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34
1133
발품을 파는 건 쉽지 않았다.
‘없네, 없어.’
그 많은 게이머들 중에서 지크의 스킬 코드가 붙은 코랄 방어구를 파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뀨! 주인 놈아!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뀨우!”
햄찌는 몸을 쥐새끼 정도로 작게 해서 지크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있다가, 그렇게 말했다.
“좀 더 둘러보자.”
“뀨우?”
“혹시 모르잖아.”
“뀨우! 주인 놈아! 괜히 헛물켜지 마라! 왜 질척거리냐! 뀨우! 벌써 두 시간째다! 뀨우!”
“한 번만 더 돌아보자.”
지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야, 원래 템 구하는 건 어려운 거야. 쉽게 포기해서 되겠냐? 엄청난 걸 주울 수도 있는 건데?”
“뀨! 하여간 주인 놈 근성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뀨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햄찌는 더 이상 지크를 재촉하지 않았다.
원래 지크는 변태 같은 근성의 소유자라서, 말려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어디인가에는 있을 법도 한데.’
지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장을 돌며 자신의 스킬이 붙어 있는 방어구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그린 헬 마그노 스킬 15레벨 붙은 플레이트 메일 팝니다!”
드디어 지크의 스킬이 붙은 방어구를 파는 게이머가 나타났다.
심지어, 그가 파는 건 지크의 주력 스킬 중 하나인 에 무려 15레벨이나 붙어 있는 사기템이었다.
‘쳇. 카르마 플레어가 아니네.’
사기템이긴 했으나, 솔직히 지크는 좀 아쉬웠다.
지크가 가지고 싶은 건 밥줄 스킬인 에 5레벨 이상 붙은 방어구였기 때문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크의 클래스인 는 누가 뭐래도 디버프가 주력.
그렇기에 를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나 혹은 같이 고레벨 액티브 스킬이 지크에게는 더 필요했다.
게다가 스킬은 그 중요도 또한 점점 떨어지는 중이었다.
대규모 집단전에서 양민학살을 하는 데에는 이만한 스킬이 없긴 했다.
문제는 적들의 레벨이 강해지면서 독 저항력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에, 활약할 여지가 없다는 것.
조무래기들이야 를 켜면 알아서 죽어 주었지만, 좀 강하다 싶은 놈들은 방사능 에너지에 거의 면역이다시피 했다.
그래서일까?
“얼마죠?”
지크는 머뭇거리지 않고 스킬의 방어구를 파는 게이머에게 다가가 곧장 가격을 물었다.
“15레벨 붙은 방어구라 가격이 좀 나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게이머가 살짝 경계하는 듯한 태도로 지크에게 되물었다.
지크가 아이템을 헐값에 사들이려고 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섣불리 가격을 부르지 않은 것이다.
“이 정도 드릴게요.”
지크가 교환창을 열어 골드를 올려놓았다.
“더 쳐주시면 안 될까요? 스킬 레벨이 15개 붙은 방어구는 안 흔한데….”
“죄송합니다.”
지크는 부자라서 돈을 더 쳐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레벨 적을 상대로 거의 쓸모가 없는 스킬에 큰돈을 투자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수고하세요.”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렸다.
“자, 잠깐만요!”
게이머는 지크가 냉정하게 발길을 돌리자 황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그냥 팔게요.”
“그러실래요?”
“어쩔 수 없죠, 뭐.”
“잘 생각하셨어요.”
지크가 미소를 지었다.
“저 진짜 그 템 그렇게까지 필요하진 않거든요.”
“그러시구나….”
“아무튼, 수고하세요.”
“네, 살펴가세요.”
게이머는 지크에게 스킬의 방어구를 팔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좋은 거래다.’
지크는 이 거래를 꽤나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사실 지크는 이 방어구를 사지 않아도 그만이었지만, 레벨이 높은 점만은 마음에 들었고, 판매자도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를 팔았으니 서로 아쉽지만 윈윈한 거래였던 것이다.
“일단 가자. 나중에 다시 둘러봐야겠어.”
“알겠다! 뀨우!”
그렇게 지크는 쇼핑(?)을 마치고 사령부로 복귀했다.
***
사령부로 복귀한 지크는 곧장 회의를 열고 포로수용소 공격 작전에 대한 내용을 논의했다.
보고에 따르면, 포로수용소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1개 사단 병력이 총공격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포로수용소의 방어가 단단했기 때문이다.
“작전 지휘는….”
지크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카인 님이 맡아주세요.”
“제가 맡습니까?”
카인이 놀라 물었다.
사실 카인은 지크가 작전을 지휘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
지크는 총사령관이었으니까.
앞으로의 공로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지크가 직접 모든 작전을 지휘할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카인이 잘 모르는 게 있었다.
공을 세운다?
지금의 지크에게 있어 공을 세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크는 여태껏 이룰 만한 업적을 모두 이루었기에, 딱히 미련이란 게 없었다.
지크의 관심은 오직 레벨 업을 통해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과 치천존과 도제의 구출에 있었지, 전쟁영웅이 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는 혼자서 움직이겠습니다.”
지크가 말했다.
“치천존 어르신과 도제 어르신은 포로수용소 깊숙한 곳에 있을 테니, 제가 따로 찾아보겠습니다. 나머지 병력은 포로수용소를 파괴하는 데 집중해주세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카인이 지크에게 의문을 표시했다.
“아무리 그래도 독단적으로 행동하시는 건….”
