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405
405화
“그래…?”
되묻는 백작의 얼굴에 핼쑥한 미소가 번졌다. 쉴 틈도 없이 다음 업무를 맞이하는 직장인의 얼굴이었다.
“바로 준비해서 나가도록 하지.”
고개를 숙인 오크가 복도 옆으로 물러났다. 곧바로 다시 이안을 돌아본 백작이 덧붙였다.
“아쉽지만 담소는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군요, 성자 대행. 제게 해 주신 말씀은, 잊지 않고 기억해 두겠습니다.”
“나도 동행해야 하는 상황이오?”
이안이 술병을 들고 일어서며 물었다.
“그러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문으로 향하려다 멈칫한 백작이, 입꼬리만 말아 올린 채 이안을 돌아보았다.
“제가 홀로 저들을 맞이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신다면,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질 겁니다.”
이안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히 그가 옆에 알짱대면 일이 더 귀찮아지리라는 뜻임을 곧바로 깨달아서였다.
“그러시다면야. 알았소.”
물론 이안에게도 달가운 일이었다. 가장 귀찮고 번거로운 부분들을 대신해 주겠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먼저 가시오. 난 천천히 뒤따라 나갈 테니까. 눈에 띄지 않게.”
“예. 이제 저택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식당으로 갈 거요. 일어나자마자 온 참이라서.”
“아니, 그럼 빈속에 그 독한 술을 드시고 계셨던 겁니까…?”
백작이 새삼스럽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이고는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대단하시군요… 전 식사를 한 끼만 걸러도 속이 쓰린데 말입니다.”
감탄하듯 덧붙인 백작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성자 대행.”
배려는 무슨. 나 편하자고 그러는 건데.
이안이 속으로 읊조리는 사이, 방을 나선 백작이 경비병과 함께 멀어졌다.
느긋하게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이안이 입을 열었다.
“올빼미들이 전부 당한 건 아니었나 본데.”
벽에 뒤통수를 기대고 있던 디아나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전투는 우리 역할이 아니니까. 거점이 무너지면, 살아남아 상황을 전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지.”
“최후의 목격자라는 거군.”
“그래. 나도 그렇게 이곳에 오게 됐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디아나가, 집무실을 나서는 이안의 뒤로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유랑단이 도시로 쳐들어가는 걸 본 녀석들이 있겠지. 바로 인근에 대기하면서 상황을 주시했을 거야.”
이안이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디아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올빼미들이 도시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계속 기다렸겠지. 도시로 들어갈 때 미리 약속해 둔, 몇 개의 경로가 있거든.”
“시간이 지나도 유랑단이 나오지 않으니 의아했겠군.”
“그러니까 늑대들과 합류하자마자 밀고 들어온 거겠지.”
출입문 너머를 눈에 담은 디아나가, 이내 낮게 코웃음을 흘리고는 덧붙였다.
“아마 위장 장벽이 무사한 걸 보고 깜짝 놀랐을 거야. 보초들이 남아있는 걸 보곤 더더욱. 지금은 뭐, 얼이 빠져 있겠지.”
…역시, 백작만 보내길 잘했네.
아까보다 더 왁자지껄하게 번지는 소리에 슬쩍 미소지은 이안이, 정문을 나서며 덧붙였다.
“식사는 내가 시켜둘 테니까, 너는 공방에 다녀와. 늑대들이 도착했으니 서두르라고.”
“그래…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네 명령이라면, 저 옹고집들도 받아들일지도 모르지.”
이안은 광장을 가로질러, 상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발을 들였다.
아래로 지하 도시의 전경이 펼쳐졌다. 아래의 상층과 중층은, 최상층과 마찬가지로 뼛조각 하나 없이 말끔해진 상태였다.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건 최하층뿐이었다. 주민들도 그 근처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다들 작업을 멈춘 채였다. 돌아온 올빼미들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 중요한 건 저들이 아니었다.
-호오….
내내 지겨운 듯 침묵하던 요그가 낮은 탄식을 흘렸다. 주민들 너머로 시선을 돌린 이안의 눈매 역시 설핏 좁아졌다.
