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75
176화
-지하감옥
저 인간이 뭐라는 거야?
“장난 치지 말고 이거 풀어줘요.”
묶여 있는 손목을 눈앞에 들이대며 풀어 달라고 말하는데도 이권은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점점 불안해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권이 휘어놓은 쇠창살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권은 친절히 쇠창살을 다시 원상 복구 시키는 것이 아닌가.
“아니! 뭐 하자는 거예요? 진심이야?”
당황해서 반말이 튀어나갔다. 날 이 감옥에 두고 간다고?
“조금만 그러고 있어. 볼일 다 끝나면 데리러 올 테니까.”
이권은 미소를 지으며 손 인사를 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당황한 나는 이권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댔다.
“…진짜로 간 거야?”
믿기지가 않아 쇠창살 가까이 다가가 이권이 떠난 자리를 살폈다. 걸음도 빨라 이미 계단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와, 진짜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애초에 백이권을 믿은 내 잘못인가?
이권은 아마 매화 길드에서 원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얌전히 잡힌 척했던 것 같다. 거기에 놀아난 것이 함유리와 나였을 뿐이었고.
나는 속으로 백이권을 욕하며 자유롭지 못한 손을 내려다봤다.
그래, 원래 이권의 도움은 받을 생각 없었으니까 혼자 해결해 보자.
그렇게 결심하고 몸에 걸린 구속을 풀기 위해 손에 힘을 줬다. 그러자 끈처럼 연결되어 있던 매화 잎이 붉게 물들며 더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힘으로는 풀 수 없다는 건가?
힘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작은 움직임에도 죄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권처럼 쇠창살을 망가트리고 나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정말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완전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지,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소미야. 거기 있지?”
자신의 집처럼 내 옷을 사용하는 소미를 불러내자 후드티 안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소미가 옷 속에서 나와 내 앞을 돌아다녔다.
[스킬, 속박, 한설.]여전히 단어밖에 말하지 못하네. 횟수 제한은 사라진 것 같지만.
던전에 들어가면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했으니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소미가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질 수 있느냐였다.
“혹시 목걸이를 내 손에 쥐게 할 수 있어?”
나는 현지를 불러낼 생각이었다. 마력이 아닌 마나를 사용하는 현지의 마법이라면 스킬 무력화도 소용없을 거였다.
하지만 현지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목걸이에 손을 가져다 대야 했다. 이렇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나마 소미가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할 뻔했다.
소미는 손이 없었기에 입을 이용해 내 목에서 목걸이를 빼내 내 손에 들려줬다.
“좋아, 잘했어!”
나는 손에 목걸이를 쥐고 현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소녀의 모습을 한 현지가 안개와 함께 등장했다.
‘목걸이가 사용되는 걸 보니 아이템도 영향을 받지 않는구나.’
불행 중 다행이었다. 백화점에서 샀던 아이템들이 아직 남아 있었기에 적절히 이용한다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곳을 빠져나가기엔 충분할 것 같았다.
“그 꼴은 또 뭐냐.”
현지는 한심하다는 말투로 나를 쳐다봤다.
“보이는 그대로야. 네 마법으로 속박 풀 수 있어?”
“그런 건 드래곤인 내겐 간단한 일이지.”
그렇게 말하고 현지는 매화 잎을 손으로 짓이겼다.
파직!
그러자 매화 잎이 가루가 되어 바닥에 부스러기 형태로 가라앉아 버렸다.
역시 김현지다. 세계 최고의 드래곤!
“이 정도의 일로 일일이 부르지 좀 마라. 한심하군.”
최고라는 거 취소다, 이놈아.
현지는 이제 더 볼일 없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바로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다.
“뭐 재밌는 일이라도 있어? 뭘 그렇게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야?”
“큼, 그냥 쓸데없는 일로 부름당하는 게 귀찮은 것뿐이다.”
헛기침을 하며 회피하는 현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소미가 두 개의 단어를 툭 던졌다.
아, 마을에서 축제를 하는 모양이지? 이렇게 보면 그냥 평범한 애 같단 말이야.
나는 축제를 기대하는 현지를 위해 순순히 역소환을 해 줬다. 어차피 나중에 급한 일이 생기면 그때 부르면 될 일이었다.
“오늘은 부르지 마라.”
현지가 신신당부하며 사라졌다.
그렇게 축제가 좋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지만 즐거워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속박만 풀리면 현지는 딱히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필요할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이권이 했던 것처럼 쇠창살을 양쪽으로 벌려 그 사이로 건너갔다. 이 지하 감옥에는 나 말고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조용했다.
“감옥의 수는 꽤 되는데 갇힌 사람은 없네. 왜 만든 거지?”
의문이 들었을 때 갑자기 감옥의 끝에서 덜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
덜컹-!
감옥의 끝으로 발걸음을 향하자 덜컹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쇠창살을 흔드는 소리 같기도 하고 벽에 몸을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이게 뭐지?”
그리고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입이 봉인 당한 몬스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던전에서 몬스터를 데리고 나온 건가?”
