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봉인진
데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바흘-라의 최측근이라는 자부심.
8레벨 끝에 닿은 실력.
특히, 침략지의 원주민이 변절해 탄생한 다른 군단장들과 달리.
처음부터 바흘-라의 수족이었다는 출신 성분은 데칸이 가진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그런 것들이 밑바탕이 되어 점점 독선적이고 오만한 성격이 되었다.
원래라면 바흘-라의 결정에 군말 없이 따르는 입장이었을 테니 그런 성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이 세상을 침략하던 도중 마리얌의 역습으로 바흘-라가 봉인되면서 그의 성격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특히, 도시의 저력을 만만하게 보고 여태껏 자유롭게 내버려둔 건 그의 아집이 만든 가장 큰 실수라고 할 수 있었다.
대륙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전력이 도시로 모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설령 그런다고 해도 큰 위협이 될 거라고 여긴 적도 없었다.
바흘-라의 영향으로 죽지 않는 마왕군과 달리, 이 세상의 원주민에게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도시의 초월자가 늙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적들의 전력은 더 줄어들게 될 터였다.
실제로 블루블러드의 리더가 그런 식으로 죽은 것처럼 시간은 절대적으로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초월자의 탄생?
고려할 가치도 없는 주제였다.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바흘-라 휘하에 초월자가 수백은 되었을 터였다.
그러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초월자 전력으로 도시에게 밀리는 상황이 생길 거라고는.
특히.
“드래곤?!”
원의 등장은 데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변수였다.
원이 마리얌과 함께 차원의 틈을 막았던 드래곤 중 하나라는 건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원은 도시가 생성되고 난 이후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수면기에 들어갔다는 것과 그 수면기가 차원의 틈에서 생긴 피해를 복구하기 위함이라는 걸 연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건 하필 원의 수면기가 이 타이밍에 끝났다는 것과 세계수가 원을 전장으로 곧장 데려다 놓았다는 것이다.
때마침 마리얌의 강신이 끝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자신이 원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수면기를 끝낸 이 드래곤은 전장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녔을지도 몰랐다.
점점 불리해지는 상황에 구겨진 인상이 돌아오지 않는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여유롭게 가온을 상대할 거라 예상했던 한나가 가온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고.
지잉.
또 한 번 포털이 열리며 새로운 초월자가 합류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당장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으득!
데칸은 짜증스레 입술을 깨물고, 기운을 폭발시켰다.
주변에 뜬 수백 개의 병장기가 마기에 호응해 원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이 방어막을 펼쳐 이를 막는 사이, 데칸은 원과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곧장 또 다른 격전지로 이동.
푹!
“끄으으.”
케츨러를 단숨에 꿰뚫었다.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 쇄골을 시작으로 사선을 타고 왼쪽 골반을 관통하는 치명상.
그러면서도 주요 장기는 빗겨 가는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
케츨러는 찾아든 격통에 눈을 까뒤집었다.
검을 타고 흐른 마기가 케츨러의 내부를 마음껏 휘젓고 다닌 까닭이다.
“데칸 님!”
반갑게 맞이하는 사사미르.
데칸은 무시함 눈으로 사사미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경계심 없이 다가온 사사미르의 가슴을 향해 수도를 날렸다.
푸욱!
데칸이 자신을 공격할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사사미르는 너무나 쉽게 데칸의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감사합……컥?!”
가슴을 가르고 썩은 살결을 헤집은 데칸의 손이 가 닿은 곳은 바로 사사미르의 심장이었다.
언데드 킹.
죽은 자들의 왕이라는 사사미르는 역설적이게도 뛰지 않는 심장에 자신의 모든 힘을 모아두고 있었다.
데칸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움켜잡은 것이었고.
“개새…….”
사사미르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의 입에서 원색적인 욕설이 튀어나온다.
뿌직!
하지만 그 욕설이 완성되기도 전에 데칸은 사사미르의 심장을 몸 밖으로 꺼냈다.
와르르.
사사미르의 몸이 덧없이 무너졌다.
파앙!
데칸은 곧장 발을 굴러 다음 행선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말렉!!”
“네, 데칸 님.”
