얻어맞고 비틀대는 망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루스가 그 끔찍한 모습에 놀랄 틈도 없이, 이안의 칼이 무자비하게 놈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쓰러진 망자를, 이안이 손아귀에서 불덩이를 뿜어 태워 버린 것이다.
눈을 치켜뜨고 있던 루스가 멍하니 뇌까렸다.
“마, 마법…?”
“-무구라는 겁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가시죠.”
재빨리 덧붙인 필립이 복도로 나섰다. 그는 이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사제가 우물대거나 뒤처지거나, 헛소리나 해 댄다면 가차 없이 버리고 갈 터였다.
정말 직접 죽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애초에 교단의 성자인 백금룡의 대행자가 아닌가. 적당한 명분만 있다면, 주교의 목도 직접 날려 버릴 수 있으리라.
다행히 루스는 제 발로 걷기 시작했다. 여기 홀로 남겨지면 결국 죽으리란 걸 어느 정도는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시작하십시오, 사제님.”
걸음을 옮기며 필립이 내뱉었다. 어둠 너머를 두리번대며 마른 침을 삼키던 루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아무런 징조도 없었습니다. 모든 게 일상적이었죠. 스테판 주교님의 지도 아래, 저는 엘로이 사제님을 도와 성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제님과 수도사들이 동참하고 있었죠. 저녁에 대공자께서 연회를 여실 계획이셨으니까요. 그리고 갑자기 밖이 어두워지더군요.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곧 몇몇 사제님들과 주교님이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돌아 보셨, 히익-!”
루스가 숨을 들이켰다. 옆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온몸이 버섯으로 뒤덮인 망자가 튀어나온 것이다. 앞서 걷던 이안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날려 망자의 머리를 칼로 내리쳤다. 이어진 소란을 한 귀로 흘리며, 필립이 속삭였다.
“멈추지 마십시오, 사제님. 이제부턴 말씀을 멈추실 때마다 한 대씩 때릴 겁니다.”
“……?!”
“저분에게 죽는 것보단, 그게 나을 테니까요.”
루스의 시선에 덧붙인 그가, 슬며시 쇠장갑을 낀 주먹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루스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도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갔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제님들과 수도사들도 복도를 달리고 있었죠. 저처럼 무슨 일이냐고 묻는 자들도 여럿이었지만, 몇몇은 아주 다급하고… 놀란 표정이었… 습니다….”
루스가 울먹댔다. 이안이 앞서 걸어가는 가운데. 옆에서 튀어나온 또 다른 망자를, 필립이 그의 눈앞에서 칼로 후려쳤기 때문이다.
신성이 아른거리는 검을 손에 쥔 채, 얼굴에 검은 피가 튄 필립이 루스를 돌아보았다.
“계속. 계속 하십시오, 사제님.”
“그, 그래서….”
루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
말이라도 할 수 있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저들의 뒤를 따랐다면, 진작 기절해 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
“끄… 으으….”
콰직-!
토막난 채 낮은 신음을 흘리던 망자의 안면에 검날이 깊숙이 틀어박혔다.
거무스름한 날에서 흐릿하게 번진 보랏빛이, 망자의 얼굴을 뒤덮은 버섯들을 새카맣게 물들였다. 촉수처럼 꿈틀대던 버섯들의 움직임이 이내 멎었다.
“후….”
이안은 멈추고 있던 숨을 내쉬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주위에는 토막나고 짓이겨진 망자들의 시체가 여럿 널브러져 있었다. 숨을 멈춘 동안 처치한 놈들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서, 이안은 흑검에 조금씩 밀어 넣던 혼돈력을 회수했다.
파스슷….
검날에 일렁이던 보랏빛이 사그라들었다.
검날에 일렁이던 보랏빛은 흑검의 고유 스킬인 역천의 송곳니가 아니었다.
이것들을 상대로 사용하기에는 소모값이 너무 높은 스킬이었다.
제대로 활성화한다면, 금방 그의 혼돈력을 전부 먹어치워 버릴 터였다. 다행히 임의로 혼돈력을 밀어 넣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망자들을 죽일 수는 있었으니까.