왜 사람이 없는데도 감옥이 이렇게 넓은 것인지 의문이었는데 의문이 의도치 않게 풀려 버렸다.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은 이곳에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감옥은 몬스터를 위한 감옥이었던 것이다.
마력 민감도가 높은 이권도 이 사실을 눈치챘을 텐데 그냥 갔다고? 대체 무슨 물건을 찾길래 그러는 거지?
나는 혹시 몰라 핸드폰으로 감옥에 있는 몬스터들의 사진을 찍어뒀다.
왜 죽이지 않고 데리고 나와 감옥에 집어넣은 것인지는 몰라도 몬스터를 던전 밖으로 반출하는 것은 불법이었으니 매화 길드의 약점을 하나 잡은 것이었다.
솔직히 소미를 데리고 다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미는 몬스터라기보다는 펫이었으니까 말이 다르다. 애초에 이 세계의 관리자였던 녀석이니 펫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대체 매화 길드장은 무슨 생각이야?”
“그건 비밀이에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승아….”
정승아가 랜턴을 들고 지하감옥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녀가 들고 있던 불빛 덕분에 어두컴컴했던 시야가 환해졌다.
“이권 님도 그렇고 어떻게 유리 님의 속박을 푼 건지…. 대단하시네요.”
정승아는 엉망으로 휘어져 있는 쇠창살을 매만졌다. 그러자 쇠창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뭐야, 무생물도 고칠 수 있어?
나는 정승아가 왜 국가 차원에서 보호를 받는 힐러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녀는 마력만 충분하다면 어쩌면 최강이라고 부를 수준이었다.
“당연히 나오지 못할 줄 알고 여기에 일단 가둬 둔 건데 방심했네요. 몬스터는 못 본 걸로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말투 자체는 상냥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중히 부탁하는 정승아의 표정은 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싸늘하다 못해 차가웠다.
“몬스터로 대체 뭘 하시려고 하는 건데요? 이렇게 가둬 둘 거면 왜 던전에서 빼오신 거고요?”
정승아는 표정을 풀지 않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걸 알아서 뭐 하시게요? 그리고 제가 알려드려 할 이유도 없죠.”
그건 그래. 아니지! 넘어가면 어쩌자는 거야.
묘하게 설득력 있는 정승아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하지만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내가 여기서 센터에 신고만 해도 매화 길드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물론 대형 길드인 매화를 건드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센터가 나선다면 매화도 곤란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이 몬스터가 밖으로 빠져나가기라도 해서 일반인들을 위협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풋!”
정승아는 웃긴 말을 들었다는 듯이 비웃음이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매화 길드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게다가 당신은 지금 적진 한가운데에 있는 거라고요. 뭐라도 된 것처럼 구시네?”
정승아가 원래 저런 캐릭터였나?
포근한 미소를 지을 때는 마냥 사람이 좋아 보였는데 저런 식으로 싸늘하게 웃으니 뒷세계 흑막처럼 보였다.
사실 지금 상황만 보면 뒷세계 흑막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몬스터를 남들 몰래 잡아두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제가 센터에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나를 비웃는 정승아를 보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럼에도 정승아의 입가에 거린 비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번 전화해 보세요.”
나는 저렇게 당당한 이유가 뭐지 싶으면서도 센터의 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이곳은 통화 가능 지역이 아니었다.
어쩐지 당당하더라니.
매화 길드가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 지어졌을 때부터 깨달았어야 했다.
식은땀이 살짝 흐르는 것 같았다. 일부러 밖과 통신이 되지 않는 지역에 길드를 세우고 몬스터를 모으고 있다는 것은, 작정하고 뭔갈 꾸미고 있다는 소리였다.
대체 몬스터로 뭘 하려고 하는 건데?
정승아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핸드폰 줘요. 그거 주지 않으면 여기서 살려 보낼 생각 없으니까.”
나는 순순히 핸드폰을 넘겼다. 정승아는 핸드폰을 바닥에 떨구고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핸드폰이 박살나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사진들도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이권 님이 왜 매화에 온 건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나를 방해하러 온 거겠죠.”
핸드폰이 망가진 것을 바라보며 정승아는 입을 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한 것이다.
“백이권이 찾는 물건이 뭔지 안다고요? 그게 당신을 방해하는 일이고요?”
“당연하죠. 옛날부터 이권 님이 나를 못마땅해하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원래 알던 사이인 듯 중얼거리는 정승아의 말에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이권이 찾는 물건이 뭔지 정확히 알려 달라고.
“매화 길드에는 100년에 한 번 피어나는 매화나무가 하나 있어요. 그 나무의 매화 잎을 우려 마시면 마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죠.”
이권이 찾는다는 게 그 매화나무인가? 하지만 겨우 마력을 올려준다는 이유 하나로 매화 길드에 직접 찾아올 정도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권의 재력이라면 마력을 올려주는 다른 아이템을 찾는 것이 더 빨랐다. 그가 굳이 다른 길드와 척지면서까지 할 선택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잎이 아니라 나뭇가지예요.”
나뭇가지? 그게 무슨 능력이 있길래?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울 수 있게 한 그 나뭇가지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