“막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알겠습니다.]말렉은 데칸이 두 손에 쥔 것을 보곤 무엇을 예상한 듯 마기를 폭사시켰다.
푸화악───!
지금까지 뿜어낸 것의 족히 두세 배는 될 법한 막대한 마기.
“물러나게!”
한나를 처리하자마자 데칸이 케츨러를 꿰뚫던 것을 목격했던 가온.
황급히 데칸은 뒤쫓았지만, 자신을 향해 다급히 외치는 토즈스의 말에 발을 멈추어 세웠다.
콰앙! 콰아아아앙!!!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눈앞의 공간이 폭발한다.
가온의 속도를 계산한 말렉이 이동 거리를 예측해 공격한 것이다.
말렉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놈은 계속해서 가온을 향해 흑마법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공격은 토즈스의 방어와 새롭게 합류한 레이나의 마법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동료들에게 등을 맡긴 가온은 다시 데칸을 뒤쫓고자 했지만, 이미 데칸은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많은 거리를 이동한 후였다.
거기다.
[크흐흐! 여기가 내 무덤이구나.]무언가 큰마음을 먹은 듯한 말렉이 폭주하듯 흑마법을 쏟아내는 덕분에 데칸을 뒤쫓아가는 것도 힘들었다.
말렉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된 듯 뛰어난 파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강렬한 존재감을 뿌리며 등장했던 원의 말에 모두가 주춤거렸다.
그건 거대한 레드 드래곤의 외형이 그의 말에 무게감을 더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데칸을 잡아야 합니다.”
[이미 늦었다.]원은 튀어나오는 가온을 바라보며 거대한 얼굴을 가로저었다.
[눈앞의 적부터 확실하게 제거한 뒤에 뒤쫓아 가는 게 나을 거다.]말을 마친 원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는 투웅, 땅을 밟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펄럭!
다시 활공을 시작한 원이 말렉을 맴돌며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크르르륵──!
동시에 쏟아지는 브레스까지.
말렉은 방어막을 펼쳐 원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온갖 저주와 흑마법을 원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단숨에 수십 가지의 저주가 완성되어 원에게 내려앉았지만.
콰창!
수면기를 지나 더 단단해진 비늘의 항마력을 뚫지는 못했다.
고오오오───
마기가 고도로 응축된 창으로 다시 한번 원을 노려보지만.
챙그랑!
피식───!
애초에 상대가 나빴다.
마법의 종주라는 드래곤을 상대로 흑마법사가 할 수 있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말렉이 제 아무리 뛰어난 초월자 흑마법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거기에 토즈스가 주술로 보조를 시작하자 그렇지 않아도 말렉에게 불리했던 싸움이 더 일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퍽! 퍼벅!
[크큭!]말렉은 시종일관 공격을 당하면서도 광소를 멈추지 않았다.
[나의 주인이시여!]그 모습에 가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부디 무사히 재림하소서……!]‘재림……?’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중얼거림.
하지만 그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화르륵! 퍼석!
원이 쏘아낸 화염마법을 허용하더니 말렉의 몸이 단숨에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
“……!!”
이를 지켜보던 켄트와 레이나가 놀라 눈을 부릅떴을 때.
팡──────!!!
가온은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지금껏 잘 막아내던 말렉이 갑자기 당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원이 사용한 화염마법은 말렉을 주저앉힐 만큼의 위력이 되질 않았다.
무언가 숨겨진 수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 생각은 주효했다.
피이잉────!
타오르는 말렉의 몸에서 한 줄기의 빛이 쏘아졌으니 말이다.
‘이 방향은……!’
가온은 몇 번의 돋움닫기를 한 후.
쾅!!!
하늘로 뛰어올랐다.
“흐아아앗!!”
그리곤 원과 토즈스가 말렉과 교전하는 내내 연성해둔 투기창을 던졌다.
투화아아아아앙──────!!!
투창을 쏘아낸 여파로 앞으로 쏘아지던 가온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가온의 온 힘이 담긴 투창은 순식간에 음속을 넘어 말렉의 몸에서 쏘아진 빛덩어리를 꿰뚫었다.
[컥!!!]들려오는 신음소리.
