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4
113
“햄찌이이이이이?!”
욕쟁이 햄스터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야 이 망할 주인 놈아! 네이밍 센스가 왜 그따위냐! 간지 나는 이름 하나 달랬더니 뭐? 햄찌? 지금 누굴 호구로….”
욕쟁이 햄스터가 지크를 향해 항의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알림 : ‘프로메토스 칵투스 하이드라 리바이어던 블레스 자카리아스 아나볼리카 가야르도’의 이름이 ‘햄찌’로 변경되었습니다!]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오르고.
스으으!
이제는 햄찌란 이름을 갖게 된 욕쟁이 햄스터로부터 상서로운 빛이 뿜어져 나와 지크를 감쌌다.
[알림 : 계약, 완료!] [알림 : 숲의 대정령과의 계약에 성공하셨습니다!] [알림 : 당신이 펫(Pet)이 된 숲의 대정령의 이름은 이제부터 ‘햄찌’입니다!] [알림 : 당신은 햄찌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알림 : 햄찌는 자신이 가진 스킬들을 사용해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알림 : 햄찌는 당신과 기나긴 여정을 함께할 동반자로서, 언제나 당신 곁을 지켜줄 듬직한 동료가 될 것입니다!]그것으로 계약은 끝이었다.
[햄찌]숲의 대정령.
모험가 지크프리트의 펫.
•레벨 : 200(성장 가능)
•클래스 : 트릭스터
•생명력 : ■■■□□□□□□□
•마나 : ■□□□□□□□□□
•스태미나 : ■■■□□□□□□□
지크의 눈앞에 햄찌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어? 계약 끝났네?”
“야 이 미친 주인 놈아! 무슨 짓을 한 거냐! 내 이름을 햄찌라고 지은 거냐! 이런 개 같은! 뀨우우!”
“귀엽잖아.”
“뀨우우?!”
“이제는 바꿀 수도 없는 거 같은데, 그냥 햄찌로 살아라.”
“미친 주인 놈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
“꼬우면 니가 주인하든가.”
“뀨우… 뀨우우우우우우우…!!”
분노한 햄찌가 치를 떨었지만, 이미 계약이 끝나버린 이상 펫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털을 바짝 곤두세운 채 지크를 향해 으르렁거리기만을 할 수 있었을 뿐….
***
“야, 햄찌야.”
“왜, 주인 놈아.”
지크의 부름에 햄찌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아무래도 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럼 메카 로드는 멀쩡한 거지?”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부활을 위한 의식에 들어갔을 거다. 의식이 끝나면 메카 로드가 부활한다. 주인 놈아, 그러니까 빨리 가자! 시간이 없다! 뀨우!”
“그래? 그럼 얼른….”
그때였다.
타핫!
햄찌가 폴짝 뛰어오르더니 지크의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지크에게 ‘명령’했다.
“가자! 주인 놈아! 너로 정했다!”
“…이 쥐새끼가.”
“이랴! 뀨우우우우!!”
“으. 괜히 살렸나.”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 뀨우우우우!!”
햄찌가 전방을 가리키며 포효했다.
‘짜식, 귀엽기는.’
지크는 내심 그런 햄찌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
메카 로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스 방으로 나아가던 중.
“뀨?”
햄찌가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킁킁, 킁킁킁!
쫑긋, 쫑긋!
그러더니 코를 벌름거림과 동시에 귀를 바짝 세웠다.
“주인 놈아.”
“왜?”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싸움?”
“큰 전투다. 매우 강력한 존재 하나와 인간 여럿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아무래도 메카 로드랑 인간들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왜 모르냐! 다 들린다! 피 냄새도 나고 기름 냄새도 난다! 불 냄새도! 뀨우우!”
그때.
