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Became a Dead Horse RAW novel - Chapter 429
429화
눈을 깜빡인 것도 잠시.
“요그, 왜 아무 말도….”
고개를 돌리며 읊조리던 루시아가, 이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요새를 떠난 이후로 요그의 속삭임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 비로소 뇌리를 스친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안이 그 보이지 않는 공간에 가둬 버린 게 분명했다.
“…….”
가면 아래의 입술을 질끈 깨물며, 루시아는 마저 고개를 돌려 행렬의 선두를 눈에 담았다.
늑대들이 좌우로 물러나면서, 한쪽 무릎을 꿇은 흑사자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전마의 뒷모습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세렌은 기도라도 올리듯 고개를 숙인 채였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삼킨 루시아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일단은 이안 님의 모습을 감춰야겠어요. 도와줘요, 디아나. …디아나?”
미간을 좁힌 루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디아나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드러난 눈매가 찢어질 듯 커진 채였다.
“……?!”
루시아도 그 이유를 곧바로 깨달았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의 어둠이, 어느새 타르처럼 끈적하게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자리를 따라 휘몰아치는 잿빛의 소용돌이 역시, 더 짙고 선명하게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거대한 회색 눈동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크르륵…!
크히이잉-!
앞이 소란스러워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루시아의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앞발을 치켜들며 울부짖거나 고개를 마구 휘둘러대는 전마들.
늑대들을 따라 산개하던 녀석들이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크르르르….
그리고 그건, 디아나가 고삐를 쥔 전마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소스라치게 정신을 차린 디아나가, 그대로 고삐를 던져 버리며 몸을 날렸다. 한팔로는 루시아의 몸을 낚아채듯 감싸 안은 채였다.
“……!”
그녀에게 안긴 채 땅을 구르는 와중에도, 루시아는 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놈은 발작하듯 고개를 마구 휘저으면서 비틀비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꾸득, 꾸드드득….
꿈틀대는 전신의 혈관과 근육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넘실대는 잿빛 갈기가 자라나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변이한다…! 무기 들어!”
“끝내가 전에 죽여야 돼! 대가리! 대가리를 노려!”
늑대들의 외침이 어지럽게 메아리치기 시작한 건, 나뒹구는 속도가 줄어들 때쯤이었다.
“사자는 뭘 하는 거야, 시발…!”
탄식하는 디아나의 손길을 뿌리치며, 루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뭐 해? 당장 피해야 돼! 루시페르!”
이어진 그녀의 외침을 등진 채, 루시아는 이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그는 여전히 이 모든 상황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눈동자 가득 맺힌 보랏빛이 희미하게 넘실댔다.
아마도 그가 품은 혼돈이 이 권역을 형성한 대마족, 이나스 커글의 혼돈과 모종의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리라.
‘어쩌면, 세렌 경도…?’
멍하니 생각하던 루시아의 걸음이 이내 멈췄다.
크르르르….
여전히 안대를 뒤집어쓴 흑마가 이안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뿔이 돋아난 머리를 위협스럽게 아래로 내리깐 채, 루시아를 향해 으르렁대고 있었다.
“…당장 비켜.”
녀석을 노려보는 루시아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불그스름한 마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망토 아래의 오른손은, 허리 뒤편의 철퇴 자루를 움켜쥐는 채였다.
“잠깐만…!”
디아나가 그녀를 뒤에서 힘껏 안아 든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잠깐 멈춰. 루시. 일단 피해야 돼. 우리 말에 우리가 먹히게 생겼다고…!”
“이거 놔요, 디아나. 이안 님이 무방비 상태시잖아요. 곧 깨어나실 거예요. 그때까진 지켜 드려야 한다고요…!”
“무슨 소리야! 저 녀석이 지키고 있잖아!”
디아나가 버럭 소리쳤다. 발버둥치는 루시아를 더 힘껏 껴안으며, 그녀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잘 봐. 저놈은 멀쩡해. 이미 변이가 끝난 성체라고. 이안을 지키려는 거야! 다가오는 건 전부 적으로 인식하는 거고!”
“……!”
그제야 루시아가 발버둥을 멈췄다. 디아나의 말 그대로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디아나가 홱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 흑사자 년한테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루시아는 눈을 부릅뜨며 전방의 광경을 눈에 담았다.
변이 중인 그녀의 전마와 무기를 뽑아 들고 각자의 전마에게 달려들고 있는 늑대들.
그리고 그 너머,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무릎 꿇은 세렌까지.
“아마 지금 이 개판과도 관련이 있겠지. 어쩌면 이안이 저러는 것과도. 솔직히, 이유는 알 바 아냐.”