켄트와 레이나는 그걸 듣고서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말렉이 자신의 육신을 미끼로 던진 후, 정신을 어딘가로 옮기려고 했다는 것을.
가온에게 덜미를 잡힌 여파는 매우 컸다.
피슉! 퍼벅!
토즈스의 주술과.
화륵! 화르륵!
원의 화염 브레스가 말렉의 정신체를 강타했으니까.
[아아…….]말렉은 절망이 섞인 한탄을 내뱉었다.
적에게 붙잡혀 소멸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분께 이 미천한 몸도 봉헌했어야 했거늘…….]단지 계획한 일을 행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것뿐이었다.
피식!
모든 대륙인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2군단장 말렉은 그렇게 한 줄기의 연기가 되어 공허이 흩어지는 결말을 맞고 말았다.
* * *
“빨리. 빨리……!”
데칸은 마음이 급했다.
말렉에게 뒤를 부탁하긴 했지만, 놈들의 전력은 그 뛰어난 말렉조차 손쉽게 뚫어낼 만큼 우수했다.
금방이라도 뒤쫓아올 게 분명했다.
[데칸! 데카아아안!!!]심장을 붙잡힌 사사미르가 원한 가득한 목소리로 울부짖어대지만, 데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바흘-라 님의 봉인을 풀 번제물이 된 걸 감사히 여기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사사미르를 향해 역정을 내고 있었다.
힘의 원천이 원천이 제압된 이 상황에서 사사미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마음이 변한 데칸이 손에 힘을 주어 심장을 뭉개버리기만 해도 사사미르는 꼼짝없이 소멸을 맞이하고 말 테니 말이다.
물론 사사미르가 소멸하는 건 이러나저러나 확정적인 사안이었다.
그걸 알기에 사사미르도 데칸을 향해 저주나 퍼부어댈 뿐 협상을 시도하거나 굴복해 목숨을 구걸하는 따위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고.
전장을 벗어난 데칸은 곧장 사사미르의 거처로 향했다.
사사미르의 거처는 온갖 귀한 재물로 가득 꾸며져 있었다.
죽은 자답지 않게 탐욕적인 성격이 엿보이는 풍경.
휘황찬란한 거처의 풍경에 데칸은 눈동자조차 돌리지 않았다.
쾅! 쾅!!
복잡한 구조의 길은 무시했다.
거슬리는 벽을 뚫고 데칸이 도착한 곳은 바로.
우우웅───!!
바흘-라의 봉인을 느슨하게 만들어줄 봉인진이었다.
처음 이 봉인진을 대륙 곳곳에 구축했을 때, 봉인진은 이렇게 강한 빛을 내뿜지 않았다.
빛을 내는지 내지 않는지도 구별이 안 될 만큼 미약하기 그지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백 년을 노력한 덕분에 바흘-라의 재림을 도울 봉인진의 힘은 점점 강해졌다.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건 도시를 제외한 모든 여역을 마계의 식생으로 뒤덮었던 순간이었다.
여신의 영향력이 극도로 축소되면서 바흘-라의 봉인 또한 약해진 것.
데칸은 봉인진을 향해 케츨러를 던져넣었다.
콰득! 콰득!
봉인진은 8레벨 초월자의 힘을 마음껏 탐식했다.
봉인진에 모든 힘을 바치고 죽은 케츨러.
데칸은 케츨러의 시체를 치운 후, 다음으로 사사미르의 심장을 던져넣었다.
[데카아아아아안!!!!!]콰득! 콰득!
봉인진의 색이 좀 더 짙어졌다.
하지만 바흘-라의 봉인을 풀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
저벅, 저벅.
데칸은 망설임없이 봉인진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리곤 가진 마기를 모두 뿜어내기 시작했다.
수백 년을 봉인진 옆에서 힘을 불어넣던 것이 바로 군단장의 임무였으니 그 방법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모든 마기를 불어넣은 데칸이.
스릉.
검을 집어들었다.
병장기를 띄워놓을 마력조차 봉인진에 투입한 덕분에 병장기들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부디 완벽히 재림하소서.”
데칸은 검을 역수로 쥐고.
푹─!!!
망설이지 않고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