[알림 : 당신의 펫인 햄찌가 스킬을 활용해 전방 2킬로미터 지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감지했습니다!]친절하게도,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미어~캣!]햄찌가 오감을 동원해 주변을 탐지합니다. 햄찌의 탐지 능력은 매우 우수해서, 매우 넓은 범위까지 탐지할 수 있습니다.
은신 상태의 적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햄찌가 가진 스킬 중 하나인 의 활용이었다.
‘오. 쓸 만해. 이런 탐지 능력이라니?’
지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주인 놈아!”
“응?”
“우리 안 가도 될 것 같다!”
“왜?”
“메카 로드가 지고 있다! 뀨우우우! 인간들이 메카 로드를 다구리 놓고 있는 거 같은데? 이런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주인 놈이랑 계약하지 않는 건데! 햄찌 망했다, 망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만히 숲에 있을 걸 그랬다! 이런 젠… 뀨, 뀨우우우?!”
햄찌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하면, 지크가 갑작스레 전력질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두 시간 전.
박성진이 이끄는 제네시스 길드는 200명이나 되는 길드원들의 숫자에 힘입어 메카 로드가 있는 보스 방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고, 부활 의식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메카 로드]1,000년 전 존재했던 기계 제국의 마지막 황제.
희대의 폭군으로, 뉘르부르크 대륙 역사상 최악의 폭군 중 하나이다.
말년에 영원한 군림과 통치를 위해 스스로의 육체를 모조리 기계로 대체하는 사이보그 수술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반란이 일어나 몰락하게 되었다.
•레벨 : 220
•종족 : 사이보그
•등급 : 보스(Boss)
•클래스 : 아이언 피스트
한참 부활 의식에 열중하던 메카 로드는 제네시스 길드의 습격을 받게 되었고,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깨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보스전.
[이 쓰레기 같은 인간 놈들. 감히 짐의 온전한 부활을 저지하다니!]메카 로드는 다분히 기계음과 같은 목소리로 호통을 치며 제네시스 길드를 상대로 맹공을 가했지만, 온전한 부활에 실패한 이상 과거 기계 제국을 호령하던 시절의 무력을 선보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작해야 전성기 시절의 30퍼센트나 될까?
[메카 로드]•생명력 : ■□□□□□□□□□
덕분에 메카 로드는 두 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생명력이 10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힘들 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번 레이드의 리더인 박성진이 메카 로드와 싸우고 있는 길드원들을 응원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버퍼인 박성진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왜?
그는 비전투 계열 클래스의 최고봉인 ‘버퍼’였으니까.
수없이 많은 버퍼들이 으레 그렇듯이, 자고로 버퍼란 파티원들에게 버프를 쭉 돌려놓은 뒤 뒷짐 지고 전투를 구경하는 것이 제맛 아니겠는가?
버퍼들이 괜히 ‘버슬아치(버퍼+벼슬아치)’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래, 열심히들 싸워라. 이 노예 새끼들아.’
실제로, 박성진은 버퍼가 아닌 클래스를 가진 길드원들을 단지 ‘노예’로 취급하기도 했고.
그때, 메카 로드가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알림 : 아군이 당했습니다!] [알림 : 아군이 당했습니다!] [알림 : 아군이 당했습니다!] [알림 : 아군이 당했습니다!] [알림 : 아군이 당했습니다!] [알림 : 아군이 당했습니다!] [알림 : 아군이 당했습니다!]그에 따라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빠르게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내가… 내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영원한 군림… 종신 황제의 꿈이…!!]강철로 이루어진 메카 로드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거기! 빨리 끝내지? 몬스터의 유언 같은 거나 듣고 앉았을 시간 있어? 템 주워야 할 거 아냐!”
박성진이 주변을 가리키며 길드원들을 독촉했다.
확실히, 메카 로드를 처치한 이후에도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메카 로드를 지키던 가디언인 ‘메카닉 나이트’들의 잔해에서 B등급 마정석을 회수해야 했고, 부활 의식을 진행하던 ‘메카닉 워커’들로부터는 C등급 마정석을 회수해야 했다.
