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했군. 다들 자고 있을 것 같은데.”
미구엘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백인장들이 앞으로 다가왔다.
“도착하면 일단 짐만 풀고 한숨 자라. 물자 정리나 확인은 그 뒤에 해.”
“예. 대전사.”
백인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도 옅은 피로가 맺혀 있었다. 아무리 축복을 받고 안장 위에 있었다 해도, 고될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도보로 행군한 전사들은 더할 터였다. 다들 내색하진 않았지만, 아마 머리를 땅에 댄 순간 바로 곯아떨어지리라.
별 피로를 느끼지 않는 건 이안 뿐일 터였다. 물론 이안도 아예 멀쩡한 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목욕, 특히 머리를 감고 싶은 욕구를 떨칠 수가 없었다.
“천천히들 따라와라.”
백인장들이 돌아가는 사이, 미구엘과 루시아에게 덧붙인 이안이 고삐를 털었다.
다그닥- 다그닥-
닐라가 적당한 속도로 행렬을 앞질러 나아갔다. 이안은 완만하게 이어진 오르막 너머의 굳게 닫힌 대문과 목책. 그리고 그 뒤에 솟은 망루를 눈에 담았다.
“맙소사 카르하여….”
두 야인 전사가, 잠이 확 달아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군단을 이끌고 오셨군….”
희미한 탄식을 흘리던 그들의 눈이 이내 조금 더 커졌다. 군단에 시선을 빼앗긴 탓에, 자신들 쪽으로 달려오는 이안을 이제야 발견한 모양이었다.
뻣뻣하게 굳어진 그들이 서로를 멍하니 돌아보는 사이, 이안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고삐를 당겼다.
닐라가 슬쩍 측면으로 몸을 돌리며 멈춰 섰다. 동시에 두건을 벗은 이안이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나?”
“물론입니다, 대전사…!”
이윽고 두 전사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이안을 바라보는 눈빛에 다소 과한 열기가 일렁였다.
이건 뭐, 거의 연예인이군.
내심 읊조리며 이안이 턱짓했다.
“다들 아직 자고 있고?”
“……! 염려 마십시오, 대전사.”
다시 한 번 눈을 치켜뜬 둘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덧붙였다.
“저희만 믿으십시오. 전부 깨워서 대전사를 맞이하게 하겠습니다!”
“아니, 그러라는 게 아니라-”
미간을 찌푸린 이안이 내뱉을 때, 두 전사는 이미 망루 뒤편으로 뛰어내리듯 몸을 날리는 중이었다.
“그냥 조용히….”
…들어가겠단 거였는데.
저도 모르게 손까지 내뻗었던 이안이, 이윽고 팔을 툭 떨구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조용히 들어갔더라도 어차피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뒤늦게 귀찮을 일 없게 빠르게 끝내는 편이 나을지도.
‘문이라도 열어주고 가지.’
심지어 통나무 대문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였다. 문틈 사이로 굵직한 빗장의 모습이 설핏 보였다.
혀를 찬 이안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피로가 역력한 얼굴로 언덕을 오르는 전사들.
…그냥 내가 하고 말지.
결국 입맛을 다신 이안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며 훌쩍 안장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가 걸음을 옮기는 사이.
“대전사께서 돌아오셨다-!”
목책 너머에서 외침이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자루를 쥔 이안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진은 강철 장검의 검날에서 황금빛 마력이 번졌다.
***
“대전사께서 돌아오셨다!”
“다들 광장으로 나와 대전사와 군단을 맞이하시오!”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트루드는, 연달아 울려 퍼지는 외침에 인상을 찌푸리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대전사…?”
물론, 눈이 번쩍 뜨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대전사!?”
그가 튕겨 오르듯 상반신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번졌다.
“벌써 돌아오셨다고?”
이안이 약속한 한 달까지는 아직도 이틀이나 남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생각하며 굴러떨어지듯 침대 밖으로 나온 트루드가, 바닥 곳곳에 널브러진 놈들을 걷어찼다.
늦은 밤까지 함께 술을 마신 간부들이었다.
“당장들 일어나! 안 들리냐? 대장이 돌아오셨다고!”
“으응? 그게 뭔…. …뭐라고?!”
뒤늦게 눈을 뜬 녀석들의 반응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쯤 얼빠진 얼굴로 일어서는 놈들에게, 트루드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얼른 그 지저분한 엉덩이 들고 튀어 나가! 다들 앞으로 집결하라고 해! 당장!”
“아, 알겠소…!”
복장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간부들이 우르르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제야 식탁에 놓인 냉수를 벌컥 들이켠 트루드가 허겁지겁 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툼한 털 망토를 걸친 그가 밖으로 나섰다. 잠이 덜 깬 듯 얼떨떨한 얼굴의 용병들이 거리로 모여들고 있었다.