손아귀의 흑검이 아쉽다는 듯 옅은 울림을 토해냈다.
하여간, 욕심은.
내심 코웃음 치며, 이안은 복도의 어둠을 훑었다.
그가 길을 찾는 방식은, 사실 전혀 대단할 게 없었다.
공허의 마력이 더 짙게 느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전부였다.
“…그, 그리고 다음 순간. 대문이 닫혔습니다. 저는 곧바로 문으로 달려갔습니다만, 전혀 열리지 않더군요. 그리고 뒤이어, 장내에 비명이 메아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는 유약한 사제의 목소리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필립과 달리, 이안은 뒤를 돌아보지조차 않았다.
관심이 없는 건 물론이고, 딱히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아예 듣지 않은 건 아니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이안은 델라 루의 신상이 오염되었으며, 의식이 타락자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멋대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루스는 주교를 비롯한 타락자로 추정되는 사제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무릎 꿇고 불경한 기도문을 읊어댔다고 증언했으니까.
물론, 이안이 알게 된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단상에 가까운 이들부터 줄지어 쓰러지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그제야 신상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검은 덩어리를 눈에 담았습니다. 주위로 이끼와 버섯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암흑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불이 꺼지고, 비명소리만이 사방에 메아리쳤죠.”
자신이 베어 넘기던 망자들이, 도시의 소란을 피해 도망 온 주민들과 사제들이라는 사실도 확실히 알게 됐으니까.
“저는 다시 불을 켜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배당의 벽면이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더군요. 간신히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비명이 모두 사라진 뒤였습니다. 저는 횃불을 찾아, 가지고 다니던 부싯돌로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눈앞에 지옥이 펼쳐지더군요.”
루스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높낮이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자신의 기억에 완전히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전부 죽어 있었습니다. 아니,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무릎 꿇은 이들은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알아듣지 못할 기도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대고 있었으니까요.”
“기억나는 구절은 없으십니까?”
“위대한 순환… 초월… 탈피…. 더 자세히는 모르겠군요. 사실, 아주 단편적인 것들만 기억납니다. 저는 그때 단상 위의 어둠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으니까요. 보고 있기만 해도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심연이었습니다.”
마른침을 삼킨 루스가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목걸이에 달린 주머니를 쥔 것이리라.
“절 일깨운 건 신성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제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여신의 은총 덕분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영원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도요. 그리고 다음 순간, 시체들이 꿈틀대기 시작하더군요. 전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루스가 이안이 죽인 망자를 수척한 눈길로 보았다. 이 금발 수도사의 얼굴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빠른 속도로 늙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저는 도망쳤습니다. 언제 횃불을 던진 건지, 언제 계단을 오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어두운 복도를 달리고 또 달렸죠. 사방에 울려 퍼지는 헐떡대는 숨소리와 발소리를 들으면서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벽장 안이더군요. 그리고 계속 숨어 있었습니다. …두 분이 저를 구해 주시기 전까지요.”
그리고 지금은 그 길을 다시 돌아가고 있고.
속으로만 뇌까리며, 이안은 코너를 돌았다.
어느새 사방이 이끼와 버섯으로 뒤덮여 있었다. 앞을 막아서는 망자의 숫자도 많이 줄어들어서, 이안은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걸음을 옮기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단상에서 본 것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필립이 물었다. 미간을 찌푸린 루스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꿈틀대는 검은…. 알. 그래, 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필립이 입을 다물었다. 발소리만 울려 퍼지는 적막이 내려앉은 것도 잠시.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혹시, 두 분은 알고 계십니까?”
이제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듯, 루스가 읊조렸다.
필립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타락한 자들이 이 땅을 오염시킬 저주의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사제들이 있었고, 대공자도 그들과 한패였죠.”
“대, 대공자께서요…?”
눈을 치켜뜬 루스가 더듬댔다.
“하지만 대공자는 더없이 신실한….”
“주교는 아니었습니까? 다른 사제들은요?”
“…….”