“늑대들은 밖에서 대기 중인가 보네.”
나란히 계단을 내려가던 디아나가 덧붙였다. 늑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럼 저 자가 사자라는 뜻이군.”
지하수가 냇물처럼 흘러나오는 동굴 앞에, 거뭇한 전신 판금 갑옷을 걸친 기사가 홀로 불쑥 솟아 있었으니까. 아주 육중한 갑옷이었고, 안면 가리개로 얼굴도 완전히 가린 채였다. 하지만 그사이의 샛노란 안광만큼은 또렷했다.
디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유랑단 정도 되는 놈들을 토벌하는 데에 늑대들만 보낼 리 없지. 보아하니 흑사자 같은데. 최정예가 왔군….”
하지만 이안의 미간이 좁아진 건, 저 흑기사의 겉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 말은 이미 변이된 것 같은데.”
그가 타고 있는 흑마의 모습이 범상치 않아서였다. 들소를 방불케 하는 덩치에, 마갑과 하나로 융합된 듯한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날뛰거나 주민들에게 달려들지는 않았고, 붉은 안광이 일렁이는 머리를 땅으로 푹 숙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굴러다니는 뼈를 통째로 씹어먹는 중이었다.
“전마들은 죄다 저런 몰골이지. 아주 위험해. 저것들을 길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늑대로 인정받는다더군.”
역겹다는 듯 내뱉은 디아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난 저것들의 등에는 절대로 안 탈 거지만.”
“아주 훌륭해 보이는데. 웬만해선 죽을 것 같지도 않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당연하지. 그런데 혹시….”
태연하게 대답한 이안이, 디아나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히케드 전하도 저런 상태이신 건가?”
멈칫한 디아나가, 대답 대신 슬며시 그의 시선을 피했다. 술을 한 모금 마신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
“…함부로 전하를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을 뿐이야.”
나지막이 읊조린 디아나가, 목소리를 낮춘 채로 덧붙였다.
“하지만 전하는 어둠이나 혼돈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어. 적어도, 내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까지는.”
…오히려 그게 더 놀라운데.
속으로만 읊조리며,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히케드가 아직도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가 타고난 초능력 덕분일 가능성이 높았다. 정확히 어떤 능력을 타고났는지는, 아직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드디어 이 도시에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생겼군.
요그가 덧붙인 건 그때였다. 이안의 입가에 옅은 실소가 스쳤다.
“나랑 전혀 다른 걸 보고 감탄한 거였군….”
녀석이 뭘 본 건지 알아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도시 반대편. 경작지 아래의 최하층에, 커다란 뼈 무덤이 여러 개 솟아 있었기 때문이다. 널브러져 있는 뼈들을 마저 모으면, 하나 정도는 더 만들어질 것 같았다.
꽤 인상적인 광경이기도 해서, 흑사자도 다가오는 백작 대신 뼈 무덤 쪽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이안이 이내 덧붙였다.
“저렇게 모아두면, 오히려 버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
“버리려는 게 아니야.”
디아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갈아서 비료로 쓸 거라던데. 빨래할 때도 쓰고. 뭐, 공방에도 쓸 데가 있다더군.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알뜰하군….”
“저것들도 네 전리품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냐.”
중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접어들며, 이안이 덧붙였다.
“쓰게 둬. 어차피 버릴 것들인데.”
-그럼, 나도 잠시 이용해도 될까, 친구?
요그가 재빨리 속삭였다.
-저 사이에 들어가 있으면, 아주 아늑할 것 같아서 말이야.
누가 뱀 새끼 아니랄까 봐.
계단으로 접어들며 이안이 낮게 실소하는 그때, 저 아래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꼬질꼬질해진 루시아였다.
‘현지인 다 됐네.’
이안의 입꼬리가 조금 더 말려 올라갔다. 루시아도 마찬가지로 살짝 미소 지었다. 식당 쪽으로 고개를 까딱인 이안이, 오른손을 들며 속삭였다.
