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이걸 막아?’
찰나의 순간, 이안의 시선이 기형 검을 훑었다.
날의 특이한 형태는, 얕게 베이거나 찔려도 최대치의 출혈을 유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리라.
표면에 균열이 번졌을 뿐 진은 강철 검과 맞부딪쳐도 단박에 부러지지 않은 걸 보면, 최상급 제국 강철로 만든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촤아악-
암살자는 이안의 힘을 견디거나 흩어버리지 못하고 주르륵 밀려났다. 맞닿은 검날을 뿌리치지도 못했다.
“……!”
하지만 두건 아래의 눈동자가 순간 커진 건, 이안의 힘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마주 보는 이안의 눈동자에 잿빛 마력이 아른거리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게, 그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쩌엉-!
검날에서 소리 없이 터져 나온 무형의 폭발이 기형 검과 검을 쥔 팔뚝을 산산 조각내 버렸기 때문이다. 암살자의 얼굴에는 조각난 검의 파편이 후두둑 틀어박혔다.
이안은 그대로 놈을 밀쳐내며 몸을 휘돌렸다.
쒸에엑-
어느새 측면으로 다가선 또 다른 암살자가 기형 검을 내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걱-!
그보다 빠르게 휩쓸고 간 새하얀 궤적이 암살자의 내뻗은 팔뚝을 그대로 앗아갔다. 자루를 쥔 잘린 손이 검과 함께 옆으로 날아가는 사이, 샛노란 궤적이 뒤를 이어 뻗어 나갔다.
콰직!
백금 방벽의 방패 날이 놈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방패가 손등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안의 손을 타고 두개골 부서지는 감촉이 전해졌다.
암살자의 두건이 충격파에 휩쓸려 벗겨졌다. 드러난 놈의 얼굴은 눈구멍만 뚫린 검은 복면으로 덮여 있었다.
그 내부가 흐물흐물해진 암살자가 튕겨 나가듯 뒤로 나뒹굴었다. 어느새 사방이 비 냄새 대신 피비린내로 자욱했다.
“후우… 후우….”
숨을 고르며 자세를 다잡은 것도 잠시. 이안이 불현듯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그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든 단검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이안이 왼손을 뻗었다.
턱-
날아가던 단검의 자루를 움켜쥔 이안이, 그대로 다시 앞으로 내던졌다. 퍽! 날아온 그대로 되돌아간 단검이, 저 앞 암살자의 두건 사이에 박혔다. 고개를 뒤로 튕기듯 꺾은 암살자가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이게 되네.’
삐이이익- 고막을 찌르는 듯한 소리가 번진 건 그때였다.
이안에게 달려들던 두 암살자가 멈칫하더니, 그대로 폭발탄을 이안을 향해 흩뿌리며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이안도 당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힘껏 펄쩍 뛰어오르면서, 몸을 비틀어 백금 방벽을 아래로 향했다.
퍼버버벙-
폭발이 연달아 터져 나갔다.
사람 키보다 높이 솟구친 이안의 몸을 조금 더 위로 솟구치게 하기엔 충분한 폭발이었다.
온몸이 울리는 와중에도, 이안은 마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폭발이 오히려 조금 고마워졌다. 덕분에 전장이 훤히 보였으니까.
화르르-
마차 쪽에서도 이곳과 같은 폭발이 번지고 있었다. 특히 페이든의 인근이 그랬다. 아스메 근처의 암살자들은 전부 쓰러져 있었다.
숫자는 훨씬 적지만, 이안의 마차 근처도 마찬가지였다.
확인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안은 한 방향으로 모여들며 도주하는 암살자들을 눈에 담았다. 여섯.
‘이래서 완수 조건이 두 개였군.’
다시 추락하기 시작하면서, 이안은 검을 허리춤에 회수했다.
그의 눈동자에 다시금 잿빛 마력이 휘몰아쳤다.
저것들이 순순히 도망치게 놔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
“하아… 하아….”
숲의 어둠을 노려본 것도 잠시.
-나리! 놈들이 물러납니다!
속삭이며, 필립은 투구 앞까지 들고 있던 진은 강철 방패를 내렸다.
전신에 아른거리던 신성이 가라앉고, 판금 갑옷 곳곳에 번쩍이던 마석의 빛도 옅어졌다.
-나도 알아.
-그럼, 끝난 건가요, 이안 님?
-아직. 기다려라.