또한, 이곳 보스 방의 보물 창고에는 메카 로드의 부활 의식에 필요한 재료인 ‘초월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도 했다.
즉, 제네시스 길드로서는 메카 로드를 처치한 이후에도 최소한 한두 시간 정도는 더 마무리 작업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 예! 공대장님! 지금 바로 처치하겠습니다!”
박성진의 독촉에 제네시스 길드의 공대원 중 하나가 메카 로드를 향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휘리릭!
어디선가 날아든 망치가.
쾅!
메카 로드를 끝장내려던 제네시스 길드원의 머리통을 강타하고.
휘리릭, 콰앙!
그것으로도 모자라 한 번 튕겨 나간 후 메카 로드의 머리통을 부숴놓았다.
검을 들고 있던 길드원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메카 로드의 막타를 친 것이다.
“……!”
“……!”
“……!”
난데없는 망치의 등장에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흠칫 굳었다.
아직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뭐지?”
“누가 스킬 잘못 날렸냐? 누구냐! 조준 똑바로 안 해?”
“방금 뭐야?”
“망치 침투력 무엇?”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이거….”
어느 길드원 하나가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우리 길드가 스틸 당한 것 같은데??”
그것은 매우 정확한 생각이었다.
왜?
제네시스 길드원들의 눈앞에는 경험치가 올랐다는 알림창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
[알림 : 보스 몬스터인 메카 로드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알림 : 경험치가 올랐습니다!]메카 로드 처치에 따른 경험치 획득 알림창이 떠오른 건 제네시스 길드원들이 아니라 지크였다.
[레벨 업!] [142레벨 달성!]보스 몬스터 처치에 따른 막대한 경험치가 주어졌기에 레벨 업도 할 수가 있었다.
“뀨우?”
그 모습을 본 햄찌가 눈을 크게 떴다.
“뀨. 우리 주인 놈 진짜 비열하네.”
“어?”
“고춧가루 뿌리는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양심은 어디다 내다 버린 거냐? 뀨우!”
“뭐, 인마.”
지크가 뱀눈을 뜨고 대꾸했다.
“불만 있냐?”
“아니? 좋은데?”
“뭐? 좋다고?”
“뀨우! 그래야 내 주인답지.”
“…….”
“완전 마음에 든다! 뀨우! 착한 주인 놈 별로다! 쿨가이 주인 놈 좋다!”
햄찌가 씨익, 하고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으으! 이 자식, 제대로 미쳤어. 이거 대정령이 아니고 마족인 게 아닐까?’
지크는 피곤함에 안면을 감쌌다.
어째 펫으로 숲의 대정령이 아니라 작은 악마 하나를 들인 기분이었다.
“근데 쟤네는 왜 공격한 거냐?”
“적이니까.”
지크가 짧게 대답했다.
제네시스 길드.
지크가 언젠가는 완전히 박살을 내야만 하는 적이었다.
“그러냐? 뀨우! 그럼 싸우자! 근데 주인 놈아! 이길 수 있겠냐? 쟤네 100명도 넘는다!”
“이겨.”
지크가 딱 잘라 말했다.
“쟤네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알겠다! 햄찌가 도와줄게! 뀨우! 햄찌가 도와주면 약해 빠진 주인 놈도 이길 수 있을 거다!”
“약해 빠지긴 누가 약해 빠졌다고 그래? 시끄럽고, 가자.”
지크가 제네시스 길드원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손을 뻗었다.
휘리릭, 타핫!
제네시스 길드원 하나와 메카 로드를 처치했던 망치가 빙그르르 날아와 지크의 손아귀에 잡혔다.
‘오랜만이다, 제네시스.’
지크의 눈에 서슬 퍼런 살기가 번뜩였다.
지크 대 제네시스 길드.
제네시스 대 지크.
과거의 악연, 끝나지 않은 싸움이 재개되려 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