“아니 무슨 이런 이른 아침에….”
“잠도 안 자고 오신 건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그들 앞에 멈춰선 트루드가 곧바로 내뱉었다.
“다들 입 닥쳐.”
웅성대던 목소리가 삽시에 잦아들었다. 뒤늦게 나온 용병들이 허둥지둥 달려오는 가운데, 모여 선 용병들을 한차례 돌아본 트루드가 덧붙였다.
“눈곱 떼고 옷매무새 다듬어. 대장 앞에선 입조심 해라. 말실수하는 놈들은, 다시는 실수할 일 없게 만들어 줄줄 알아.”
용병들이 황급히 각자의 복장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몇몇은 외투조차 걸치지 않은 채였다.
“…….”
그 와중에도 몇몇은 불쾌한 듯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대부분 새로 합류한 놈들이었다. 뭐라 입을 열지 않는 건, 트루드의 악명을 알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얼마 전엔 도망치는 놈들을 붙잡아 이마에 낙인까지 새겨주지 않았던가. 손가락이 몇 개 사라진 건 귀엽게 보일 정도의 형벌이었다.
“…정말 오셨나 보군.”
몸을 돌린 트루드가 광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이, 그의 뒤를 따르던 간부들이 나지막이 중얼댔다.
어느새 정착지의 야인들이 죄다 광장에 모여든 상태였던 것이다. 맨발로 뛰쳐나온 이들까지 있었다.
“오… 오오…”
“위대한 대전사시다….”
크고 작은 탄식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광장으로 들어선 트루드의 입 역시, 순간 멍하니 벌어졌다.
다각- 다각-
덩치 큰 백마에 올라탄 이안이 망토를 휘날리며 광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검은 털로 덮인 방한 장구를 걸친 백마는 한눈에 봐도 명마였고, 그 위에 탄 이안 역시 위엄이 넘쳤다.
“이런 미친….”
하지만 트루드가 넋을 잃은 건 그런 이안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행렬의 규모에 압도당해서였다.
기병만 해도 수십은 되어 보였고, 그 뒤로 늘어선 병사들은 여기서는 끝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그 짧은 사이에… 야인 전사들을 전부 집결시키신 거군….”
이윽고 트루드가 경탄하듯 읊조렸다.
동시에 북부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광경이기도 했다. 야인 전사들을 하나로 뭉친 건, 자치령의 대공조차도 해내지 못한 일이 아니던가.
다각- 다각-
하지만 정작 광장을 가로질러 카르하의 성상 앞에 멈춰 선 이안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말머리를 돌린 그가 좌중을 한차례 돌아보고는 내뱉었다.
“다들 다시 만나서 반갑군. 먼 길 오느라 피곤하니, 환영 인사 같은 건 전부 생략하겠다.”
엉거주춤 몸을 숙이던 야인들이 멈칫하는 가운데, 이안의 시선이 뒤따라 멈춰 서는 병단으로 향했다.
“고생들 했다. 정리 대충 끝내고 휴식해.”
“예! 대전사!”
일제히 대답한 전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대화가 오가지 않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설원 지대에서부터 이곳까지 멈추지 않고 걸었을 테니까.
“……!”
트루드가 퍼뜩 정신을 차린 건, 자신을 돌아보는 이안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고개를 까딱인 이안이 안장에서 내리는 사이, 트루드가 허둥지둥 달려갔다.
“고, 고생하셨소, 대장. 약속한 날보다 더 빨리 돌아오실 줄은 상상도 못 했소. 실은, 정말 이렇게나 많이 모아 오실 줄도 몰랐고 말이오.”
“많은 일이 있었지. 힘들었다.”
건조하게 웃음 지으며 대답한 이안이, 트루드의 뒤편을 눈에 담았다.
“보아하니 너도, 과제를 일정보다 일찍 끝낸 것 같은데.”
그의 시선을 받은 몇몇 용병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트루드가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였다.
“뭐, 집결 통보하고 여기서 기다린 것밖에 한 게 없지만 말이오.”
“그래서, 전부 몇이나 되지?”
닐라의 목덜미를 한 차례 토닥인 이안이, 용병들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며 물었다.
닐라는 이안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스스로 말머리를 돌려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말들을 추스르는 기병들 쪽이었다.
“다 합해서 삼백스물두 명이오.”
이안의 곁으로 따라붙으며, 트루드가 말을 이었다.
“대장을 따라가겠다고 자원한 미친놈이 백오십 명도 넘소.”
“그러게. 생각보다 많군.”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다가오자 주춤주춤 물러난 용병들이, 자연스럽게 반원을 그리며 멈춰 섰다. 그들을 한차례 죽 일별하며, 이안이 입을 열었다.
