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28
1027
촤라락!
지크를 덮친 반월형 오러는 흔히 볼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었다.
오러 파이어[Aura fire].
오러 블레이드의 상위호환.
오직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강자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
그 위력은 오러 블레이드의 5배 이상.
게다가 오러 블레이드를 잡아먹어 버리는 성질까지 있어서,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미친!’
지크는 반월형의 오러 파이어가 자신을 덮쳐오자 황급히 몸을 날렸다.
만약 저 오러 파이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망할! 도제 어르신이랑 대련이라도 좀 해볼걸!’
지크는 코랄 행성으로 떠난 베텔규스를 떠올리며 후회했다.
만약 베텔규스와 대련을 해보았다면 그랜드 마스터가 얼마나 강한지 체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그건 지크의 잘못이 아니었다.
베텔규스는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후 중요한 순간마다 대활약을 했고, 그로 인해 늘 중상을 입은 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지크와 대련을 해줄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회해봤자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반격.’
지크는 가까스로 반월형의 오러 파이어를 피해낸 직후 몸을 휙! 돌려서 를 강하게 휘둘렀다.
그런 지크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유연했으며, 또 절묘했다.
그래서일까?
쒜엑!
가 암천존의 코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움직임이 좋아.”
몸을 슬쩍 물려서 지크의 공격을 피해낸 암천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오.’
지크는 아쉬워서 죽을 것 같았다.
단 5센티미터만 더 깊게 들어갔어도 암천존의 얼굴을 짓이겨 놓았을 텐데….
그렇다고 아쉬운 걸 티낼 순 없는 노릇.
“과찬이십니다.”
지크는 슬쩍 목례를 해보인 후 암천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왜 신성동맹에 계시는 겁니까?”
“그걸 말해야 하는 건가?”
“굳이 말씀하실 필요는 없지만….”
지크가 대답했다.
“솔직히 궁금합니다.”
“뭐가 궁금한가.”
“신성동맹의 끝은 아름답지 못할 겁니다.”
“그런가?”
“신성동맹의 목표는 천족의 중간계 강림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그것도 모를 것 같았나.”
암천존이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 말했다.
“나를 천둥벌거숭이로 취급하는 건가? 지금?”
“그게 아니라….”
“왜 내가 신성동맹에 몸담았는지 알고 싶은 것이라면,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겠지.”
암천존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마우레키온 제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깰 것이다.”
“……?”
“내 조국. 나의 가문. 비열한 승냥이들에 의해 멸망했지만… 그 뒤엔 무엇이 있었는지 아는가? 마우레키온 제국이다. 내 조국과 가문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방관과 사주 아래 멸망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결코 자선사업가가 아니며, 힘으로 중간계의 질서를 주도해온 국가였다.
때문에, 당연히 온갖 추악하고 끔찍한 짓들을 벌여왔을 터였다.
암천존은 세계 최강대국인 마우레키온 제국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대제국 마우레키온….”
암천존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표는 그 괴물을 무너뜨리는 것. 그 이후는 상관없다.”
제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마우레키온 제국을 홀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신성동맹과 손을 잡았단 얘기였다.
“그런 내게 연합군은 걸림돌일 뿐,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암천존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지크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진짜 온다.’
지크는 다가오는 암천존을 바라보면서, 이번에야말로 그랜드 마스터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크의 판단은 옳았다.
‘어, 엄청나게 빨라!’
쌍검을 휘두르며 덮쳐오는 암천존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빨라서, 눈으로 보고 반응하면 결코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실수하면 죽어.’
지크는 최대한의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단 한 번의 컨트롤 미스로도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만큼,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
연합군과 신성동맹.
양측 최강자들의 대결은, 암천존이 지크를 압도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정말 강하다.’
지크는 암천존의 무시무시한 공격속도에 반격은커녕, 오직 방어에만 집중해야만 했다.
암천존은 그만큼 강했다.
530레벨 그랜드 마스터의 기본 스펙은, 지크의 능력치를 상회했던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지크가 가진 는 히든 클래스라서, 레벨업을 할 때마다 스탯 포인트와 스킬 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한다.
그래서 같은 레벨보다는 무조건 더 강했고, 레벨이 훨씬 높은 이들일지라도 상대에 따라 오히려 스펙으로 압도하고는 했다.
그런데 암천존의 경우엔 달랐다.
암천존은 일단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강자이니만큼, 기본 스펙이 뛰어났다.
게다가 지크보다 레벨도 훨씬 높았기에, 결코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버텨봐야 소용없다.”
암천존이 지크를 압박하며 말했다.
“네 실력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크윽!”
“부질없는 짓일 뿐.”
그 순간.
촤락!
오러 파이어를 머금은 암천존의 검이 지크의 복부를 훑고 지나갔다.
“크악!”
덕분에 지크는 옆구리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저 멀리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비, 빌어먹을….’
지크는 그랜드 마스터와 현재 자신의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물론 스킬을 총동원해 싸운다면 그 격차를 줄이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왜?
지크가 가진 스킬들의 효율성이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문제는 이른바 이란 이 검은 하늘 아래서는 그 어떤 스킬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크윽…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그때였다.
“죽어라.”
암천존의 쌍검이 지크를 난도질할 기세로 휘몰아쳐 왔다.
‘위험!’
지크는 본능적으로 를 방패 형태로 바꾸어 암천존의 공격을 막았다.
캉! 카강! 캉! 카앙!
뒤이어 암천존의 쌍검이 방패 형태의 를 미친 듯이 두들겼다.
“으윽!”