이어지는 이안과 엘리야의 속삭임을 들으며, 필립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와 이안의 마차 근처에 쓰러져 있는 암살자의 숫자는 몇 되지 않았다.
그들이 저들의 최우선 목표는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암살자들은 필립이 펼치는 기적과 주문에 몇 번 당한 후로는, 볼트와 단검만 던져댈 뿐 근처로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었다.
아마 그가 말을 지키는 데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이기도 했으리라.
“이안 경?! 경! 어디 가십니까? 멈추십시오!”
“……?!”
페이든의 다소 당황한 듯한 외침이 번지자, 필립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저 앞, 빗줄기를 뚫고 멀어져가는 황금빛 궤적이 비로소 그의 눈에도 막혔다. 암살자들이 도주한 방향이었다.
-나리! 저놈들을 따라잡으시려고요?
이어진 그의 속삭임에도, 이안은 멈춰 서거나 돌아오지 않았다.
-뒷수습이나 하고 있어.
짧은 속삭임만이 뇌리를 울렸을 뿐, 그나마 보이던 황금빛마저 흩어져 버렸다. 이안의 모습은 더이상 육안으로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대체…?”
저 옆에서 페이든의 탄식이 번지는 가운데, 필립은 문득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변방에서 있었던 해묵은 추억과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과 역시,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어깨를 으쓱인 필립이 검을 다시 허리춤에 회수했다. 그는 방패를 다시 등에 짊어지면서, 안면 가리개까지 내리며 몸을 돌렸다.
습기 섞인 차가운 밤공기가 투구 안으로 밀려들었다. 비릿한 피 냄새까지도.
“…….”
그러나 크게 숨을 들이켜는 필립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번지고 있었다.
이런 난장판의 와중에도, 그의 뒤에 선 두 마리의 말들이 모두 무사했기 때문이다.
마석이 번쩍이는 마갑을 걸친 닐라는 물론이고 녀석의 곁에 선 갈색 말도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헐떡이고 있을 뿐, 어쨌든 살아 있었다.
가진 능력을 총동원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였다. 덕분에 필립은 이제야 비로소, 마법 무구를 적재적소에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익힌 기분이었다.
퍼억-
콧김을 뿜던 닐라가 고개를 휙 옆으로 움직여, 갈색 말의 목덜미에 자신의 옆 머리를 박았다.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갈색 말은 화들짝 고개를 털면서도 성질조차 부리지 못했다. 녀석이 살아남은 데에는 닐라의 도움도 있었다. 마갑에 새겨진 주문이 날아오는 볼트와 단검을 몇 번이나 막아냈으니까.
필립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 짙어질 찰나.
“따라가야 하지 않겠소, 경?”
옆에서 페이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닙니다. 우리는 주변 정리나 하고 있죠. 다 끝난 것 같으니.”
태연하게 대답하며, 필립은 말들의 고정끈을 풀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는 이 녀석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던 터라 상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가만히 세워 둘 수는 없었다.
기껏 지켜 놓고 감기로 잃는다면 그보다 허망한 일은 없으리라.
필립이 갈색 말에 이어 닐라의 고정 고리까지 풀어헤칠 찰나.
“아, 아스메!”
저 앞에서 비명 같은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페이든 경…! 아스메, 아스메가!”
황녀였다. 이어진 외침에, 필립의 얼굴에 맺혀 있던 미소가 씻은 듯 사라졌다.
-엘리. 말들을 나무 아래로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비를 피할 수 있게요.
-네. 알았어요.
-닐라 곁에 붙어 계십쇼.
닐라의 등을 두드린 필립이 곧바로 몸을 돌렸다.
어둠 너머, 쓰러진 아스메를 안고 있는 황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다시 샛노란 빛이 아른거렸다.
***
쩌저저적-
한기가 안개처럼 모여든 것도 잠시, 삽시에 잿빛 장벽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선두를 달리던 암살자가 눈을 치켜뜨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간신히 멈춰선 그는, 퇴각 피리를 불었던 조장이기도 했다.
쉬학-
하지만 모든 부하가 그와 같은 선택을 한 건 아니었다. 그의 바로 뒤를 달리던 암살자는, 오히려 속도를 높이며 몸을 날렸다. 장벽을 뛰어 넘으려는 시도였다.
꾸드드득-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저 장벽은 땅에서 솟은 게 아니라, 빠르게 얼어붙으며 만들어지는 것이었으니까.