디아나가 그녀를 땅에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이안이 곧 깨어난댔지. 그전까지만 버티면 돼. 그 뒤엔, 이안이 처리해 줄 테니까. 아니야?”
“…아뇨. 맞아요. 디아나.”
루시아가 비로소 대답했다. 가면 아래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디아나가 팔을 풀었다.
루시아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철퇴를 뽑아든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우리는 한 마리만 상대하면 되겠네요. 엄호해 줘요.”
“…뭐?”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요.”
덧붙인 루시아가, 대답도 듣지 않고 달려나갔다.
망토를 펄럭이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디아나는 녀석이 왜 저런 짓을 한 것인지를 곧바로 깨달았다.
다른 늑대들이 그렇듯, 마수화가 끝나기 전에 전마를 죽이려는 것이다.
그녀들의 전마가 이미 곰만 한 덩치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미치겠네, 시발…!”
이를 갈듯 씹어 뱉은 디아나도, 어깨의 각궁을 빼들며 루시아의 뒤를 따랐다.
“정수리! 정수리를 찍어-!”
“대장! 대장은 아직이야?”
전장으로 변한 일대의 고함이 삽시에 가까워졌다.
늑대들은 꽤나 위험천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장창을 안장에 고정해 둔 자들이 대다수라, 발작하며 변이 중인 전마들을 칼로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콰직-! 콰직!
어떻게든 목덜미에 올라타는 데에 성공한 자들은, 전마의 머리와 목덜미에 마구 칼을 내리찍었다.
운 좋게 다리를 부러뜨려 넘어뜨린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전마가 휘두르는 머리를 이리저리 피하며 검을 내리치는 중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콰장창창-
전마가 휘두른 머리나 다리에 얻어맞은 자들은 대포알처럼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으니까.
“시발….”
“…….”
가면 사이로 피를 왈칵 토해내거나 한쪽 팔이나 다리를 감싼 그들이 비틀대며 일어서는 사이.
크… 르르르….
기어코 변이를 끝낸 마수들의 발작이 가라앉았다.
고작해야 네 마리뿐이었지만, 하나같이 가뜩이나 큰 덩치가 더 커지고 갈기도 풍성해진 채였다.
크르륵…!
안대와 하나로 융합된 놈들은 코를 킁킁대고, 아닌 놈들은 회색 안광을 줄기줄기 피워냈다.
코끝이나 이마에는 톱날 같은 뿔이. 잿빛 숨결을 토해내는 아가리에는 뾰족한 이빨이 잔뜩 돋아 번들댔다.
평범한 인간이 상대할만한 마수들은 아니었다. 대마족의 권역 한복판에서는 더더욱.
“시간을 벌어…! 정면으로 부딪치지 마!”
“와라! 이 배은망덕한 새끼들아!”
하지만 어느새 넓게 산개한 늑대들은 보란 듯이 소리쳐댔다. 체액이 흐르는 가면 사이로,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안광이 번들댔다.
크허어엉-!
크르렁!
거의 동시에 울부짖은 마수들이 예고도 없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진했다.
“……!”
놈들의 목표가 된 늑대들이 옆으로 몸을 날리며 바닥을 굴렀다.
선회하는 셋과 달리, 한 마리는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그 너머, 한쪽 무릎을 꿇은 또 다른 목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크허엉-!
뒤편에서 배회하고 있던 전마가 놈을 향해 달려든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마수의 덩치가 더 컸지만, 돌진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콰앙-!
뒤엉킨 두 마수가 나뒹굴었다. 마수들이 서로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뿔을 휘둘러 대는 사이.
콰과과과-
늑대들은 이어진 마수들의 돌진을 다시 한번 피해냈다.
“마크-!”
이번에는 모두가 피한 건 아니었다. 다리가 부러진 늑대가 마수의 돌진에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근처의 늑대가 소리치는 가운데, 마수에 휩쓸린 늑대의 모습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
그는 내달리는 마수가 치켜든 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등 한복판에, 몸을 꿰뚫은 뿔 끝이 삐죽 튀어나온 채였다.
복부에서 흘러내린 피가 마수의 머리를 적시고 있었지만, 그는 울부짖지도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지도 않았다.
콰직-! 콰직!
그저 혼자만 죽지는 않겠다는 듯, 움켜쥔 칼로 마수의 머리를 마구 내리찍는 채였다.
그렇게 마수와 함께 멀어지는 전우의 최후를 지켜보던 것도 잠시.
“……!?”
“저건…?”
늑대 몇몇의 눈매가 꿈틀댔다.
