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93
97화
타이저
“아닐……가능성은요?”
켄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희박하지. 이미 겪어봤잖아? 부산물로 취급되는 부위는 놔둔 채로 머리만 잘라가는 사람은 없다는 걸.”
“그야 그렇죠.”
켄트가 쓴웃음을 베물었다.
사실 그도 이 시체가 머리수집가의 소행이라는 건 벌써부터 깨닫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물었던 것뿐.
세 사람은 일동 침묵에 빠져들었다.
앞서 머리수집가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했던가.
그런 상황에 또 다른 머리수집가의 등장은 그들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켄트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었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겠지.”
“두 가지요?”
“하나는 데얀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마친 후 돌아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요?”
“이대로 탐색을 이어가는 것이겠지.”
“아…….”
“안전을 생각한다면 완벽한 컨디션으로 새로이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거다. 문제는,”
가온은 혀를 살짝 내밀어 입술을 적시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더 강해진 머리수집가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거다.”
“설마 데얀에 갔다 왔는데도 여전히 머리수집가가 이곳에 있을까요?”
“가온의 말이 맞아.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갑작스럽게 마왕이 사라지며 휘하의 마왕군은 일제히 후퇴했다. 그런 뒤 각 군단은 대륙 곳곳으로 흩어져 똬리를 틀었지.”
“그중 언데드 군단이라고 할 수 있는 3군단은 서쪽 대륙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어.”
“도시와 데얀이 있는 대륙 동쪽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위치라고 할 수 있지.”
“켄트, 머리수집가를 만나기 전까지 언데드를 본 적이 있어?”
“어─ 아니요.”
켄트는 레이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에 가온이 이어 설명했다.
“그러니 이곳 근방에서 언데드를 보는 건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없는 거다. 특히 구울이나 스켈레톤 같은 하급 언데드도 아닌, 머리수집가 정도 되는 언데드라면 더더욱.”
“아…….”
켄트는 그제야 흘러가는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머리수집가를 둘이나 만나게 됐으니 더 의심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군요.”
“맞아.”
“끄응.”
가온은 앓는 소리를 하는 켄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나 너나 레이나나 이런 몸 상태로 다시 싸우는 건 분명히 무리야.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인이라면…….”
“저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에 대한 확인.”
가온은 머리수집가가 이동했을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지배종이 아니면 통솔할 수 없다는 마수를 조종하던 흑마법사.
마기를 담아내는 금속으로 만든 대검을 휘두르던 흑기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배종까지.
다량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을 벗어난 예외적인 상황엔 반드시 감추어진 비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먼 곳까지 언데드가 나타났다는 것은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게 아닐까.”
“분명한 건 언데드에게 상당한 가치를 가진 무언가라는 거.”
레이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가온의 말에 힘을 실었다.
“아직 전투의 여파를 모두 수습하진 못했지만, 나 또한 그래도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으음, 좋아요. 그렇게 해요.”
망설이던 켄트도 곧 그들의 의견에 수긍하고 더 안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애초에 가온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기도 했거니와 데이지 수호성인의 성물을 회수해야 한다는 목표도 있었으므로.
***
그들의 움직임은 한결 조심스러워졌다.
위협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선두에 선 가온이 뒤로 손을 뻗어 수신호를 보냈다.
뒤따르던 두 사람은 수신호를 확인하고 멈췄다.
켄트는 곧장 신성화살을 만들어 시위에 걸었다.
핑!
가온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화살이 날아갔다.
푹!
정확하게 목표물을 찾아간 화살.
“끼야악─!”
비명이 짧게 흐른 뒤 오염지대는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까딱.
가온이 다시 수신호를 보냈다.
처리한 목표물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켄트가 처리한 것은 바로 머리수집가가 흩뿌린 머리 중 하나였다.
“이건 처리하고 처리해도 끝없이 모습을 드러내네요.”
“그만큼 소유한 머리가 많거나, 머리수집가가 다수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앞이어도 문제고, 뒤여도 문젠데요.”
가온의 말에 켄트가 혀를 내둘렀다.
전자는 레벨이 높다는 것이고, 후자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머리수집가의 수가 많다는 뜻이니까.
어느 쪽이든 상대하기에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되는군.”
“그럼 머리수집가가 여럿일 거란 소린가요?”
“그래.”
가온은 신성화살을 맞아 함몰된 뒤통수를 툭, 건드려 안면이 드러나도록 했다.
“흙자라의 머리다. 2급 마수지.”
“네.”
“우리가 상대했던 머리수집가를 떠올려봐. 놈이 쏟아낸 머리는 대부분 3급에 사이사이 4급 마수의 것이 섞여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어! 맞아요. 그랬던 거 같아요.”
켄트는 이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거기서부터 레벨 차이가 드러나는 거였어요.”
“만약 우리가 예상하는 수준이라면 본체를 만나게 되더라도 상대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어.”
“그건 다행이네요.”
“낙담할 정도는 아니다.”
가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놈이 혼자 나타났을 경우나 그런 거니까.”
“아…….”
켄트는 느슨하게 풀었던 긴장감 일부를 다시 단단하게 조였다.
탐색은 계속되었다.
아직 이렇다 할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가온은 탐색이 옳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머리수집가의 머리를 만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
예상은 적중했다.