“…헉!”
장벽은 몸을 날리던 암살자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는 벽면에 반신이 박힌 듯한 형상이 됐다. 툭 튀어나온 두 다리가 허공에서 바들댔다.
“…….”
조장은 그 모습을 다소 망연자실하게 눈에 담았다.
이미 전장을 한참이나 벗어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안심하고 속도를 늦춘 게 화근이 될 줄이야.
드드드드득….
심지어 잿빛으로 번들거리는 얼음 장벽은, 위로만 높이 솟아나는 게 아니었다. 좌우로도 커다란 원을 그리듯 이어졌다.
갑자기 생겨난 얼음 성벽이 그들을 가둔 듯한 형국.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말 그대로 당혹스러운 규모의 주문이었다.
“후우… 후우….”
이 주문을 누가 사용했는지 알아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저 뒤에서, 그들의 것이 아닌 숨소리가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멈춰선 부하들과 조장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뒤로 돌아갔다.
솨아아….
손에 움켜쥔 푸른 빛이 일렁이는 정수를 앞으로 내뻗은 남자는, 조장도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마차 앞으로 갑자기 튀어나와 그들의 기습을 망쳐버린 장본인이었으니까.
가장 많은 부하들을 죽인 자이기도 했다. 대체 자신들의 습격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눈치챈 건지는 아직도 의문이었지만. 당장은 그보다, 저자의 모습 자체가 훨씬 더 불가사의했다.
“간신히 잡았네….”
손아귀의 정수만이 아니라, 그들을 응시하는 눈동자도 불길한 보랏빛으로 번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늘어뜨린 오른손에도 아까와는 전혀 다른 검을 움켜쥐고 있었다. 분명 어둠 속에서도 날이 새하얗게 번뜩였건만. 지금은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검었다.
체감과 달리, 그들의 적막한 대치는 찰나에 불과했다.
사사사삿-
새카만 검날에 보랏빛 아지랑이가 솟구치기 시작한 순간, 부하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조장의 눈에 그건, 고도로 훈련된 암살자의 본능적인 반응에 가까워 보였다. 그 역시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저자를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죽는다는.
지잉-
앞으로 내뻗은 남자의 손아귀에서 황금빛 방패까지 솟아난 순간, 그 느낌은 훨씬 더 짙어졌다.
하지만 조장은 부하들과 달리 그를 향해 달려가지 않았다.
무의식에 각인된 의무감이 본능을 이겨냈다.
임무의 실패를 보고해야 했다.
벌떡 일어난 조장은, 남자를 향해 달려드는 부하들을 등진 채 얼음 장벽으로 달려갔다.
서걱-! 콰직!
이미 완성된 장벽은 빈틈이 없었고, 반대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다. 중앙에 박힌 채 아직도 바들대고 있는 하반신을 올려다본 조장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꽈직-
힘껏 내리친 기형 검은, 장벽 표면에 푹 파인 흔적만을 겨우 만들어 냈을 뿐이었다. 깊이 박히지도, 균열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서걱- 푸확-!
뒤에서 푸른 빛이 번쩍인 건, 조장이 장벽을 넘을 방법을 찾기 위해 다시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
이내 그의 눈이 커졌다. 원을 그리며 밀려 나온 한기가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속눈썹이 얼어붙고, 빗방울들이 그대로 얼어붙어 우박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하지만 저 앞에 펼쳐진 광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콰장창-
허공에서 그대로 얼어붙은 듯, 부하 하나가 얼음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조각상처럼 굳어버린 둘의 뒷모습. 이미 토막 나 널브러진 시신들에도 하얗게 성에가 끼어 있었다.
콰지직-!
보랏빛 궤적이, 굳어버린 둘을 단숨에 갈라버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피도 솟구치지 않고 비스듬하게 떨어져 내리는 부하들의 상반신 너머로, 이 모든 광경을 만들어 낸 장본인의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조장이 일순간 숨을 멈출 찰나.
“…네가 마지막이군.”
남자가 입꼬리만 말아 올리며 읊조렸다.
얼어붙은 하반신들이 한 박자 늦게 쓰러지면서, 보랏빛 아지랑이를 뿜어내는 마검과 금빛으로 일렁이는 방패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
조장은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다.
죽음을 만들어내는 자들이 끝내 모두 그렇듯, 그에게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