자욱하게 깔린 잿빛 안개와 듬성듬성 이어진 검은 나무들 저 너머.
흐릿하게 일렁이는 회색 안광들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설마….”
“그림자 마수들이… 여기까지…?”
뒤엉킨 마수들의 너머에서, 검푸른 어둠이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
“……!”
경악성을 흘리던 늑대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또다시 이어진 마수들의 돌진을 피한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 세렌이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솨아아아아-
그녀의 검날과 갑옷에서 검푸른 어둠이 뭉실뭉실 번져 나갔다.
어둠은 마수를 짓밟고 있던 그녀의 전마를 지나쳐, 뒤편의 늑대들을 향해서도 번져 나갔다.
“……!?”
세렌이 순간 비틀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번져 나가던 어둠이 일순간 기세를 잃고, 그녀의 안면 가리개 사이로 새카만 피 화살이 뿜어져 나왔다.
“대장…?”
늑대 하나가 탄식할 찰나, 간신히 자세를 다잡은 세렌이, 떨리는 손으로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존귀하신… 태자 전하를… 위하여…!”
그녀가 쥐어짠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동시에 뿜어져 나간 어둠이, 마침내 늑대들을 훑고 지나갔다.
솨아아아-
검푸른 어둠도 그들이 덕지덕지 껴입은 보호 장구를 완전히 뚫어내지는 못했다. 그들의 몸속으로 스며든 건 고작해야 한 줌에 불과했다.
슈화아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늑대들의 안광이 검푸르게 가라앉고, 움켜쥔 창날과 칼날이 칙칙하게 물들었다.
“태자 전하를 위하여!”
“무궁한 영광을-!”
저마다의 무기를 움켜쥔 늑대들이, 포효하듯 울부짖고는 마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영광은… 시발…!”
숯덩이처럼 변이된 나무를 등지고 선 디아나가 읊조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각궁을 움켜쥔 그녀의 시선은 저 너머, 루시아를 지나친 마수의 옆모습을 끈질기게 쫓고 있었다.
곰 만한 덩치가 된 놈은, 한쪽 머리가 움푹 함몰된 채로도 여전히 살아서 내달리는 채였다.
키헤에에엑-!
오히려 더 흉포하게 날뛰고 있었다. 하나만 남은 눈으로, 자신의 머리를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을 집요하게 노려보면서.
“하아… 하아….”
물론 그건 루시아였다.
철퇴를 움켜쥔 그녀는,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도 마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올 테면 와 보라는 듯 멈춰 서기까지 한 채였다.
“도대체….”
…저 작은 몸에서 저런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생각하면서도, 디아나는 다급하게 허벅지의 화살통에서 새 화살을 꺼내 들었다.
두두두두두-
완전히 선회를 끝낸 마수가, 녀석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루시아가 피하면, 이번에야말로 저 하나 남은 눈깔을 화살로 후벼 파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과 달리, 루시아는 더는 피할 생각이 없었다.
“…….”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눈도 깜빡이지 않고 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동공 한복판에 이글대던 붉은 마력이, 삽시에 눈동자 전체로 번지는 중이기도 했다.
쿠구구구구-
옆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발굽 소리가 가까워진 건, 그녀의 왼손 손아귀에 불꽃이 피어오른 직후였다.
“……!”
눈을 치켜뜬 루시아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수가 지척까지 달려들고 있었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는 태도였다.
당연했다.
쿠구구구구-
어느새 달려온 흑마가, 그보다 더 가까이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콰드득-!
고개를 살짝 숙인 흑마가, 돌진하는 마수의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마수의 몸이 옆으로 꺾이면서 그대로 붕 떠올랐다. 돌진하던 속도가 줄어들면서, 흑마의 안장 위에 앉은 이안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쒸- 에에엑-
그가 양손으로 힘차게 휘두르고 있는 전투 망치도.
꽈직-!
머리 옆면이 움푹 함몰된 마수가 그대로 튕겨 나갔다. 축 늘어진 마수가 바닥을 나뒹구는 사이.
카가가각….
미끄러지듯 멈춰선 흑마가, 다소 휘청대며 방향을 틀었다. 이안의 등 뒤로 펄럭이던 망토가 그의 몸에 착 감기듯 가라앉았다.
비스듬하게 치켜들었던 전투 망치를 늘어뜨린 이안이, 비로소 우두커니 선 루시아를 돌아보았다.
루시아의 붉게 물든 눈을 내려다보며,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넣어 둬라. 루시.”
“…네.”
눈을 깜빡인 루시아가, 펼치고 있던 왼손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푸슥, 이글대던 화염구가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