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01
102화
-어설프게 할 거면 협박을 하지 말자
“윽!”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처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바닥에 몸을 굴렸다.
사내는 목을 향해 칼을 겨냥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한 팔로 막고 있었다.
오른손은 놈의 다리에 제압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꽤 힘이 센 놈이었지만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얌전히 위협에 당해줬다.
딱 봐도 수상하잖아.
버젓이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그것도 길드 숙소 바로 앞에서 이런 기습이라니.
게다가 녀석은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힌트를 내놔’라고 말했다.
목적을 대놓고 이야기하며 규칙위반을 보란 듯이 하는 녀석이라….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검은 모자에 마스크를 쓰니 눈만 간신히 보일 정도인데다가 카메라에는 절대 담기지 않을 각도와 위치였다.
‘일부러 이러는 거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용해 주기로 했다.
“너, 너는 뭐 하는 놈이야!”
이 녀석을 이용해서 동정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기생충이니 뭐니 하는 얘기까지 도는 것을 보면 평판이 상당히 나쁜 것 같으니까.
“빨리 힌트를 불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힘겨운 척 말하자 자신감이 붙었는지 녀석은 더욱 손에 힘을 줘서 칼을 목 가까이에 가져다댔다.
일부러 힘이 빠지는 척, 인상을 쓰고 칼을 목으로 유도했다.
목이 따끔했다. 날에 베여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이 정도면 꽤 심각해 보이겠지.
“윽!”
일부러 신음 소리를 크게 내지르자 녀석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이 정도까지 하려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말이나 더듬지 마라.
어딘가 허술한 녀석을 가지고 연기를 펼치려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며 이 작은 연극에 동참했다.
“내가 말할 것 같아? 누가 뭐래도 신혈을 배신하지 않아!”
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연기 아닌가? 연기자가 되었어야 했나?
타다닥!
“너 누구야!”
혼자 만족하고 있을 때 입구에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들으니 기태였다.
빨리도 온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달려온 기태와 함께 온 태경을 보고 놈은 기다렸다는 듯이 후다닥 도망쳤다.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가더라도 칼은 가지고 가야지! 니가 무슨 신데렐라냐!
자신의 흔적을 흘리고 쏜살같이 튀어 버린 녀석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저런 녀석을 데리고 뭔 짓을 하려고 이 난리를 피운 거지?
그리고 나는 녀석이 흘린 칼을 보고 금방 놈들의 계획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씨. 이 칼 일부러 흘린 거구만?
칼의 손잡이 부분에는 천존의 마크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천존의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너 괜찮아?!”
“한설 님, 괜찮으세요?”
이미 도망가 버린 시커먼 녀석을 쫓아가다 내가 생각난 것인지 기태와 태경은 나를 일으켜 세우며 걱정했다.
왜 갑자기 징그럽게 걱정하는 척하고 있어? 아, 생각해 보니 카메라 있어서 그런 거구나?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먼저 들었지만 반사적으로 표정을 풀어 밝게 미소 지었다.
아직 작은 연극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목에 피…!”
피가 흘러 새 옷이었던 회색 후드티가 엉망이 되었다.
‘옷이 남아나질 않네.’
내가 일부러 칼에 목을 갖다댄 것이었으니 할 말이 없었지만 아까운 것은 아까운 것이었다.
겉으로는 티내면 안 됐기에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살짝 긁힌 것뿐이에요.”
“살짝이 아니잖아! 이러다 쇼크 오겠어!”
황급히 자신의 겉옷을 벗어 목에 가져다 대 지혈을 하는 기태를 보고 놀란 눈을 했다.
얘, 연기 좀 치는데?
이 정도까지 한다고? 그럼 나도 거기에 부응해 줘야지.
나는 힘없이 웃어 보이며 지혈을 하고 있는 기태의 손을 맞잡았다.
“고마워.”
희미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목소리에 기태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냐?
속으로 기태를 비웃어 주며 놈이 남기고 간 칼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기려고 주변을 더듬었다.
하지만 태경이 더 빨랐다.
증거물인 칼을 발견하고 태경은 들어 올려 자세히 살펴봤다.
“이거, 놈이 휘둘렀던 흉기죠? 바보같이 두고 도망갔네요.”
“…조금 어지러운데 안에 들어가서 살펴보는 게 어때요?”
제발, 안에 들어가서 살펴보자….
천존이 벌인 짓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밝혀지면 이제껏 개고생하며 올려놨던 평판이 땅에 떨어질 게 눈에 훤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태경에게 제안하니, 긴장감 때문에 흘리는 식은땀을 몸이 안 좋아서 흘린다고 착각한 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 다행이다.
“천존의 짓이군요.”
…아니, 그런 건 안에 들어가서 말하라고!
태경의 눈은 제법 살벌했다.
잊고 있었다. 태경은 생각보다 더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라는 것을 말이다.
태경은 차려진 밥상에 누구보다 먼저 숟가락을 얹어 놓는 녀석이었다.
대문짝만 하게 찍혀 있는 천존의 마크를 보고 그냥 넘어갈 인물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선두로 달리고 있는 천존의 평판을 떨어트릴 기회인데 그걸 놓칠 리가 없다.
젠장, 어떡하지? 이미 다 송출되었을 텐데.
이러면 천존이 우승을 한다고 해도 더러운 수로 우승했다고 말이 나올 것이다.
결국 내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천존이 이번 경기에서 망하길 바라는 단체라면 떠오르는 놈들이 있었다.
태산.
물증은 없고 심증만 쌓이는 중이지만 태산이 이 길드대항전에 끼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천존을 무너트려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적이었으니까.