“그럼 가서 쉬면서, 특이 사항이 생기면 보고나 해. 늑대들이 들어온다거나. 저 흑사자란 놈이 뭔가 한다던가.”
-기꺼이 그러지….
이안이 휙 오른손을 털었다. 그대로 손가락에서 튕겨 나간 요그가 허공을 가르며 멀어졌다.
“……!”
말에서 내려 백작과 마주 서 있던 흑사자가 홱 고개를 돌린 건 그때였다. 웅성대던 일대가 한순간 고요해졌다. 뒤이어 주민들이 그와 같은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계단 중턱의 이안에게 집중됐다.
“…그럼 다녀오겠다. 이안.”
속삭인 디아나가 휙 그를 앞서간 건, 주민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바로 직후였다.
‘조용히 지나가나 했더니….’
입맛을 다시며 마저 계단을 내려간 이안이, 재빨리 식당으로 이어진 길로 접어들었다.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노란 안광은, 본 척도 하지 않은 채였다.
***
식당에는 난쟁이 여인만 남아있었다. 다른 이들은 전부 도시를 정리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머리에 쟁반을 얹고 다가온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이안의 앞에 접시를 휙휙 내려놓았다.
“…….”
하지만 식탁을 내려다보는 이안의 한쪽 눈썹은 슬며시 말려 올라가는 중이었다.
“부족하시면 말씀하세요.”
툭 덧붙인 여인이 몸을 돌렸다. 이안의 입가에 헛웃음이 번졌다.
끔찍하게 생긴 소시지. 얇게 저민 햄. 온갖 건더기가 들어간 스튜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검은 빵까지.
각자 다른 접시에 한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술잔에도 술이 찰랑댔다.
“…오크들도 혼자서 이만큼은 못 먹을 것 같은데.”
고개를 가로저으며 읊조리면서도, 이안은 냉큼 포크를 들었다.
이 음식들을 보고 군침이 돌다니. 어느새 이 마경에서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게 분명했다.
-이 말은 마물 뼈를 가장 좋아한다는군. 인간의 뼈는, 별로 맛이 없다는데.
뇌리로 요그의 흐릿한 속삭임이 번졌다. 이번에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정보였다.
사실 지금까지 요그가 속삭인 영양가 있는 소식은, 백작이 흑사자에게 도시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있다는 게 전부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하던 일은 마무리 짓느라고요.”
루시아가 식당으로 들어온 건 그때였다. 이안이 입을 우물대며 돌아보자, 녀석이 빙긋 미소 지었다.
“다행히 안색이 좋으시네요. 한동안 괴로워 하실 줄 알았… 와. 이게 무슨.”
식탁을 돌아본 녀석이 탄성을 흘렸다. 피식한 이안이 포크로 앞을 가리켰다.
“앉아. 다 먹으려면,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니까.”
“제가 참전한다고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요.”
대답하면서도, 루시아가 선선히 건너편에 앉았다. 꼬질꼬질한 얼굴에 피로가 묻어나왔다.
“먹고 가서 쉬어라. 씻는 것도 잊지 말고.”
“네. 어차피 남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그보다….”
햄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한 루시아가,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
“히케드 전하의 능력이, 저 흑사자와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해요. 그게 아니라면, 타락자가 저렇게 정신이 온전할 리 없어요.”
이 와중에 그런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니. 낮게 웃은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늑대들은 타락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죄다 그, 변이된 말을 타고 다니고요.”
“아직도 밖에 있는 것 같던데.”
“주민들이 전부 정화 작업 중이라서 그런 거래요. 겁을 먹거나 괜히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작업이 다 끝나면 들어온다던데요.”
“그렇군….”
“그리고 이안 님.”
거의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춘 루시아가, 빈 식당을 슬며시 돌아보고는 덧붙였다.
“오늘에서야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뭔데.”
“여기 사람들은, 아무도 기도를 하지 않아요.”
이안의 입가에 옅은 실소가 번졌다.
난 또 무슨 대단한 얘기라고.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잖아.”
“글쎄요…. 그냥 그래서인 것 같지는….”