“여길 떠나는 순간부터, 너희는 용살자의 전사들이 아니다.”
“……?”
“용살자의 군단이지.”
어리둥절 해하던 용병들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너희는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가게 될 거다. 자원한 놈들은 생각을 바꿀 기회를 이틀 주지. 겁나면 그 안에 떠나. 물론, 내 이름을 써먹던 놈들은 예외야. 너희는 전부 나와 함께 간다.”
용살자의 전사들 몇몇이 마른 침을 삼켰다. 갑자기 추위를 느끼는 것처럼 몸을 움츠리는 놈들도 있었다. 물론, 반대로 각오를 다지는 눈빛이 되는 놈들도 여럿이었다.
이안이 덧붙였다.
“이틀 뒤엔 전부 똑같이 내 군단이 될 거다. 그때부턴 떠나고 싶으면 머리를 두고 떠나야 할 거야. 군법으로 다스릴 거니까.”
“……!”
“전선까지는 급속 행군. 하루에 네 시간만 자고 나머지는 전부 걸을 거다. 못 버틸 것 같은 놈들은 알아서 말이라도 구해. 안장에서 조는 것까진 막지 않을 테니까.”
통보하듯 말을 이은 이안이 이윽고 고개를 까딱였다.
“질문 있는 사람?”
“…….”
물론 손을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다들 경외심이나 두려움, 호기심을 머금은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안이 만족스럽게 말을 이었다.
“감기 걸리지 않게 관리 잘해라. 아파도 끌고 갈 거니까. 오늘부터는 술도 금지야.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놈들만 마셔라.”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트루드를 잠시 바라본 이안이 덧붙였다.
“그럼, 해산. 간부들만 남고.”
“…아, 알겠소. 못 들었냐? 다들 들어가서 옷부터 걸쳐!”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트루드가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그제야 용병들이 엉거주춤 몸을 돌렸다. 몇몇은 반대로 이안에게 다가왔다. 원조 용살자의 전사들이라 할 수 있는, 벨리움에서 함께 싸우고도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인원을 백인대 셋으로 나눠. 백 명이 넘어도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균일하게 분배해라. 백인 대장과 부관은 너희가 알아서 나눠 가지고.”
그때 같은 날카로움과 굶주림은 찾아볼 수 없는 면면을 차근히 돌아보며, 이안이 말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다시 트루드에게서 멈췄다.
“너도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는 용병 단장이 아니라 백인장이다.”
“아, 알겠소. 대장. 그런데, 군단이라는 말씀은….”
“내 밑으로 정식 편입하겠다는 거야.”
“역시…!”
트루드의 눈이 순간 번쩍였다.
간부들도 그제야 묘한 눈빛이 되어 서로를 돌아보았다. 설원 변경백 휘하의 정규군이 되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못지않은 위세를 떨치고 있긴 했지만, 정말 그런 것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이안이 서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단꿈을 꾸기엔 이른 것 같은데.”
“아, 그, 그렇지. 나도 모르게 그만…. 조심하겠소.”
퍼뜩 정신을 차린 트루드가 입가의 미소를 지웠다. 짧게 혀를 찬 이안이 덧붙였다.
“다른 손님은 없나? 제국 상인이라던가. 귀빈이라던가.”
“제국 상인…? 상인은 없소.”
이어진 트루드의 대답에 이안의 눈매가 설핏 좁아졌다.
…지원은 결국 늦은 건가.
그가 내심 읊조리는 사이, 트루드가 덧붙였다.
“하지만 귀빈들은 있소. 일단, 대공 전하의 대사가 와 계시오.”
“…대사?”
이안의 눈매가 조금 더 좁아졌다. 고개를 끄덕인 트루드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대공 전하의 전언을 가지고 왔다더군. 도착한 지 며칠쯤 됐소. 그런데 보아하니….”
주위를 한차례 돌아본 그가 덧붙였다.
“아직 안 일어났나 보군. 하긴. 어제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긴 했소.”
“…….”
그사이, 이안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스치고 있었다.
‘대공 이 새끼가 또….’
아무래도 울라프 대공이 자신을 만나지 않고 그대로 전선으로 보내버리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그게….”
순간 굳어져 있던 트루드가 입술을 달싹인 건 그때였다.
“귀족이랍시고 뻗대는 게 재수가 없어서… 그, 그래서 일부러 술을 좀 더 먹이긴 했소… 내가 멍청했지. 대장께서 일찍 돌아오실지도 모르는데 말이오….”
이안의 표정을 질책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낮게 코웃음 친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됐으니까, 찬물을 끼얹어서라도 깨워서 데리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