지크는 방패의 손잡이를 움켜쥔 채 암천존의 공격을 버텨 내려고 애썼다.
그런데.
푸욱!
암천존의 쌍검 중 하나가 지크의 왼쪽 허벅지를 찔렀다.
방패가 보호하지 못하는 지크의 다리 쪽을 공략했다.
“으아악!”
지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짐과 동시에 암천존의 발길질이 방패 형태의 에 작렬했다.
“악!”
지크는 순간 자세가 무너져서, 방패를 움켜쥔 채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암천존은 그런 지크의 뒤로 따라붙으며 자신의 쌍검을 미친 듯 휘둘러대었다.
위기.
지크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셈이었다.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평상시에도 이기지 못할 상대와 스킬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싸웠으니, 패배하는 건 자연의 이치와도 같았다.
그러던 중.
“끝이다.”
암천존이 지크의 빈틈을 정확히 노리고, 쌍검을 휘둘러왔다.
‘이렇게 죽을 것 같아?’
지크는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빡!
순간 지크의 발길질이 덤벼들던 암천존의 다리를 걷어찼다.
털썩!
쓰러진 암천존.
‘지금!’
지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암천존에게 달려들었고, 등 뒤에서 그의 목을 졸랐다.
꽈악!
뒤이어 지크의 양팔이 암천존의 목을 강하게 압박했다.
“소용… 없다.”
암천존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진즉에 기절해버렸을 조르기를 버텨내며, 지크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으으으으으윽!”
지크는 암천존의 목을 조르면서도 고통스러워했다.
‘히, 힘이 달라…!’
암천존의 완력이 엄청나서, 목을 조르기는커녕 붙들고 있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뭔가 방법을… 방법을 생각해 내야….’
그 순간.
‘잠깐.’
지크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 안에서는 스킬을 못 써. 근데, 밖에서는 쓸 수 있잖아. 그렇다면… 밖에서 마왕으로 변신해서 들어오면 되는 거 아닌가?’
왠지 그럴듯한 생각이었다.
만에 하나, 검은 하늘 밑으로 다시 들어오는 순간 변신이 풀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만약 되기만 한다면, 충분히 암천존을 쳐부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보자.’
행동은 빠르게.
퍼억!
지크는 암천존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아버리고, 그를 뒤에서 걷어차 시간을 벌었다.
쌔앵!
그런 다음 무작정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암천존은 지크가 도망치자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암천존의 입장에서도 연합군 측 최강자인 지크를 제거하고, 이 전투를 빨리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시작된 지크와 암천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도망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암천존은 가히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크의 뒤를 쫓아왔다.
‘미친! 뭐가 저렇게 빨라!’
지크는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암천존을 피해 달아나며, 그랜드 마스터의 이동 속도에 경악했다.
여태껏 도망치는 지크를 쫓아올 수 있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는데, 암천존은 달랐다.
‘이, 이대로 가다가는 잡힌다!’
이제는 암천존이 지크를 거의 따라잡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아니?
암천존은 지크보다 더 빨랐다.
“어딜.”
어느새 지크의 앞을 가로막은 암천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도망칠 수 없….”
그 순간.
퍼엉!
어디선가 날아온 포탄 한 발이 암천존의 등짝에 작렬했다.
“크윽!”
물론 그랜드 마스터인 암천존이 고작 포탄 한 발에 죽을 리 없었다.
단지 조금 주춤거렸을 뿐….
“형님! 괜찮으십니까!”
그때, 승구가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승구가 골렘왕 레벤톤에 탑승한 채로 아이언 골렘들을 이끌고 전투를 수행하던 중 지크를 발견했던 모양이었다.
“승구야! 시간 좀 벌어 줘!”
“예?!”
“나 좀 바빠서!”
지크는 암천존을 승구에게 맡겨버리고 다시금 내달렸다.
“으응?”
승구는 지크가 그렇게 내빼자 당황했지만,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는 암천존에게 포탄을 퍼부어대었다.
승구뿐만이 아니었다.
“오빠! 제가 도와드릴게요!”
근처에 있던 고스란도 암천존을 향해 화살을 쐈고.
“저도 합류할게요!”
“갑니다!”
역시 근처에 있던 용설화와 데이토나가 나서서 암천존의 앞을 가로막았다.
“후우.”
암천존은 지크의 동료들이 걸리적거리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피라미들 주제에… 감히 나 암천존의 앞길을 막는가.”
그와 동시에 암천존으로부터 시커먼 안개가 뿜어져 나와 주변을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암천존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그 안개는 지크의 동료들을 모조리 집어삼킨 다음에도 계속해서 확장해나갔다.
그러자 그 일대가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천지로 변해버렸다.
“어디지…?”
고스란은 시야가 제한되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적, 그러니까 암천존의 위치를 알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스킬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때.
“어딜 감히.”
암천존이 불쑥 고스란의 바로 옆에 나타나 속삭였다.
“내 앞길을 막는가.”
다음 순간.
촤락!
암천존의 쌍검이 고스란의 목 언저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푸화아아악!
뒤이어 고스란이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게 학살의 시작이었다.
암천존은 검은 안개 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지크의 동료들을 제거해버렸다.
고스란을 시작으로, 승구, 데이토나, 용설화가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도 되지 않았다.
그게 바로 그랜드 마스터의 진면목이었다.
299레벨의 네임드급 게이머들조차 한순간에 몰살시킬 수 있을 만큼 압도적으로 강한 것이다.
“넌 도망치지 못한다.”
암천존이 저 멀리 도망가는 지크를 뒤쫓아 다시금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