읊조리던 루시아가 이내 소시지를 입에 넣었다. 가면을 쓴 백금발의 요정이 식당으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곤한 땅딸보들 같으니…. …미친. 이게 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가오던 디아나가, 이내 놀란 듯 탄식했다. 눈기도 주지 않고 빈 자리를 가리킨 이안이 덧붙였다.
“얘기는 어떻게 됐지?”
“누가 뭐래도 대충 마칠 수는 없겠다던데.”
냉큼 빈 자리에 앉은 디아나가 가면을 벗으며 대답했다. 피로와 짜증이 뒤섞인 얼굴이 드러났다.
“대신, 잠을 줄여서라도 빨리 끝내겠댔어. 이 말을 꼭 전해 달라더군. 절대 그냥은 못 보내드리니, 믿고 기다려 달라고.”
“…일찍 끝내긴 글렀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읊조린 이안이 식사를 이어나갔다. 고기를 우물대던 루시아가 멈칫한 건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다.
-백작과 흑사자가 그쪽으로 가는군.
요그의 속삭임이 번져서였다.
눈을 슬쩍 치켜뜬 루시아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우물댔다.
철컥- 철걱-
곧 둔중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태연하게 음식을 씹어 삼키는 것과 달리, 이안의 신경은 이미 바짝 곤두선 상태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타락자 특유의 서늘한 느낌이 등 뒤에서 번지고 있었으니까.
“……!”
뒤이어 멈칫한 디아나도 눈을 치켜뜨는 가운데, 장내로 백작과 흑사자가 들어섰다. 백작의 머쓱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런, 아직 식사중이셨군요….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니오. 다 먹었소.”
대답한 이안이 술로 입을 헹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루시아와 디아나도 포크를 내려놓은 채였다.
“그러시다면….”
백작이 다가왔다. 이안은 그의 뒤편에 선 흑사자를 눈에 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덩치가 훨씬 더 큰 느낌이었다. 저 육중한 갑옷을 벗더라도 느낌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터였다.
‘확실히 흑기사이긴 한데….’
특유의 위태롭거나 아슬아슬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아주 정제된, 그래서 오히려 성기사에 가까운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안은 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흑기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역천룡의 세번째 사도.
‘…물론 이자는 그놈의 사도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그를 빤히 바라보며 다가오던 흑사자가 멈춰선 건 그때였다.
“…소개하겠습니다.”
낮게 헛기침한 백작이 입을 열었다.
“숭고하고 용맹하신 태자 전하의 검이자, 파견된 푸른 늑대들을 지휘하는 검은 사자. 발텐 보르고스 경입니다.”
오른 주먹을 흉갑에 얹은 발텐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자 대행.”
굵고 음산하게 깔린 목소리였지만, 말투는 아주 정중했다.
일어서려는 루시아에게 손바닥을 펼친 이안이 입을 열었다.
“이안 호프요. 반갑소. 발텐 경.”
“단신으로 유랑단을 일소하고 도시를 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성자 대행께서 이룩하신 위대한 업적에 경의와 찬사를 보냅니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싸웠을 뿐이오. 마침 이곳이, 용의 둥지였던 덕분이기도 하고.”
“과연, 듣던대로 겸손하시군요.”
발텐의 시선이 이안, 그리고 식탁 너머에 앉은 루시아를 훑었다.
“고귀하신 분들께서 전하와 뜻을 함께하신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전하의 명에 따라,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곁에서 지켜보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이안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단의 본부로 가게 된다고 들었소만. 얼마나 걸리겠소?”
“…송구스럽습니다만. 지금 전하께서는 솔 브린에 계십니다. 그곳으로 모실 예정입니다.”
백작이 놀란 듯 돌아보았다.
“솔 브린…?”
“아니 이런… 미친….”
인상을 잔뜩 찌푸린 디아나도 머리를 쓸어넘기며 탄식했다.
그녀를 일별한 이안이 물었다.
“어딘데 그래?”
대답한 건 그레이엄 백작이었다.
“대마족들의 권역에 인접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