“우리가 백작의 앞에서 대공자의 정체를 밝혀냈습니다. 그러자 곧 타락한 본모습을 드러냈죠. 그러면서 도시가 어둠에 잠긴 겁니다.”
“루 솔라여…. 그럼, 두 분이 바로 그, 원로 요정의 기사들이신 거군요. 바실리스크를 참살한.”
“그건 제가 아니라 저분이십니다. 이반… 경이요.”
“…….”
루스가 멍하니 이안을 돌아보았다. 이안은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다가오는 망자의 머리를 날려버리고는 화염구를 내던졌다.
불길에 휩싸인 머리가 목이 졸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루스가 두려운 듯 침을 삼키는 사이, 필립이 덧붙였다.
“아마 의식이 시작된 건 그때일 겁니다. 사제님은 그걸 바로 옆에서 목격하신 거고요.”
“…영주님은, 도시의 시민들은 무사합니까?”
“어느 정도는요. 하지만 우리가 어둠의 근원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희생은 더 커질 겁니다.”
“…….”
루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서부의 평화에 익숙한 젊은 수도사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일 터였다.
그의 초점 없는 눈을 바라보며, 필립이 덧붙였다.
“어둠을 처단하는 건 우리가 하겠습니다. 사제님은 끝까지 살아서, 교단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보고하십시오. 어쩌면 사제님이 모든 비극을 시작부터 끝까지 본 유일한 목격자일지도 모릅니다.”
“…제 증언을 믿어 줄까요? 저 역시 제가 본 것들이 믿기지 않습니다만.”
“그들은 받아들일 겁니다.”
단언한 필립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만약 사제님이 끝까지 살아남으신다면, 제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를 알려 드리도록 하죠.”
“그게 무슨….”
“이제 둘 다 입 닫아.”
이안이 말을 자른 건 그때였다.
필립과 루스의 시선을 받은 그가, 고개를 까딱여 앞을 가리키고는 덧붙였다.
“계단에 다 왔으니까.”
“……!”
필립과 루스의 고개가 동시에 앞으로 돌아갔다. 그의 말대로였다.
저 앞의 어둠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분명 1층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지만, 깊은 심연이 펼쳐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안이 루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려가면 바로 예배당인가?”
“…예, 아마도요.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쯤-”
“당신은 내려오지 마시오.”
말을 자른 이안이 필립을 돌아보았다.
“계단 위에 있어라. 무슨 소리가 들려도 내려오지 말고, 사제를 지키면서 자리를 사수해라.”
“…예.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그때 따라 내려가겠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잠시 입을 뻐끔대던 루스가 간신히 내뱉었다.
“혼자, 혼자 가신다고요?”
“그게 더 편하니까.”
검을 늘어뜨린 이안이,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시오. 여기서 겪은 일들을, 바깥세상에 알릴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
멍하니 입을 벌리는 루스를 등진 채, 이안은 계단으로 발을 들였다.
어두운 와중에도 발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계단에 가득 번진 이끼 때문일 터였다.
‘마력은 충분하고… 혼돈력도 이만하면 부족하진 않고….’
이안은 차분하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며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곧 계단의 끝이 보이면서 주위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졌다. 예배당의 전경이 뒤이어 펼쳐졌다.
가득하다던 시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온갖 색의 이끼와 버섯들이 장내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 무릎 꿇은 채 몸을 숙인 사제들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하나 같이 등이 불룩 튀어나온 채, 맞잡은 앙상한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었다.
죽은 것처럼 미동도 없었지만, 공허의 마력만큼은 선명했다.
“…….”
하지만 이안은 그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사제들이 경배하고 있는, 단상 위의 거대한 덩어리였다.
실제로 보니 알보다는 번데기에 가까워 보였다. 우화를 준비하듯, 내부에서 혼돈력이 꿈틀댔다.
중요한 건, 아직 그 과정이 끝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
이안은 생각과 동시에 내달렸다.
단상을 노려보는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물들고, 흑검을 움켜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푸스스-
십자 막이를 타고 번진 아지랑이가, 뒤이어 검날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