“저, 저기……!”
“조용.”
다수의 머리수집가가 모인 모습을 발견하게 됐으니까.
다만, 예상과 다소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둘이 아닌, 셋 이상이었다는 것.
‘하나, 둘……다섯? 거기다 머리수집가만 있는 게 아니야.’
구울과 스켈레톤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종류의 언데드가 구분 없이 무리 지어 있었다.
가온은 능선에 몸을 숨긴 채, 분지의 안쪽에 모인 언데드들을 살폈다.
놈들은 산자의 기척을 알아채는데 능한 언데드들임에도 불구하고, 일행의 위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가온 일행이 있는 곳과 언데드가 모여있는 곳의 거리가 매우 멀었기 때문이다.
꽤 굴곡진 동산이 이어진 지형인데다 그들이 위치한 동산은 근방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었기에 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거리가 먼 만큼 세세하게 관찰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머리수집가의 수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고.
물론 더 가까이 다가간다면 보다 자세하게 놈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가온은 납죽 엎드린 자세 그대로 삐죽, 고개만 내밀어 관찰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더 시도하지도 않았다.
‘너무 위험해.’
모인 언데드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거기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레벨을 구별하기 힘든 머리수집가 같은 놈들은 커다란 불안 요소일 수밖에 없다.
‘대체 이 많은 언데드들이 왜.’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굴려보지만, 지극히 제한된 정보만으로는 그다지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점점 미궁으로 빠질 뿐.
***
구울, 스켈레톤, 어보미네이션, 머리수집가, 밴시 등등.
언데드가 가득한 분지.
그곳에서도 유독 짙은 사기를 풀풀 풍겨대는 한 존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타이저.
언데드라는 종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순백의 색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온몸을 휘감고 있다.’
그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순백의 무엇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었으니까.
타이저.
그는 바로 미이라였다.
그러니 순백의 무엇이란 새하얀 붕대를 뜻하는 것이었고.
머리수집가나 어보미네이션 등 거대한 덩치를 가진 언데드에 비하면 그의 신장은 고작 1미터 50센티에 불과한 작은 크기.
하지만 그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이곳에 모인 모든 언데드의 것을 다 더해도 그에 비할 바가 못 될 만큼 압도적이었다.
[모이라고 한 게 언젠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지?]입 위로 칭칭 감긴 붕대가 벌름벌름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허공을 유영하던 밴시 하나가 날아와 타이저 앞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타이저 님. 이지를 찾지 못한 것들이 많아 상세한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아, 멍청한 것들.]타이저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밴시가 말없이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복귀하지 못한 놈이 몇이나 되지?] [둘입니다.] [쯧. 아무리 머리를 많이 달아봐야 짐승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니.]타이저가 멀뚱히 선 머리수집가들을 보며 타박했다.
강한 위력을 가진 머리수집가지만, 수집한 머리의 지능에 따라 사고능력에 큰 편차를 보인다.
오로지 본능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수의 머리를 아무리 가져다 붙여봤자, 그 머리수집가는 마수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 사냥이 필요한 법이거늘.]지쟐을 잡았던 머리수집가가 더 다채로운 공격 패턴을 보일 수 있었던 건 모두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니 만약, 낭살라트와 나머지 마수사냥꾼들의 머리까지 모두 흡수했더라면 그 머리수집가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 탈바꿈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곳은 그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어 머리수집가가 인간을 사냥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지 않습니까.] [안다. 하지만 너무 답답하지 않느냐.] [인간을 사냥해 머리를 달아주면 좋겠지만, 혹여 그러다 놈들이 이곳의 일을 알게 되면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일 겁니다.] [그래서 나도 이 답답함을 참고 있는 것이다.] [일의 마무리가 머지않았습니다. 조금만 참으시지요.]타이저는 대답을 아꼈다.
하지만 여전히 심기가 불편하다는 건 몸을 휘감은 붕대의 끝이 연신 펄럭이는 것만 봐도 훤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곧 사냥을 떠났던 머리수집가 하나가 분지로 복귀했다.
하지만 녀석 또한 인간 사냥에는 실패한 모습이었다.
반쯤 기대어 눕듯 앉아있던 타이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이곳을 찾지도 못하고 배회하는 머저리 한 놈쯤은 없어도 전력에 차이는 없다.]돌아올 장소를 찾지 못하는 것도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이곳의 머리수집가 중 유일하게 인간 사냥에 성공했으니 결코 머저리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온 일행의 손에 소멸한 것일 뿐.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타이저에게는 한낱 머저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가 앉아있던 옥좌가 와르르 무너지며 그곳에서 스켈레톤과 구울이 일어섰다.
애초에 스켈레톤과 구울로 엮어 만든 옥좌였던 거다.
[우리는 오늘! 바라고 바라던 대업을 이룩할 것이다.]타이저의 말이 마기를 타고 웅혼하게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언데드는 타이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사고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몇몇 밴시를 위시한 언데드들이 타이저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바릭샤.]타이저와 말을 주고받던 밴시가 앞으로 나섰다.
[네, 타이저시여.] [진군하라!]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나이다.]명령을 하달받은 바릭샤가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이에 나머지 언데드들이 따라 몸을 일으켰다.
척! 척!
언데드들의 진군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