“한설 님, 들어가서 치료받아요.”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태경은 온화한 미소로 나를 부축했다.
듣기로 태경은 신혈의 대표 선수로 가장 오래 참가해 온 선수라고 하던데, 그만큼 처세술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가 없는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헉! 태경 오빠!!”
“기태 오빠 여기도!”
“여러분 죄송해요, 우리 팀원이 지금 심각한 상태라….”
여전히 사생 팬들이 끈질기게 붙어 왔지만 태경은 나를 이용해 여유롭게 방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어떡해, 태경 오빠 너무 착해.”
“저런 기생충한테도 잘해 주는 거 봐….”
양해를 구하는 선한 눈빛에 징글징글하게 굴던 사생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덕분에 무사히 방까지 올 수 있었으니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탁.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표정을 풀며 지혈하던 기태의 옷을 주인에게 돌려줬다.
이미 피도 묻고 걸레짝이 된 옷이었기에 돌려줘 봤자였지만.
“여기.”
피 묻은 옷을 돌려주자 기태는 이상한 표정이 되어 아무 말도 없었다.
뭐야, 새 걸로 달라는 건가? 쩨쩨하긴.
“옷값은 배상해 줄게.”
백이권한테 대신 배상해 달라고 해야겠다.
아직도 표정이 풀리지 않은 기태를 뒤로하고 태경에게 다가갔다.
“일부러 그런 거죠?”
태경은 질문을 무시하고 서현에게 가서 내 상처를 치료해 달라며 부탁했다.
“서현아, 힐 좀 써줘.”
“아, 알겠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천존에서 사람을 보냈어. 아마 베네핏이 뭔지 알기 위해서겠지.”
이놈 봐라, 내 말은 그냥 무시하네?
어떻게든 천존의 계략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천존은 아닐 겁니다.”
그러자 태경은 조금 인상을 쓰며 바라봤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진짜 천존에서 사람을 보낸 거라면 더 철저하게 행동했을 겁니다. 칼을 일부러 놓고 가는 실수 따윈 하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녀석은 카메라가 있는 것을 알고 큰 소리로 베네핏이 뭔지 불라며 협박하던데요.”
“…그게 천존이 안 했을 거라는 증거가 되진 않죠. 물증은 확실하니까요.”
“어느 멍청이가 카메라 있는 데서 그렇게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협박합니까? 태경 님도 그놈 소리 듣고 달려온 거잖아요. 아님, 대형 길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를 만큼 멍청하다고 비하하고 싶으신 겁니까?”
천존을 비하하고 싶은 건 맞겠지. 하지만 신혈도 천존이랑 똑같은 대형 길드인데 까내릴 수 있겠냐?
도전적인 눈빛으로 태경을 바라보자 그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한설 님, 한설 님은 대체 누구 편이죠?”
이제껏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던 태경이 표정을 확 굳히며 말했다.
“가만 보면 신혈이 아니라 천존 사람 같아요.”
뜨끔했다. 실제로 신혈보다는 천존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저야 당연히 신혈 사람이죠. 전 그저….”
“씨발,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요. 저 진짜 한설 님 좋게 보려고 노력하거든요? 이권 님이 데려온 사람이고, 나름 나랑 비슷한 점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거 봐라, 본성 나오네.
말을 끊고 냅다 욕을 박아 버리는 태경을 보며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다른 팀원들은 태경이 화내는 것을 보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조용히 하고 있었다.
“근데 훈련에는 제대로 참여도 안 해, 경기는 망쳐. 이제야 제대로 흘러가는 상황도 막으려고 난리잖아요. 겨우 경기도 아닌 미니 게임 하나 이겼다고 유세 떠는 거예요? 좋아하려야 할 수가 없어.”
이제야 제대로 흘러간다고?
…뭔가 말이 좀 이상한데?
마치 이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생각해 보면 태경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란 것 같기는 했으나 기습을 했다면 기태처럼 놀라거나 당황해야 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다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제발 잘 좀 합시다, 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으니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 생각했는지 태경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조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면전에 대고 덤덤히 대답했다.
“태경 님, 태산이랑 손잡았군요?”
“…….”
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새끼, 맞구나?
가설은 확신이 되어 갔다.
“천하의 신혈이 비리를 저지른다라…. 아무리 이기고 싶어도 그렇지.”
이번에는 태경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스파이는 다른 데가 아니라 여기 있었네. 내가 스파이, 스파이거릴 때 똥줄 좀 탔겠어?
“이거 신혈 길드장도 알고 있어요?”
백이권이 거론되자 태경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린 태경은 붉어진 얼굴로 표정을 굳혔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른 팀원들이 누굴 말려야할지 고민하는 게 보였다.
이 일은 안태경이 혼자 벌인 것이었다.
“이권 님께 말하기만 해 봐!”
“협박인가요? 저를 해치실 수는 있고? 백이권이 데리고 온 사람이라서 친하게 지내려고 한 주제에?”
“…….”
“협박은 통해야 협박이에요.”
사람 봐 가면서 협박해라. 백이권이 무섭긴 한가 봐.
하긴, 이권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 특유의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도 모르게 생매장시킬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나도 양보 못 해. 이쪽도 사정이 있거든.
“협박이 아니라 거래로 하죠. 백이권한테 이 일을 비밀로 하는 대가로 저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태경은 한참을 얼굴을 붉히다가 스르륵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자신이 불리한 입장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어휴, 이제 좀 편해졌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벙쪄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협박하려면 애들 없는 데서 하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