“괜찮습니다. 민폐 안 끼치고 알아서 잘 움직일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 미친놈이….’
카인은 지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인은 이곳 코랄 행성에서 강제로 복무하면서, 군인들의 전투방식에 익숙해진 뒤였다.
전우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움직인다는 게 어떠한 파괴력을 발휘하는지, 또 개인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이다.
‘그래, 니 X대로 해봐라. 니가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도 혼자 움직였다간 순식간에 비명횡사할 테니까.’
카인은 지크가 X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와락 구겼다.
“공격 시간은 언제로 할 겁니까?”
“밤이 되면 시작할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포로수용소 공격 작전이 결정되었고, 회의가 끝났다.
“저기요.”
카인은 모두가 회의실을 나서자 지크의 곁으로 슥 다가가 말했다.
“죄송한데, 그거 안 하시면 안 됩니까?”
“뭘요?”
“단독행동이요.”
카인이 매우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게임 경험도 있을 만큼 있으신 분이 왜 그럽니까?”
“제가 뭘요?”
“전쟁이 다 같이 하는 거지, 혼자 움직인다고 됩니까? 그러다 아군한테 피해가 가면 어쩌려고요?”
“음.”
지크는 솔직히 좀 불쾌했지만, 일단 카인을 이해하기로 했다.
사실 전쟁에서 단독행동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지크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카인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렸던 것이다.
“저도 전쟁 많이 해봐서 카인 님이 어떤 심정이신지 알겠는데요, 굳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니.”
카인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단독행동이 위험하다는 걸 알 만한 분이 그러세요?”
“특수 부대 모르세요?”
“예?”
“침투 후 타격 임무를 맡는 부대도 있는 거죠.”
“그, 그건 그렇지만….”
“알아서 해드릴 테니까, 군대 운용에만 집중해주세요. 제가 만약 민폐라도 끼치면, 총사령관직 내려놓고 떠날 테니까.”
“…….”
“그럼, 수고하세요.”
지크는 그 말을 남기곤 다시 시장으로 향했다.
카인의 의견도 중요하긴 했지만, 모든 작전을 대규모 집단전으로만 치르는 건 고정관념이었다.
현실에서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군이 괜히 델타포스, 데브구르, 그린베레, 네이비씰 등 최고 수준의 특수 부대를 운용하겠는가?
지크는 대규모 집단전만큼이나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특수 부대를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포로수용소도 그렇게 공략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
그날 밤.
카인이 지휘하는 마우레키온 제국군 1개 사단 병력은 포로수용소가 자리한 곳으로 워프해 대기했다.
작전이 시작되기 1시간 전.
“총사령관 폐하께서 먼저 침투하신답니다.”
전령이 카인에게 소식을 전했다.
“먼저?”
카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다 발각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카인이 화를 내는 이유는, 이번 작전이 매우 은밀하게 전개되는 기습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우레키온 제국군은 포로수용소로부터 약 3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워프한 채로 기습 공격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크가 1시간 먼저 포로수용소로 침투했다가 시끄러워지기라도 하면, 적들이 지원군을 부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작전이 망해버리고, 적진 한복판까지 침투한 마우레키온 제국군 1개 사단 병력은 자칫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이 미친 새끼가! 진짜 다 같이 죽자는 거냐고!”
카인은 너무나도 화가 나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어 지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예! 폐하!”
지크는 수송선을 타고 도착한 대원들과 함께 침투 작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한태성! 이 미친 새끼야!”
카인이 화가 나 지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니가 세면 얼마나 세다고! 그러다… 커헉!”
그때, 지크의 손아귀가 카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 크윽!”
카인은 지크에게 목을 붙잡힌 채 버둥거렸다.
‘히, 힘이 뭐 이렇게 세…?’
카인은 지크의 무시무시한 악력에 놀랐다.
최근 카인도 300레벨을 찍고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크는, 그런 카인조차 어린아이 다루듯 너무나도 손쉽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였다.
힘의 격차가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조용히 지켜보라고 했지.”
지크가 차가운 음성으로 카인에게 경고했다.
“실패하면 내가 총사령관 자리 내놓는다고.”
“크으으윽!”
“잘 들어.”
지크가 카인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니가 설레발 안 쳐도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가만히 자빠져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
“크윽….”
“오케이?”
“크으으윽….”
“난 총사령관이야. 지금은 전시고, 항명은 즉시 처형이야. 그냥 여기서 죽여줄까?”
“그, 그건 아니….”
“지금부터 천천히 군대 이동시켜. 정확히 1시간 있다가 공격할 수 있게끔. 알아들어?”
“알겠… 큭!”
“까불고 있어.”
지크가 카인을 휙! 하고 내동댕이쳤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총사령관인 지크가 먼저 침투하겠다는데 부하인 카인이 노발대발하는 건 빼도 박도 못할 항명이었다.
게다가 욕까지 했으니 상관모독죄에 명령 불복종의 죄목까지 붙이는 게 가능해서, 절차대로라면 카인은 영창에 갔다가 군사재판에 넘겨져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지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카인을 처형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항의할 사람이 없기도 했고.
“갑시다.”
지크는 내동댕이친 카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대원들을 이끌고 포로수용소 쪽으로 향했다.
“한태성….”
카인이 지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넌 대가를 치를 거야… 오만함의 대가를 치를 거라고… 이 개같은 새끼야.”
카인은 지크가 작전에 실패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코랄군 포로수용소의 방어가 튼튼해서, 제아무리 특수 부대라 할지라도 공략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